주일 설교(Sunday Ser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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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유익 (왕상 18:36-46, 약 5:13-18) 2/5/23

1. 우리 주님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면서도 때마다 기도했습니다. 한적한 새벽이나 밤에 기도했고 때로는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에게 필요한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와 깊은 교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우리들도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경험하고 영적 세계를 배웁니다. 기도는 나의 어려움을 해결해달라고 요청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생각에 우리의 생각을 맞추는 것까지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영적인 호흡이고 하나님과의 교제라고 합니다. 바른 교제를 위해서는 쌍방이 통하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은 기도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2. 평소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했던 히스기야 왕은 죽을병에 걸리자 마음을 다하여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왕하 20:3)라며 벽을 향하여 앉아서 통곡하며 전심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듣고 15년을 연명시켜주셨습니다. 한나는 아들을 낳지 못하는 일로 무시당했고 항상 무거운 마음으로 지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께 자기 마음을 드러내고 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삼상 1:11)라고 서원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나에게 사무엘을 주셨고 한나는 약속대로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려 성전에서 자라게 했습니다.

3. 엘리야는 바알과 하나님 사이에서 방황하던 사람들을 여호와에게로 돌아오도록 바알 선지자들과 내기를 했습니다. 불로 응답하는 참 신을 가리자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왕상 18:36-37)라고 기도했습니다. 저녁소제를 드리던 기도시간에 맞춰 하나님을 위한 뚜렷한 목적을 갖고 기도하는 엘리야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듣고 불로 응답했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똑같은 같은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비를 멎게도 하고 오게도 했습니다. 지금도 죄 용서와 구원을 확신하는 성도의 기도에는 하나님께서 일하는 것이 응답으로 나타납니다.(약 5:16)

4. 일상 속에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갖는 것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왕상 18:1을 보면 “많은 날이 지나고 제 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고 했습니다. 엘리야는 온 나라를 바알숭배로 가득하게 했던 아합과 이세벨을 맞서서 여호와 신앙을 회복시키려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던 엘리야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미리 알았기에 그 말씀을 믿고 큰 비의 소리가 있다고 왕 앞에서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땅에 엎드려 얼굴을 무릎 사이로 넣고 간절하게 비오기를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비가 오는지를 확인하고 다시 기도하기를 일곱 번이나 반복했습니다. 이렇게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평소에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입니다.

5. 엘리야는 믿음으로 그 빗소리를 들었습니다. 비를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었습니다, 그가 믿는 것을 입을 벌려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인내하며 기도했습니다. 막연하게 기다리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말씀이 현실로 나타나기를 확인하는 행동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은 말씀묵상과 기도생활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교제를 긴밀하게 할 때 가능합니다. 예수님도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말했습니다.(요 17:3) 하나님을 친밀하게 사귀고 깊이 경험할 때에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으로 하는 기도는 자기 필요를 말하고 잊어버리는 일방적인 기도와는 크게 다른 기도입니다.

6. 눅 18장에 나오는 과부는 자기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재판관에게 끈질기게 호소했습니다. 그 재판관은 불의한 사람이라서 과부의 형편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그녀가 반복하여 찾아오는 집요함을 보였기 때문에 청을 들어주었습니다, 여자의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결과만 생각하면 그저 열심히 집요하게 기도하면 될 것 같습니다. 또 예수님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면 이루어진다고(요 15:7) 말씀한 것을 그대로 믿기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가르침에는 ‘너희가 내 안에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으면‘이라는 것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자녀로서의 친밀한 교제를 전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응답받는 기도를 위해서는 죄의 용서와 구원을 확신해야 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자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무엇을 먹고 마실지를 염려하는 것보다 필요를 채워주시는 아버지를 인정하고 신뢰하는 자세(마 6:33)가 필요합니다.

7. 하나님께서는 죄로 심판받아 강대국의 노예가 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성령을 주시어 새 영과 새 마음을 갖고 살게 할 것입니다. 그들의 성읍과 삶의 터전이 회복되고 필요도 채워주어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할 것입니다. 겔 36:37은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모든 상황에서 기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한 선물이지만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쌍방 간의 관계를 더 돈독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아담에게 모든 것을 다스리게 했던 처음의 관계를 다시 회복시켜주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경험하고 더 깊이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야 하고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히 10:25) 말씀묵상과 기도생활을 배우고 하나님과의 사귐을 능동적으로 훈련해야 합니다.

8. 기도는 우리 문제의 해결방법이기도 하고 하나님의 일이 진행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교제하기 위해서는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와 도움이 필요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우리 모두 같은 마음으로 기도하기를 훈련하여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하고 배우는 기쁨을 누리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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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생활의 기쁨 (엡 2:1-10, 20-22) 1/29/23

1. 새해 들어서 신앙생활의 기본에 대해서 나누고 있는데 오늘은 교회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주님과 하나가 되는 동시에 주님께 속한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의 구성원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이름을 두려고 성전을 선택했고(신 12:11) 성도는 그리스도 예수를 모퉁이 돌로 삼고 서로 연결되어서 하나님의 처소인 성전이 되어 갑니다.(엡 2:20-22) 칼빈은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고 양육하는 어머니처럼 교회는 죄인들이 거듭나고 성령의 도움으로 그리스도를 닮게 하는 어머니 역할을 한다고 했습니다.

2. 가나안 성도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기는 하지만 교회는 안 나가는 성도를 일컫는 말입니다. 티비나 인터넷을 통하여 예배는 드리지만 교회소속은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팬데믹을 보내면서 작은 규모의 교회들은 생존이 힘들어졌지만 좋은 시스템을 갖춘 소문난 교회의 영상예배에는 사람들이 몰린다고 합니다. 그런가하면 가상세계 안에 인터넷교회를 세워 복음을 전하는 적극적인 분들도 있습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임을 부정할 수 없는 것처럼 바른 신앙생활을 위해서는 교회공동체 안에서의 교제와 만남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가상공간에서 복음을 전하고 지식을 전할 수는 있겠지만 공동체성을 갖는 예배라는 부분에서는 아쉬움이 많습니다. 예배는 거룩한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 가운데에 임하여 자신을 보여주실 때에 교회 공동체가 함께 기쁨과 감사로 응답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히브리인들은 약속받은 가나안에 도착할 때까지 광야에서 공동체 생활을 했습니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불편했지만 그들에게는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받은 땅을 기대하며 견뎠습니다. 애굽에서 나올 때 애굽의 신들을 심판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고 광야길 내내 함께하며 도와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은 시내 산에서 자신의 뜻을 돌비에 적어 주셨을 뿐 아니라 그들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제사장 나라로 세워 주셨습니다.(출 19:1-6)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약속을 가진 신앙공동체로 살 수 있도록 회막에서 그들을 만나주셨습니다.(출 40:34) 하나님의 임재를 알 수 있도록 구름이나 신적 권능으로 자신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나중에 성막을 지을 때 필요한 물품을 넉넉하게 거둔 것을 보면 그들은 분명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공동체였습니다.

4. 믿음으로 하는 신앙고백은 날마다 지속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도 경험했고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신다는 믿음도 있었지만 그들의 고백은 일관되지 못했고 상황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온 사람들의 믿음 없는 보고는 모두를 낙심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보다 눈앞의 장애물을 두려워했고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민 14:1-3) 믿음 없이 행동하던 사람들은 약속의 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광야에서 먹은 만나는 믿음으로 사는 법을 훈련하는 도구였습니다. 내일을 염려하고 많이 거두면 썩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서 미리 거두는 경우에는 썩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신 8:2-3) 믿음은 하나님만을 절대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5. 성도는 세상의 부귀영화보다 하나님을 우선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힘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는 믿음으로 삽니다. 그러니 광야에서의 어려움에 짓눌리고 불평하기 보다는 하나님 앞으로 나가야 했습니다. 아직 성막이 지어지지 않았을 때에 모세는 따로 회막을 준비하고 거기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출 33:7-11) 회막은 하나님을 만나고 죄를 용서받는 곳입니다. 광야에서의 성막이나 정착한 이후에 지어진 성전이나 지금의 교회는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하며 하나님의 백성으로의 정체성을 갖고 믿음으로 살게 하는 은혜의 장소입니다. 교회는 그래서 먼저 하나님을 경험해야 하고 일상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드러내야 합니다. 광야의 부족함이나 가나안의 풍요와 같은 주변상황에 요동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사명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그 어떤 경우에서라도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6. 교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서로 연결되어 공동체를 이룹니다. 바울의 말처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갈 3:28)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다스리는 하나님이시기에 교회는 아직 불완전하지만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가득합니다.(엡 1:23) 교회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택함을 받은 성도들의 모임이고 하나님의 아들이 자신을 희생하여 값을 주고 산 거룩한 곳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에 하나님의 이름이 항상 거기에 있고 그리스도의 영광으로 가득합니다. 여러 지체들이 모여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기에 서로가 자신을 죽이고 그리스도만을 드러내기를 노력해야 합니다.(롬 12:5) 그래서 교회를 서로 연결되어 함께 지어져가는 건물과 같다고 합니다.

7. 교회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종이며 신부이며 군대이며 제사장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명하고 맡겨주신 구원의 일을 계승하여 모든 족속이 예수의 제자가 되도록 복음을 전합니다.(마 28:19) 주님이 육체로 세상에 오시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고 병자를 고친(마 4:23) 것처럼 오늘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물려받아 계속합니다. 그리스도의 손과 발이 되어 사람들을 섬기고 천국을 보여주고 믿게 합니다.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여 믿고 죄 용서를 받게 하며 죄의 결과로 오는 죽음의 사슬에서 자유하게 만듭니다.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소망하고 그 기쁨을 앞당겨 맛보게 합니다.(벧전 1:3-5) 주님의 이름으로 배고픈 사람을 먹이고 병든 사람을 낫게 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묶인 사람들을 풀어 자유하게 하고 소망을 갖게 합니다.(막 5장)

8. 교회는 예배와 교육과 전도와 교제와 봉사를 통하여 이 사명을 감당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공동체이기에 예배할 때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말씀을 배우고 가르치며 순종하기 위해 깊이 묵상하고 기도하기를 훈련합시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왕과 제사장의 임무를 물려받게 하셨으니 구원의 복음을 널리 전파합시다.(벧전 2:9) 성도의 거룩한 교제와 나눔을 통하여 서로 돌보고 섬기며 사랑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 갑시다. 올해 우리교회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자랑하는 일에 소문난 교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내면에서는 신앙인격이 성숙해지고 그리스도를 깊이 닮는 변화가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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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교통하는 예배 (요 4:19-26, 히 10:11-14)

1.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 대화하면서 그녀를 새롭게 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철저하게 무시하며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북 이스라엘이 나라를 빼앗긴 후에 강대국의 혼혈정책으로 피가 섞이게 되면서 미움과 배척이 시작되었습니다. 유대인인 예수님이 사마리아 사람에게 물을 달라고 말을 붙이니 이상히 여겼습니다. 그녀는 순탄하지 못한 결혼생활을 하던 여인이고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다 보니 자기 방어의 벽을 높이 세운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르지 않는 생수이신 예수님을 만나서 새로운 사람이 되었고 동네 사람들에게 기쁨의 근원인 메시아를 선전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과의 대화에서 예배에 대한 내용을 살펴봅니다.

2. 하나님을 배반한 아담은 죄의 결과로 오는 죽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땅도 더 이상 소산을 내주지 않았고 땀 흘려 노력해야만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창 3:17-19) 마음의 평강은 사라졌고 죄는 대물림되어 자녀들이 서로 미워하고 죽이는 일이 생겼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라고 했으며 세상과 사탄에게 속한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라고 설명했습니다.(엡 2:1-7) 사마리아 여인처럼 소망이 없는 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힘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구원의 은혜입니다. 죄인이 변하여 감히 하나님을 만나고 교통하게 되었으니 어찌 그 은혜를 감사하고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3.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께서 메시야라는 것을 깨닫고는 곧바로 예배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들의 반대로 예루살렘 성전에 가지 못하게 되자 따로 그리심 산에 성전을 짓고 예배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그리심 산에서 하나님을 예배했고 여호수아도 가나안에 들어와서 복을 빌었던 장소였기 때문입니다.(신 11:29-30) 이와 다르게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복을 주셨고 솔로몬을 통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짓고 예배하게 했으니 자기들의 예배가 정통성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예수님은 예배의 장소보다 어떻게 예배해야 하는지를 말씀했습니다. 영이신 하나님께 예배하는 사람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요 4:23-24) 예배의 형태보다 영이신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하는 바른 예배를 말씀했습니다.

4.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예배는 영이신 하나님을 만나고 교통하는 것이기에 성령의 주도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말씀이며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가야 합니다. 예배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의 일을 찬양하고 그분 앞에 엎드려 절하며 높이는 것입니다. 영으로 존재하는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을 드러내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 생명을 주십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하나님이기에 성령의 도움으로 영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외식과 율법에 얽매여 의식적인 예배를 드리던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 라며 자신이 예배의 중심인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은 성령(요 7:39, 20:22)의 도움으로 진리(요 14:6)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아버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5. 바울은 우리들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는 산 제물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세속을 거부하는 거룩한 생활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예배라고 설명했습니다.(롬 12:1-2) 히 13:15에서는 예수께서 행하신 구원의 일을 감사하고 찬송하는 것이 우리 입술의 열매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은 날마다 일상 속에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원에 대한 확신과 감사가 분명해야 합니다. 날마다 입을 벌려 간증하고 찬송하며 우리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무릎을 꿇거나(대상 17:16) 납작 엎드리거나(민 16:4) 두 손을 들어(왕상 8:22) 하나님의 임재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가 되고 교통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6. 성막이나 성전은 하나님을 바로 예배하도록 가르쳐주신 모형입니다.(히 9:1-10) 성전 뜰에 있는 번제 단에서는 짐승을 잡았습니다. 물두멍에서는 손을 씻었습니다. 예배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통해 주시는 죄의 용서를 확신하고 자신을 깨끗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성소에는 떡상과 등대와 향단이 있습니다. 생명의 떡인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알도록 비춰주시는 성령의 도움으로 찬양과 기도를 향처럼 올려드려야 합니다. 지성소에 들어가면 언약궤가 있습니다. 언약궤 뚜껑에는 두 천사가 서 있는데 그곳을 속죄소 혹은 시은좌라고 부릅니다. 대제사장은 일 년에 한번 그곳에 피를 뿌려 백성들의 죄를 용서받게 했습니다. 언약궤 안에는 만나와 아론의 지팡이와 돌비가 있었습니다. 만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양식이며 믿음으로 사는 것을 가르칩니다. 아론의 지팡이는 하나님이 주신 권위와 영적 질서를 상징합니다. 돌비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율법을 기억하게 합니다. 이런 통로를 통하여 지성소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했습니다.(출 25:22)

7. 구약시대 백성들은 성전 뜰까지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제사장은 성소에 들어가 섬겼고 대제사장만 일 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갔습니다. 성전 뜰에서의 준비도 성소에서의 섬김도 의미 있지만 결국은 지성소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 죄의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속죄소는 히브리어로 ‘카포렛’이라고 하는데 ‘덮는다’는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옷 입은 사람들입니다.(롬 13:14)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희생 제물로 삼아 온전한 제사를 드렸기에 우리들이 죄에서 해방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가 십자가에서 운명할 때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는데 이 휘장은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유일한 통로인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요 14:6) 그 휘장이 없어졌기에 이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의 도움으로 하나님께 담대하게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8. 히 10:19-20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고 말합니다. 예스 그리스도께서 휘장인 자신의 몸을 찢고 희생하여 구원의 길을 내셨기에 그 은혜로 우리들이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성도가 누리는 특권입니다. 우림 모두에게서 생명줄과 같은 예배가 회복되어서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감격으로 다시 충만해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교통하는 본질적인 것에 관심을 두고 영과 진리로 예배하기를 훈련합시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성숙해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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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아짐의 유익 (행 11:19-30, 13:1-3) 선교주일

1. 신학자 에밀 브루너는 “불은 타오르기 위해서 존재하듯이 교회는 선교를 위해서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선교를 배우가 위한 주일에 안디옥 교회의 선교정신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에 일어난 핍박을 피하여 여러 지역으로 피신했던 성도들에 의하여 외국에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새로운 지역에 정착하여 외국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그들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복음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문화권의 경계를 넘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선교라고 한다면 안디옥교회는 물론이고 우리들도 이미 선교현장에 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선교사의 정신으로 살기를 연습하는 것입니다.

2. 안디옥교회는 구브로와 구레네 출신 신자들에 의해서 세워졌습니다. 구브로는 지중해의 연안의 섬으로 바나바의 고향이었고 구레네는 북아프리카의 리비아의 도시였습니다. 이들은 이방 지역 출신 유대인으로 헬라 말을 사용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마치 미국에서 태어나 영어를 사용하는 우리 자녀들과 같습니다. 예루살렘교회 지도자들은 안디옥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소식을 듣고는 바나바를 파송하여 교회를 돌보게 했습니다. 바나바는 성품이 착하고 온유한 사람이었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행 11:24) 예루살렘 교회에서 일곱 집사를 세워 함께 일한 경험이 있는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에서도 동역자의 필요를 느꼈습니다. 바나바는 아직 선교일선에 등장하지 않은 무명 인사였던 사울을 찾아가 설득하여 함께 일했습니다. 그 결과 교회는 크게 부흥했고 그리스도인이라는 별명을 처음 얻었습니다.(행 11:25-26) 그리스도가 그들의 대화와 생활의 중심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3. 안디옥 교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음에도 예수그리스도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했기에(행 11:21) 말씀에 순종하고 성장하는 교회를 이루었습니다.(행 11:23) 기도하고 예배하는 일에 열심이었고 말씀을 배우는 일에도 앞장섰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답게 믿음으로 살았기에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그리스도처럼 살았으면 그리스도인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기근으로 어려울 때는 최선을 다하여 구제헌금을 모아 보냈습니다. 이렇게 열린 마음으로 섬기는 안디옥교회를 하나님께서 이방선교를 위해 사용했습니다.(행 13:1-3) 성령께서 바나바와 사울을 구분하여 따로 세우라고 지시하자 그들은 금식하고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선교지로 보냈습니다. 담임목사와 성경교사를 선교사로 파송한 것입니다,

4. 안디옥은 로마시대 시리아의 수도였기에 인구와 물자가 집중되었고 동서양의 문화가 만나는 헬라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갈릴리 출신의 제자들에 의해 운영되던 유대인중심의 교회였다면 안디옥 교회는 해외파 유대인들이 주축이 된 교회였기에 세계로 뻗어 갈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습니다, 신령과 진리로 예배하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며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안디옥 교회를 하나님께서 사용했습니다. 선교는 우선 영적생활의 감격과 은혜가 있어야 가능하고 그래야 다른 사람을 섬길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기보다 다른 사람을 섬기려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셨습니다.(막 10:45) 자기의 가장 중요하고 값진 것을 나누는 것이 참 희생이고 바른 헌신입니다.

5. 선교적 교회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이 말은 인도에서 선교하고 영국으로 돌아온 레슬리 뉴비긴이라는 선교사가 처음 사용했습니다. 30여년을 인도선교사로 일하고 고향에 돌아와 보니 70년대의 영국교회는 영적으로 크게 타락해 있었고 오히려 선교지처럼 복음을 다시 받아야 할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신자들이 선교사의 정신으로 자기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이 개념은 북미지역으로 확산되어 전통과 형식에 매였던 교회들이 영적으로 깨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북미의 교회들도 선교사를 통하여 복음을 들어야 할 형편에 처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급변하는 시대와 함께 사람들의 정신세계와 영적기류는 크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럴 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가능할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6. 믿지 않는 사람들을 교회로 초청하던 전통적인 방식의 전도형태에서 벗어나 불신자의 눈높이에 맞춰 생각하고 불신자들을 찾아가는 성육신적인 접근을 하게 된 것이 큰 변화입니다. 목회자는 물론이고 훈련받은 신자들이 제사장의 역할을 하려는 마음으로 자기 삶을 나누는 소그룹활동을 통하여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예배형태나 복음을 전하는 방식에서도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구도자예배라고 해서 불신자들이 부담 없이 교회를 찾고 복음을 듣게 하려는 노력들이 생겼습니다. 설교강단이 낮아지고 복장이나 예배의식도 자유로워졌습니다. 시대의 감각을 수용하는 예배음악들이 생겨났습니다. 지성적이고 이론적인 설교에서 감성에 호소하며 영적인 체험과 실천을 강조하는 설교로 기울었습니다. 성과 속을 구분하며 담을 쌓고 고립되었던 교회들이 세상과 교감하면서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7. 우리들은 주로 한인을 섬기는 교회이지만 요즘 오는 분들은 정착을 위한 준비를 미리 하고 오기에 예전처럼 도울 일이 많지 않습니다. 그만큼 전도의 접촉점을 잃은 것입니다. 시대의 영향으로 교회에 무관심하거나 배타적인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신자들이 이사 오더라도 자기 취향에 맞는 교회를 찾아갑니다. 이럴 때에 교회는 어떻게 그들을 접촉하고 복음을 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복음전도에 대한 부담은 있는지 더나가서 구원의 확신과 감격은 분명한지를 각자에게 물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부요하게 하려고 스스로 낮아지고 가난하게 되었음을 생각합시다.(고후 8:9) 선교는 우리를 낮추고 희생하여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 우리를 살게 하신 주님의 낮아짐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선교하면서 우리를 드러내거나 신앙생활의 목적을 자기 뜻을 성취하기 위한 것에 둔다면 그것은 주님의 방법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8. 우리교회가 운영하는 문화센터는 이웃을 섬기기 위한 유일한 창구입니다. 그래서 함께 관심을 갖고 기도하며 협력해야 합니다. 선교사님과 협력하며 복음을 전하는 열정을 배우기 원합니다. 다음세대를 위하여 내 자식 기르듯 투자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안디옥교회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쓰임 받은 것처럼 우리도 성령 충만을 기도하고 말씀에 굳게 서기를 힘써 노력합시다. 자기 쓸 것이 부족한 중에도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구제하던 나눔의 정신을 배웁시다. 자기 교회에도 일꾼이 필요한 때에 성령의 지시에 순종하여 선교사를 파송했던 자기 포기의 순종을 기억합시다.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으로 우리를 섬겨주신 주님의 낮아짐을 몸으로 배우는 선교활동이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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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요 15:1-11)

1.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 이런 영적 기쁨을 드러내며 살 때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롬 14:17-18) 성경은 항상 기뻐하고 항상 기도하고 항상 감사하는 것이 믿는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가르칩니다.(살전 5:16-18) 성도가 누리는 기쁨은 삶의 형편이 잘되고 형통해서가 아니라 우리와 항상 함께 하는 성령 안에서 기뻐하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2. 믿음으로 사는 사람도 어려움을 만납니다.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불리던 욥도 그가 당하는 고난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으면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욥 3:11). 다윗은 원수들로부터 오는 위협 때문에 심적으로 괴로웠고 죽음의 공포를 느꼈습니다. 오죽하면 자기에게 비둘기처럼 날개가 있다면 저 멀리 광야로 날아가 피난처를 찾고 싶다고 자기 마음을 토로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습니다.(시 55:6-8) 엘리야 선지자는 바알지도자들과 한판 시합을 벌여서 바알과 하나님 사이에서 머뭇거리던 사람들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한 능력의 종입니다. 그런 위대한 선지자도 탈진하여서 자기 목숨을 거두어주시기를 청하기도 했습니다.(왕상 19:3-5)

3. 만일 믿음의 선배들이 이런 형편에 짓눌려 포기했다면 더 이상의 승리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절망의 순간에 하나님께 자기 마음을 쏟아내며 기도했습니다. 시편 3편을 보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대적들이 다윗을 향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다윗이라고 욕을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라고 고백했습니다. 천만인이 에워싸도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의지적인 고백을 하며 “구원은 여호와께 있으니 주의 복을 내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다윗은 시 18편에서도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라고 노래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만 바라보는 절대 믿음의 기도입니다.

4.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기쁨을 유지했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시 19:7-8) 그러므로 말씀묵상과 기도생활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일에 필수적인 것입니다. 만족스럽지 못한 우리들의 현실에 마음을 빼앗기면 기뻐할 수 없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은 어려움을 이기고 기쁨을 유지하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통하여 주님 안에 거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원가지인 주님께 붙어 있는 성도는 거기서 양분을 얻어 자라고 열매를 맺습니다. 이런 성도는 생명을 구원하는 주님과 함께 일하며 전도의 열매를 맺습니다.(요 15:16)

5. 기도는 성도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그러나 기도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어야만 합니다. 찬송가 325장은 ‘예수가 함께 계시니 시험이 오나 겁 없네 기쁨의 근원 되시는 예수를 위해 삽시다. 날마다 주를 섬기며 언제나 주를 기리고 그 사랑 안에 살면서 딴 길로 가지 맙시다.‘라고 노래합니다. 주님과 바른 관계에 있을 때에 시험을 이길 수도 있고 기도응답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들은 예수를 주로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요 1:12)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말씀드리십시오. 그러면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평안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빌 4:6-7)

6. 예수님은 요 15:7에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만사형통을 약속한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 거하는 것과 하나님과의 바른 교제를 우선하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오래 간절하게 기도하는가보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기도해야 합니다. 마 6:31-32에서는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의 필요를 미리 아시고 공급해 주실 것이니 무엇을 먹고 마시고 입을까를 염려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대신 먼저 하나님나라와 의를 구하면 우리의 필요는 덤으로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우리의 필요만을 위해 기도한다면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한다는 것은 주님의 임재 곧 성령 충만을 구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롬 8:26-27)

7. 요 15:5에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했습니다. 가지가 열매 맺기 위해서는 원가지에 붙어있어야 합니다. 더 좋은 열매를 위해서 농부가 가지를 정리할 때 그 아픔도 견뎌내야 합니다. 만일 양분 공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거나 포도가 아닌 다른 열매를 기대한다면 그 가지는 잘려 버림당하게 될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 없이도 일 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예수님께 붙어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기대하는 전도의 열매가 아닌 세속적인 성공을 원한다면 다른 나무에 붙어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붙어있다는 것은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놓은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날마다 의지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지혜와 능력으로 살며 생명을 구원하는 주님과 함께 일하여 전도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8.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약 5:13)고 했습니다. 주님과 바른 관계에 있다면 어떤 형편에서도 기도하고 찬양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드리는 바른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기도 합니다.(약 5:15) 바른 기도는 병 낫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보다는 병든 사람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로 회복되도록 돕는 것입니다. 죄 용서를 받고 구원받게 되면 병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의해 다루어질 것입니다. 영혼이 잘되면 범사가 형통하며 강건하게 되는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요3서 1:2) 올해 우리들의 뜨거운 기도생활을 통하여 더 많은 사람이 변화되고 주께 돌아오는 영적인 열매가 풍성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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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대로 살기를 힘쓰자 (딤후 3:15-17) 직원헌신예배

1. 우리가 믿고 사랑하는 하나님은 역사를 주관하고 다스리는 전능하신 분입니다. 목자들과 동방박사를 사용하여 태어나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세상에 알렸는가하면 헤롯이 아기 예수를 찾아 죽이려고 할 때에는 요셉과 그의 가족을 애굽으로 피신시켰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마태는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마 2:15)며 호 11:1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예언의 말씀을 숙지하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해주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구주탄생의 일에도 관여했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2. 하나님께서는 헤롯이 죽자 요셉의 가족을 나사렛으로 옮겨 정착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예수님이 나사렛 사람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마 2:23) 나사렛은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던 곳인데 예언자들이 말한 메시아의 모습도 풍채가 보잘 것 없고 천시 받는 모습이었습니다.(사 53:2) 또 헤롯이 무고한 2살 미만의 사내를 죽인 일에 대해서도 마태는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 때문에 애곡하는 것이라.”는 렘 31:15의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바벨론으로 잡혀가는 젊은이들을 보며 슬퍼하던 라마의 통곡소리와 연결시켰습니다. 헤롯에 의해 희생된 아이들도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위한 희생으로 본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나 시대의 아픔까지도 사용하여 약속의 말씀을 성취하는 분입니다.

3. 그런 절대 주권을 가진 하나님께서 우리를 양자 삼으려고 그의 아들을 희생시켰습니다. 이것도 엄청난 은혜이며 약속한 말씀의 성취입니다. 갈 4:4-7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우리를 하나님의 상속자로 만들려고 자기 아들을 희생 제물로 내주셨습니다. 이것은 아담이 잃어버린 하나님과 생각을 나누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일하던 권한을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창 3:15) 이 은혜 때문에 우리가 죄에서 해방되고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어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4. 바울은 갈 3:29에서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라고 했습니다. 요한은 요 1:12에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 되었고 그리스도의 거룩함을 옷 입게 되었습니다.(갈 3:27) 때마다 성찬에 참여하며 우리와 그리스도가 한 몸이라는 것을 확인합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자랑하던 손으로 행한 할례보다 더 확실한 은혜입니다. 성령의 도움으로 믿게 되었고 약속한 말씀대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임마누엘의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5. 교회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을 믿고 전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복음을 듣는 사람들도 말씀을 통하여 새롭게 됩니다. 말씀대로 실행하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교회는 그래서 주님을 높이고 찬양하고 예배하는 일을 우선합니다. 이 일에는 동방박사들이 먼 길을 여행하는 수고를 참아낸 것처럼 헌신과 인내와 수고가 필요합니다. 그들에게 태어날 왕을 만나 경배하려는 목적이 분명했던 것처럼 우리의 예배와 섬김에도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는 말씀처럼 구원을 확신하는데서 부터 시작하여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을 경험하고 예배하는 영적훈련을 지속해야 합니다.

6. “말씀으로 다시 새롭게”라는 표어를 다시 내겁니다. 말씀대로 살지 않고서는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감격을 이해할 수 없으며 영적성장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일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게 합니다. 시편 119:105은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준다고 했습니다.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용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고 말씀대로 살 수 있는 능력도 줍니다.(딤후 3:15-17) 전염병과 전쟁의 여파로 경제적으로 힘들고 영적생활에도 지장을 받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올해 교회생활지침서에 성경읽기표와 날마다 사용할 기도문을 실었습니다. 날마다 손에 들고 여러분의 신앙성장을 위해 사용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7. 오늘은 직원들이 헌신을 다짐하는 예배를 드립니다. 사도들은 말씀과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기위해서 신자들의 필요를 돕는 일을 집사들에게 위임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고 지혜로우며 믿음으로 살아 다른 사람들의 칭찬을 받는 사람들 중에서 일군을 뽑아 분담했습니다.(행 6:2) 우리도 이 기준을 따라 하나님과 사람에게 인정받는 일군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목사와 장로는 가르치고 다스리는 일을 하고 권사와 집사는 전도하고 양육하고 권면하는 일로 교회를 섬깁니다. 예배와 교육, 선교와 봉사, 새가족과 음악, 그리고 재정부에서 협력하며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세웁니다. 새해에도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기며 말씀연구와 기도생활로 영적성장을 이루기를 기대합니다.

8. 고전 10:31에서 바울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고 교회에게 부탁했습니다. 문화센터 사역으로 이웃을 섬기고 선교사님과 협력하는 일에 진전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낙심하고 지친 이웃들이 주님주시는 소망을 갖도록 손을 펴야겠습니다. 다음세대가 왕성하게 일어나도록 기도하며 가르치고 또 우리보다 약한 교회들을 격려하여 함께 성장하는 일도 필요합니다. 눅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는 말씀을 경험해보기를 권합니다. 나의 편안함을 내려놓고 우리의 높은 울타리를 낮추어 주님이 우리 가운데 계심을 세상에 드러냅시다. 새해에 말씀으로 더욱 새로워지는 기쁨을 누리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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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성탄절 선물(딤전 1:15-17) 윤준희 전도사 12/25/22 성탄절

메리 크리스마스 여러분! 모두 잘 지내고 건강하게 지내길 바랍니다. 한해의 마지막에 뒤돌아보니 우리 모두 감회가 새롭습니다. 올해는 오랜 격리 기간을 마치고 모두가 학교로 직장으로 돌아갔고 교회도 모임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23년을 맞으며 팬데믹 상황이 사라지고 모두가 안전하고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건강해지기를 기대하고 기도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계속 성장하기를 원합니다. 숫자적으로는 물론이고 하나님과 서로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헌신에 있어서 성장하기를 원합니다. 모든 나라의 신자들이 믿음생활을 하기 어렵다고 하는데 여러분은 매주 성실하게 교회에 오셔서 함께 예배하니 참 감사한 일입니다.
저는 오늘 힘들고 어려운 일들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크리스마스에 주시는 기쁜 소식을 나누려고 합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그 선물을 이미 열어보셨겠지만 오늘 저는 이번 성탄절에 우리에게 주시는 세 가지 선물에 대해 말하려고 합니다.

1. 소망 없는 자에게 주는 소망(15절)
올해에 많은 사람들이 상처와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비록 격리상태가 느슨해지고 마스크를 벗게 되었지만 이전의 생활로 완전하게 돌아가기는 어렵다는 것을 느낍니다. 사람들은 정신적인 문제나 육체적인 건강 문제를 갖게 되었고 정치경제적인 문제와 영적인 문제도 겪고 있습니다. 미국 전역의 교회들에서 출석교인 수가 감소했고 지도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심지어는 교회들이 재정이나 헌신과 열정이 약해지는 교회가 죽어가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생활을 등지고 있는 이때에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이런 일들을 허락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예전으로 다시 회복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할 때입니다.
선한 싸움을 신실하게 싸우는 성도들에게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세상을 오셨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했던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주시는 말씀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려고 세상에 왔다는 것을 믿습니다. 이것은 세상이 어떤 어려움과 문제를 만나더라도 복음의 메시지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사람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대로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합니다. 경제적인 풍요함을 추구하거나 사회적인 성공을 추구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멋있는 로맨스를 꿈꾸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목표들이 원만하기 이루어지면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들도 우리를 완전히 만족시키거나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만일 우리가 이런 것들을 믿고 소망한다면 우리는 그것들을 결코 얻을 수 없을 것이고 만족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다행한 것은 비록 세상살이가 힘들고 어렵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들을 사랑하고 잘 관리한다면 하나님께서 처음 의도한대로 회복시켜 주실 것을 믿습니다.
계 21:4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 주실 것입니다. 거기는 더 이상 죽음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없을 것입니다. 이전 것이 지나고 새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하기에 여러분 중에 지난날의 어려움으로 소망을 잃어버린 사람이 있다면 제가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가장 큰 소망이 되고 우리가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와 같은 육체로 세상에 와서 우리가 겪을 수 있는 문제들을 몸소 경험했기에 능히 우리를 도울 수 있고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해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2. 죄인들에게 주는 긍휼(16절)
바울은 하나님께서 죄인중의 괴수 같은 자기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시어 다른 사람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을 얻게 되는 일에 본보기로 삼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두 번째 선물은 긍휼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가 이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요 교회를 핍박하던 자였지만 그때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긍휼가운데 있었다고 말입니다. 죄인중의 괴수 같은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간증하게 되었으니 다른 사람들도 믿고 구원받게 하는 샘플로 사용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타락하고 깨어진 세상을 회복하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를 용서하고 긍휼을 베풀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의도하고 목적한 대로 세상을 회복하고 또 우리의 삶도 그렇게 회복시키려고 오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등지고 하나님을 신실하게 따르지 못한 그때에도 예수님은 그의 엄청난 인내를 계속 보여주셨습니다.
이번 성탄절에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은 망가지고 타락한 세상과 사람들을 다시 회복시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울처럼 무지하고 불신앙적인 자세로 살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고 긍휼을 베푸십니다. 하나님은 변함없이 계속하여 우리를 그분의 자비와 용서가운데로 불러주십니다. 그리고 이번 성탄절에 나누는 우리들의 간증과 삶이 하나님의 능력을 세상에 드러내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긍휼과 자비를 힘입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은 먼 미래의 소망을 주시는 것뿐 아니라 오늘 여기서 긍휼과 용서를 베풀어 주시어 우리를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합니다.
히 4:14-16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이 말씀은 우리의 약함 때문에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이번 성탄절과 새해에 우리를 새롭게 하여 하나님께 헌신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갈등하고 넘어지는 때에도 여전히 긍휼을 베풀어주십니다.

3. 성도에게 주는 영생(16절)
바울이 세 번째로 말하는 선물은 영생입니다. 바울의 간증은 모든 믿는 자들이 영생을 얻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는 샘플로 사용되었습니다. 우리들은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성탄 절기를 잘 보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은 그의 아들이고 그를 통하여 주시는 영생입니다. 영생은 우리가 더 이상 옛 사람으로 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 이상 상처와 실패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새롭게 된 정체성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치유와 변화를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과 믿음이 필요합니다. 바울도 수년이 걸렸고 우리에게도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성탄절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잘 관리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억지로 신자가 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만이 세상을 위한 해답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진리이며 길이요 생명이기에 팬데믹의 어려움이나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 새 생명을 얻는 일도 예수님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한 해가 저무는 이때에 우리는 주님을 신실하게 따르는 믿음으로 새해를 맞아야겠습니다. 이것을 위해서 누구는 믿음을 새롭게 해야 하고 누구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죄를 회개해야 하고 누군가는 성경을 다시 읽기 시작하거나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성숙해지고 하나님이 주는 열매와 기쁨을 누리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눈에 보이거나 물질적인 선물이 아닌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결론적으로 여러분에게 부탁합니다. 이미 우리에게 주신 소망과 긍휼과 영생을 잘 간직합시다. 그리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는 하나님, 보이지 않지만 영원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과 이웃들에게 보여줍시다. 아멘

Hook: Merry Christmas everyone! I hope everybody is doing well and staying healthy this season. It’s the end of the year, and looking back I can only imagine what everyone has been through. This year was hard for everybody coming back to school, work, and church work in person after a long time of quarantine. And going into 2023, I hope and pray that the pandemic will continue to decrease and that everyone will stay safe and healthy physically, mentally, and spiritually. I just hope that our church will continue to grow not just numerically but in our faith and devotion to God and one another. I just want to thank you all for coming out week by week faithfully and participating in a time when many Christians all over the world have struggled to keep their faith.

Introduction: But today I want to talk about not just the hard and sad things but as we wrap up this year, I want to talk about the joys of what God gives through His Son, Jesus Christ this Christmas. So, I am sure you already opened up your presents, but today I want to tell you about 3 gifts that Jesus gave us this Christmas.

Main Point: 3 Gifts Jesus gives us this Christmas,

1. Hope to the Hopeless (v.15),
This year many of us suffered through the consequences of the brokenness and fallenness of our world. Even though 2022 was the first year since we were released from quarantine and to unmask, it did not mean that our lives would go back to normal before the pandemic. People came out of quarantine with more mental illness, physical health problems, political tension, the economy struggling, and maybe most of all, our spiritual lives being at an all time low.
In churches all around the United States, attendance and membership started decreasing, more news of leadership failures and even churches dying due to the lack of resources, commitment, and energy.
Many have left the faith and at times like this we can only wonder why God, why is this happening? And how can we recover and be restored back to our former days?
To those of us struggling and faithfully fighting the good fight, the Apostle Paul reminds us, “Here is a trustworthy saying that deserves full acceptance: Christ Jesus came into the world to save sinners.”
These words Paul is speaking to Timothy are the same words that he is speaking to us today. That the one thing that you and I as believers can hold onto is that Christ Jesus came into our world to save sinners.
This means even though our world is experiencing all kinds of consequences and new challenges, the gospel message still remains, that Jesus Christ’s main purpose was to come into our world personally to save us.
In these times there are many people turning to different answers and idols to find hope and comfort: things like wealth and materialism, success and status, even good things like romance and the people we love have become what we’ve clinged onto and some of us even believe that as long as these things turn out well, we will be good at the end of the day.
But none of these things will forever remain. Nothing in this world will ever fully satisfy us and nothing in this world will ever save us. If we place our trust and hope in the things of this world, we will never fully get what we want. As Christians, we believe this world that we live in is temporary and will eventually cease to exist as we know it.
But the good news is despite our world struggling to survive, our greatest hope is that we are not destined for this world forever. As we do our best to love and steward the things that God has given us, we also hope and believe that one day God will return to restore the world back to what he intended.
Rev 21:4 says “He will wipe every tear from their eyes. There will be no more death’ or mourning or crying or pain, for the old order of things has passed away.”
So this Christmas if anybody has lost hope due to what they’ve experienced this past year, one thing I want to remind you is that Jesus Christ is our greatest hope and the only one we can fully trust in. He’s proved it by coming into our world personally and by going through and experiencing everything we have in order to restore all things and bring us back to God.

2. Mercy to the Sinners (v.16a)
The next thing Paul says is “But for that very reason I was shown mercy so that in me, the worst of sinners, Christ Jesus might display his immense patience as an example for those who would believe in him and receive eternal life.”
The second gift that we see God gives us here is the gift of mercy. Paul explains that even though in the past he was once a blasphemer, persecutor, and violent man who attacked the early church, even he was shown mercy by God because he had acted in ignorance and unbelief. But through Paul who considered himself the chief of sinners, that through his testimony Jesus’ power and might would be displayed as an example for those who would believe in him and receive eternal life.
This means that Jesus didn’t just come to restore the fallenness and brokenness of our world but he also came to forgive and mercy on us. Not only will everything we restore to what God originally intended and purposed but even our lives will be restored to what God has envisioned for us.
Despite the times we’ve turned our backs on God and have failed to follow him faithfully, Jesus has time and time again shown us his immense patience.
This Christmas the gift that God gives us isn’t just the hope to restore our broken and fallen world one day but to restore broken and fallen people like us.
God’s heart extends to all of us knowing that just like Paul we have acted in ignorance and unbelief but that does not mean he will reject us. Instead God is constant and continues to invite us into his mercy and forgiveness. And through our own testimonies and stories we hope the power of God will be displayed before the world so that people can turn back to the Lord’s compassion and mercy this season.
Jesus does not just give us hope that will come in the distant future but he gives us immediate mercy and forgiveness to bring us back to God.
Heb 4:14-16 says: “ Therefore, since we have a great high priest who has ascended into heaven, Jesus the Son of God, let us hold firmly to the faith we profess. For we do not have a high priest who is unable to empathize with our weaknesses, but we have one who has been tempted in every way, just as we are—yet he did not sin. Let us then approach God’s throne of grace with confidence, so that we may receive mercy and find grace to help us in our time of need.”
This means we do not need to feel shame but this Christmas and coming year, Jesus has made a way for us to renew our faith and recommit to God once again.
Jesus shows us mercy and even when we continue to struggle and fall he continues to extend his mercy to us again and again.

3. Eternal Life to the Saints (v.16b)
The last gift that we see Paul talk about is the gift of eternal life. That even through Paul’s testimony the purpose was to show God’s might but also to be an example for those who believe to receive eternal life.
This might be very basic and elementary to some of us but it might also be the reminder we need to persevere and stay strong this Christmas. The greatest gift God has given to us is his Son and the gift of eternal life to the New Age to Come.
This gift of eternal life means that no longer do we continue to live as our old selves in the past, no longer do we need to stay bound to our brokenness and fallenness but through faith and time our identity will be renewed and found in Christ.
And I know it’s easier said than done. It takes time, effort, and faith for us to continue to heal and be transformed. For Paul an apostle of the early church it took several years and for us it might take just as long.
But this Christmas I believe that we need to steward the gift that God has given us. I believe that we are called as believers to trust and turn to him not because he forces us but because Jesus is the answer to our brokenness and fallen world. He is the truth, the way, and the life and in Him, we have new life that endures and comes out through any pandemic even sin.
So as the year is about to end, please prepare yourself to continue another year faithfully following the Lord. For some of us it might be recommitting our faith, for others it might be repenting and confessing our sins before Jesus and one another, or it might be picking up our Bibles again and taking intentional time to pray and have a relationship with God.
And through that I hope and pray that we will grow and mature more like Christ and come to experience all the fruit and joy that God gives us. Not just externally or materialistic gifts but a true gift that we have until the end of this age.

Conclusion:
So one thing I want to challenge everyone is to steward the gifts of hope, mercy, and eternal life and to show the world and one another how glorious our God the king of kings, eternal, immortal, invisible, forevermore.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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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나라 (마 1:18-25 눅 1:26-38) 대림절 넷째주일

1. 해마다 이맘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역을 더 깊이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시어 하나님나라를 더 분명하게 가르친 것처럼 오늘도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하나님나라가 세상에 알려집니다. 세례요한이나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며 천국이 가까웠으니 회개하라고 가르친 것은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에게 회개하고 바른 관계로 돌아오기를 청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딤전 2:4)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셨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성도들을 통하여 그 나라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2.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존재라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 안에 머물 때에 참 만족을 느낍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만들고 많이 기뻐하셨고 그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복을 주셨습니다.(창 1:28) 하나님이 만든 세상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권한도 주셨습니다.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열매를 먹지 말라는 유일한 조건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사단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처럼 되려는 교만한 마음을 품고 그 약속을 어겼습니다. 사단은 처음부터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라서(요 8:44) 항상 하나님의 나라를 방해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회복시키려고 사단을 저주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 이 약속대로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단의 권세를 물리치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길을 여셨습니다.

3. 하나님은 죄인들과는 함께 할 수 없는 거룩한 분입니다. 죄 씻음 없이는 누구라도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신 피 흘려주셨습니다. 예수를 주로 믿고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한 것입니다.(요 3:16) 멀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이 복음을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는 임마누엘의 은혜를 받습니다. 바울도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 1:3-4)고 설명했습니다.

4.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심으로 오래전에 이사야를 통하여 주셨던 예언의 말씀이 이루어졌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는 말씀은 아람과 북이스라엘 연합군이 앗수르와 친하게 지내던 남 유다를 공격해오자 유다 왕과 백성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있을 때에 주신 말씀입니다. 처녀가 임마누엘이라고 불리는 아들을 낳게 될 것인데 그것이 하나님께서 함께 한다는 징표가 될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 아이가 자라서 율법을 알고 선악을 분별하게 되는 12살이 되기 전에 연합군은 완전히 망하게 된다는 것을 이사야를 통하여 미리 알려주셨습니다. 이 약속은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기다리는 근거가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을 뒷받침해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5.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용서해 주시려고 그의 아들을 화목제물로 보냈습니다.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들이 받는 회개의 물세례를 받고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주신 것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기 위한 대속의 죽음이었습니다.(엡 2:1) 그는 십자가에서 죄의 값을 치러주시고 새 언약의 중보자가 되셨습니다.(히 9:12~15) 옛 언약은 시내 산에서 모세를 중보자로 하여 세운 언약입니다. 그러나 율법 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서 결코 죄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로 세워주신 새 언약은 죄 용서와 의롭다함을 얻게 합니다. 이 피는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언약의 피였습니다.(마 26:28)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자신을 희생하여 만든 구원의 길입니다.

6. 이런 구원의 일에 마리아와 요셉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앞에 닥친 일을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뜻이 이루지기를 원했습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는 가난한 미혼모가 되어 요셉으로부터 내쳐질 가능성도 고려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라는 말씀을 듣고는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말했습니다.(눅 1:30-38) 이것이 믿음의 결단이며 순종입니다.

7. 마리아의 임신소식을 듣고 주저하던 요셉에게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0-21)라고 했습니다. 처녀가 아이를 가진 일은 가문의 수치이며 돌에 맞아 죽을 일이었습니다. 남편으로는 당혹스런 일이었지만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천사가 말한 대로 실천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그의 아내를 집으로 데려왔고 아들을 낳기까지는 잠자리를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을 낳자 이름을 예수라고 했습니다.(마 1:24-25) 그 후에도 헤롯의 칼을 피하여 아기 예수와 함께 애굽으로 피신해야 했습니다.(마 2:14) 쉽지 않은 길이지만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믿음으로 결단하고 순종했습니다.

8.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요일 4:10,15) 예수 믿는 우리들은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에게는 아버지를 기쁘게 해야 할 부름이 있습니다. 날마다 믿음으로 결단하고 순종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자랑하고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또 다른 사람들에게 알릴 때에 아버지께서 기뻐하십니다. 임마누엘의 감격으로 서로를 축복하고 문안하는 기쁘고 의미 있는 성탄절을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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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의 비유 (눅 13:6-9) 김태환 목사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눅 1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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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누는 천국의 기쁨 (사 11:1-10)

1. 이사야는 우상숭배와 죄로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이스라엘에게 회개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하나님의 경고를 전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잘린 줄기에서 새순이 돋는 것처럼 무너진 다윗의 혈통에서 한 왕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루터기는 잘라진 나무의 흔적을 말합니다. 거기에서 싹이 나오는 것이니 시간도 걸리고 연약할 것입니다. 솔로몬 이후에 남북으로 나누어진 나라는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나라를 뺏겼습니다. 이스라엘이란 나무는 잘렸지만 그루터기에서 다시 싹이 나오듯 이새의 줄기에서 메시아가 나올 것을 말했습니다. 새싹처럼 약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미리 말한 것입니다.

2. 메시아에게는 성령께서 자기 백성을 다스릴 지혜와 지식과 재능을 주실 것입니다. 그는 여호와의 뜻을 알고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며 순종할 것입니다. 그는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옹호하고 세상의 악인들을 죽일 것이며 정의와 성실로 자기 백성을 다스릴 것입니다.(사 11:1-6) 모든 민족이 그에게 모여들 것입니다. 그때에는 사자나 독사 같은 들짐승이 어린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평화공존의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 물이 바다를 덮는 것처럼 여호와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해질 것입니다.(사 11:7-10) 이런 회복을 이룰 메시아를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초월적인 힘을 지닌 메시아가 등장하여 정치해방을 이루고 유대인들을 위한 나라를 세울 것으로 믿었습니다.

3. 세례요한은 700년 전 이사야에 의해 예언된 선지자입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사 40:3–5) 하나님께서는 메시아의 오심을 선포할 사람으로 요한을 택했습니다. 때가 되니 요한은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라고 광야에서 외쳤습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질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자기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뒤에 오는 분은 능력이 많은 분이며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줄 것이라고 그리스도를 소개했습니다.(마 3:11)

4. 요한은 회개한 사람들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어느 날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기위해 나왔습니다. 요한은 극구 사양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라며 예수께서는 요한에게 물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때 성령께서 임하였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드러냈습니다.(마 3:16-17) 예수께서는 죄인들이 받는 세례를 받았고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죽는 길을 걸어갔습니다. 이런 영적인 경험이 있는 요한이지만 옥에 갇혀서는 예수께서 정말 메시아인지를 의심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는 일이 자기가 기대하던 메시아의 일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당대의 많은 사람들도 예수님을 목수의 아들로만 여겼습니다. “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눅 4:21-22)

5.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아라는 것을 분명하게 답했습니다.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마 11:5)”고 요한에게 답했습니다. 그러면서 옛 언약의 관점으로는 메시아 사역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설명했습니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세례요한이지만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도 요한보다 크다고 했습니다.(마 11:11) 요한이 메시아를 소개하고 회개를 외치며 천국을 소유하도록 사람들을 안내했지만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알지 못했고 믿음으로 가는 하나님 나라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애곡을 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는 사람을 들어 천국에 무관심하고 자기만을 위하는 사람들의 잘못을 지적했습니다. 율법으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6. 예수님은 하나님이 베푸는 구원은 유대인이라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응답하는 사람에게 주어진다고 했습니다.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 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었느니라.”(눅 4: 25-27)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무시하는 이방인이 구원받았다는 것을 듣고는 화가 나서 예수님을 낭떠러지에 밀쳐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것은 먼저 부름 받은 자의 책임을 외면한 것이며 자기 생각에 맞지 않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교만이었습니다.

7. 예수님은 복음을 듣고도 믿지 못한 벳새다와 가버나움을 안타까워하며 구원은 계시의 은혜를 받은 어린아이와 같은 겸손한 사람이 얻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마 11:25-26) 예수님은 정치적 해방으로 세우는 나라가 아닌 회개하고 믿음으로 가는 하나님 나라를 보여줬습니다. 그리고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불러 진정한 쉼을 누리게 했습니다.(마 11:28) 우리들도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천국백성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은혜를 아는 성도들에게 서로의 유익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라고 가르쳤습니다.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롬 15:1-2)

8.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만을 위하여 살지 않았습니다. 죄로 하나님과 멀어진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셨습니다. 그의 피로 우리를 덮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다고 인정받게 했습니다. 율법을 먼저 배워 메시아를 기다리던 유대인들은 정작 메시아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믿지도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자기들만의 것으로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방인을 무시했고 편협한 선민의식에 사로잡혔습니다. 오늘 예수 믿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부름에 합당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자기만을 위하지 않고 서로를 인정하며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며 공동체의 유익을 도모하는 이유입니다. 이번 대림절에는 천국의 기쁨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일을 더 연습하고 실천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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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바른 자세 (렘 33:14-16 롬 13:11–14) 대림절 첫 주일

1. 이사야는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지막 때에는 여호와의 성전이 있는 시온산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산으로 알려질 것이며 수많은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들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자, 여호와의 산으로 올라가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으로 올라가자. 그가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치실 것이며 우리는 그 진리대로 살 것이다.’ 이것은 율법이 시온에서 나오고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모든 민족을 심판하고 국제 분쟁을 해결하실 것이니 사람들이 칼을 두들겨 보습을 만들고 창을 두들겨 낫을 만들 것이며 나라끼리 전쟁을 하거나 군사 훈련을 받는 일이 다시는 없을 것이다. 자, 야곱의 후손들아, 여호와의 빛 가운데 걸어가자.”(사 2:2-5)

2. 종교와 도덕의 타락으로 심판을 받고 바벨론에게 나라를 빼앗기게 될 것이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포로로 지내는 동안에도 시온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기억하고 회복을 기다릴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시온에서 나오는 말씀을 따르며 진정한 평화를 누리게 될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메시아가 세우는 완전하게 회복된 나라를 소망하게 했습니다. 예레미야를 통하여 주신 예언의 말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일러 준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살 것이며 이 성은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으리라.“(렘 33:14-16) 했습니다.

3. 망해버린 유다백성들은 포로에서 해방되어 고향으로 돌아올 것을 기다리는 것이 유일한 소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고 다윗의 왕권을 회복시킨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후손 중에서 하나님의 의로운 가지로 세워지는 통치자를 통하여 예루살렘을 회복하고 예배가 회복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의로운 가지는 이 땅에 공평과 정의를 행하고 구원을 베푸실 것입니다. 그들은 이 약속에 근거하여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포로 귀환 이후에 이루어질 회복을 미리 알려주어 어려운 포로생활을 소망을 갖고 견디게 도와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완전히 버린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새롭게 되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죄를 용서하고 정의를 행하고 의롭게 하는 공의로운 분임을 알게 했습니다.

4. 눅 1:30-33에서 천사가 마리아에게 이런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예수께서 다윗의 왕위를 계승하는 메시아로 오는 일에 마리아를 사용하겠다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기다리던 그분이 오신다는 것은 기쁜 소식이지만 처녀인 자신이 감당하기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회복을 기다리는 유대인으로는 모험을 걸만한 일이었습니다. 결국 그녀는 믿음으로 응답했습니다.
5. 주님께서는 믿음으로 가는 하나님 나라를 세웠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에 사람들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는 분이라며 환영했고 새로운 나라가 열릴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대는 몇 날이 지나지 않아 무너졌고 성난 군중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라고 소리쳤습니다. 자기들의 기대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말씀과 성례전을 통하여 믿는 자들에게 찾아와 죄의 용서와 영생의 기쁨을 주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흠이 없고 깨끗한 자가 되게 합니다.(살전 3:13)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만 그분을 볼 수 있고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가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고 예언했지만 사람들은 마음이 둔감하여져서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선택했습니다.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6. 주님께서 큰 권세와 영광가운데 다시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그날에 사람들은 두려워 기절하고 큰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기다리며 믿음 안에 있는 거룩한 교회는 주님 안에서 안전하고 참 평안을 누릴 것입니다.(눅 21:25-28) 주님 다시 오시는 날에 구름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볼 것입니다. 그러나 준비되지 못한 채로 그날을 맞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져서 덫과 같이 순간에 임할 그 날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상태로 그 날을 맞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 안에 있도록 스스로 조심해야 합니다. 믿음은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에 마음을 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말씀했습니다.(눅 21:36)

7.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었고 이 생명은 인류의 빛이었습니다. 이 빛이 어두움 속에서 빛나고 있었지만 어두움은 이 빛을 깨닫지 못했습니다.(요 1:3-4) 그러나 깨어있는 사람은 믿음으로 응답합니다. 마리아가 자기에게 닥칠 위험을 뻔히 알면서도 하나님의 일에 쓰임받기를 선택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고 자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죽으면 죽겠다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지난 며칠간 리뉴 집회에 참석하며 산위의 동네는 숨겨질 수 없고 사람들 앞에 드러난다는 말씀을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드러난 존재로 산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인들도 적당하게 한 발 뒤로 물러서 있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시대의 아픔을 함께 공감하고 욕먹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라도 잠자는 자들을 깨우라고 말씀합니다. 각자의 십자가를 지라고 합니다.

8. 로마서는 주의 오심을 기다리는 자세를 이렇게 가르칩니다. “여러분은 지금이 어느 때인지 압니다. 잠에서 깨어나야 할 때가 벌써 되었습니다. 지금은 우리의 구원이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더 가까워졌습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둠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낮에 행동하듯이 단정하게 행합시다. 호사한 연회와 술취함, 음행과 방탕, 싸움과 시기에 빠지지 맙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십시오. 정욕을 채우려고 육신의 일을 꾀하지 마십시오.”(롬 13:11-14) 각자의 신앙유지는 물론이고 어둠을 비추는 빛의 역할과 파수꾼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파수꾼은 적의 공격을 빨리 알려 대비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파수꾼이 말하지 않으면, 빛을 비춰 어둠을 드러내지 않으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죄 가운데서 죽은 사람들의 피의 값은 파수꾼의 몫입니다.(겔 33:8) 우리가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어야 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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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 감사하라 (시 136) 추수감사절

1. 시편 136편은 여호와께 감사하라는 노래로 가득합니다. 지존하고 전능하며 세상 모든 것을 주관하는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들의 필요를 공급해주고 문제를 해결해주어 그들이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는 것을 마음껏 자랑하도록 돌보아주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세어보면 그의 신실하고 인자하심에 대하여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바울도 살전 5:16-18에서 모든 일에 기뻐하고 기도로 항상 하나님과 교통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가르쳤습니다.

2. 예수 믿는 우리들은 신실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깁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그의 백성들을 위로할 때에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했습니다.(사 43:7) 부모는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합니다. 손자손녀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는 조부모의 마음을 보면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갈 3:26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아버지의 보호와 인도를 받고 사는 자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하려고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주셨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누리게 되었습니다.(시 23:6)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십자가에서 자신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롬 5:8)

3. 구약시대에 하나님께 드리던 여러 제사 중에 화목제사가 있습니다. 이 제사는 하나님과 평화를 유지하고 또 사람과 사람사이에 화목을 유지하기 위해 드리는 제사였습니다. 이 제사는 다른 제사와 달리 제물의 일부를 함께 나누어 먹으며 하나님의 식탁에서 교제하는 의미가 있는 제사입니다. Peace Offering 이라고 불리는 화목제사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여행이나 전쟁을 마친 후에 혹은 질병에서 회복된 후에나 특별한 은혜를 경험했을 때에 감사하는 감사제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하나님께 약속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서원제도 드렸습니다. 또 특별한 일이 없을 때라도 자원제 혹은 낙헌제를 드렸습니다. 이런 여러 목적을 갖는 화목제사는 하나님과 화평을 나누고 사람들 간에도 친목을 다지게 했습니다.

4. 에베소서는 그리스도께서 화목제물이 되어 하나님과 죄인들을 화목하게 했다고 설명합니다.(엡 2:14-18)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중보자가 되어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십니다. 우리들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만드는 일에 부름을 받았습니다.(고후 5:18) 화해의 직분은 예수님이 명령하신 전도의 명령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제물을 드리기 전에 우리에게 불편한 관계에 있는 형제가 있다면 먼저 화목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마 5:23-24) 그러므로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방법이 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설명했습니다.(롬 14:17) 성령 안에서 화목하게 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5. 성령을 충만하게 받은 처음 교회의 신자들은 행 2:46~47을 보면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잘 구성된 예배의식은 없었지만 그들은 성령의 감동을 따라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서로 사랑하고 찬송했습니다. 그들의 모임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찾아볼 수 없는 사랑의 섬김이 그들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주님께서 날마다 새로운 사람들이 찾아와 구원을 받게 했습니다. 교회의 힘은 함께 모이는데 있습니다. 구원받은 확신과 감격을 가진 사람들이 자주 모여 사랑을 나누는 것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성령의 도움으로 하나님을 높이고 예배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들끼리 함께 모여 서로 사랑하고 믿음을 굳게 다집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의 능력을 나누어주기를 노력합니다.

6. 이런 찬송시가 있습니다. 1. 날 구원하신 주 감사 모든 것 주심 감사/ 지난 추억인해 감사 주 내 곁에 계시네/ 향기로운 봄철에 감사 외로운 가을날 감사/ 사라진 눈물도 감사 나의 영혼 평안해/ 2. 응답하신 기도 감사 거절하신 것 감사/ 해처럼 높으신 감사 모든 것 채우시네/ 아픔과 기쁨도 감사 절망 중 위로 감사/ 측량 못할 은혜감사 크신 사랑 감사해/ 3. 길가의 장미꽃감사 장미꽃 가시감사/ 따스한 사랑의 가정 일용할 양식 감사/ 기쁨과 슬픔도 감사 하늘 평안을 감사/ 내일의 희망을 감사 영원토록 감사해/ 이 노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노래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주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성도는 고난 속에서도 감사합니다.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배우게 되기 때문입니다. (시 119:71) 그래서 우리들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기쁨으로 제사를 드리겠습니다. 주는 선하시니 내가 주의 이름을 찬양하겠습니다.”(시 54:6) 라고 말입니다.

7. 오늘 예배를 통하여 받은 은혜를 세어보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다짐이 새로워지기를 원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더 많이 나누기를 바랍니다. 감사절의 풍요로움이 우리들의 식탁에만 머물게 하지 말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외로운 사람들을 초청하여 함께 나누는 기회로 삼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찾는 자에게 만족함을 주시는 아버지입니다. 시 34:10은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께 넘치는 감사를 드림으로 영과 육에 풍성한 은혜와 복을 받아 누리기를 바랍니다. 아픔과 상처가 많은 이 시대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훈훈한 사랑을 맛보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간증을 통하여 많은 사람이 소망을 찾고 복을 누리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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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기억하자 (신 8:1–10)

1. 광야를 지나던 이스라엘은 목이 곧은 백성이었습니다.(신 9:6, 출 32:9) 가나안에 들어가 그 땅을 정복하게 되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지만 그것을 꿈꾸거나 거기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광야에서 문제를 만날 때마다 하나님의 생각을 묻기보다는 원망하는 자세를 보였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문제들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모든 것이 열악한 광야에서는 그렇다 치더라도 가나안에 들어가 안정과 풍요를 누리면서도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가나안 원주민들을 풍성하게 만들어준 가나안의 신이 하나님보다 힘 있어 보였습니다. 모세는 광야생활이 거의 끝나는 때에 가나안이 눈에 보이는 곳에서 광야에서 태어난 젊은 세대에게 지난 역사를 잊지 말고 기억하라고 설교합니다.

2. 2-3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그들을 겸손하게 낮추어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며 말씀에 순종하도록 훈련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먹고 마실까를 염려하기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요구하신 예수님의 가르침과 같습니다.(마 6:33) 애굽에서 430년을 살며 뼈 속까지 애굽 사람이 되었던 그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는 정화기간이었습니다.

3. 사람은 극한 상황에 처하면 그럴듯하게 포장되어 있던 겉모습이 벗겨지고 속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훈련은 혹독할수록 도움이 됩니다. 제가 선교사로 훈련받을 때에 6가정이 한 집에서 방 하나씩 나눠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치약을 짜는 일이나 설거지 하는 것 같은 사소한 문제로 충돌이 생겼습니다. 영혼구원을 위한 선교사의 삶이 자기습관과 자기주장을 버리고 서로용납하고 사랑하는 것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죽기까지 주님을 따르겠다고 큰소리했지만 자기에게 불리한 상황이 닥치자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마 26:35) 이방인 고넬료의 가정에 동일한 성령께서 강림하는 것을 보고나서야 이방인을 무시하던 편협한 생각을 버리고 그 집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었습니다.(행 11:17) 내가 죽어야 하나님을 볼 수 있고 말씀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4. 하나님께서는 광야 40년을 사용하여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훈련했습니다. 풀무불이 은을 단련하여 순결하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믿음위에 굳게 세우려고 여러 어려움을 주셨습니다.(벧전 4:12) 먼지만 날리는 광야에서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감정은 메말라버렸고 어떤 문제가 생기면 쉽게 흥분하고 지도자를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소망 없는 환경에서 그들의 눈을 하나님께 돌리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40년 동안 신실하게 그들을 먹였고 그들의 옷과 신발이 헤지지 않게 돌보셨습니다. 문제를 만날 때마다 해결책을 주셨습니다. 그러니 마땅히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말씀에 순종해야 했습니다.(신 8:5-6) 그러나 아쉽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믿음보다 당장의 괴로움이 더 컸습니다.

5. 모세는 가나안의 아름다움을 강조했습니다. 삭막한 광야에 비하면 가나안은 초지와 농지가 있는 아름다운 곳이며 젖과 꿀이 흐르는 곳입니다. 언제든지 마실 수 있는 물이 있고 제철에 열리는 농작물이 있고 땅 속에는 광물질이 있으니 천국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장차 들어갈 아름다운 가나안을 기대하며 현재의 고난을 이겨내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나안에 들어간 이후에도 풍요롭게 살게 하신 하나님을 잊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의 고난과 특별한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14절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17절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는 말씀을 보면 그들이 믿음으로 살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6.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갖도록 절기를 지키게 했습니다. “아빕월을 지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유월절 예식을 행하라. 이는 아빕월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밤에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라.”(신 16:17) 애굽에서 나오던 날을 새해의 첫 달로 정하여 기념하게 했습니다.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말라 죽음을 면했던 것을 기억하기 위해 유월절을 지키게 했습니다. 희생짐승의 피와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생명을 얻었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피는 십자가에서 흘린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와 같습니다. 우리의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새 생명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는 것처럼 더 이상 애굽의 노예가 아니라 새 생명을 얻은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는 절기였습니다.

7. 보리농사를 마치고 맥추절을 지켰습니다. 한해 농사를 마치면 광야생활을 기억하며 초막을 짓고 한 주간을 밖에서 보내며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안식일을 구분하여 쉬게 했으며 안식년에는 농사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먹을 것을 공급해주셨습니다. 십일조를 드려 공동체의 필요를 채우게 했습니다. 자기의 힘과 능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광야에서 만나를 먹여주신 그 하나님이 먹여주신다는 것을 경험하게 했습니다. 이런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감사는 그 하나님을 인정하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각종 위험에서 건져주시고 먹이고 입혀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게 했습니다. 신 16:3 “너의 평생에 항상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을 기억할 것이니라.” 때마다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도록 절기를 주신 것입니다.

8. 다음 주일은 추수감사주일로 지킵니다. 가나안을 위하여 광야의 훈련기간을 주셨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천국생활을 맛보고 준비하도록 교회를 주셨습니다. 오늘의 상황이 쉽지 않지만 장차 받을 하늘 상급을 기대하며 믿음으로 잘 이겨냅시다. 주님 재림의 날이 가까울수록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기고 교회를 든든하게 세워야 하겠습니다. 스펄존 목사님은 “눌린 자들을 위한 격려”라는 설교에서 “달빛에 감사하십시오. 햇빛을 받을 것입니다. 햇빛에 감사하십시오. 일곱 날의 빛과 같은 하늘의 빛을 받을 것입니다.”라고 감사를 강조했습니다. 빌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이스라엘을 지켜주신 하나님이 오늘 우리와도 함께 하십니다.(마 28:20) 그러니 우리도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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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망 예수 그리스도 (벧전 1:1-15)


1. 베드로 전서는 AD 64년쯤에 로마에서 기록되었습니다. 황제숭배를 거부하는 기독교인들이 핍박을 받던 때였는데 네로황제는 로마에서 일어난 큰 화제의 원인을 교회에게 돌리고 본격적으로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는 소아시아에 흩어져 살던 성도들이 이런 박해를 견딜 수 있도록 믿음의 근거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두게 했습니다. 외부에서 오는 핍박을 하나님 나라의 소망으로 이기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를 소망과 위로의 편지라고 부릅니다. 교회와 세상 혹은 거룩함과 속된 것 사이에서 갈등할 때나 지금처럼 모두가 힘들어하는 때에는 초심으로 돌아가 주님께로부터 소망을 찾아야 합니다.

2. 황제의 교회 박해는 시골까지 확대되었고 베드로와 바울도 이때에 순교당한 것으로 봅니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교회를 미워합니다. 어둠이 빛을 싫어하듯 세상은 교회를 무시하고 불공정한 평가를 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죽음을 감지한 베드로는 현재의 고난이 장차 받을 영광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며 하늘소망에 마음을 두었습니다. 사실 고난은 힘들고 어렵지만 지나고 뒤돌아보면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믿음도 성장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울도 고난 중에서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고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된 인격을, 연단된 인격은 희망을 갖게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롬 5:3-4)

3. 소아시아에 흩어져 살던 성도들은 고향을 떠난 나그네였고 전통적으로 믿던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가족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사회에서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금도 모슬렘 신자가 개종하면 대개의 경우는 고향과 친척을 떠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족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하여 가족으로부터 살해를 당하기 때문입니다. 황제들은 기독교인의 사회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고 가진 것도 빼앗고 노예로 부렸습니다. 때문에 배교자들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공산치하와 일제치하에서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새로운 종교 활동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인생의 주인을 바꾸는 일이며 목숨을 내거는 일입니다. 불이익과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더 가치 있는 생명을 선택하는 일입니다.

4. 성도가 누릴 기업에 대한 이해가 확실하면 방향을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기업이라는 말은 구약의 12지파에게 나누어준 땅과 삶의 터전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땅이며 후손들이 선물로 받은 땅입니다. 신약에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 성도들이 누리는 영적인 축복을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 되고 새 언약의 중보자가 되어 하늘나라의 기업을 갖게 되었습니다.(히 9:15) 그것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유업입니다.(벧전 1:4) 베드로는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던 사람이지만 성령 충만을 경험한 후에는 능력 있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보다 하늘나라의 기업을 더 귀하게 여겼고 복음 때문에 받는 잠깐 동안의 고난을 장차 누릴 영광을 바라보는 소망으로 이겼습니다.(롬 8:18)

5.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습니다. 그러나 상급과 면류관은 주님을 섬기며 믿음으로 행한 일에 대한 보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할 때에 모두가 계산대 앞에 서게 될 것인데 믿음을 지킨 성도들은 생명의 면류관을 받고 하늘나라의 잔치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여기서 거룩한 백성답게 살아야 합니다. 어떤 일을 당해도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사욕을 버리고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벧전 1:14-15) 거룩하게 되는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는 것이며 말씀에 순종할 때에만 가능합니다.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보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것에서 가능합니다. 또한 진리로 깨끗하게 된 성도는 형제사랑하기를 힘씁니다. 우리가 거룩해졌다는 것이 형제사랑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벧전 1:22)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주님의 명령입니다.(눅 10:27)

6. 성도는 진리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몸부림합니다. 진리 안에 거할 때에 비로소 우리의 생각이 건전해지고 인격도 성숙해지고 영이 깨끗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도움을 더욱 구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성부 하나님을 증거 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것처럼 성령님은 오셔서 그리스도를 증거 하십니다.(요 15:26)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시고 우리가 바로 기도하지 못할 때라도 친히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십니다.(롬 8:26) 때로는 우리를 질책하고 다듬어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여 거룩한 하나님의 마음을 품도록 합니다. 형제를 사랑할 수 있는 힘도 주십니다. 고난 중에 부르짖는 이스라엘의 기도를 듣고 내려오시어 압제자의 손에서 구원해 주신 것처럼(출 3:7-8) 성령께서는 성도들안에 오셔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로 살게 합니다.

7. 지난 주간에 일어난 사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쉽고 안타깝고 사전에 통제하지 못한 정부와 공권력의 무능함에 화가 납니다. 그러다가도 우리도 그런 무능한 사람들 중의 하나라고 생각되어 마음이 눌렸습니다. 그나마 탄광에 매몰되었던 사람들이 살아와서 숨통이 조금 트입니다. 매몰되어 갇혔지만 둘이 서로 의지하며 구조될 수 있다는 소망을 놓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도는 세상에 선한 영향을 주어야 합니다. 재림을 기다린다고 세상을 외면하거나 무책임하게 은둔생활을 할 수는 없습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며 자기 역할을 해야 합니다.(롬 12:15) 오늘 각 기관의 총회가 있고 화요일에는 미국의 중간 선거가 있습니다. 이런 일들에 함께 하는 것도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협력하는 것입니다.

8. 우리의 소망은 십자가와 부활과 재림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 우리도 그분처럼 되고 그분의 참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소망을 갖고 자신을 깨끗하게 지켜야 하겠습니다.(요일 3:3) 성도는 하나님을 섬기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중보 하는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벧전 2:9) 고통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제시해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죄에서 깨끗하게 했고(요일 1:7)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여 새로운 소망을 얻게 되었다고 말해줍시다.(골 1:20) 어렵고 힘든 때일수록 서로 격려하고 사랑하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오늘 열리는 기관별 총회가 시대의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고 그것을 위해 협력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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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성경으로 (딤후 3:15-17)


1. 종교개혁의 물결이 유럽을 휩쓸 때 영국은 교회제도와 의식은 카톨릭의 것을 그대로 남겨두는 중도적 개혁을 시도했습니다. 대다수에게는 지지를 받았지만 철저한 개혁을 바라던 청교도들에게는 불만족스러웠습니다. 만인사제를 주장하는 개혁자들과 교직자와 평신도로 구분하여 복장도 달리하며 교회를 운영하던 기득권자들과 부딪혔습니다. 파면은 물론 화형까지 당해야 했습니다. 결국 분리를 주장하는 청교도들은 제도화된 국가교회를 떠나 성경적인 신앙생활을 하기위하여 신대륙을 찾게 되었습니다. 1620년에 메이플라워호를 탔던 100여명의 사람들은 첫해 겨울을 지나며 절반이 죽는 어려움을 겪으며 플리머스에 정착했습니다. 십년 후 1630년에는 잔 윈트롭이 700명의 사람들을 모아 11척의 배에 나눠 타고 와서 보스톤에 정착했습니다.

2. 윈트롭은 하나님께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 통치자와 그 질서를 따르는 각양의 사람들을 그의 지혜와 섭리가운데 사용하신다며 각기 다른 사람들이지만 새로운 곳을 찾아왔으니 하나가 되어 저 언덕위에 도시를 세워 모든 세상에게 본을 보이자고 했습니다. 제자들에게 세상의 빛이 되라며 산위의 동네는 잘 보인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했습니다.(마 5:14) 초대교회 성도들이 서로의 필요를 채워준 것처럼 서로 돌보며 경제생활에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부자가 되려는 욕심을 내려놓게 했습니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할 때 한마음이 되어 협력했던 것처럼 하나가 되자고 했습니다. 모세의 신명기 설교에서 복과 화가 앞에 있으니 선택하라고 했던 말씀을 인용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생명을 선택하자고 격려했습니다.

3. 그들은 말씀에 순종하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 거듭난 성도들을 등록교인으로 받았고 그렇게 등록된 교인만이 정치에 참여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습니다. 가정 예배를 철저하게 드렸고 가정에서부터 자녀들이 예수 믿고 거듭나도록 가르쳤습니다. 이것이 보스톤의 시작이고 미국역사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청교도의 신앙정신은 희석되고 다원화된 사회로 변했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 이민 온 사람들이 처음 플리머스에 세웠던 교회는 한 세기가 지나면서 유니테리안이 되었고 그 앞마당에 개척자들의 신앙정신을 계승하기 위해서 다른 회중교회가 세워졌지만 이 교단마저도 지금은 쇠퇴해가고 있습니다.

4. 교회도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 사람들의 형편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집니다. 우리 시대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분별해야 할 이유입니다. 동성애 문제로 미국장로교회와 미국연합감리교회가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말씀 본래의 의미를 붙잡고 씨름하지 않으면 유행에 휩쓸려버리기 쉽습니다. 독일의 루터, 스위스의 츠빙글리, 프랑스의 존 칼빈 같은 개혁가들은 성경에서 벗어난 교회를 보았고 개혁을 외쳤습니다. 수많은 목사와 성도들이 성경적인 교회를 꿈꾸며 말씀과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려는 운동에 동참했습니다. 루터는 갈 3:11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라는 말씀에 도전을 받아 교회가 개혁되어야 문제를 적어 교회정문에 게시했습니다.

5. 루터는 사제들에게 죄를 용서하는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주님께서 주시는 죄의 용서를 선언하는 사람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죽은 자를 위한 죄의 용서는 더구나 잘못이고 그것을 빌미로 헌금 통에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날 때 연옥의 혼이 죄 용서를 받는다고 가르치며 면죄부를 판매하는 것은 큰 잘못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교구의 힘은 막강했고 자리를 두고 거래가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베드로 성당을 짓기 위한 건축비를 핑계로 면죄부를 팔았지만 그것은 부를 축적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루터는 가난한 신자들의 헌금보다 차라리 많은 재산을 가진 교황이 자기 돈으로 성당을 지으면 되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제도권에 숨어 평안을 설교하며 부를 축적하려는 사제들을 비난했으며 십자가와 고난을 통해 천국을 소유하도록 바로 가르치라고 주장했습니다.

6. 당시 신자들은 성경을 가질 수 없었기에 진리를 구분하지 못하고 교회가 가르치는 대로 따랐습니다. 구원을 위해서 믿음 위에 선행을 실천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미사는 십자가의 죽음을 재연하는 피 없는 제사이기에 사제가 집례 해야 하고 사제가 축복할 때에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마리아 숭배나 성자들에게 기도하는 것, 교황에게는 죄가 없다고 가르치는 것들은 성경보다 교회 전통에 따른 것입니다. 성경을 바로 알아야 분별할 수 있습니다. 교리나 전통이 성경보다 앞설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누가 기도했더니 금이빨이 되었다든지 입신하고 방언하고 넘어졌다는 현상에 솔깃합니다. 그런 능력 행하는 일들은 다른 종교에도 나타납니다. 왜 예수만 주장하고 편협한 신앙을 갖느냐면서 합리적이고 다양한 신앙의 형태를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말씀을 바로 알아야 참과 거짓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7. 사제들의 손에만 들려있던 라틴어 성경이 각자의 언어로 번역되고 출판되어 일반신자들의 손에 들려지게 된 것이 개혁의 힘이었습니다. 성경을 읽고 배우고 실천하자 분별력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배우고 따르는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게 되었다는 것과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대신 죽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배웠습니다. 하나님이 준비한 의롭게 되는 길을 믿음으로 걷게 되었습니다. 개혁가들이 ‘오직 성경으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성경적인 교회가 되기를 추구했던 것처럼 오늘의 교회도 날마다 개혁되어야 합니다. 살아있는 물고기가 물살을 거슬러 가는 것처럼 성도는 세속화의 흐름과 맞서 싸워야 합니다.

8.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합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은 우리를 교훈하고 책망하여 바르고 의롭게 살도록 안내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만들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합니다. 성경을 읽어야 예수님을 만납니다. 영적 생명을 가진 존재로 다시 태어납니다. 인격이 변합니다. 하나님이 주는 능력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에 기초한 신앙생활을 하며 자신을 돌아보자는 것입니다. 개혁정신이 느슨해지면 하던 대로 편안하게 한곳에 머물게 됩니다. 언제 상하는지도 모르게 변질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조명해주시는 은혜를 구하며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기자는 것입니다. 한번쯤은 성경을 꼼꼼하게 정독해 봅시다. 또 날마다 읽고 묵상하며 주의 음성을 듣는 기쁨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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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깊이를 더하라 (눅 18:1–14)

1.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기도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생활입니다. 구세군을 창시한 윌리암 부스는 다가오는 시대의 가장 큰 위험은 성령 없는 신앙생활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지 못한 기독교나 철저한 회개가 없는 죄의 용서, 거듭난 확신이 없는 구원, 지옥이 없는 천국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능력이 빠져버린 종교형태를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외면하는 시대에 사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삶의 방향을 찾고 기도로 성령 하나님과 깊이 교통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입니다.

2.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아직도 하나님나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세속적인 권세를 탐하는 제자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않기를 바라며 한 과부의 강청하는 기도를 비유로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사람도 귀하게 여기지 않는 불의한 재판장이 자기 원한을 풀어달라고 자주 찾아와 강청하는 과부의 청을 결국 들어줬다는 얘기입니다. 그녀가 얼마나 집요하고 간절하게 요청했던지 들어주지 않으면 계속 괴롭게 할 것을 염려하여 청을 들어주었습니다.(눅 18:2-5) 예수님은 악한 재판장도 그렇게 응답했다면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눅 18:7)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에서 믿음으로 사는 것은 고통스런 일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기도하고 낙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3. 예수님은 또 스스로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기득권자들에게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비유로 말했습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기도하기를 자기는 다른 사람들처럼 토색하거나 불의를 행하지 않았고 간음하지 않았다고 자기 의를 드러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십일조도 드린다고 자랑했습니다. 외형적으로 보면 그는 모범적인 신앙인의 모습을 갖춘 사람입니다. 한편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18:13)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받은 사람은 바리새인이 아니라 세리였습니다.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진다고 하시며 어린아이처럼 순전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나라를 소유할 수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4. 예수님의 지상사역은 하나님나라를 선포하고 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천국복음을 전하고 병자를 치료하고 귀신에게 묶인 것을 풀어주셨습니다. 또 제자들에게 그것을 실습하고 전하게 했습니다. “때가 찾고 하나님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는 말씀으로 사역을 시작하신 예수님은 제자들도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전하게 했습니다.(눅 10:9) 부활 후에도 사십일 동안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했습니다.(행 1:3) 사도행전을 보면 제자들도 그리스도께서 하던 일을 그대로 행했습니다. 빌립은 사마리아 성에 들어가서 하나님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고 믿는 자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행 8:12) 바울도 하나님나라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전했습니다.(행 20:25)

5. 예수님이 가르쳐준 하나님나라는 하나님의 법이 적용되고 하나님이 주인이 되는 나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우리들이 구원받았다고 표현하는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최고의 우선순위로 놓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들은 장차 들어갈 천국을 기다립니다. 또한 지금 여기서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다스림을 맛보며 삽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나라는 이미 우리 안에 임한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답게 자기 욕심과 싸우고 사단의 공격에 맞서 싸우는 영적생활을 연습합니다.(벧전 5:8-9) 세속의 물결을 막아내고 천국백성의 감격을 누리고 나누는 것이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알려주신 하나님나라이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만들어가고 있는 하나님나라입니다.

6. 예수님은 공적사역을 시작하면서 40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사역하는 바쁜 중에도 새벽에 기도했고(막 1:35) 산에 올라가 기도했으며(마 14:23) 밤을 새워 기도했고(눅 6:12-13) 한적한 곳을 찾아 기도했습니다.(눅 5:16) 십자가를 지기 전날 밤에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했습니다.(눅 22:44) 십자가에 달려서도 자기를 매단 죄인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눅 23:24) 자신의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며 기도했습니다.(눅 23:46) 지금도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서 성도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롬 8:34) 예수님은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드러나기를 원하는 순종하는 아들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했습니다. 기도를 가르쳐주신 것도 자기 욕심을 채우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일원으로 능력 있게 살게 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기도했다면 하물며 우리는 더욱 기도해야 마땅합니다.

7. 요한은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 5:14)고 했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은 신나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특권을 하나님나라와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것에 사용해야 합니다. 마 6:31-33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부자 청년에게 자기 소유를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주님을 따르라고 한 것이나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한 말씀들은 하나님나라는 우리들이 바라는 세속적인 풍요나 성공보다 더 크고 가치 있는 것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우리가 자기 필요보다 하나님나라를 먼저 구하고 기도해야 할 이유입니다.

8.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요 14:27)라고 했습니다. 문제투성이인 삶의 환경에서 어떻게 평안을 누릴 수 있을까요? 우리의 속마음과 필요한 것을 미리 아시는 주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정치지도자이면서도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 쉬는 죄를 범하지 않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가르칠 것이라고 했습니다.(삼상 12:23) 백성을 돌보는 자리에서 기도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하겠다고 결단한 것입니다. 기도로 하나님과 깊이 교통하며 자신의 한계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바빠서 기도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교만한 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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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익한 종의 유언 (신 4:1-10, 눅 17:5-10) 선교헌신예배 이경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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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성장과 예배 (눅 17:11–19 딤후 2:1–13) 10/9/22

1. 바울은 복음을 듣는 사람들이 영광스러운 구원을 받게 될 것을 기대하고 복음을 전하며 당하는 고난을 견뎠습니다. 그는 주님과 함께 죽으면 주님과 함께 살 것이고 참고 견디면 주님과 함께 다스릴 것이고 주님을 모른다고 잡아떼면 주님도 우리를 모른다고 외면할 것이라고 했습니다.(딤후 2:10-12)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뒤따르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뜻을 드러냈던 것처럼 우리도 성령의 도움으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뒤따릅니다.(막 8:34) 군사훈련을 통하여 잘 준비된 군인이 되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생활도 주님을 온전하게 따르기 위한 영적훈련이 필요합니다.

2. 제복을 입은 군인은 나라에 충성해야 하기 때문에 사생활에 얽매일 수 없습니다. 바울이 살던 때의 경기장은 요즘 같은 스포츠경기보다는 투사들의 싸움터였기에 살아남는 자만이 승자가 되었습니다. 농부는 제때 파종하고 땀 흘려 수고해야만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딤전 2:4-6) 바울이 디모데에게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고난을 견디고 성도들을 진리의 말씀으로 훈련시켜 준비된 자세로 주님을 섬기게 하라고 했습니다. 구원 받은 우리들은 장차 누릴 영광스런 새 하늘과 새 땅(벧후 3:13)을 기다리기에 잠시 받는 고난에 흔들리지 않고(롬 8:18) 영적생활을 지속합니다. 하나의 건물이 지어져 가듯이 교회공동체 안에서 성도들이 서로 연결되어 도움을 주고받으며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갑니다.(엡 2:22) 그리스도와 연합된 유기적인 관계에서 양분을 먹고 성장해 갑니다.

3. 신앙생활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영적성장이 멈추면 제자리를 맴도는 명목상의 신자가 됩니다. 신자로 불리기는 하지만 영적능력이나 영향력이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성행하는 이단의 가르침과 진리를 구분할 수 없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열심이 있는 사람은 이단에 넘어가기 쉽고 반대로 흔들림 없는 사람은 자리를 지키기는 하지만 실상은 죽은 나무처럼 무능한 신자가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게 그리스도의 완전한 수준까지 성장하라고 했습니다.(엡 1:17-19) 그것은 성령의 도움으로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로 부름 받은 것이 무엇이며 받을 상급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지를 깨닫고 성령의 능력으로 영적생활에서 승리하라는 것입니다.

4. 영적성장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예배에서 시작됩니다. 열 명의 문둥병자들이 예수님께 치료해 달라고 간청했을 때에 예수님은 그들의 청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제사장에게 보내 병이 나은 것을 확인받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이미 그들을 치료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제사장에게 가는 중에 병이 나은 것을 알았고 그 중의 한 사마리아 사람이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즉시 예수님께로 돌아와 엎드려 감사했습니다.(눅 17:16)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어서 제사장에게 가기 바빴던 아홉 명과는 달리 사마리아 사람은 영과 육을 살리는 주님에게 돌아와 감사했습니다. 예수님을 우선하는 그의 믿음이 그를 구원했습니다. 감사하는 일은 성도에게 기대하는 하나님의 뜻입니다.(살전 5:18) 사슴이 시냇물을 갈급함으로 찾는 것처럼 주님을 간절하게 찾는 것이 예배입니다.(시42:1)

5. 예수님은 다른 가르침에서 바리새인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를 말씀했습니다. 바리새인은 기도할 때에 서서 손을 들고 거룩한 목소리로 자기는 율법을 지키고 선을 행한다고 자랑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던 세리는 얼굴도 들지 못하고 엎드려 겸손히 회개하고 기도했습니다.(눅 18:10-14) 예수님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고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십니다.(벧전 5:5) 겸손한 사람에게서 영적생활의 변화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받은 우리는 구원 이후에도 배운 말씀대로 살고 우리의 생각과 습관을 그리스도에게 맞추어가는 것을 훈련합니다. 이것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이며 우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는 영적예배입니다.(롬 12:1-2)

6.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 풍성히 살아 있게 하십시오. 온갖 지혜로 서로 가르치고 권고하십시오. 감사한 마음으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여러분의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십시오. 그리고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에게서 힘을 얻어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골 3:16-17) 이런 영적 생활을 위해서 말씀을 가까이 하고 기도생활과 섬기는 일을 반복하여 훈련하는 것입니다. 삶의 우선순위를 혼동하지 않고 우리를 인도하는 성령께 순종하기 위해서 입니다. 예배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성령의 도움으로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요 4:24) 종교의식이면서도 우리가 사랑하는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하는 시간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천군천사와 함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 양께 있도다.”(계 7:10)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 양께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계 5:12-13)라고 예배하는 그 기쁨을 여기서 맛보는 것입니다.

7. 내가 주인 되어 살던 사람이 주님을 주인으로 모신다는 것은 큰 변화입니다. 주님을 더 깊이 경험하고 닮기 원하는 사랑의 관계에 들어선 성도들은 장차 누릴 영광스러운 상급을 바라보는 순례자입니다. 사도 요한은 끝까지 이기는 자가 받을 복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계 2:7) 둘째사망의 해를 받지 않으며(계 2:11)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누리고(계 2:26)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며(계 3:5) 하나님의 보좌에 함께 앉게 된다(계 3:21)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에서 해방된 것도 감사한데 하늘 영광을 누리며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되는 감격과 기쁨을 하나님께 표현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께서 기르는 양이라고 소유권을 인정하고 감사하며 찬송하는 것입니다.(시 100:3-4)

8. 팬데믹 이후의 흐트러진 예배생활이 다시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온라인예배로는 현장에서 느끼는 성령의 감동을 함께 경험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함께 소리 높여 부르는 찬송에서 얻는 힘이 약해졌습니다. 자기 일을 하면서 예배도 드릴 수 있다는 편리함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변화를 위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온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겠습니다.(마 22:37) 우리의 예배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 교제하고 성령의 감동을 통하여 들려주시는 말씀을 듣고 응답해야 하겠습니다. 예배가 회복되면 영과 육의 복을 누리게 됩니다. 교회공동체도 힘 있게 세워지고 하나님의 구원의 뜻을 세상 앞에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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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켜야 할 것들 (합 1:1-4 딤후 1:1-14) 10/2/22

1. 몇 년 전에 서둘러 운전하다가 교통법규를 위반하여 티켓을 여러 번 받았습니다. 결국 하루 종일 교육을 받아야 했고 시험에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덕분에 자동차 보험료도 더 내고 아직까지도 그 벌점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교육을 받으면서 듣기로는 2년 안에 티켓을 받으면 다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말 때문에 운전석에 앉을 때마다 조심하게 되었습니다. 법은 서로의 유익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고 모두가 지킬 때에 안전과 유익을 누립니다. 법질서가 바로 세워지지 않으면 서로가 불편하고 손해를 봅니다. 하나님께서도 자녀들이 자유와 행복을 누리도록 영적질서를 세워주셨고 그 질서를 따라 살게 했습니다.

2. 성도는 하나님이 통치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은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만의 것을 독창적이라고 가르치며 자기중심적으로 살게 하지만 성도는 하나님이 자기의 주인이라고 믿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베드로는 성도들을 향하여 하나님이 선택한 민족이며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으나 지금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이전에는 하나님의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불쌍히 여김을 받게 되었다고 설명했습니다.(벧전 2:9-10) 육체이기에 하나님처럼 거룩하지는 못하지만 부족함을 느끼고 회개할 때마다 한없는 사랑으로 품어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정죄하지 않고 오히려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합니다.

3. 하박국 선지자는 법을 오용하고 정의를 무시하는 악인들이 의인을 에워싼 현실을 하나님께 탄원했습니다.(합 1:3-4)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사람들을 사용하여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심판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방인을 들어 하나님의 백성을 심판한다니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합 2:1)고 기도하며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은 종말이 속히 이를 것이니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주십니다.(합 2:4) 그리고 바벨론도 그들의 죄로 심판받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비로소 하박국은 주께서 하시는 일이 힘 있게 진행되기를 기도했고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말아달라고 청합니다.(합 3:2)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합 3:18-19) 절망 앞에서 오히려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찬송했습니다.

4. 성도들이 기대하는 최종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주님의 다시 오심입니다. 주님께서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다시 오시는 그날은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는 날이며 믿음에 따르는 보상이 있는 날이기 때문입니다.(고전 4:5) 그날에 주님께서 믿음을 지키고 성령과 함께 수고한 성도들을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해주시고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게 하실 것입니다.(마 25:23) 우리들은 믿음으로 의롭다는 인정을 받았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어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롬 5:1-2) 그래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 24:42,44)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지금 여기서 믿음을 따라 살며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연습하는 것입니다.

5. 바울이 구원받고 사도가 된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 때문이었습니다.(딤후 1:9) 이 약속은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는 구원의 약속입니다.(요 3:16)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 구원하신 것은 우리에게 어떤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와 은혜로 된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준비했다가 때가 되어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선물입니다.(엡 2:8)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 죄의 값을 치러주신 것도 감사한데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여 우리들도 장차 부활하게 된다는 것을 믿게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것입니다.(롬 5:8) 그래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삶의 중심에 두었습니다. 그 복음이 자기는 물론이고 모든 사람에게 기쁜 소식이 된다고 했습니다.

6. 구원의 확신과 부름에 대한 소명의식이 분명했던 바울은 복음을 위해 고난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구원하여 사명을 주신 주님께서 어떤 어려움에서도 지켜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질그릇같이 연약하지만 자기 안에는 보배이신 그리스도가 계시기에 모든 능력이 그로부터 나온다고 고백했습니다. 괴로움을 당해도 꺾이지 않고 난처한 일을 당해도 실망하지 않고 핍박을 받아도 버림당하지 않고 매 맞아 쓰러져도 죽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고난을 통하여 오히려 예수님의 죽음을 체험하고 고난을 받으며 예수님의 생명을 맛본다고 했습니다.(고후 4:7-10) 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더 이상 자기가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대신하여 산다고 말했습니다.(갈 2:20)

7. 나이 많은 사도는 로마 감옥에 갇혀서 죽음이 가까운 것을 알았습니다. 바울이 고난을 받으면서도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것은 그리스도께서 끝까지 자기를 지켜준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자기가 맡았던 책임을 이양하고 위임합니다. 배운 말씀을 성령의 도움으로 가르치고 또한 복음으로 인한 고난을 견뎌내라고 유언합니다.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믿음을 잘 지키고 자기가 가르쳐준 말씀을 믿음과 사랑으로 지켜내고 귀하게 여기라고 합니다. 성령의 도움을 받아 다른 사람들에게 잘 가르치라고 당부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으로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합니다.(딤후 1:7-8) 심한 핍박 때문에 배교하는 일이 많던 때에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곧 고난을 수용하는 일이었습니다.

8. 오늘 우리들은 다른 시대를 삽니다. 그러나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고난을 견디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이 우리를 그냥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홍수로 불어난 물속에서 나뭇가지를 잡고 살아난 사람처럼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진리를 알고 따르게 하는 성령의 도움이 절대 필요합니다.(요 14:16-17) 성령께서는 우리로 말씀을 순종하게 하고 성도의 직무를 감당할 수 있도록 지혜와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겔 36:27) 조상들에게 배운 믿음과 바울에게 배운 말씀과 사명이 디모데에게 대물림되었다면 우리들도 배운 말씀을 지키고 다음세대에게 가르쳐야 하겠습니다. 믿음에 굳게 서서 어떤 유혹과 고난도 이겨내는 주의 백성이 되기를 다짐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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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싸움에서 이겨라 (눅 16:19-31 딤전 6:7-12)

1. 누가복음 16장에는 한 부자와 거지 나사로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온갖 고생을 한 거지 나사로는 죽어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서 위로를 받고 그와 반대로 온갖 좋은 것을 누리던 부자는 죽어 음부에서 괴로움을 당하는 이야기입니다.(눅 16:25) 예수님은 이 비유를 기득권자들에 대한 경고로 말씀했습니다. 앞서 말씀했던 청지기비유에서 제물과 하나님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하자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이 비웃었습니다. 대중의 지지를 받고 스스로 높아진 그들은 하나님이 싫어하는 교만한 사람이었습니다.(눅 16:14-15) 율법과 선지자들이 전해준 하나님 나라가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이미 임했고 누구든지 믿고 순종하면 그 나라를 얻을 수 있게 되었음에도 그들은 율법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2.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열심히 배우고 가르쳤습니다. 모세 오경에서 지켜야 할 것 6천 가지를 뽑고 그중 613개를 정리해서 탈무드라고 이름 지어 가르치고 지켰습니다. 신명기의 말씀대로 율법의 말씀을 손목에 매고 미간에 붙이고 문설주와 바깥문에 붙였습니다.(신 6:5) 예수님은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까지로 막을 내렸다고 했습니다. 안내자 역할을 하던 율법이 기능을 다한 것이니 이제는 그림자인 율법보다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누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정신보다 문자에 매인 율법주의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자 함께 기뻐하기보다 안식일을 어겼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섰습니다.

3.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했습니다. 세상에는 부자가 되려고 욕심을 부리다가 시험과 함정에 빠지고 파멸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재물이 나쁜 것이 아니지만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면 하나님으로부터는 자연히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재물은 함께 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마 6:24) 예수님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는 반면에 부자는 이미 세상에서 그 위로를 받았다고 했습니다.(눅 6:20-24) 부자청년이 자기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근심했던 것을 보아도(마 19:21)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영적생활도 가능해집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물질보다는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영생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딤전 6:7-12)

4. 바울은 디모데에게 부자들을 가르칠 때에 그들이 금방 사라질 재물에 희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께 희망을 두도록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자녀들이 선을 행하며 이웃과 더불어 살도록 모든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자기 욕심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손을 펴기를 훈련하는 것입니다.(딤전 6:17-18) 예수님도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너희 보물이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눅 12:33)고 했습니다. 돈과 하나님 사이에서의 선택은 항상 자기 몫입니다. 재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고 이웃과 나누는 일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우선하는 사람의 선택입니다.

5. 부자가 죽은 후 지옥에서 고통을 받은 것은 재물을 자기만을 위해서 사용하고도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부자는 자기 집 앞에서 구걸하는 나사로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듣고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지옥에서 고통당하면서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나사로가 부러웠고 아직 살아있는 자기 형제들이라도 회개하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죽은 자가 다시 살아 전해주어도 회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정한 것이지만 죽음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히 9:27) 율법의 완성으로 오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반대하는 바리새인들은 회개하지 않고 자기만을 위해 살다가 망한 부자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6. 하나님께서는 자기만을 위해 욕심 부리는 사람들을 싫어합니다. 아모스는 이웃을 돌보지 않고 자기 배만 채우는 기득권자들을 비판했습니다. 그들은 상아 침대에 눕고 호화스러운 안락의자에서 기지개를 켜며 제일 좋은 양고기와 송아지 고기를 먹고 다윗처럼 노래를 지어 수금에 맞춰 흥얼거리고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고 귀한 향수를 몸에 바르면서도 이스라엘이 당할 파멸에 대해서는 슬퍼하지 않았습니다.(암 6:4-6) 이사야도 기득권자들이 가난한 자의 물건을 탈취하는 죄를 꾸짖었고(사 10:1-3) 형식적인 금식보다 주린 자에게 양식을 나누어주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이라고 했습니다.(사 58:6-7) 예레미야도 이방인과 힘없는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말라고 했고(렘 7:5-6) 에스겔도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학대하는 자는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겔 18:12-18)

7. 그렇다면 나사로가 가난한 거지로 살았기에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보상을 받은 것일까요? 그가 하나님의 도우심이라는 뜻을 가진 나사로라고 불린 것을 보아서 그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자이건 거지이건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고 성령의 도움으로 영적생활을 계속합니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 부름을 받은 우리들이기에 어떤 형편에서든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삽니다.(롬 8:28) 그래서 바울의 고백처럼 괴로움을 당해도 꺾이지 않고 난처한 일을 당해도 실망하지 않고 핍박을 받아도 버림을 당하지 않고 맞아서 쓰러져도 죽지 않습니다.(고후 4:8-9) 하늘 시민권을 가진 사람으로(빌 3:20)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선을 행하며 영적싸움을 계속해 가는 것입니다.

8. 예수님은 천국은 침노하는 사람의 것(마 11:12)이라고 했습니다. 힘으로 빼앗는 것처럼 복음의 능력으로 천국을 소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들은 자신만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며 성령께 순종하기를 노력합니다. 엡 6장에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할 것을 가르쳤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는 가나안 땅을 약속받고도 믿지 못하고 자기 맘대로 살다가 광야에 묻혀버린 사람들이 이 많았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들도 전쟁을 해서 땅을 취해야 했습니다. 바른 영적생활을 위해서는 자기욕심과 싸우고 마귀와 싸워 이겨야 합니다. 바울도 이미 얻은 구원을 지켜내려고 끝까지 싸우고 달렸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성령의 도움으로 영적싸움에서 이기고 그 열매를 이웃과 함께 나누는 복된 생활을 계속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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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영적승리 (대상 29:10-19, 엡 3:14-19) 9/18/22


1. 성도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주인을 위한 일꾼으로 혹은 주인의 것을 관리하는 청지기로 살아야 할 것을 가르쳤습니다. 바울도 성도들에게 먹든지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고전 10:31) 그래서 구원받은 우리들은 시간이나 물질을 자기 욕심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복에는 관심을 갖지만 하나님을 위해 희생하는 일은 힘들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맛본 성도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마음을 품고 삽니다. 부름에 합당하게 살며 자기 역할을 바로 하는 것이 성도의 영적승리입니다.

2. 성경의 맨 처음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선언합니다.(창 1:1)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만들었고 만물을 다스리고 사용하는 권한도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고 받아들인다면 거기에 방향을 맞춰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주시고 그것을 경작하며 관리하게 했습니다.(창 2:15) 아담은 관리자의 자격으로 하나님이 만든 피조물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아담은 사탄의 꾀에 넘어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고 그 결과 하나님이 주신 동역자의 권세를 사단에게 빼앗겨버렸습니다. 사탄은 공생애를 시작하는 예수님을 유혹하면서 자기가 그 권세를 넘겨받았으니 원하는 자에게 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3.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 승리의 길입니다. 청지기, 일꾼, 혹은 제자는 주인을 위해 일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위한 봉사와 헌신을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말년에 성전건축을 위해 준비했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자 지도자들과 백성들도 기쁜 마음으로 헌금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주인이고 자기들은 나그네인데 성전건축을 위하여 이렇게 많은 것을 드릴 수 있게 되었으니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감사했습니다. 대상 29:14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풍성한 건축비와 함께 수송아지와 수양과 어린양을 각각 천 마리씩 잡아 제사를 드렸고 백성들과 함께 기쁨의 잔치를 열었습니다. 다윗은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존귀하게 살다가 명예롭게 죽었습니다.(대상 29:28)

4.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의 동역자로 불렀고 교회를 향하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라고 했습니다.(고전 3:9) 세상을 다스리고 구원하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복음을 전했으며(고전 9:17) 이것을 하나님의 비밀을 다루는 일에 부름 받았다고 설명했습니다.(엡 3:2) 그는 주님과 한 몸이 되어 복음을 전했는데 그것은 자신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힘이었습니다. 바울은 능력 주시는 주님 안에서 일했기에(빌 4:13) 고난을 당할 때도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게 되었다고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5. 바울은 성도들의 속사람이 성령의 능력으로 강하게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의 마음에 항상 계셔서 그리스도의 사랑에 뿌리를 박고 기반을 굳게 하기를 기도했습니다.(엡 3:16-18)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어야만 바른 헌신이 가능하고 영적으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 편리한 방법으로 신앙생활 하려는 것을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달란트 설교에서 주인의 의도를 오해하고 쉬운 방법을 택했던 게으른 종을 이렇게 책망했습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네가 나를 그런 사람으로 알았느냐? 그렇다면 내 돈을 은행에 맡겼다가 내가 돌아왔을 때 이자와 원금을 함께 받도록 했어야 하지 않느냐?”(마 25:27) 자기 책임을 바로 감당하지 못한 일꾼은 결국 자기가 맡았던 한 달란트마저 빼앗겼고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 울며 이를 갈았습니다. 팬데믹을 지나면서 무디어진 우리의 영적 감각을 다시 되살려야 하겠습니다.

6. 영적승리를 위해서는 철저한 회개와 깊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스스로는 의로울 수 없는 죄인이며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회개의 시작입니다. 이미 죄 용서 받은 우리들은 무엇을 회개해야 할까요? 자기욕심을 벗어나 하나님을 우선하는 생활훈련이 필요합니다. 선을 알고도 행하지 못하는 게으름을 버려야 합니다.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는 적극적인 생활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성령 충만을 날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합심하여 기도하던 제자들이 성령 충만을 받아 성령의 힘으로 복음을 전하고 서로 사랑했습니다. 날마다 말씀을 배우고 기도하고 예배했으며 자기 소유를 팔아 서로의 필요를 채웠습니다. 세상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사랑을 실천했기에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겨 교회를 찾아왔습니다. 먼저 믿은 사람들의 변화된 생활을 보고 그들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구원을 받았습니다.(행 2:42-47)

7. 바울은 율법의 전통에서 벗어나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고 전하며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살았습니다.(갈 2:20) 우리들도 주님께 속한 지체로 살며 성령과 함께 일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합니다.(딤전 2:4) 그래서 성령께 순종하는 사람들을 불러 새로운 힘을 주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하게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게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여자들은 금이나 진주나 값진 것들로 치장하기보다 단정한 옷차림과 소박함과 정절로 단장하도록 했습니다.(딤전 2:8-10) 영적생활의 가치를 배우고 훈련하는 교회를 만들라는 것이었습니다. 성령께서는 지금도 순종하는 사람을 사용하여 교회를 세우고 세상을 새롭게 합니다. 우리들도 이미 이 거룩한 일에 부름을 받은 일꾼입니다.

8.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수치와 멸시를 당하신 것은 믿는 자에게 생명을 주고 풍성하게 누리게 하기 위함입니다.(요 10:10) 누구든지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믿고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요 3:16) 하나님께는 지금도 부름에 응답하는 성도들을 사용하여 구원의 소식을 세상에 알립니다. 지금은 마지막이 가까운 때이기에 믿는 우리들이 더욱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고전 4:7) 그 어느 때보다 믿음을 지키기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기 때문입니다. 열심을 내서 주님을 섬길 수 없을 만큼 모두가 자기 일에 바쁜 때입니다. 그러니 성도로 불러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감사하며 우리를 인도하시는 성령께 더욱 순종하여 영적으로 승리하는 가정과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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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기쁨이 되자 (눅 15:1-10, 신 30:15-20)

1. 눅 15장은 한 마리 잃은 양을 찾는 목자(3-7)의 비유와 사랑의 징표로 받은 동전을 잃었다가 찾은 여자(8-10)의 이야기와 잃었던 아들을 다시 찾은 아버지(11-32)에 관한 이야기를 통하여 잃었다가 다시 찾은 기쁨과 한 영혼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세 이야기의 결론은 하나입니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다는 것입니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됩니다.(눅 15:7,10) 한 사람의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2. 양 백 마리를 가진 사람이 하나를 잃어버리자 아흔 아홉을 들에 남겨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를 찾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아흔 아홉을 간수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하나를 되찾은 기쁨이 얼마나 컸던지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잔치를 위해 양을 잡았을 것이니 몇 마리를 갖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잃었다가 다시 찾은 기쁨과 한 영혼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열 드라크마를 가진 여자도 하나를 잃어버리자 불을 밝히고 온 집을 쓸며 찾았습니다. 사랑의 징표로 받은 동전이기에 다시 찾은 기쁨을 잔치로 나누었습니다. 아버지 집을 떠났던 아들이 모든 것을 잃고 비참한 형편에 처해보니 아버지의 풍요로움이 생각났습니다. 일꾼으로 써달라고 청했지만 아버지는 그에게 좋은 옷을 입히고 새 신발을 신기고 가락지를 끼워 아들의 신분을 회복시켰습니다. 잃었다가 찾은 아들이며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아들이라며 잔치를 열었습니다.

3. 예수님이 이 이야기를 하게 된 배경은 이렇습니다.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모여들자 그것을 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죄인을 영접하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예수님을 정죄했습니다. 이들을 영접한 예수님은 식사를 함께 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을 인정하고 받아주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자신들이 무시하던 죄인들이 예수님께 인정받는 것이 싫었습니다. 세리와 죄인들은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고 의지할 곳도 없는 사람들이었기에 기득권자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환영하고 인정하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뜻이라는 것을 드러내려고 이 비유를 말했습니다. 죄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4.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자기들이 회개해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회개할 사람은 죄인과 세리와 창녀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멀리하는 것으로 자기의 거룩함을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율법과 전통을 예수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지만 정작 율법의 완성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십자가에 매달았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자기를 내려놓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우선순위에 두고 따르는 적극적인 행위여야 합니다.(눅 14:27) 옛 성품은 죽고 주님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어떤 것이라도 예수님보다 중요하게 여기면 그것이 우상이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이용하여 자기 욕심을 채우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5. 예수님은 건축을 계획하는 사람이 가진 것을 계산하고 전쟁을 준비하는 사람도 자기 역량을 신중하게 계산하지 않느냐고 반문합니다.(눅 14:28-33) 부족한 역량으로 집을 짓다가 파산하기 쉽고 턱없이 부족한 군비로는 전쟁을 시작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으로 원하고 또 아무리 계산해 보아도 스스로 의롭게 될 수 없는 죄인이기에 자신을 내려놓고 전능하신 주님을 의지하는 것이 생명을 얻는 구원의 길입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막 10:27) 제한된 우리 힘으로는 십자가를 질 수 없고 주님을 우선할 수도 없습니다. 당장 눈앞의 일을 처리해야 하고 일터에서 일하고 가정을 돌보고 자녀 뒷바라지를 하다보면 예수님을 우선순위에 둔다는 것은 이론에 그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도움이 더욱 필요합니다.

6. 모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길로 행하며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면 생존하고 번성할 것이지만 마음에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섬기면 반드시 망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신 30:15-18)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심판으로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건져낼 것이라고 했습니다(겔 34:12) 그리고 다윗의 후손으로 오는 사람이 왕이 될 것이라며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약속했습니다. “내가 내 양을 구출하고 그들이 더 이상 희생물이 되지 않게 하겠다. 내가 내 양을 하나하나 심판하여 좋은 양과 나쁜 양을 가려낼 것이다. 내가 내 종 다윗과 같은 목자를 세워 내 백성을 다스리게 하겠다.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 것이다.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과 같은 그 목자는 그들의 왕이 될 것이다.”(겔 34:22-24)

7.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으로 세상에 오시어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롬 5:8) 그를 믿는 자를 구원해 주셨습니다.(요 3:16) 우리의 연약함을 알기에 성령을 보내 도와주십니다.(요 14:16) 이런 은혜와 오래 참아주심 때문에 오늘까지 이 길을 걸어왔습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하지만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의 갈림길에서 방황하는 우리들을 봅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며 주님을 우선하여 살기를 결단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예수님을 우선순위에 놓을 수 있을까요? 처음 사랑에 빠졌던 때를 생각하면 답이 나옵니다. 사랑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경험해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맛있는 것을 먹거나 좋은 곳에 가면 그 사람이 생각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하는 힘든 일은 오히려 기쁨이 됩니다. 이렇게 주님을 사랑하면 신앙생활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8. 다시 가을입니다. 명절이 되니 부모님의 사랑이 기억합니다. 독생자를 희생하여 우리를 사랑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도 생각납니다. 원하지 않는 테러로 죽은 수많은 사람들의 못 다한 시간과 아쉬움도 떠오릅니다. 제한된 인생을 살기에 한해를 잘 마무리하고 새해를 계획해야 하겠습니다. 팬데믹의 느슨함에서 벗어나 열심을 회복할 때입니다. 주님의 재림과 계산하는 날을 기다리는 우리들이기에 영적생활을 점검해야 하겠습니다. 한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는 일,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숙해지는 일, 영적사역을 잘 감당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함께 기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고 하나님을 더 기쁘게 하려는 노력이 새로워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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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으로 드리는 예배 (시 133편, 시 8편) 야외예배

1. 시 133편을 보면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가.‘라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형제는 핏줄은 물론이고 같은 목적을 갖는 민족이나 신앙공동체를 일컫는 말입니다.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에 모든 지파들이 한 마음으로 화합하고 단결했습니다. 서로 떨어져 살던 지파들이 절기 때마다 성전에 모여 예배하면서 한 형제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연합과 동거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예배가 되었습니다. 우리들도 수 년 동안 전교인수련회를 통하여 서로 사랑하고 배우는 예배의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전염병 때문에 세 번이나 쉬어보니 얼마나 아쉽고 그리운지 모르겠습니다. 주안에서 함께 먹고 자고 생각을 나누며 시간을 보내던 것이 성도의 거룩한 교제였던 것을 확인했습니다. 대신 오늘은 야외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2. 마 12: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다.” 행 4:32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없더라.”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감격 때문에 자기 소유도 나눌 만큼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만이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입니다. 자녀들이 화목하고 우애하는 것이 부모에게 기쁨이 되는 것처럼 그리스도에게 속한 우리들이 주 안에서 거룩한 교제를 나누며 예배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십자가 보혈로 죄 용서를 받은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피를 나눈 형제와 자매입니다.

3. 시 133편에서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다.’고 했습니다. 특별한 일을 맡길 때에 그 사람의 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대제사장의 임직식이나 왕의 대관식에 그렇게 했습니다. 대제사장 아론의 머리에 부은 기름이 수염을 타고 옷깃까지 흐르는 것과 또 헬몬 산의 이슬이 남쪽 시온 산으로 흘러내리는 것을 표현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모두에게 기름으로 상징된 거룩함과 이슬로 상징된 생명을 푸르게 하는 복이 고루 임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들에게도 이런 은혜가 있기 바랍니다.

4. 시온은 볼품없는 장소이지만 성전이 있기에 거룩합니다. 헬몬 산 높은 곳에서 눈이 녹아 흘러내려 남쪽의 시온의 생명체를 살게 하는 것처럼 성전에서 흐르는 생수가 믿는 자에게 영생의 복을 누리게 합니다. 교회는 이것을 세상에게 알려주는 곳입니다. 각 개인의 차이나 사람간의 불화가 여전히 존재하지만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님 때문에 은혜와 복을 누리는 공동체입니다. 주님께서 거룩하기에 주님의 몸인 교회도 거룩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더욱 주님 안에서 함께 배우고 함께 성장해 가기를 노력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통하여 땅의 모든 백성들이 복을 받게 하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 우리들을 사용하여 이 시대의 사람들을 복되게 할 것입니다.

5. 시 8:4-6에서는 “사람이 무엇인데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인데 주께서 그를 돌보십니까? 주께서는 그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광과 존귀의 관을 그에게 씌우셨습니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모든 것을 주께서는 사람이 다스리게 하시고 모든 것을 그의 발아래 복종하게 하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시의 저자인 다윗은 하나님께서 손가락으로 주물러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들고 그 모든 것을 사람에게 주어 다스리게 했다며 사람이 무엇이기에 그리 생각해주느냐고 노래했습니다. 깊은 영성을 가진 사람은 자연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고 찬송할 수 있습니다. 모든 만물을 제대로 관리해야 한다는 책임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는 물론이고 인간의 존재이유를 바로 알고 예배할 수 있습니다.

6. 인간은 창조주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기에 하나님과 교제하는 관계에서만 관리자의 책임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만 “온 땅에 주의 이름이 어찌 그리 위엄이 있습니까?“(시 8:9)라고 찬송할 수 있습니다. 창 1:28-29 “너희는 많은 자녀를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워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의 모든 생물을 지배하라. 내가 온 땅의 씨 맺는 식물과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었으니 그것이 너희 양식이 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대리자가 된 인간의 책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한 인간은 창조주를 무시하고 관리자의 책무를 버리고 자연을 훼손하고 욕심대로 살다가 자연은 파괴되고 기후가 변하고 이제는 먹거리마저 걱정하고 있습니다.

7. 교만한 사람은 창조주를 알 수 없습니다. 어린아이와 겸비한 사람만이 계시의 은혜로 창조주를 알 수 있습니다.(마 11:25) 그런 사람만이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시 8:1)라고 예배할 수 있습니다. 시 104:31 “여호와의 영광이 영원히 계속할지며 여호와는 자기 행사로 인하여 즐거워하실지로다.” 시 19: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지으신 만물을 기뻐하십니다. 만물은 하나님의 위대함을 높이고 드러냅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큰 기쁨의 대상입니다. 우리들의 예배는 하늘 보좌를 움직일 만큼 힘이 있고 하나님을 기쁘게 합니다.

8.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하여 자연을 칭송하는 사람이 있지만 우리들은 자연을 만들고 그것을 사용하여 우리와 교통하는 창조주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천국에서 드려지는 예배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흰옷을 입고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서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습니다.’라고 외치면 천사들과 장로들은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며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습니다. 아멘.‘이라고 할 것입니다.(계 7:9-12) 오늘 우리의 예배도 하나님을 높이고 구원의 감격으로 함께 즐거워하는 기쁨의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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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배우는 그리스도의 성품 (눅 14:1-14)

1.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를 닮아가는 사람입니다. 십자가를 지기까지 하늘 아버지의 뜻에 복종한 우리 주님을 배우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그 마음으로 서로를 돌보라고 했습니다. 빌 2:6-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주님을 따르는 일에 성장과 성숙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원망과 시비가 없이 서로 섬기며 빛의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2. 주님을 닮아가는 과정에 있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성품이 이미 우리 안에 싹트고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불러 구원하셨고 지금도 우리 안에서 일하시며 마지막 날까지 구원의 감격으로 살게 할 것입니다. 바울은 그것이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소원이라고 설명했습니다.(빌 2:13) 그래서 구원받은 자답게 살려는 거룩한 열정과 의지가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주님과 교제하는 영적생활의 훈련보다 우선 이해하기 쉬운 교리공부나 예배참석이나 교회전통을 지키는 것에 만족하려는 생각입니다.

3. 바리새인들은 누구보다 율법을 잘 지키려는 열심이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과는 항상 충돌했고 결국 예수님을 반대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자기들이 믿고 따르던 것과 예수님의 가르침이 서로 부딪혔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율법을 깨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이단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준 일이 그들에게는 안식일을 범하는 죄가 되었습니다. 생명을 회복시키는 것보다 자기들이 지키는 교리와 신념이 중요했습니다. 사람보다 날을 더 중요시했습니다. 일상생활을 할 수 없던 병자가 치유되었지만 그것을 함께 기뻐하지 못했습니다. 안식일을 범했다는 생각이 더 컸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을 보며 안타까워 울던 예수님의 연민과 긍휼은 그들에게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기도록 주신 율법으로 오히려 다른 사람을 판단했습니다. 우리들이 서로를 불쌍히 여기며 사랑하기를 더 연습하고 배워야 하는 이유입니다.

4. 예수님은 초청받은 잔치자리에서 스스로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스스로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잠언 25:7-9에서도 “왕 앞에서 스스로 높은 체하지 말며 대인들의 자리에 서지 말라. 이는 사람이 네게 이리로 올라오라고 말하는 것이 네 눈에 보이는 귀인 앞에서 저리로 내려가라고 말하는 것보다 나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리에 대한 것보다 자기 의를 내세우며 높은 자리를 탐하는 잘못을 지적한 것입니다. 우리들이 주님과 더 깊은 교제를 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면 세상에게 마음을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더 많이 갖고 더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을 성공이라고 가르치는 세상의 가치로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5. 성도는 자기 힘이나 노력으로 살지 않습니다. 주님께 내 삶의 주인이 되도록 자리를 내드리는 것을 훈련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전능자입니다. 가난하게도 하고 부하게도 하며 낮추기도 하고 높이기도 할 권세가 있는 분입니다.(삼상 2:6-7) 우리들이 심사숙고하여 어떤 일을 결정하지만 결국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분은 하나님입니다.(잠 16:9) 그래서 우리의 생각과 삶을 하나님께 두고 삽니다. 그럴 때 비로소 그리스도의 긍휼과 겸손이 우리에게서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가 얼마나 겸손한 사람인지는 이웃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타납니다. 히 13: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약 4:6)

6. 예수님은 되돌려 받을 것을 기대하고 선을 행하는 것보다 다시 갚아줄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이나 불편한 사람을 섬기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고 했습니다. 소자에게 행하는 남모르는 선행이 마지막 날 하나님의 계산대 앞에서 드러날 것이고 그에 따르는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눅 14:12-14)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야고보 사도가 가르쳤습니다.(약 1:27) 그래서 하나님의 눈과 계산할 날을 의식하고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 21:34)

7. 어떤 주인이 잔치를 베풀고 사람들을 초청했지만 사람들은 자기 일이 바빠서 초청에 응하지 못했습니다. 새로 산 다섯 마리 소를 길들여야 하고 시간 맞춰 농사도 지어야 하고 갓 결혼했으니 신혼을 즐겨야 했습니다. 주인은 이들을 대신하여 거리에 있던 가난한 자들과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불러왔습니다. 그리고도 남은 자리가 있어서 길과 산울타리에 있는 사람들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잔치 자리를 채웠습니다.(눅 14:23) 이전에 초청했던 사람들은 하나도 잔치를 맛보지 못했습니다. 선민의식으로 가득했던 바리새인들보다 버림받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먼저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생명은 세상 어느 것보다 값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주님의 제자로 살기를 노력합니다. 율법을 중하게 여겼지만 정작 율법의 완성이신 예수님을 몰라봤던 바리새인들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8.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26-27,33)라고 했습니다.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시대에 우리가 살지만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히 드러내기를 원합니다.(빌 2:15)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과 겸손을 배우고 실천하는 우리들을 통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와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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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길을 선택하라 (사 66:18-23, 눅 13:22-30) 청장년선교회 헌신예배

1. 이사야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전했습니다.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난 백성들이지만 다시 회복시켜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아담에게 땅에 충만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존재가 되게 했던 것처럼, 아브라함을 통해 열방이 복을 받게 했던 것처럼 이스라엘을 다시 제사장 나라로 사용하여 땅의 모든 족속이 하나님을 알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성령의 강림으로 시작된 신약교회를 통하여 모든 사람을 회복하고 구원하는 하나님의 일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그 은혜의 대열에 함께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구원의 날에 여호와의 산에 사람들이 모일 것입니다.(사 66:18-20) 그날에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일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영광을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실 것입니다. 사람들이 동서남북 사방에서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석할 것입니다.(눅 13:29) 다른 나라로 흩어졌던 사람들이 고향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고 제사장과 레위인도 다시 세워지고 초하루와 안식일에 하나님을 예배하게 될 것입니다. 악인들이 망하는 것도 지켜볼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완전한 회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는 복음을 듣고 주님께 돌아온 수많은 이방인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의 율법에 얽매이지 않았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이방인 고넬료의 가정에 사도들이 경험했던 성령께서 임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이방인도 구원한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행 10:45)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교회를 통해 사람들을 구원합니다.

3. 예배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상과 구분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며 영적인 힘을 공급받습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세상에 알릴 수 있습니다. 예배를 통하여 얻는 힘으로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살아있는 제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롬 12:1)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우리들은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면서 재림으로 펼쳐질 천국에서의 예배를 기다립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전능하신 주 하나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장차 오실 주님! 주님께서는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실 분입니다. 모든 것은 주님의 뜻에 따라 창조되었고 존재하게 되었습니다.”(계 2:8,11) 하늘의 천군천사가 노래하고 생명체의 대표들이 영원하신 하나님을 찬송하는 그 영광스런 예배에 함께 할 소망을 갖고 삽니다.(롬 5:2)

4. 구약의 제사는 정해진 법과 절차를 따라야 했습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말씀에 불순종하여 번제단의 불이 아닌 다른 불로 분향하다가 죽었습니다.(레 10:1-11) 구약의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미리 보여준 것입니다. 대제사장이 속죄일인 7월 10일에 세마포 옷을 입고 지성소에 들어가 자신과 백성들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피를 뿌린 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로 구원받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식이나 절차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힘입고 영과 진리로 예배하기를 힘써야 합니다.(요 4:24) 하나님께서는 형식에 매여 습관적으로 드리던 이스라엘의 제사를 기뻐하지 않았습니다.(암 5:21-23) 믿음에 합당한 열매가 있어야 바른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5. 유대인들은 자기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할례를 받은 약속백성이니(창 17:7-11) 당연히 구원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진리를 전하는 자신을 대적하는 유대인들을 향해 마귀의 자식이라고 질타했습니다. 아브라함이라면 진리를 말하는 예수님을 대적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요 8:37-45) 그러므로 형식이나 교리보다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하는 영적교통을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며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그리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스스로 자격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주인이 닫은 문을 두드리고 자기 의를 자랑해보지만 결국 쫓겨날 것입니다. 그들이 쫓겨난 후에 다른 사람들이 모여들어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가 있으니 스스로 삼가며 좁은 길을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6. 구원받은 우리들은 하나님나라의 책임 있는 백성으로 살며 믿음 안에 있는지를 스스로 시험하고 확증해야 합니다.(고후 13:5) 좁은 길을 선택하는 일은 세속적인 가치로는 불가능합니다. 겉모양은 하나님나라의 백성인데 실제로는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욕심으로 가득하다면 자기욕심을 이루기 위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세상 처세술로는 자기를 포기하고 자기십자가를 지고(눅 9:23) 주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본질상 진노의 자식(엡 2:3)으로 살던 옛 생활의 습관으로는 그리스도를 따를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에 대하여는 죽고 그리스도를 자랑하며 사는 사람입니다.(갈 2:20) 그것은 한 번의 결단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좁은 문을 통과한 후에도 때마다 좁은 길을 선택해야 하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기위해 박해도 견뎌내야 합니다.(딤후 3:12)

7. 신앙생활은 자신과의 싸움이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성장해야하는 긴 과정입니다.(엡 4:13)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과 싸우는 영적싸움이기도 합니다.(엡 6:12) 그러나 싸움이 끝난 후에 누릴 영광을 생각하면 견딜만한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긴 터널을 지난 후에 펼쳐질 빛나고 아름다운 모습을 기다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행한 것은 주님께서 마귀와의 싸움을 이미 승리로 마무리했기에(요 19:30) 우리는 그가 가신 길을 뒤따르면 됩니다. 영으로 깨어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고(엡 6:13-17) 성령께 순종한다면 우리의 싸움은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는 감동과 감격이 있는 복된 길이 될 것입니다. 시험과 환란을 만나기도 하지만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길입니다.(고전 3:10-15)

8. 교회는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여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교회를 통하여 성령을 의지하여 주의 백성으로 사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선교회는 연령대가 비슷한 사람들이 함께 교제하고 협력하도록 묶어놓은 연결고리입니다. 오늘 인생의 가장 바쁜 시간을 사는 청장년들이 헌신을 다짐합니다. 일과 가정을 세우고 자녀에게 본을 보여야 하는 여러분에게 우리 주님께서 특별한 지혜와 믿음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조금 한가해지면 영적인 일에 열심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를 닮고 신앙 인격을 키우는 일은 거기에 우선순위를 두고 결단할 때에만 가능한 일입니다. 좁은 문 좁은 길을 가는 신앙여정에 서로에게 좋은 믿음의 길동무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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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일 (눅 12:49-56)

1. 예수님은 제자들을 선택할 때에 자기가 원하는 사람들을 불렀습니다. 함께 거하며 전도도 하고 귀신을 내쫓는 권능을 갖게 하려고 12제자를 세웠습니다.(막 3:13-15) 제자들은 3년이나 되는 시간을 예수님과 함께 보내며 천국복음을 듣고 배우고 전했습니다. 눅 12장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충성된 종의 자세를 갖출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렇게 준비된 제자들이 성령으로 충만해져서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기를 원했습니다.(행 1:8) 오늘 말씀에 예수님은 불을 던지러 왔다고 했는데 이것을 성령, 말씀, 심판으로 다양하게 해석하기도 합니다만 그것이 무엇이든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 죄인들을 구원하려는 예수님의 마음인 것은 분명합니다.

2. 불은 모든 것을 태우는 무서운 힘이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태우는 불과 같고 바위를 부숴버리는 망치와도 같습니다.(렘 13:29) 그래서 죄인들의 죄와 허물을 불살라 버립니다. 불을 던지러 왔다는 것은 죄인들을 구원받게 하는 천국복음을 선포하신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고 그것을 풍성히 누리게 하려고 세상에 왔습니다.(요 10:10)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낸 것은 세상을 심판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아들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요 3:17) 구약에서 희생 제사를 드려 죄 용서를 받게 했지만 제사장도 죄인인지라 제사의 효력이 영원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반복하여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희생하여 드린 한 번의 제사로 영원한 속죄를 누리게 합니다.(히 10:11)

3. 세례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면서 자기 뒤에 오시는 그리스도께서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줄 것이라고 했습니다.(마 3:11-12)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들이 받는 회개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죄인들이 받아야 할 형벌을 십자가에서 대신 받았습니다.(롬 5:8)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예수님이 받을 세례는 구원사역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는 일을 말합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의 좌우편 자리를 청탁할 때에도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막 10:38)라고 했습니다. ‘회개하라.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외치며 공적사역을 시작한 예수님은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를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세상에 오시어 함께 거하며 하나님 나라를 알려주었고 또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도록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롬 6:3-5)

4. 사람은 자기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에 마음을 둡니다. 학예발표회에 참석한 학부형의 눈에는 자기자식만 크게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관심은 하나님나라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듣고도 마음에 불이 붙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예수님은 때마다 한적한 곳을 찾아 기도했습니다.(막 1:35) 제자들과 함께 동네를 찾아다니며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눅 8:1) 예루살렘을 위하여 눈물을 흘릴 만큼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했습니다.(눅 19:41) 그러나 유대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방해했고 그가 안식일을 어기고 병든 사람을 고치는 것을 문제 삼았습니다.(요 5:16) 결국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한다는 신성모독죄를 씌워 십자가에서 죽게 했습니다.

5. 예수님은 평화가 아닌 분쟁을 주러왔다고 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어머니와 딸이,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서로 싸워 갈라질 것이라고 했습니다.(눅 12:51-53) 이런 분쟁은 예수를 믿고 변화된 것 때문에 나타나는 영적갈등을 말합니다. 마귀에게 속한 것들이 감추어져 있다가 복음의 능력 앞에서 드러나기에 갈등과 긴장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안한 것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거기에 생명을 새롭게 하는 성령의 능력이 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제사하러 온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서 환전을 해주고 제사에 사용할 짐승을 팔던 일이 종교지도자들의 돈벌이가 되어 버렸을 때 예수님은 그들의 상을 뒤엎고 장사하는 사람들을 성전에서 내쫒았습니다.(막 11:15) 평온해 보이는 성전 뜰이었지만 기도하는 집을 장사하는 곳으로 바꿔버리고 역할을 바로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6. 복음에 대한 반응은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영접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고 영접하지 않는 사람은 심판을 받습니다.(요 3:18) 복음이 불처럼 확산되고 사람을 새롭게 한다면 그 복음을 듣고 믿어 새롭게 된 우리들이 그것을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그 타오르는 불길이 아직도 살아있다면 말입니다. 행 24장에 보면 더둘로라는 사람은 바울을 염병이라며 유대인을 소요케 하는 자라고 법정에 고소했습니다. 바울의 전도가 반란을 주도하는 것처럼 보였고 사회질서를 무너뜨리고 소요를 일으킨다고 보았습니다. 이 일은 예수 부활의 복음이 전염병처럼 빠르게 퍼졌고 소요가 일어날 만큼 생명력과 전파력을 가졌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들도 바울이 믿던 예수님을 믿습니다. 만일 우리가 입을 벌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한다면 우리도 그런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예수님에게서 나오는 능력입니다.

7. 예수님은 외식하는 지도자들을 향하여 날씨의 변화는 예측하면서 시대는 분간하지 못한다고 꾸짖었습니다.(눅 12:56) 교만한 종교지도자들은 복음으로 인해 변하는 세상을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을 듣고 보았지만 애써 믿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자기교만과 아집으로 가득하여 결국 따르는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죄인들을 살리기 위해 죽고 그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살아 믿는 자들이 부활의 능력으로 살게 합니다. 성령을 보내주시어 예수님을 더 확실하게 알고 믿게 합니다. 죄 용서의 확신을 갖고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합니다.(롬 5:1) 우리의 생활을 통하여 포로 된 자를 자유하게 하고 눈먼 자를 보게 하며 눌린 자를 자유하게 합니다.(눅 4:18) 이것이 우리가 구원받았음을 알게 하는 성령의 보증하고 확인해주시는 일입니다.(엡 1:13)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입니다.

8. 그래서 성도는 사탄과의 싸움을 그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신인 사탄이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복음을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때문입니다.(고후 4:4) 하나님 나라를 방해하는 어두움을 걷어내기 위해서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고 성령의 뜨거운 불씨를 우리 안에 계속 불태워야 하겠습니다. 우리 믿음의 근원이시며 우리 믿음을 완전케 하시는 예수님만 바라봅시다. 우리 주 예수님을 바라볼 때에만 모든 무거운 짐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목표를 향해 꾸준히 달려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히 12:1-3) 예수님이 주신 구원의 감격을 우리의 일상에서 자랑하고 전하는 제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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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주님께 (창 15:1-6, 눅 12:35-40)

1.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다시 나타나 그를 보호하고 상급이 되어주겠다며 아브람의 몸에서 날 아들이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창 15:4) 나이 많아 아들을 낳을 수 없다고 생각한 아브람이 식솔 중에서 충직한 종 하나를 택하여 상속자로 삼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생각을 바꾸었고 그의 가슴에 깊이 박혀 견고한 믿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밤하늘을 보여주며 그의 자손이 수많은 별과 같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씀하고 쪼갠 고기 사이를 횃불로 지나가며 그 약속을 믿게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의롭게 여겼습니다.(창 15:6)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보증해 주고 볼 수 없는 것들을 확증해 줍니다.(히 11:1)

2.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린 아브람은 구원의 역사에 크게 사용되었습니다.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히 11:12)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자녀들의 필요를 채워주며 함께 일하는 신실한 아버지입니다.(눅 12:32) 그래서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계신 것과 또한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히 11:9)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처럼 눈에 보이는 세상 것에 집착하거나 욕심을 따라 살지 않습니다. 공중의 새와 들의 꽃까지 먹이는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돌보아주실 것을 믿고(눅 12:29-31) 모든 염려를 맡기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추구합니다.

3. 예수님은 주인을 기다리는 충직한 종을 예로 들어 재림을 준비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생각하지 않은 때에 주인이 올 것이니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서 준비하고 기다리라고 했습니다.(눅 12:35,40) 이것은 항상 준비된 자세로 주인을 섬기는 충성된 종의 모습입니다. 큰 천을 둘둘 감아 입던 유대인의 옷을 생각하면 허리에 끈을 매는 것은 일할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등불을 켜는 것도 어두운 때에 들이닥칠 주인을 맞이하기 위한 것입니다. 서서 기다리는 것도 섬길 준비를 마쳤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허리에 띠를 띠고 지팡이를 들고 서서 무교병과 쓴 나물을 급하게 먹던 유월절을 생각하게 합니다.(출 12:11) 유월절은 애굽의 장자가 죽던 날 희생짐승의 피를 문에 발라 죽음에서 벗어났던 일을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모습과 같습니다.

4. 유대인들의 혼인예식이 밤에 이루어지던 것을 생각하면 혼인집에 방문한 주인이 언제 돌아올 것인지는 종잡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자세로 주인을 기다린다면 그는 분명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는 종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혼인잔치에 갔던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충직한 종처럼 재림을 준비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주님은 갈릴리 사람들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행 1:11)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기생전에 주님의 재림이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했다가 시간이 늦어지자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주님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시간개념의 차이를 말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아무도 멸망에 이르지 않고 회개하기를 바라기에 오래 참고 기다리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벧후 3:9)

5. 주님의 재림도 이야기 속의 주인처럼 기대하던 시간을 훨씬 넘겨서 한밤중이나 새벽녘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재림을 믿고 기다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한 때에 예고 없이 오실 것입니다. 그래서 도적이 올 것을 예비하는 사람처럼 재림을 준비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이렇게 준비된 종에게는 복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하리라. 주인이 혹 이경에나 혹 삼경에 이르러 이같이 하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눅 12:38) 깨어 주인을 기다리는 것이 종의 본분이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종들이 많습니다. 그러기에 준비된 자세로 주인을 맞는 종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영광스런 복을 준다고 말한 것입니다. 주인이 종을 자리에 앉히고 직접 섬긴다고 표현했습니다.

6. 주인이 종을 섬기는 것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으며 이런 섬김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허리에 띠를 매고 무릎을 꿇고 겸손하게 제자들을 섬겼습니다.(요 13:4, 5) 뿐만 아니라 자기 몸을 십자가에 내어주어 죄인들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했습니다.(요 3:16) 재림의 주님을 환영하는 충성된 종들은 하늘나라에서 영광스럽고 기쁜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요 12:26) 베드로는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벧전 5:1-4) 성도가 깨어 있다는 것은 우리들의 주인이신 주님과 깊이 교제하며 사모하는 마음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그 마음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드리는 예배에서 표현되고 또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에서 증명됩니다.

7.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눅 12:40) 모두가 자기만족을 위해 사는 세상에 함께 어울려 살지만 성도는 달리 살아야 합니다. 주께서 오늘 오시더라도 맞이할 수 있도록 깨어있는 파수꾼으로 살아야 합니다.(시 130:6). 그리할 수 있는 비결은 우리의 마음을 주님에게만 둘 때 가능합니다. 우리의 피난처가 되는 주님께 마음을 두는 것이 성도의 복입니다.(시 73:28) 우리들이 성령을 의지하여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기면(롬 12:11) 혼탁한 세상에 살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자기욕심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롬 13:14) 성도에게 약속된 하늘상급에 대한 목표가 분명해지고 그것을 향하여 달려갈 수 있습니다.(엡 3:14)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기대감으로 믿음의 여정을 계속할 수 있게 됩니다.(벧후 3:12-13)

8.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성도들이 주님의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을 생활에 적용하며 순종하는 것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큰 영광과 기쁨이 됩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2) 성도가 받을 상은 의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등으로 설명되었는데 오늘의 금메달로 이해하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그 상을 바라보고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엡 6:14) 열심을 품고(롬 12:11) 각자에게 주신 은사를 활용하여 주님을 섬깁시다.(롬 12:3) 주님께 마음을 두는 우리의 수고를 반드시 알아주시고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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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부요한 자 (눅 12:13-21)

1. 솔로몬은 사람이 일평생 염려하며 수고하지만 그 결과는 슬픔뿐이며 밤에도 쉬지 못하고 노력해보지만 그것도 결국 헛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전 2:23) 인생을 오래 경험한 사람들은 인생살이가 바람을 잡는 것과 같이 헛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세상은 더 많이 갖기 위해서 경쟁해야 하는 구조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정말 가치 있는 것을 우선적으로 선택하지 않으면 방향을 잃어버리고 세상의 흐름을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우리에게 모든 것을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라고(딤전 6:17) 가르칩니다.

2.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순종의 삶을 배우며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갑니다. 무엇을 먹고 마실 것인지를 염려하기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하나님의 자녀로 삽니다.(마 6:33) 보이는 세상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합니다. 바울은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 3:5)라고 가르쳤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며 마치 돈이 하나님처럼 힘을 가진 것으로 설명했습니다. 예수님께 영생에 대해 묻던 부자 청년은 자기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말씀에 근심하고 돌아갔습니다. 자기 재산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마 19:16-22)

3. 한 청년이 상속문제로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형이 재산 분할을 일방적으로 했던 것 같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런 문제들이 생기면 랍비에게서 율법에 근거한 해답을 찾곤 했습니다. 그들은 부자가 되는 것이 복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재물을 모으는 것을 생의 최고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재물에 대한 욕심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어리석은 부자를 비유로 들어 말씀했습니다. 한 부자가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고 이제는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할 것을 꿈꾸었습니다. 이런 부지런한 사람은 모두에게 부러운 대상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열심히 일하여 저축하고 노년을 편하게 보내겠다는데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어리석은 자라고 했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눅 12:20)

4. 인간은 내일도 알지 못하는 제한적인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부르면 즉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야하는 존재입니다.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존재입니다.(약 4:14) 그런데도 영원히 살 것처럼 욕심을 부리고 재산증식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눅 12:19) 이 사람은 자기를 위해서는 수고했지만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대하여는 부요하지 못했기에 어리석다고 취급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상속문제로 찾아온 청년에게 예수님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눅 12:15)라고 말씀했습니다. 평소에는 하나님 나라에 관심 없다가 자기 문제가 급해지니 예수님을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에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5. 인간을 부요하게 하는 것은 재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시 119:104, 딤후 3:16) 신자는 재물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지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먹여주신다는 믿음으로 살며 재물의 유무와 상관없이 자족하는 마음으로
평강을 누려야 합니다. 자기욕심만을 위해서 재물을 사용한다면 끝없는 인간의 욕심을 다 충족시킬 수 없기에 결국 피폐해지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정당하게 돈을 벌고 바로 사용해야 합니다. 일꾼에게는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고 약한 사람의 것을 착취하거나 불의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아야 합니다. 충동구매나 사치를 배제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짜임새 있게 돈을 사용해야 합니다. “만일 너희가 세상의 재물도 충실히 다룰 수 없다면 누가 너희에게 하늘의 것을 맡길 수 있겠느냐.”(눅 16:11) 돈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고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6. 예수님은 불의한 청지기 비유(눅 12장)나 달란트 비유(마 25장)에서 주인의 돈을 자기 생각대로 관리하다가 심판받은 게으르고 악한 종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것을 관리하는 성실한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구약성도들이 희생제물과 화목제물을 드린 것처럼 우리의 예배에도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드려 하나님을 기쁘게 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헌금은 재정의 공급자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믿음과 희생의 표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한 레위인과 제사장의 생활을 돕고 성전을 유지하고 사회 약자인 과부와 고아와 객을 먹이도록 십일조를 드리게 했습니다. 자신을 희생하는 정성으로 드리는 우리의 헌금은 복음을 전하는 일과 공동체의 필요를 채워주는 일에 사용됩니다.(고후 9:11-14) 우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믿습니다.(히 11:3) 그래서 재물이나 명예나 세상의 것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탐심이고 우상숭배이기 때문입니다.

7. 하나님이 돈의 주인이고 나는 관리자가 되어야(마 25:14-30) 내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우리들은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교회를 유지하고 복음을 전하고 구제와 선교의 일을 하며 보물을 하늘에 쌓기를 힘씁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0-21) 성령으로 충만했던 초대교회 선배들은 자기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과 나눴습니다.(행 2:45) 이런 선한 나눔을 통하여 복음이 전해졌고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의 수가 늘었습니다.(행 2:47) 하나님께서는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고후 9:7) 돈에게 얽매이지 말고 하나님께 마음을 두고 살기를 함께 노력합시다.

8.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부탁했습니다.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 6:17-19)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잠 11:25) 하나님이 맡겨주신 것으로 다른 사람을 윤택하게 하는 나눔이 하늘에 보화를 쌓는 일이며 하나님께 부요한 사람이 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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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생활의 유익 (창 18:20-33 시 40:1-5 눅 11:1-4) 7/24/22

1. 우리들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해 갑니다. 기도를 하면 할수록 자기욕심은 내려놓게 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한 것들이 응답되는 것을 경험한 선배들은 삶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하나님을 자랑했습니다.(시 40:1-5) 그런데도 어느 분은 하나님의 뜻대로 될 것인데 사람의 기도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묻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로 이해하면 대답이 됩니다. 자녀에게 줄 좋은 선물을 준비한 아버지는 아버지에게 관심을 보이고 선물을 달라고 요청하는 자녀를 결코 싫어하지 않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소통하고 교제하는 통로입니다.

2.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동안에 늘 기도하며 하나님 아버지와 생각을 나눴습니다. 새벽에도(막 1:35) 저녁에도(마 14:23) 때로는 밤을 지새우며(눅 6:12) 기도했습니다. 바쁜 중에도 한적한 곳을 찾아 산이나 들에서 기도했습니다. 제자들을 세우는 일(눅 9:28,29)이나 십자가를 앞두고는 더 깊은 기도를 했습니다.(눅 22:41-44) 예수님이 필요한 것들이 많아서 하나님 아버지의 도움을 구한 것이었을까요? 물론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에 두고서 애써 기도하기도 했지만 그 어느 때라도 예수님은 기도로 하나님 아버지와 깊은 영적교통을 나눴습니다. 이렇게 기도의 본을 보여주셨기에 제자들도 예수님처럼 기도하고 싶었고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에게 기도의 모범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3. 기도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게 하는 것입니다. 죄로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대속의 은총을 힘입어 죄에서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사죄의 은총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눅 15장에서 집나간 아들을 기다리던 아버지는 다시 돌아온 아들의 죄를 묻지 않고 품어주고 그에게 가락지를 끼워주고 새 신과 새 옷을 입혀 아들의 신분을 회복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런 사랑으로 우리를 용서하고 그리스도로 옷 입혀 주셨습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우리의 죄를 옮겨버리고 기억도 하지 않습니다.(시 103:12) 그리스도 안에서 흠 없고 책망 받을 것이 없는 거룩한 존재라고 안정해 주십니다.(골 1:21) 우리를 양자삼아 주시어 그리스도를 맏형으로 모시게 했습니다.(롬 8:29)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님 아버지를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게 했습니다.(롬 8:14-15)

4. 예수님이 가르쳐준 기도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담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뜻이 우리 가운데에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라는 말씀입니다.(마 6:33) 그리고 우리의 필요를 구하되 그것마저도 자기 욕심을 위한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사랑하고 기뻐할 수 있는 도구가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얻고 서로 용서하고 악에게 지지 않고 승리하는 성도의 생활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한 수단이 됩니다. 우리의 이웃에게 하나님 나라의 감격을 생활 속에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5. 이런 믿음으로 구하는 사람은 받을 것이며 찾는 사람은 찾을 것이고 두드리는 사람에게는 열릴 것입니다.(눅 11:10) 육신의 아버지들도 자기 자식에게는 가장 좋은 것을 주기 원하는데 하물며 하늘 아버지께서도 가장 좋은 것인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눅 11:13) 성령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생각을 잘 아는 분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알려주셨기에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롬 8:15-16) 그러므로 성령을 따라 살면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성령의 충만을 기도하는 것은 성령과 함께 하나님의 뜻대로 살며 하나님을 드높이려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도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통로이며 우리를 살게 하는 영적인 호흡이라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6.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그런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 계획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소식을 듣고 성안의 많은 사람을 불쌍히 여기며 기도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의인과 죄인을 함께 벌하겠느냐며 하나님의 공의에 근거하여 기도했습니다. 그가 제시한 의인의 수는 50명에서 45,30,20,10명까지 줄었지만 하나님은 숫자에 개의치 않고 의인이 있다면 그로 인해서 소돔성이 살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기도는 조카 롯을 살리려는 개인적인 목적에서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가 이뤄지기를 바라는 기도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창 18:18-19) 아브라함은 열방을 복 받게 하려는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의인과 악인을 함께 죽이지 말아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7.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응답해 주신다는 것을 믿습니다.(마 6:33) 그러니 구원받는 사람이 더 많아져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를 위하여 기도해야겠습니다. 바울도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고 세움을 받고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가르쳤습니다.(골 2:6)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가 되어 주셨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돔 성을 심판할 때에 아브라함의 기도를 기억하고 롯을 건져 주셨습니다.(창 19:29) 날마다 습관처럼 기도하던 다니엘과 친구들은 위기의 순간에 믿음으로 대처하여 자신도 살고 모두에게 하나님을 알렸습니다.(단 6:10) 우리의 기도도 그렇게 쓰임받기를 원합니다.

8. 하나님께서는 불완전한 이스라엘을 회복하고 세워주시어 열방 가운데 거룩한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이도록 사용했습니다. 그 결과로 구원을 행하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되었습니다.(겔 36:23)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양자로 받아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통하여 찬송받기를 기뻐하십니다.(엡 1:6) 모두가 힘들어하는 때에 우리가 있습니다. 지금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는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을 많은 사람들과 나눠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하고 회복시키는 것을 기대하고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나라가 넓어지는 것을 함께 바라봅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사용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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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를 맺게 하는 하나님 (창 18:1-14, 골 1:21-29)

1. 아브라함이 어느 날 길가는 세 사람에게 잠시 쉬어가기를 청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과 두 천사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실 것을 믿게 하고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기 위하여 가는 중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손님 접대하기를 즐겨하던 사람입니다. 그 날도 손님들을 앉혀놓고 급하게 아내에게 떡을 만들게 하고 종들에게 요리를 시켰습니다. 그들이 그늘에 앉아 식사하는 동안 아브라함은 옆에 서서 시중을 들었습니다.(창 18:8) 히브리서는 아브라함이 손님 접대하는 것을 즐겨하다가 부지중에 천사를 접대했다고 말합니다.(히 13:2) 하나님께서 음식을 잡수신 것은 아브라함과 대화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도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먹으며 교제했습니다.(눅 24:41-43) 우리의 식탁교제도 성만찬처럼 주님 안에서 나누는 성도의 교제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창 17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손이 번성하게 될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 증거로 집안의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아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을 표시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라는 뜻의 이름인 ‘아브람’을 ‘열국의 아버지’라는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바꿔주셨습니다. 그의 아내 사래도 사라라고 바꾸어주시고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의 이름을 이삭으로 부르라고 했습니다. 이런 자상하고 큰 은혜를 입은 아브라함이지만 창 17:17-18에서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겠다는데도 늙고 지친 자신을 보며 이스마엘이나 보고 사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3. 그래서 창 18장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다시 찾아오신 것입니다. 마치 창세기 1장과 2장에서 창조에 대한 것을 중복하여 강조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하게 믿게 하려는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내년 이맘때에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텐트너머에서 들은 사라 본인도 속으로 웃었습니다.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12절) 생물학적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상태이고 남편도 나이가 많은데 아이를 갖는다니 어처구니가 없고 웃음이 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이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영적인 생활을 하면서도 여전히 육체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오늘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4. 하나님은 사라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창 18:13-14) 사라는 웃지 않았다고 했지만 하나님은 사라가 웃었다고 하시며 ‘하나님께 불가능한 일이 있단 말이냐?’라고 분명하게 못을 박으십니다. 우리의 형편이 어떻든지 하나님은 말씀하신대로 실행하는 분입니다. 아들을 낳는 것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몫이지만 그 일을 가능하게 하는 분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입니다. 히브리서는 그들이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임신하였고 하늘의 별과 바다가의 모래처럼 많은 자손을 얻었다고 말합니다.(히 11:11-12)

5. 하나님의 자상함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75세 때 그를 불러 하나님의 계획을 알려주고 지시할 땅으로 가게 했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순종하여 고향을 떠났습니다. 여러 훈련과정을 거치고 99세가 되자 그 약속을 다시 주셨습니다. 야고보는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벗(약 2:23)이라고 불렀지만 그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연약한 부분이 회복되도록 기다려 주신 은혜의 결과였습니다. 자기를 보호하려고 아내를 누이라고 두 번이나 거짓말했고(창 12:10-20, 20:1-18) 인간적인 해결책으로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낳기도 했습니다.(창 16:1-15)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아브라함을 사용했습니다. 아들을 주신다는 약속을 믿게 하려고 제물사이를 횃불로 지나가기도 하고(창 15:17) 사람의 모양으로 찾아와 대화하고 음식을 먹으며 약속을 믿게 만들었습니다.

6. ‘나 주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느냐?’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일한다는 것입니다. 연약한 아브라함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일을 이루어 간다는 것입니다. 롬 4:19-22 “아브라함은 자기 나이가 백세가 다 되어 몸은 죽은 것과 다름이 없었고 그의 아내 사라도 나이가 많아 도저히 출산할 수 없는 것을 알고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불신앙으로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에 더욱 굳게 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이루실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믿음 때문에 그를 의롭게 여기셨습니다.“ 믿음은 자기 힘을 의지하거나 그러다가 현실에 부딪혀 적당히 적응하거나 주저앉는 것이 아닙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행하실 것을 믿고 발을 내딛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를 힘입고 성령의 도움을 받아 신실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7. 롬 4:23-25 “하나님이 그를 의롭게 여기셨다는 말은 그에게만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다 의롭다는 인정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 때문에 죽임을 당하셨고 우리가 의롭다는 인정을 받게 하시려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열방을 구원하고 복 주려고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께서 우리시대의 사람들을 축복하려고 우리들을 먼저 불러 여기에 있게 했습니다. 요 15:15-16 “이제부터는 내가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른다. 오히려 내가 너희를 친구라고 부른 것은 내가 아버지께 들은 것을 모두 너희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너희가 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선택하여 세웠다. 이것은 너희가 세상에 나가 열매를 맺게 하고 그 열매가 항상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8. 바울은 만세전부터 감추어졌던 하나님의 비밀이 성도들에게 알려졌다고 말했습니다. 그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영광과 소망이 되신 주님(골 1:25–26)이라고 가르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여기로 불러주시고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주셨습니다. 그래서 함께 예배하고 후배들을 말씀으로 가르치며 문화학교와 구역선교를 통하여 복음을 전하려 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도마에게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 20:27)고 했던 말씀을 기억합니다. 우리의 구원을 다시 점검하고 믿음의 훈련을 계속하여 더 많은 사람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열매를 풍성하게 거두는 여름철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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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눅 10:25-37 레 19:9-18 골 1:9-12) 창립38주년기념

1. 율법은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가르칩니다.(눅 10:27)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계명의 완성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형제를 사랑하는 구체적인 일에서 나타나야 합니다.(레 19:18) 예수님은 그것을 누가복음에서 선한 사마리아 사람을 예를 들어 가르쳤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가 앗수르에 망한 이후에 타민족과 섞이게 된 것 때문에 그들을 무시했습니다. 심지어 유대인들은 여행할 때에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하지 않기 위해서 먼 거리를 우회할 만큼 반목이 심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사람을 이웃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2.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어떻게 영생을 얻는지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율법이 무어라고 가르치는지를 물었고 그는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 같이 사랑하라.’고 했다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대로 행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은 이웃이 누구냐고 되묻습니다. 예수님은 비유로 대답했습니다. 여리고로 내려가는 도중에 한 사람이 강도를 만나 다 죽게 된 채로 버려졌습니다. 마침 제사장과 레위인이 그의 곁을 지났지만 무시하고 자기 길을 갔지만 사마리아 사람은 그 사람을 불쌍히 여겨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부어 응급조치를 하고 주막으로 옮겨 치료받도록 조처해주었습니다. 말씀을 마친 후에 예수님은 세 사람 중에 강도만난 사람의 이웃이 누구인지를 그에게 묻습니다. 그는 선을 행한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대답합니다.

3. 제사장과 레위인은 예배를 인도해야 해서 부정한 시체를 만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정한 것도 일정시간이 지나면 정결해질 수 있으니 그것도 핑계일 뿐입니다. 종교적인 훈련이 잘 된 그들은 강도만난 사람을 방치했지만 유대인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던 사마리아 사람은 오히려 자기 길을 멈추고 상처받은 사람에게 필요한 조처를 취했습니다. 다친 사람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에게는 더 급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은 일상생활 속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웃에게 무심하거나 자기 일에만 바쁘다면 우리의 신앙은 이론에 그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요일 4:2)라고 했습니다. 형제의 필요를 외면하는 사람이 형제를 사랑한다고 할 수 없고 그런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더더욱 사랑할 수 없습니다.

4.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자기들의 율법기준으로 판단하고 정죄했습니다. 그래서 피가 섞인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웃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병자를 치료하고 스스로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예수님을 용납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습니다. 예수는 자기들의 율법가치체계를 흔드는 반역자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우리의 믿음을 근거로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게 잣대질하기 쉽습니다. 종교가 다르다고 미워하고, 인종을 구분하고 편애하거나,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실수도 합니다. 서로 인정하고 섬기는 것이 주의 이름으로 행하는 선입니다. 예수님이 율법사에게 ‘가서 이와 같이 행하라.’고 한 것은 상대를 정죄하고 구분하는 그의 의와 편견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죄인들의 친구가 되신 것처럼 그렇게 행하라는 것입니다.

5. 사랑은 모든 율법을 완성하는 것이며 모든 허물을 덮는 것입니다. 사랑의 관계에 있으면 남을 해치거나 다치게 할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죄인들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겨 자신을 희생 제물로 내주었습니다.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우리의 죄 값을 치루기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보여준 것입니다.(롬 5:8) 주님은 우리들의 상처에 복음이라는 치료제를 발라주었습니다. 자기 경비를 들여 강도만난 사람을 주막으로 옮겨 치료받게 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주님은 상처 받은 우리들을 교회로 옮겨다 놓고 성령으로 함께 하시며 정성껏 돌보셨습니다.(눅 10:34-35)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겠다는 소원을 가질 만큼 회복되었습니다.

6.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교인들이 복음을 듣고 열매를 맺고 성장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바울이 그들이 예수를 잘 믿고 서로 사랑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진리의 말씀을 잘 배웠고 약속을 믿고 하늘나라를 소망했습니다.(골 1:4-5) 이전에는 악한 행실 때문에 하나님과 원수였지만 이제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믿는 자들을 거룩하고 책망 받을 것이 없는 사람으로 세우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희생 당하셨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는 그들의 삶의 목적과 방향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골 1:21-22) 바울은 교인들이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되기를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바울은 교인들이 유업을 물려받을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깨닫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은 교인들이 마지막 날에 받을 상급을 위하여 믿음의 경주를 잘 하기를 기도했습니다.

7. 우리교회도 38년을 지나면서 여러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을 배웠습니다. 우리의 인내심이 부족하여 실수할 때도 있었지만 신실하신 하나님은 때마다 우리를 위로하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과거의 여러 성도들과 목회자들이 이 교회를 섬기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고 수고하고 땀을 흘렸기에 오늘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길이 보이지 않을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해답을 주셨고 그럴 때마다 주의 말씀에 순종하고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교회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라 주님이라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우리들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내일도 주님의 손에 올려드립니다. 우리가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기며 서로 뜨겁게 사랑하면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사용하실 것입니다.

8. 엡 2:20-22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영적인 지혜와 총명을 주시어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의 능력을 충만하게 해주시어 순례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도록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후배들도 하나님을 향한 우리들의 믿음과 형제를 사랑하는 것을 보고 배우기를 기대합니다. 주께서 우리를 사용하여 세상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능력주시는 주님 안에서 우리가 그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빌 4:13) “여러분도 그와 같이 행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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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누리는 감격 (사 66:10-14, 눅 10:17-24)

1. 1760년대의 영국은 전쟁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 미국에 정착한 개척자들에게 인지세와 물품 세를 부과했습니다. 개척지에 정착한 사람들은 자기들을 대변해줄 대표도 본국에 보내지 못하는데 많은 세금을 내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한 보스톤의 청년이 세관경비병에게 눈덩이를 던진 것을 이유로 영국군은 무차별 발포를 하여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영국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은 점차 고조되었고 1773년 12월 16일에는 보스톤 앞바다에 정박한 영국 동인도회사의 배에 실린 티를 모두 물에 던져버린 보스톤 티 파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영국은 이 일에 대해 벌금을 부과하고 보스턴 항구를 폐쇄했습니다. 개척지의 자체의회도 해산하고 영국군 총독에게 권한을 주어 통제했고 군대 주둔을 위한 비용도 부담하게 했습니다. 결국 1775년 4월 19일에 콩코드에서 민병대와 영국군사이에 렉싱톤 전투가 일어났고 그것은 독립전쟁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2.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논의한 대륙회의는 버지니아의 토마스 제퍼슨, 매사추세츠의 존 아담스, 코네티컷의 로저 셔먼, 펜실베니아의 벤자민 프랭클린, 뉴욕의 로버트 리빙스턴으로 5인 위원회를 구성하여 독립선언문의 초안을 작성하게 했습니다. 1776년 7월 2일에 모인 대륙회의에서 독립을 결의하고 이틀 후 7월 4일에는 13개 식민지 대표단들이 토머스 제퍼슨이 작성한 독립선언문을 채택하고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이 후에도 영국과의 싸움은 7년이나 지속되다가 1783년 9월 3일에 파리 조약을 맺으며 영국은 미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모든 통치에서 손을 뗐습니다. 자유를 쟁취하는 일에는 여러 사람의 땀과 희생이 필요했습니다.

3. 성경도 자유에 대하여 가르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죄의 값을 대신 지불하고 우리를 죄에서 자유롭게 하신 것을 말합니다. 죄는 과녁을 벗어난 화살처럼 하나님의 계획에서 벗어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를 무시하고 떠나버린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과의 단절은 죄이며 죽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과를 금한 것은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만족을 누리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단은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속여 아담으로 교만한 마음을 품게 했습니다.(창 3:4-5) 아담은 자기욕심을 선택하여 사단의 종이 되었고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자유를 다시 찾아주려고 죄에 대한 벌을 대신 받았습니다.(갈 5:1)

4. 이사야는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을 떠난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상을 숭배하는 남 유다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고 속히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서도 제사를 드렸으니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런 형식적인 예배행위는 오히려 하나님을 진노하게 했습니다.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사 1:13-14) 하나님께서는 삶의 열매는 없으면서 성전 마당만 밟는 그들의 형식적인 종교행위를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5. 사 66:2-4(현대인의 성경) “나는 겸손한 마음으로 크게 뉘우치며 내 말을 두렵게 여기는 자에게 은혜를 베푼다. 그러나 자기 멋대로 행하며 죄 짓는 일을 기뻐하는 자들은 소를 잡아 제사를 드려도 사람을 죽이는 것과 다름이 없으며 양으로 제사를 드려도 개의 목을 꺾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들이 곡식을 드리는 소제는 돼지의 피를 드리는 것과 같고 그들이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양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내가 그들이 받을 형벌을 택하고 그들이 무서워하는 재앙을 보낼 것이다. 이것은 내가 불러도 그들이 대답하지 않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듣지 않고 오직 내 앞에서 악을 행하며 내가 기뻐하지 않는 것을 택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의를 행하지도 않고 형제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자기욕심을 위해 형식에 매인 예배를 드렸습니다. 욕심이 가득한 그들의 예배는 우상숭배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6. 하나님은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갖는 사람에게 은혜를 주십니다.(사 66:2, 5) 나라를 잃고 강대국의 포로가 되는 심판 중에서도 하나님은 이런 마음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을 남겨두셨습니다. 남은 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진행되었습니다. “내가 예루살렘의 평화를 강물처럼 넘치게 하고 온 세계의 재물이 너희에게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오게 하겠다. 너희가 어머니의 젖을 빨며 그 무릎에 앉아 노는 어린아이와 같을 것이다. 어머니가 자기 자식을 위로하듯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이니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을 것이다.”(사 66:12-13) “내가 만들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존속할 것이 분명한 것처럼 너희 후손과 너희 이름도 분명히 존속할 것이다.”(사 66:22) 하나님은 자기 마음에 합당한 사람들을 세워 일하십니다.

7. 예수님은 공생애의 마지막이 가까워오자 70명의 제자들을 따로 세워 아직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마을에 가서 전도하게 했습니다. 돌아온 제자들은 복음을 듣는 사람에게서 귀신이 도망가고 그들이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고 보고했습니다. 예수님은 기뻐하시며 제자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인해 더 기뻐하라고 말했습니다.(눅 10:20) 제자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자기 일이나 혈육의 정도 미뤄놓을 때가 있고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소망으로 인내하고 주께서 주시는 위로와 평강을 누립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을 사명으로 알고 주님의 명령에 순종합니다.(마 28:19-20) 그 일을 위해서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께서 오시어 교회와 함께 하며 돕고 위로하고 상담하고 중보해주십니다.(롬 8:12-17)

8. 우리들은 복 받고 성공하기 위한 신앙생활에 머물지 않습니다. 자기 신앙을 지키는 것은 물론이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하나님 나라의 훼방꾼인 마귀를 대적하고(약 4:7) 영적싸움을 계속합니다. 내가 져야할 십자가는 피하지 않고(눅 9:23) 자기 욕심은 십자가에 못 박고 부활하신 주님을 절대 의지합니다.(갈 5:24)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이 이웃사랑에서 나타나게 합니다. 그 사랑의 관계를 통하여 나를 변화시킨 복음의 능력이 흘러가게 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가 구원받은 감격으로 살며(눅 19:9) 더 많은 죄인과 세리들을 예수님께 인도한 것처럼 말입니다. 바비큐와 폭죽놀이로 독립을 축하하는 오늘 우리에게 죄의 굴레에서 자유롭게 된 구원의 감격이 더 새롭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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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 (왕상 19:11-18, 눅 9:51-62, 갈 5:13-26) 6/26/22

1. 엘리야가 자기 홀로 남았다는 절망감과 자신을 겨눈 이세벨의 칼 앞에서 두려워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엘리야야, 너는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바알 선지자들과의 싸움에서 크게 이겼지만 자기를 죽이겠다는 이세벨의 말 한마디에 무너져 죽기를 청할 만큼 힘들었던 엘리야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풀어 먹고 쉬며 힘을 얻어 호렙산으로 인도했습니다. 모세가 불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던 그 산에 서게 했습니다. 엘리야는 혼자 남았다고 두려워했지만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사람 칠천을 남겨두셨습니다.(왕상 19:17) 하나님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 해답을 주시며 사명을 새롭게 합니다.

2.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기대와는 다르게 세미한 소리로 다가오셨습니다. 세미한 소리는 짧은 침묵의 소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강풍이나 지진으로 강하게 일하실 때도 있지만 조용하게 다가와 자상하게 만져주기도 합니다. 죄를 짓고 숨어 있던 아담을 찾아와 구원의 길을 제시한 하나님(창 3:15), 약속을 받고도 확신하지 못하는 아브라함에게 찾아와 다시 아들을 약속한 하나님(창 18:1)이 우리에게도 해답을 갖고 찾아오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라고 가르쳤습니다.(딤후 2:15)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배우고 묵상하고 또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편협한 우리의 경험으로가 아니라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로 하나님을 배웁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롬 8:9) 그래서 성령을 모신 우리들은 욕심대로 살지 않고 성령께 순종하기를 날마다 훈련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의 메신저인 그리스도를 세상에 오셨습니다.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를 자상하게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여러 제자들을 메신저로 안수하고 파송하여 하나님 나라를 전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희생제물이 되어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그 죽음으로 죄의 값을 치루시고 다시 부활하여 그를 믿는 사람들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했습니다.(요 3:16) 교회역사에 이 복음을 전하는 일군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복음을 듣고 예수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믿음의 선배들처럼 죄 용서를 얻고 자유를 누리게 하는 해방의 복음을 생활 속에서 전하고 나누기 원하는 것입니다.(갈 5:11)

4.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하게 될 때의 이야기입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을 점령한 앗수르는 수도 사마리아에 사는 사람들을 앗수르로 이주시키고 대신 여러 다른 민족의 사람들을 강제로 옮겨와 사마리아에서 살게 했습니다. 어느 날 사마리아 지역에 사자가 출몰하여 몇 사람을 물어 죽였습니다. 그러자 앗수르 왕은 그 지역의 신이 노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포로로 잡혀 온 제사장 한 사람을 돌려보내 하나님을 예배하는 법을 가르치게 했습니다. 사마리아에 정착한 사람들은 그렇게 하나님도 섬기고 또 자기들이 원래 섬기던 신도 함께 섬겼습니다. 피가 섞이고 종교가 섞인 이런 역사 때문에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싫어했습니다. 예수님의 일행을 환영하지 않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향하여 제자들조차 하늘에서 불을 내려 살라버리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5. 예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를 지러 가는 예루살렘으로의 여정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자로서의 생활이 어떠해야하는지를 여러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가르쳤습니다. 한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서 어디든 가겠다고 장담했습니다.(눅 9:57) 그런데 예수님은 그를 칭찬하고 환영하기 보다는 자신은 머리 둘 곳이 없는 사람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십자가를 앞에 둔 예수님의 마음이 무겁기도 하고 또 사명을 위해 사는 것 자체가 고독한 생활이라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주님은 세상의 미움을 받고 머리 둘 곳조차 없지만 하나님 나라를 전하고 십자가를 지는 자기 길을 묵묵하게 걸어갔습니다. 땅에서 풍요를 누리고 성공하려는 보상 심리로 예수님을 따르려고 하면 실망할 수 있습니다. 가치 있는 것을 선택할 때는 덜 가치 있는 것들은 과감히 버려야만 합니다. 땅의 필요를 외면할 수는 없지만 영적생활의 우선순위를 혼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6. 또 한 사람은 예수님의 부름에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고 말씀합니다.(눅 9:60) 이 사람의 아버지가 정말 죽었다면 율법에 따라 주검을 본 이 사람은 이미 부정하여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공개적인 장소에 나온 것으로 보아 그의 아버지가 죽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고 핑계일 뿐입니다. 아버지의 장례가 중요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는 중요한 일도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바쁜 일을 다 미루고 우선 처리하는 장례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것입니다. 어릴 적 목사님이 부흥회에 참석하라고 광고할 때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다고 생각하고 시간을 구분해 놓으라고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신앙생활은 우선순위의 문제입니다.

7. 또 다른 한 사람은 먼저 가족과 작별인사라도 하고 따르겠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62절에서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합니다. 쟁기질은 앞으로 똑바로 움직여야 하는 일입니다. 소를 몰면서 뒤를 돌아보면 똑바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과거의 죄는 잊고 구원의 감격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모든 우선순위를 뒤로 미루고 먼저 장례를 치루는 것과 같은 우선순위를 적용한다면 더 적극적으로 주님을 기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먹고 입는 것보다 하나님 나라와 의를 우선하는 것이 믿음의 바른 자세인 것을 알면서도(마 6:33) 현실과 타협하는 우리들의 약함을 반성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면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을 것인지에 대한 두려움은 더 이상 우선순위가 되지 못합니다. 그것이 믿음으로 누리는 자유입니다.

8. 여러분의 해결되어야 할 현실문제는 무엇입니까? 가정을 돌보고 일터에서 일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일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되는 것보다 더 중요할까요? 주께서 십자가에서 죄의 값을 지불하여 이루어 놓은 자유와 해방을 믿고 누리는 것이 더 급하지 않겠습니까? 구원의 감격을 맛본 사람은 하나님 사랑과 형제 사랑을 실천하여 자신도 복되게 살고 또 다른 사람을 복음에 이르도록 안내할 수 있습니다.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 자기위주의 신앙생활과 현실안주를 바라는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여 하나님 나라를 우선하는 성령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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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자유를 얻는 길 (눅 8:26-39, 갈 4:1-7)

1. 전염병 때문에 모두가 고생하는데 한편에서는 전쟁으로 많은 사람이 죽고 아파합니다. 모든 나라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에게는 최선의 결정이었을 것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여러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지만 외부적인 형편들이 풀려야 가능한 것들이라 쉽지 않습니다. 일상의 자유를 누리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절실하게 배우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떠난 상태를 죄라고 하고 그것을 죽음이라고 설명합니다. 인간 스스로 자유와 행복을 선택한 것이 결과는 오히려 불행이었습니다. 마틴 루터가 말한 것처럼 물고기는 물에서 자유를 얻고 병아리는 어미 날개 아래에서 자유를 누리듯이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참 자유를 누리는 존재입니다.

2. 그래서 선지자들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에게 절하는 이스라엘에게 속히 돌아오라고 외쳤습니다. 은혜를 입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시편 78:56-61 “그들은 지존하신 하나님을 시험하고 반항하여 그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며 그들의 조상들 같이 배반하고 거짓을 행하여 속이는 활 같이 빗나가서 자기 산당들로 그의 노여움을 일으키며 그들의 조각한 우상들로 그를 진노하게 하였으매 하나님이 들으시고 분내어 이스라엘을 크게 미워하사 사람 가운데 세우신 장막 곧 실로의 성막을 떠나시고 그가 그의 능력을 포로에게 넘겨주시며 그의 영광을 대적의 손에 붙이시고.“ 하나님은 자신이 선택한 백성들이라도 죄에서 돌이키지 않을 때에는 그들을 떠나고 그들을 원수의 손에 넘겨 고통을 받게 했습니다. 하나님과의 단절이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3. 이사야는 우상을 섬기고 악을 행하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따라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사 65:2)라고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적극적으로 “내가 야곱에게서 씨를 내며 유다에게서 나의 산들을 기업으로 얻을 자를 내리니 내가 택한 자가 이를 기업으로 얻을 것이요 나의 종들이 거기에 살 것이라.”(사 65:9)라고 선택한 백성들이 그의 거룩한 산에서 평화를 누리며 살게 될 것을 약속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반역자 같은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먼저 자신의 손을 내미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무관심하고 자기들 욕심대로 사는 사람들을 깨우치기 위해서 그의 아들을 보내주셨습니다.

4.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를 벌해야하는 하나님의 공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대신 죄의 값을 치르고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요 3: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롬 5:8-9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다는 인정을 받았으니 틀림없이 그분을 통해 하나님의 무서운 형벌에서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 어떤 형편에 있는 사람이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참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모든 묶인 것들에서 해방되는 은혜를 받습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5. 예수께서 이방인들이 사는 데가볼리 지역을 방문했습니다. 거기에는 벗은 몸으로 무덤 사이를 배회하는 귀신 들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군대귀신에 사로잡혀 있었고 아무도 그를 제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불쌍히 여겨 고쳐주셨습니다. 예수께서 귀신에게 그에게서 나오라고 명하자 귀신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라고 부르며 아직 무저갱으로 떨어질 때가 아니니 돼지 떼로 들어가게 해 달라고 애걸했습니다.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간 귀신은 이천 마리나 되는 돼지 떼를 물에 수장시켜 버렸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자유를 되찾은 청년에 대한 관심보다 경제적 손실을 걱정하며 동네를 떠나 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행한 크신 일을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는 온 동네 사람들에게 자신을 구원하신 예수님에 대해 자랑했습니다.(눅 8:26-39)

6.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하나님과 교통할 때에만 존엄성을 유지하고 가치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자기욕심에 사로잡히게 되고 하나님 나라의 훼방꾼인 귀신은 뒤에서 교묘하게 속여 서로 빼앗고 싸우고 죽이게 합니다. 귀신들린 사람이 자기 삶의 터전을 떠나 벗은 몸으로 무덤 사이에서 방황하며 삶의 가치와 목적을 잃어버린 것처럼 말입니다. 에덴에서의 아담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질서를 따르지 않고 자기 욕심을 따르다가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과의 단절이고 죽음입니다. 이스라엘도 하나님을 떠나 이방사람들이 섬기던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죄에 빠진 인간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아야만 했습니다. 예수님이 귀신들린 청년을 회복시켜준 것처럼 하나님은 이렇게 형편없는 자들을 자기 백성으로 불러주셨고 때가되자 그 아들을 보내 죄인들의 죄를 모두 씻어주시고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해주셨습니다.(갈 4:4)

7.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이 요구하는 죄의 대가를 십자가에서 지불해주셨습니다. 그가 희생제물 되어 죄인들을 위해 죽음으로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켰습니다. 그리하여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고 진정한 해방을 누리게 했습니다.(요 3:16) 우리는 주께서 행하신 구원의 일을 귀로 듣고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것을 물려받을 양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빠로 부르는 후계자가 되었습니다.(갈 4:7) 이것이 예수를 믿고 누리는 특권입니다. 수가성 우물에 물을 긷던 여인이 생수이신 예수님을 만나 자기 삶의 갈증을 해결했습니다.(요 4:1-30) 돈의 노예가 되어 삶의 가치를 잃어버렸던 세리장 삭개오도 예수님을 만나 돈으로부터 자유하게 되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눅 19:1-10)

8.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른 모습의 짐을 지고 삽니다. 그러나 그것을 예수님에게 맡기면 그가 묶인 것들을 풀어주고 쉼과 자유를 주신다고 약속했습니다.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요 8:36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롬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행 16:31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계 3:20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예수를 주로 인정하고 믿는 것이 참 자유를 누리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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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협력(엡 1:3-14, 잠 8:22-31) 6/12/22 야외예배

1. 우리가 어렸을 때에는 부모님에 대하여 깊이 알지 못하다가 나이가 들면서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게 됩니다. 우리들이 결혼하고 자식을 기르면서 부모를 위대하게 여기고 또 나이 들어가는 부모를 아쉬워하게 됩니다. 하물며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들이 더 큰 부모이신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해 정도에 따라 신앙의 깊이와 모습이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 17:3)이라고 했습니다.

2. 오늘은 삼위일체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삼위일체라는 말은 세 위격을 가진 하나님이 한 몸으로 존재하고 그러면서도 각기 독립된 사역의 분야가 있다는 것을 근거로 생겨난 표현입니다. 교리적인 이해도 중요하지만 그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하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것은 극히 일부분이고 제한적이기 때문에 성경이 말하는 것만큼만 이해해야 합니다. 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만나주신 것이 은혜입니다. 죄인들을 위해서 화목제물이 되신 그리스도를 조명해주시는 성령의 은혜가 그래서 날마다 필요합니다.

3.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삼위 하나님께서 구원을 위해서 어떻게 협력하는지를 설명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우리의 구원을 계획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세상에 오시어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알려주셨고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 죄인들이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길을 여셨습니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을 우리에게 적용하고 그것을 보증해 주십니다.(엡 1:3-13) 삼위 하나님이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렇게 협력합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를 말할 때에는 논리적이고 지식적인 이해에 머물지 말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세 분 하나님께서 서로 협력하고 교제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은혜를 받은 성도로서 교회공동체 안에서 서로 협력하고 하나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감격을 찬송하고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일도 함께 해야 합니다.(엡 1:14)

4. 예수님은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1)라고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인 것처럼 성도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요한은 세상을 창조하신 아버지께서 말씀이신 그리스도와 처음부터 함께 계셨다고 설명합니다. 요 1:1-3 “우주가 존재하기 전에 말씀되시는 그리스도가 계셨다. 그분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바로 그분이 하나님이셨다. 그리스도는 맨 처음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모든 것은 그분을 통해서 창조되었으며 그분 없이 만들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잠언서도 지혜이신 그리스도께서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했다고 말합니다.(잠 8:22-31) 우리들이 거룩한 공교회를 믿고 성도의 교제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나인 것처럼 모든 교회가 하나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5. 바울은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보내 여자에게서 태어나게 하시고 율법의 지배를 받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이 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성령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셔서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습니다.“(갈 4:4–6)라고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설명했습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육체로 세상에 오시어 영으로 볼 수 있는 하나님 나라를 알려주셨습니다.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 주셨기에 그를 믿는 사람들은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온 인류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이 되었습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오순절 성령강림을 체험한 제자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분명하게 이해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어보면 분명합니다. “이스라엘 사람 여러분, 이 말을 들으십시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하나님은 나사렛 예수님을 통해 기적과 놀라운 일을 여러분 가운데 베푸셔서 그분을 여러분에게 증거해 주셨습니다. 이 예수님은 하나님이 미리 아시고 정하신 계획에 따라 여러분에게 넘겨졌는데 여러분이 악한 사람들의 손을 빌어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죽음에 붙들려 계실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행 2:22-24)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오른편에 계시며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에게 받아서 부어 주셨다고 설명했습니다.(행 2:33) 지금도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께서는 교회위에 항상 함께 하시며 구원의 일을 계속하고 계십니다.

7. 우리들도 그 부름에 응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삼위 하나님의 협력처럼 우리들도 교회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각자가 자기 구원을 위해서 일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교회 공동체는 성령께서 주시는 구원의 감격이 폭발적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신분이 변한 것이기도 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영광을 누리는 자격을 얻은 것이기도 합니다. 성령의 도움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롬 8:29)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벧후 1:4)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위하여 자기 아들을 주신 하나님(요 3:16)을 따라서 우리도 서로 사랑하고 하나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8. 그동안 팬데믹 때문에 자유롭게 모이지 못하던 우리들이 오늘 오랜만에 야외에서 모였습니다. 모처럼 얼굴과 얼굴을 대하고 또 함께 식탁의 교제를 나누면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엡 1:14 “성령께서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우리가 받을 것이라는 것을 보증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이 구원을 받아 그분의 영광을 찬양하도록 하십니다.” 서로 다른 지체들이 모였지만 하나 되게 하는 성령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천국의 기쁨을 함께 나눕시다. 영원한 생명을 지금 여기서 함께 경험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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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함께 (요 3:16-21, 사 32:15-20)성령강림절 맥추감사주일

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불러 자기 백성으로 삼아주셨습니다.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셨고 율법을 지키고 희생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게 했습니다. 출 19:5-6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만하면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나 유효했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하나님처럼 되려고 했던 교만한 죄가 시대마다 반복되었습니다.

2. 하나님은 죄인들을 홍수로 심판하려고 노아를 택하여 심판과 구원의 소식을 전하게 했습니다.(창 6:17-18) 그러나 사람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방주에 들어가 구원받은 사람들은 노아의 식구들뿐이었습니다. 그러면 노아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계획대로 살아야 마땅했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은 하나의 언어와 하나의 말로 자기 힘을 과시하며 하나님처럼 되려고 했습니다.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창 11:3-4)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고 거만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언어를 흩어 알아듣지 못하게 했고 하나님과 견주려던 그들의 일은 중단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나뉘고 흩어졌습니다.(창 11:9)

3. 오늘은 성령강림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한 후 열흘 동안 약속을 붙들고 함께 기도하던 제자들에게 성령께서 강림했습니다. 그들은 급하고 강한 바람소리를 들었고 각 사람의 머리위에 임한 불을 보았습니다. 성령께서는 제자들의 혀와 입을 사용하여 여러 지방에서 모인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는 구원에 관하여 자기 말로 듣게 했습니다. 바벨탑사건으로 나뉘었던 언어의 장벽을 무너뜨려 은혜의 복음이 전해지게 했습니다.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행 2:4-8)

4. 성령께서 각자의 말로 복음을 듣게 했고 복음을 듣고 회개한 사람들은 모여 교회를 형성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를 알려주신 것처럼 성령께서는 그리스도를 알려주고 믿고 따르게 합니다. 오늘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구원을 세상에 알리려고 성령께서 교회를 세우고 성도들을 도와주십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5.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이 요구하는 죄의 값을 치루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주심으로 새 언약의 보증이 되었습니다.(히 7:22) 예수님은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 14:13-14)라고 약속했습니다. 주께서는 죄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과 평화를 이루게 했습니다. 또 다른 보혜사, 곧 진리의 영인 성령을 보내어 구원사역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성령께서는 오늘도 교회의 구성원인 우리들과 함께 구원의 일을 계속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요 14:16)라는 말씀은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한다는 약속이며 동시에 우리가 성령과 함께 일해야 한다는 부름이기도 합니다.

6.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요 3:20) 세상은 어둠에 속하였기에 빛이신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말씀과 성령으로 어둠을 드러내고 몰아내기에 세상은 당연히 그를 미워했습니다. 어둠에 속한 사람의 마음은 요동치는 바닷물과 같아서 쉼과 평안이 없습니다.(사 57:20-21) 그러나 주님 안에 거하는 성도는 참 평안과 완전한 회복을 누립니다.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사 57:15)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 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사 57:19)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이것이 성령과 함께하는 성도가 누리는 복입니다.

7.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회개하는 자에게 죄의 용서를 주고 성령을 부어주어 참 빛인 그리스도 안에 머물며 평강을 누리게 합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지혜인 그리스도를 알게 하고(고전 1:24) 그리스도 안에서의 완전한 구원과 회복을 누리게 합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복을 누리도록 교회와 성도들을 사용합니다. 연약한 우리를 도와주시어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일할 수 있게 합니다. 죄와 상관없는 거룩한 성도(요 3:21)로 살면서 구원의 감격을 자랑하게 합니다.(롬 5;2) 영혼이 잘되고 범사를 형통하게 도와주십니다.(요삼 1:2) 이사야는 죄 때문에 심판받아 황량한 광야처럼 되어버린 이스라엘이지만 장차 하나님께서 열매가 가득하고 정의로운 세상에서 안전하게 거하도록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사 32:15–18) 하나님의 구원은 완전한 회복입니다.

8. 성령강림절, 맥추감사주일에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돌아봅니다. 어려운 때에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가운데 살게 됨을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한 꼴을 얻으며(요 10:9)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을 살리는 복의 통로(창 12:3)로 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성령의 은혜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롬 12:2)하며 믿음으로 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교회와 성도들을 세우셨으니 증인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힘주실 것을 믿습니다.(행 1:8) 우리들의 신앙여정이 성령과 함께 하는 기쁨으로 더욱 충만하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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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증인(행 1:1-11, 엡 1:17-23)

1. 엊그제 목요일은 주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것을 기념하는 승천일이었습니다. 무덤에서 부활하신 주님은 부활하신 몸을 여러 사람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무덤을 지키던 여인들은 물론이고 제자들과 40일을 함께 보내며 하나님 나라를 말씀했고 500명 이상 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기도 했습니다.(고전 15:6) 예수님의 승천은 약속한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고 성도의 거처를 준비하려고 지상사역을 마치고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 우편에 다시 앉으신 것입니다.

2.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은 장엄했습니다. 예수님은 구름을 탄 듯 구름 속으로 올라갔고 그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했습니다.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막에 임하신 하나님의 모습도 구름으로 나타났고(출 40:34) 변화 산에서도 구름이 예수님과 제자들을 에워쌌습니다.(마 17:5, 눅 9:34) 재림 때에도 구름타고 오신다고 했습니다.(마 24:30) 예수님은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가운데로 들어갔습니다. 제자들은 그 모습을 계속 지켜보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예수님은 보이지 않고 빈 하늘만 보였습니다. 그때 흰옷 입은 두 천사가 나타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 1:11)라고 제자들을 정신 차리게 했습니다.

3. 그것은 마치 변화 산에서 그 일의 의미보다 신기함에 사로잡혀 초막을 짓고 더 머물자고 했던 제자들의 모습과 같았습니다. 빈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제자들에게 이제 그만 정신 차리고 예수를 깊이 생각하도록 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의 때를 묻던 제자들에게 오히려 성령으로 펼쳐질 하나님의 나라를 기대하게 했습니다. 승천하신 모습 그대로 영광가운데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실 것도 알려주었습니다. 이날의 경험은 제자들에게 오래 기억되었고 재림을 확신하는 믿음을 갖게 했습니다. 육체로 오신 예수님은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신 죽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다시 살려내 하늘로 올리시어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 이름에 무릎을 꿇고 구주라고 고백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했습니다.(빌 2:9-11) 승천은 육체로 오시어 지상 사역을 완성하신 주님께서 다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영광을 회복한 것입니다.

4. 승천하신 예수님은 약속대로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셨고 때가되면 다시 돌아와 믿는 자들을 데리고 가서 영원히 거기서 살 것입니다.(요 14:2-3) 주님은 지금도 성도들의 거처를 마련하고 계시며 대제사장으로 중보의 일을 하고 계십니다.(히 4:14-15) 교회에게 말씀과 성령으로 함께 하시며 복음이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해지도록 일하고 계십니다. 엡 1:22-23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굴복시키시고, 그분을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분의 충만함입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가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히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 성도들을 그 영광에 참여하게 할 것입니다.

5. 예수님은 잡히시던 날에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또 제자들을 통하여 믿게 될 미래의 성도들을 위해서도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는 믿는 자들이 주님과 하나가 되어 주님의 영광에 동참하기를 바라는 기도였습니다. 요 17:24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사람들도, 내가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게 하여 주시고, 창세전부터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내게 주신 내 영광을, 그들도 보게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 육체를 입고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하늘 아버지와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셨습니다. 그의 거룩한 영광을 보여주고 그를 믿게 만들어 하나님 아버지께로 우리를 인도했습니다.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셨고 그 사랑으로 세상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요 3:16)

6.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알려주고 또 하나님의 공의를 충족시키려고 십자가에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었습니다. 부활하고 승천하신 것도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영광에 동참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사도들은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했고 복음을 듣고 믿는 사람에게 교회는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의미하는 것이고(갈 3:26-29) 그가 보내신 성령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육체의 제한을 가진 우리들이 전능하신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례 받고 교회생활을 하는 것은 종교 활동 차원을 훨씬 넘어서는 일입니다. 주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며 그 주님의 성품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 것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따라 복음의 증인으로 살면서 말입니다.

7. 교회는 영적 생활을 배우는 훈련장입니다. 다락방에 모여 성령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한마음 한 뜻으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성령께서 불과 능력으로 그들에게 임했고 새로운 힘을 주었습니다. 성령의 도움으로 회개하는 사람들이 늘었고 예루살렘 교회는 날마다 함께 모여 말씀을 배웠고 합심하여 기도했고 서로 뜨겁게 사랑했습니다.(행 2:42-47) 교회 공동체의 생명력은 함께 모이는데 있습니다. 같은 주님을 섬기고 같은 신앙을 고백하고 같은 재림의 소망을 갖는 것입니다. 함께 모여 예배하며 영적 힘을 나누고 그 힘으로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불러 함께 거하며 한 몸을 이루게 하신 것처럼(행 1:14) 한 성령 안에서 부름 받은 우리들도 주님 안에 거하며 주의 재림을 기다리며 복음의 증인으로 삽니다. 그가 장차 우리에게 생명수 샘물을 마시게 하고 생명나무 과실을 먹게 할 것을 기대하면서 말입니다.(계 22:2)

8. 교회는 세상에게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곳입니다. 성도의 교제와 섬김은 궁극적으로는 복음을 전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 일을 하기에 우리가 완전하지 못하다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도움이 필요하고 또한 우리끼리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사랑하기를 더 훈련해야 합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인격과 언어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복음을 가로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을 낮춰 육체가 된 것처럼 이제 우리가 성육신 정신으로 낮아져 서로를 섬기되 주님께 하듯 해야 합니다.(마 10:42) 헬라어의 증인(말투스)이란 단어는 순교자(마르투스)라는 단어와 같은 어근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무장된 성숙한 신자가 되어 죽음 앞에서라도 사실대로 말할 수 있는 복음의 증인이 되기를 함께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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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누리는 기쁨(요 16:19-24 계 21:1-8)

1. 육체를 갖고 사는 우리들은 염려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초대교회는 복음의 감동을 누구보다 크게 누렸지만 항상 유대교의 박해가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이 망한 이후에도 로마의 종교탄압은 계속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일은 로마황제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로 여겨져서 생명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께서 주시는 구원의 확증과 천국의 소망으로 기뻐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십자가 고난을 당하는 주님을 볼 때는 실망하고 흩어졌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다시 만나고 성령의 충만을 경험한 후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오늘은 어려움을 이기고 기쁨을 유지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2. 우선은 성도의 정체성이 분명해야 합니다. 성도로 부름 받은 우리들은 하나님의 품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죄를 용서받은 것은 물론이고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항상 계시며 평강과 기쁨을 유지하도록 힘을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 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요 1:12) 값없이 주시는 생명수 샘물을 마시고 구원받은 사람입니다.(계 21:6)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이며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벧전 2:9) 성도의 분명한 정체성과 구원에 대한 확증은 자신은 물론 가족에게까지 구원의 감격을 갖게 합니다.(행 11:14)

3. 구원받은 성도에게도 고난은 여전히 찾아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십자가 고난을 당하는 주님을 보며 실망할 것을 미리 아셨기에 그들이 고난을 이겨내고 평안을 누리기를 원했습니다.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3-24)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 14:16) 예수님은 제자들의 승리를 위해서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고 보혜사 성령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또 성령께서 어려움을 이기도록 힘을 주십니다.

4. 성령께서는 성도와 함께 하며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요 16:13)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합니다. 성부 하나님의 구원계획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을 믿게 합니다. 또한 성도의 연약함을 도와주시며 환란을 당하여 제대로 기도하지 못할 때에라도 성도를 위하여 중보해주십니다.(롬 8:26-27). 그리고 장래의 일도 알게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십자가와 부활을 이해하도록 도와주셨듯이 우리들에게도 천국을 소망하는 믿음으로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게 합니다. 사실 기도는 우리의 필요를 구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른 기도생활을 하면 베데스다 연못에서 주님을 만나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걷고 뛰며 찬송했던 환자의 변화와 같은 변화의 열매가 우리의 생활에서 나타납니다.

5. 성도는 장차 들어갈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사도요한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환상으로 보고 우리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천사가 높은 산으로 요한을 데리고 가서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인 천국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곳은 죄와 사망과 인간적인 고통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거룩한 곳입니다. 구속받은 성도들만 그곳에 들어가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거합니다. 천국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며 교회의 미래입니다. 그 성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왔다고 표현한 것은 천국이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마치 신부가 남편을 위해 단장하는 것처럼 천국은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순결한 모습을 보였습니다.(계 21:9,10) 지상의 교회는 천국의 분점입니다. 천국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하고 수정같이 맑게 빛나는 것처럼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통하여 천국의 기쁨과 영광을 지금 여기서 맛보는 것입니다.

6. 그런데 요한은 새 예루살렘 성에서 성전을 보지 못했습니다.(계 21:22) 전능하신 하나님과 어린 양이 바로 성전이 되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성전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을 만나고 교제하던 곳인데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들과 교제하는 천국에는 건물로 지어진 성전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설명해주신 예수님은(요 8:12) 전능하신 하나님과 함께 영광중에 계십니다. 천국은 해나 달의 빛도 쓸 데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비추고 또 어린 양이 등불이 되어 비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비추는 그곳은 밤이 없는 곳이기에 문을 닫을 필요도 없는 안전한 곳입니다. 그 밝은 곳에서는 아무것도 감춰진 것 없이 밝히 들어나는 곳입니다.

7. 하나님을 경배하는 충성된 성도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갈 것입니다.(계 21:24) 찬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구원받은 성도들만 들어가는 곳입니다. 적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과 우상을 숭배하며 음행을 행하고 거짓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은 결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이 들어갑니다.(계 21:27)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믿는 사람만이 영생을 소유한 사람이고 하나님과 어린 양의 성품과 뜻에 합당한 사람입니다. 구원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받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구원에 합당한 변화의 열매가 반드시 뒤따라야 합니다. 그런 살아있는 믿음을 끝까지 유지하는 사람만이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8. 성도는 고난을 통하여 다듬어지기에 모든 환경에서 기뻐해야 합니다. 다윗은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의 구원을 믿고 찬송했습니다. 선지자들은 죄를 심판하는 하나님의 경고의 소식을 대언하면서도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소식을 들은 하박국 선지자는 창자가 뒤틀리고 입술이 떨리고 뼈가 썩고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와 올리브 나무에는 거둘 열매가 없었고 외양간에는 양도 소도 없는 절망적인 현실이었지만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겠다.”고 의지적으로 기쁨을 노래했습니다.(합 3:16-18) 기쁨은 성령의 열매입니다.(갈 5:22) 그러므로 현재의 어려움에게 지지 말고 기쁨의 근원이며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구원의 감격을 새롭게 하고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을 의지적으로 붙잡고 기뻐하십시오. 이것이 성도가 누리는 기쁨이며 영적인 특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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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을 아는 사람. (고후 5:11-21) 남선교회 헌신예배

1. 사람은 자기가 누구이며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를 바로 알면 제대로 처신할 수 있고 자신감 있게 살 수 있습니다. 세상을 다 가질 수도 없고 모든 것을 완벽하게 처리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자기 일에서는 자신감을 갖고 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바울에게 많은 약점이 있었지만 복음전도와 교회를 위해서는 누구보다 열정이 있었고 그 일에 자기를 투신했습니다. 그가 이룬 위대한 업적은 따라갈 수 없지만 자기 한계를 바로 알고 부름에 응답하여 복음전도에 온 마음을 바쳤던 사명을 감당하는 자세는 우리가 함께 배우기 원합니다.

2. 바울을 괴롭힌 어려움은 바울이 정말 사도인가 하는 소문이었습니다. 바울과 생각을 달리하는 율법주의자들은 바울의 사도로서의 자격을 폄하하며 교회를 어지럽혔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서 돌고 있는 이 소문 때문에 직접 방문하여 해결하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 사이에 우리에게는 전해지지 않은 ‘눈물로 쓴 편지’혹은 ‘엄중한 편지’라고 불리는 편지가 있었는데 이 편지 때문에 그 문제가 일단락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고린도후서에서는 화목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그의 편지는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후 1:1-2)라고 시작됩니다.

3. 고린도후서는 개인적인 내용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바울이 추천서 없이 사람을 가르친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다른 어떤 추천서보다 복음 안에서 변화된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이 확실한 추천서라고 했습니다.(고후 3:1-3) 바울의 말이 어눌하다고 험담하는 것에 대해서도 자기는 말은 부족하지만 대신 많은 학식을 가졌다며 다른 사도보다 뒤지지 않는다고 변호했습니다.(고후 11:3-4) 돈을 받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것에 대해서도 믿음이 어린 성도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다른 교회로부터 헌금을 받았다고 했습니다.(고후 11:7-9) 사도직을 수행하면서 옥에 갇히고 매를 맞고 위험에 처했던 일들을 열거하며(고후 11:23-27) 자기의 약함을 자랑했고 영적경험도 조심스레 언급했습니다.(고후 12:1-4). 또한 어려움에 처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헌금에 동참해 주기를 부탁하기도 했습니다.(고후 8:1-5)

4.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난 이후에 변했습니다. 주님을 만나는 자리에서 본 강한 빛 때문에 앞을 보지 못하고 있을 때 성령께서 아나니아를 보내 기도해주라며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행 9:15-16)고 했습니다. 바울이 자기 사명을 바로 알았기에 바른 헌신을 했습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분명한 회개가 있었고 자기 사명을 바로 알았기에 그리 헌신할 수 있었습니다.

5. 바울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14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한다고 말하며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항상 그런 마음으로 교회와 성도들을 섬겼습니다. 빌 2:17에서는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라고 고백했습니다. 전제는 희생제물 위에 포도주를 부어 드리는 제사입니다.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교회와 성도들이 주님 앞에서 바로 세워지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이 사명을 아는 사람의 태도이며 올바른 헌신의 자세입니다. 바울에게 교회와 성도를 섬기는 일은 주님을 향한 봉사였고 그래서 고난도 기쁘게 받았습니다.(벧전 4:13) 복음전도와 교회에 우선순위를 두고 살았던 바울의 헌신을 함께 배우기 원합니다.

6. 예수님은 자기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린 선한 목자입니다. 요 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그 안에서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려고 자신을 내주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약속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롬 5:6)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롬 5:8) 바울이 자신의 화려한 과거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얻으려고 결단할 수 있었던 것은 십자가 사랑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십자가 사랑을 경험하고 보니 예수를 믿고 따르는 것이 복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제자로 살기를 연습하는 것입니다.

7. 우리들은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의 옛 사람은 죽었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와 함께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났음을 믿습니다. 예수께 속한 사람이 되었으니 우리들도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여 주님을 사랑하는 포로가 되었다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5절은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합니다, 성도의 생활 목표와 정체성과 방향에 대해 말해줍니다. 성도는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18절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21절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거룩한 성도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8.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거룩한 성도는 또 다른 사람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 때문에 하나님과 상관없던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일을 널리 자랑해야 합니다.(엡 2:7) 헌신예배를 드리는 남선교회 회원들과 우리 모두가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여 각자의 사명을 바로 깨닫고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기를 위한 신앙생활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신앙생활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때문에 가정이 영적으로 살아나고 직장이 복된 일터가 되고 교회가 더 든든하게 세워지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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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안의 한 가족 (엡 6:1-4), 어버이주일, 윤준희 전도사님

엡 6:1-4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훈계와 훈계로 양육하라”
Ephesians (6:1-4 ESV) “Children, obey your parents in the Lord, for this is right. “Honor your father and mother” (this is the first commandment with a promise), “that it may go well with you and that you may live long in the land.” Fathers, do not provoke your children to anger, but bring them up in the discipline and instruction of the L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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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점검할 일 (요 21:1-17) 어린이주일

1. 오월은 어린이주일과 어버이주일이 있는 달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고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라고 설명했습니다.(요 5:17-18) 세상을 구원하려는 하늘 아버지의 계획에 순종하여 아들은 십자가에서 죄인들을 위하여 대신 죽었고 아버지는 죽은 아들 예수를 다시 살렸습니다. 모든 이름 위에 높여주셨고 마지막 날에 심판하는 권세도 주셨습니다.(요 5:20-22) 뿐만 아니라 그 아들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요 1:12) 우리가 이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게 되었고(롬 8:14-15)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다시 점점해 보기를 원합니다.

2. 성도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숙해지는 것은 어린아이가 자라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아이들은 삶의 모든 경험을 통해 배우고 성장합니다. 언제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말이 트이고 친구가 생기고 청소년기를 지나고 어른이 됩니다. 이것처럼 우리들이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에도 여전히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면서 영적으로 성장해 갑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위하여 친히 중보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기 때문입니다.(롬 8:26) 그래서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를 목표로 삼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엡 4:13) 만일 처음 상태에 머물러 있거나 과거의 신앙체험만을 간직하고 있다면 오늘도 성화의 과정에 있다는 감동을 놓치기 쉽습니다. 날마다 먹고 자는 일상을 통해 성장하는 아이들처럼 성령과 교제하며 깨어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영적으로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3. 베드로가 언제 회심하고 변화되었는지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처음 제자로 부름 받았을 때에 메시아를 만난 기쁨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요 1:42)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많은 고기를 잡은 베드로는 주님의 신적인 권위 앞에 압도되어 자기가 죄인이라고 고백했습니다.(눅 5:8)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고백하여 칭찬을 듣기도 했지만(마 16:16) 예수님이 심문당할 때에는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 주님을 사랑하느냐고 묻는 질문에 당혹해 하기도 했습니다. 성령 충만을 경험한 후에는 능력 있는 설교로 부활소식을 전했습니다.(행 2:32-33, 36) 이런 과정들을 통하여 베드로는 점점 변화되었고 제자로 만들어져 갔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숙해지는 점진적인 과정입니다.

4. 주께서는 밤새 헛수고한 제자들에게 배 오른쪽에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게 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바로 알아보았습니다. 말씀대로 깊은 곳에 그물을 던져 많은 고기를 잡은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불도 지펴 몸을 녹이게 했습니다. 그 식탁은 오병이어의 경험을 생각하게 했고 성만찬을 제정해 주시던 식탁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낙심한 제자들을 회복시키는 주님의 돌봄이었습니다. 음식을 먹은 후에 베드로에게 ‘이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세 번이나 질문하십니다. 베드로는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것을 기억하고는 마음에 깊이 고민했습니다. 결국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니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도 주께서 아십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주님의 양을 먹이라는 책임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베드로처럼 약한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성령님의 도움이 큰 은혜입니다.

5.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이미 우리를 계획했습니다.(엡 1:4) 그리고는 하나님을 알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의 계획은 분명하고 확실했습니다. 아브라함을 큰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고 복을 주어 하나님의 이름을 크게 떨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창 12:2-3) 다른 사람들에게 복을 나누어주는 존재로 사용하려고 그를 불렀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수용했고 고향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는 곳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서는 것이고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자녀의 바른 자세입니다. 모세가 타는 불꽃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지만 바로에게 가서 백성들을 내보내라고 말하는 일은 여러 번 사양했습니다. 자신의 무능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하고는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가 믿음으로 하나님 편에 서자 하나님의 손이 평생 함께 했고 하나님의 구원의 일을 이루어 낼 수 있었습니다.

6. 자기의 생각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뜻을 수용하는 것이 순종이며 성도의 바른 자세입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하고 배울 수 있습니다. 엡 6;1-4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이 말씀은 가정에서 서로가 지켜야할 질서이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성도의 생활원칙입니다. 가정에서 하나님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을 배워야 더 큰 가정인 교회와 나라에서도 질서를 따를 수 있습니다. 성도는 옛사람을 벗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워진 사람입니다.(엡 4:22-24) 그러므로 새롭게 된 증거를 보여야 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고 화합하는 것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계명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마 22:37-40)

7. 하나님나라는 공동체입니다. 물론 개인이 회심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만 그는 또한 하나님의 집에 소속되는 것입니다. 어느 개인이 주님을 만나 변화되었다면 그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것이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접붙여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성도가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 공동체를 떠나 혼자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각자 다양한 성도들이 서로 연합하고 연결되어 하나가 될 때에 그리스도의 몸이 건강하게 세워집니다. 엡 2:20-22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놓은 기초 위에 세워진 집이며 그리스도 예수님은 친히 그 머릿돌이 되셨습니다. 머릿돌이 되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건물 전체가 서로 연결되어 점점 거룩한 성전이 되어가고 여러분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계실 집이 되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고 있습니다.”

8. 개인주의가 편만한 세상입니다. 신앙생활마저 자기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경건생활의 차원을 넘어서 교회를 통해 온 세상을 구원하고 회복시키려는 하늘 아버지의 뜻을 품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먼저는 가정에서 바른 질서를 배우고 교회에서 하나님 사랑과 형제 사랑을 연습해서 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손에 사용되어야 하겠습니다. 온 교우들이 서로 격려하고 뜨겁게 사랑하여 활력이 넘치는 교회를 만들어갑시다.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누리고 나누는 영적감동이 있는 교회생활이 되게 합시다. 하나님 자녀로서의 기쁨이 넘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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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삶의 자세와 여정 (삼상 6:7-12) 여선교회헌신예배 박영표 목사

그러므로 새 수레를 하나 만들고 멍에를 메어 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소에 수레를 메우고 그 송아지들은 떼어 집으로 돌려보내고 여호와의 궤를 가져다가 수레에 싣고 속건제로 드릴 금으로 만든 물건들은 상자에 담아 궤 곁에 두고 그것을 보내어 가게 하고 보고 있다가 만일 궤가 그 본 지역 길로 올라가서 벧세메스로 가면 이 큰 재앙은 그가 우리에게 내린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를 친 것이 그의 손이 아니요 우연히 당한 것인 줄 알리라 하니라. 그 사람들이 그같이 하여 젖 나는 소 둘을 끌어다가 수레를 메우고 송아지들은 집에 가두고 여호와의 궤와 및 금 쥐와 그들의 독종의 형상을 담은 상자를 수레 위에 실으니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선까지 따라 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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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어요. 우리가 기뻐하는 이유 (고전 15:16-20)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For if the dead are not raised, then Christ has not been raised either.
And if Christ has not been raised, your faith is futile; you are still in your sins.
Then those also who have fallen asleep in Christ are lost.
If only for this life we have hope in Christ, we are to be pitied more than all men.
But Christ has indeed been raised from the dead, the firstfruits of those who have fallen asl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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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귀를 탄 예수님 (요 12:12-19 빌 2:5-11)

1. 오늘은 종려 주일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들어갈 때 사람들이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환영하던 것에서 유래했습니다. 종려나무는 의, 아름다움, 승리 등을 상징하는데 사람들은 자기 옷을 길에 펴고 종려가지를 흔들며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메시아를 호산나를 외치며 환영했습니다. 물론 열렬하게 환영하던 사람들은 몇 날이 지나지 않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돌변하겠지만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기위한 자기의 길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사순절을 지나며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을 생각했는데 이번 주간은 십자가 고난에 대하여 집중해보기 바랍니다.

2.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갈 때에 다른 전쟁영웅처럼 멋진 말을 타지도 않았고 권세를 가진 정치인들처럼 호화로운 마차를 타지도 않았습니다. 대신 초라하고 작은 나귀새끼를 탔습니다.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행렬 같아 보였지만 그것은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십자가에서 죽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요 12:14-15에서는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기록된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라며 스가랴 9:9-10 예언의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스가랴는 하나님께서는 이방나라를 심판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공의의 왕이며 구원자이고 평화의 왕이신 메시아를 보낼 것인데 그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예언대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3.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맞은 편 마을에 가서 매어있는 나귀를 끌고 오라고 했습니다. 나귀 주인이 물으면 주께서 쓰겠다고 대답하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말씀대로 행했고 나귀주인도 선뜻 나귀를 내주었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리던 메시아의 구원의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하나님의 시간표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졌기에 자신의 것을 선뜻 내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들어오기 전에 누가 더 높은지를 놓고 싸웠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어머니를 동원하여 예수님께 청탁을 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서 권력을 잡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귀주인은 자신의 이름도 알려주지 않고 자기의 것을 드리는 헌신의 본을 보였습니다.

4. 예수님이 성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몰려들어 자신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호산나를 외치며 환영했습니다. 예수님을 수행하던 제자들의 어깨에도 힘이 들어갔을 것입니다. 이제 곧 출세하여 예수님과 함께 큰일을 하리라고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려고 가는 길이었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들이 항상 영으로 깨어 있어야 예수님과 한 방향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지금도 준비된 성도들과 함께 세상을 다스리며 준비된 영혼을 구원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교회가 주님께 바로 쓰임 받으려면 자기욕심을 내려놓고 그리스도의 겸손한 마음을 본받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하나님과 같은 본성을 가진 분이 종의 모습을 취했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했습니다.(빌 2:6-8) 이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의 바른 자세입니다.
5. 그리스도께서 세상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대신 죽었기 때문에 죄인들이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십자가는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이라도 희생시키며 죄인들을 구원하려는 사랑을 보여줬고 그렇게라도 죄를 벌해야 하는 하나님의 공의도 만족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온전하게 치료하기 위해서 그의 아들의 몸에 상처를 당하게 했습니다.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악함 때문입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 우리의 병이 나았습니다.(사 53:5-6)

6. 그리스도의 고난은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당해야 할 고난을 주님께서 대신 감당했습니다. 그 혐오스럽고 비참한 십자가 고난을 생각하면 우리는 죄를 미워하고 멀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죄인에 대하여는 가혹하고 엄하게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진노를 지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바로 묵상하며 우리는 공포로 얼어붙고 죄의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가를 잊을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고난을 당하면서도 반항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마치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양처럼 묵묵하게 하나님의 뜻을 수용했습니다.(사 53:7) 이렇게 순종하는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높여주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에 무릎을 꿇고 주님으로 고백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했습니다.(빌 2:9-11)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억할 때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찬송합니다.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신 죽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우리가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7. 제자들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가신 일에 대하여 제대로 알지 못하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스가랴의 예언이 예수님을 말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요 12:16) 주님께 헌신을 다짐했던 제자들이지만 나귀를 타신 예수님과 고난당하는 예수님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말씀과 성령으로 항상 깨어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눅 9:23에서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자기 권리를 포기하고 주님의 뜻을 우선하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버려야 할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죄에 물든 세상에서 죄를 멀리하는 것입니다. 내 것을 희생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순종하면 죄 용서의 능력이 또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게 될 것입니다.

8. 고전 10:31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말씀을 기억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우선하여 생각합니다. 지난 주일에 우크라이나를 위해 정성을 모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주님께 드리는 헌신의 표시로 마음을 모아주셨습니다. 이것이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 교단 본부를 통하여 현지로 전달되게 할 것입니다. 이번주간은 주님의 십자가 고난을 생각하는 주간입니다. 죄를 미워하고 멀리하고 거룩함을 배우는 시간이 되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선택할 수 있는 성숙한 믿음을 배우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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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눅 20:9–19 사 43:1-7)

1. 예수님은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들어 예수님을 반대하고 맞서던 대제사장,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 헤롯 당원들을 질책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여 메시아를 죽이고 결국 심판에 처해진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한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을 준비하고 소작인들을 고용하여 경작을 맡겼습니다. 타국에 나가있던 주인은 소작료를 받으려고 종들을 보냈는데 농부들은 종을 때리고 빈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런 악한 일은 세 번이나 반복되었고 주인은 결국 자기 아들을 보냈습니다. 아들은 존중하겠거니 생각했지만 농부들은 포도원을 탈취할 것을 모의하고 상속자인 아들을 죽여 버렸습니다. 주인은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줄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눅 20:16). 그러나 예수님을 반대하던 자들은 그렇게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대답합니다.

2.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주인이 울타리도 치고 망대도 세우고 즙 틀을 준비한 것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에게 백성들을 영적으로 인도하도록 모든 것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사명을 다하지 못했고 오히려 기회를 남용하여 자기욕심을 채우려고 백성들을 압제했습니다.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았고 오히려 핍박했으며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주인은 당연히 대신 세를 낼 사람에게 포도원을 맡길 것입니다.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들을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요 1:12) 예수께서는 반대자들의 손에 죽임을 당했지만 부활하였고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는 구원주가 되셨습니다.(고전 1:18)

3. 예수님은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 머릿돌이 되는 것은 왜인가를 묻습니다. 사람이 이 돌 위에 떨어지면 깨질 것이고 돌이 사람위에 떨어지면 가루로 만들어 흩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돌로 비유했습니다. 마치 건축자들에게 버림당한 쓸모없는 돌처럼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거절당하고 십자가에서 죽지만 주께서 세우는 교회의 가장 중요한 모퉁이 돌이 되었습니다.(눅 20:17) 교회는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놓은 기초 위에 세워진 집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머릿돌이 됩니다.(엡 2:20) 머리돌이 무너지면 건축물이 지탱되지 않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 돌을 반대하고 공격하는 자들은 가루처럼 망하게 될 것입니다.

4. 우리들이 구원받았다고 확신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에 근거합니다. 아무리 착하고 법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도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롬 3:23)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는 믿음으로 얻습니다. 이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죄를 위해 죽으셨고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구원은 자신의 의로운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를 믿는 믿음으로 얻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선물입니다.(엡 2:8)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었기에 그 대속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빌 3:10)

5. 우리는 이스라엘을 보고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을 배웁니다. 사 41:8-9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과 선택을 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같은 마음으로 예수 믿는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으로의 특권을 잃어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져 눈이 멀고 귀가 먼 종이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회개시키려고 바벨론을 들어 심판하면서도 그들을 구원할 여호와의 종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사 42: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하나님은 자기백성을 끝까지 사랑하는 분입니다.(요 13:1)

6. 그 구원자는 겸손과 사랑으로 통치하고 승리와 기쁨의 나라를 건설할 것입니다. 메시아로 오시는 그분은 강하고 힘 있는 구원자이면서도 동시에 힘없고 초라한 모습으로 설명되었습니다. 이런 이중적인 설명은 세상을 만든 전능한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육체로 오시어 십자가에서 대신 죽게 된다는 것을 미리 설명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가 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찔리고 상한 것은 사람들의 허물과 죄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나음을 얻게 되었습니다.(사 53:1-9) 하나님께서는 절망하고 낙심하는 이스라엘을 자기백성으로 삼아주셨고 끝까지 지켜주셨습니다. 사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7. 하나님은 고레스 왕을 통하여 바베론 포로기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이방나라의 왕이지만 고레스를 하나님의 목자요 하나님의 기쁨을 성취할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사 44:28) 그것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실 완전한 구원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을 죄에서 건져주시고 영생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도록 날마다 지켜주십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사 43:2-3) 예수님도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고 했습니다.

8. 사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를 구원해주신 이유는 하나님 은혜의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게 하려는 것입니다.(엡 2:5-7)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께 속한 새 이스라엘이 되었으니 이제는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의 일을 크게 노래하고 자랑해야 하겠습니다. 바울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 싸운 디모데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딤전 6:11)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산다는 자존감이 분명해지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받는 특별한 사람답게 조금 불편하고 어려운 때를 살지만 그러기에 더욱 주님만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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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음을 연습 합시다 (눅 15:11-24, 고후 5:16-21)

1. 눅 15장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잘 설명해줍니다. 어떤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아 도시로 나가 자기 원하는 대로 살다가 실패했습니다. 인생 밑바닥을 경험한 아들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아버지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아버지는 멀리서 걸어오는 아들을 보고 불쌍히 여겨 뛰어가 그를 품에 앉고 입을 맞추었습니다.(눅 15:20) 그의 잘못을 따지지 않고 오히려 좋은 옷을 입히고 신발을 신기고 가락지를 끼워주어 아들의 신분을 회복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아버지처럼 죄인들을 불쌍히 여겨주셨습니다. 죄의 노예였던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그 죄를 씻어주시고 의롭다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2. 기독교의 화해는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말합니다. 죄를 지은 아담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고 그의 후손들은 모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롬 3:23) 마귀에게 속하여 자기 욕심대로 사는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 되었습니다.(엡 2:4) 하나님과 단절되어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사 59:2) 이런 죄인들을 회복시키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중보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처럼 죄인들의 죄를 짊어지고 대신 희생당했습니다. 그가 십자가에서 대신 죽음으로 하나님과 죄인사이를 가로막았던 담이 허물어졌습니다.(엡 2:14)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용서하는 이유는 십자가에서 흘린 예수 그리스도의 피 때문입니다.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

3.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주심으로 하나님과 원수처럼 지내던 죄인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불러 훈련하신 후에 복음전도를 명하신 것도 복음을 듣는 자들이 하나님과 화목해지는 일을 위한 것입니다. 바울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고후 5:18)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주신 것은 구원의 은혜를 사람들에게 자랑하게 하려는 것입니다.(엡 2:7) 구원받은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또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책임을 부여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4. 그러므로 모든 민족을 예수님의 제자로 세우는 일(마 28:19),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막 16:15), 그리스도에게 속한 양을 먹이고 돌보는 일(요 21:16),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사는 일(행 1:8)은 또 다른 사람들에게 구원의 경험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신자는 하나님이 구원자이며 힘과 노래가 된다고 힘주어 자랑할 수 있습니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사 12:2)

5. 예수님은 화목의 직책을 수행하는 사람의 자세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어떤 악한 사람이 일만 달란트나 되는 큰 빚을 탕감 받고도 자기에게 작은 빚이 있는 사람을 독촉하고 재판에 넘겼습니다. 그가 탕감 받은 것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를 당연히 불쌍히 여기고 탕감해주어야 했지만 그리하지 않았습니다.(마 18:21-35) 빚진 자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상대에게 긍휼을 베풀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대주고 속옷을 빼앗는 사람에게 겉옷까지도 내주라고 했습니다.(마 5:39) 세상 방법과는 다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무조건적인 사랑과 용서를 경험했기에 또 다른 사람을 그렇게 용서하고 불쌍히 여기며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화목의 일을 수행하는 구원받은 신자가 갖추어야 할 자세입니다.(마 5:39-41)

6. 복음을 전하는 일은 이런 마음을 일상에서 표현하고 드러내는 것입니다. 빈자리를 채우려고 이웃을 초청하는 것이 아니라 한 생명을 귀하게 여겨 주님을 만나도록 안내하기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을 바꾸고 자기의 편안함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안전지대가 있습니다. 거기에 머물면 편안합니다. 그런데 그 안전지대에서 나와서 새로운 환경으로 들어가야 새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음식 하나를 맛보는 일도 익숙한 나의 입맛을 내려놓아야 가능합니다. 강아지를 식구로 생각하는 이웃과 함께 하려면 강아지는 밖에서 사는 짐승이라는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래야 상대의 마음을 얻을 수 있고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계가 형성되기 이전에 아무리 복음을 말한다 해도 들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7. 행 10장은 베드로가 어떻게 유대인의 편견을 내려놓고 이방인 고넬료에게 전도할 수 있었는지를 소개합니다. 베드로가 평생 먹지 않았던 더럽다고 여기는 음식을 받아먹으라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럴 수 없다고 하자 하나님이 깨끗하게 한 것을 더럽다고 하지 말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고넬료도 기도하다가 환상 중에 베드로를 청하여 말씀을 들으라는 음성을 듣고 사람을 보냈습니다. 베드로가 자기고집을 내려놓고 고벨료의 집에 가서 말씀을 전할 때에 자기들에게 임했던 성령께서 같은 방법으로 이방인에게 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제야 하나님께서 이방인도 구원하신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행 11:18) 유대인의 특권의식과 이방인을 무시하는 생각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자기 안전지대를 허무는 일이 되었고 다른 사람을 편견 없이 수용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 일 후에 교회는 이방인 선교에 눈이 열렸고 예루살렘과 이방지역에서 크게 확장되었습니다.

8. 교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곳입니다. 배운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함께 하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더불어 삽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이 함께 도움을 주고받습니다. 그러기에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서로를 불쌍히 여기며 사랑해야 합니다. 바울은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롬 1:14)고 했습니다. 교회를 핍박하던 바울은 주님을 만난 이후에는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다음주일에 우리는 전쟁으로 아픔을 겪는 우크라이나 형제들을 위해서 특별헌금을 실시합니다. 이름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빚진 자의 심정으로 내 것을 나누는 거룩한 희생을 연습해 보기 원합니다. 생명을 불쌍히 여기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들을 품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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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회개 (눅 13:1-9, 사 55:1-7)

1. 바이러스로 온 세상이 죽음의 위협 앞에 있고 우크라이나에서는 무고한 생명이 죽는 전쟁의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각자의 생활이 바빠서인지 다른 사람들의 아픔이 쉽게 와 닿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구호품도 보내고 특별한 기도를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우리들도 사순절을 보내며 예수님의 긍휼의 마음을 배워 슬픔당한 사람들과 함께 울고 그들을 위해서 손을 펼 수 있기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은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쉽게 판단하고 정죄하며 그것에서 자기 의를 자랑하던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을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2.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찾아와 빌라도가 성전에서 희생제물을 드리던 갈릴리 사람들을 죽였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죄가 더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하시며 회개하지 않으면 이처럼 망하게 된다고 경고했습니다. 아마도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릴 목적으로 소식을 전했을 것입니다. 이 일이 누구의 잘못으로 일어난 것인지를 물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다른 지방 사람들보다 과격하여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앞장서 싸웠습니다. 이런 일로 어떤 해에는 유월절 제사를 드리던 갈릴리 사람들 3천명이 로마에 의해 학살당하기도 했고 또 어떤 때는 2만 명이나 죽기도 했습니다. 삼일만세운동과 한국전쟁의 아픔을 겪은 우리로서는 갈릴리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이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3. 만일 예수님이 그 일에 대한 책임이 로마에게 있다고 대답하면 로마를 반대하는 반역자가 될 것이고 죽은 사람들의 죄 때문이라고 대답하면 율법주의자들의 생각에 동조하는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의도대로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간교함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남의 불행을 보며 불행을 당한 사람들의 죄 때문이라고 정죄했고 거기서 상대적으로 자기 의를 드러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종교적인 편견과 잘못된 생각을 깨뜨리려고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 13:3, 5)라고 반복하여 말씀했습니다. 그 누구도 닥쳐오는 재난이나 죽음을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지금 평안하다고 그것이 자기 의로움 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준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서 세운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서 죽은 18명도 예루살렘에 있는 다른 사람들보다 죄가 많아서 죽은 것이 아니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4.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불행을 쉽게 정죄하거나 판단하기보다는 그들과 함께 아파하고 슬퍼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우리도 언제든지 그런 아픔을 겪을 수 있는 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런 일을 반면교사로 삼아 주님과의 관계에 바로 서있는지를 스스로 돌아보고 점검할 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의 비유를 더 들었습니다.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고 열매를 기다렸지만 열매가 맺히지 않자 찍어버리기로 작정합니다. 관리인은 더 열심히 관리하고 거름도 줄 것이니 한 해만 더 기다려달라고 간청합니다. 당시는 포도원에 여러 가지 과실수를 심었다고 하는데 문제는 삼년이 지나 열매를 맺을 때가 되었음에도 열매가 없었다는 것이고 주인은 그것을 찍어버리려고 했지만 관리인의 간절한 청 때문에 다시 기회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5. 주인은 죄를 심판하는 하나님이고 관리인은 중보자 예수님을 말합니다. 열매 맺어야 할 나무는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은 이 주인처럼 열매 없는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분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에게 화가 임할 것이라고 경고한 것이나 예루살렘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기를 기대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눅 13:34) 예수님은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여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이 회개의 기회를 갖기를 원했습니다.(마 23:13-15) 멸망에 처한 소돔성을 위해서 간절하게 중보 했던 아브라함처럼 말입니다.(창 18:22-32)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지금 화를 당하지 않았다고 해서 자기 의를 자랑하지 말고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구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다가 주후 70년에 로마군에 의해서 철저하게 무너지고 망했습니다.

6. 주님은 한 영혼도 망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속히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립니다.(벧후 3:9) 겔 33:11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사 55:6-7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욜 2:13 “너희의 옷이 아닌 너희의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돌아오라. 그분은 은혜로우시고 긍휼이 많으시며 화를 내는 데는 더디시고 사랑이 풍부하시며 마음을 돌이켜 재앙을 거두기도 하시는 분이시다.”

7. 회개는 잘못을 뉘우치는 것만은 아닙니다. 삶의 태도를 바꾸고 즉시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회개는 옷을 찢거나 재를 뒤집어쓰는 형식보다 마음 깊이 아파하고 죄를 미워하는 적극적인 행위입니다. 자신의 죄 때문에 주님께서 채찍을 맞고 창에 찔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것을 경험할 때에만 굳어버린 마음을 깨뜨릴 수 있습니다. 고후 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회개를 이루어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거니와 세상의 근심은 사망을 이루느니라.” 죄는 하나님의 계획에서 빗나간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미 신자가 된 우리들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살지 못한 게으름을 회개해야 합니다. 구원받았으니 되었다고 생각하는 자기만족이나 주님과의 더 깊은 교제를 회피하는 소극적인 자세에서 돌아서야 하겠습니다.

8. 다윗은 환란을 당하는 중에도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송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시 63:1-2)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생명보다 귀하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는 고백입니다. 이 어려운 때에 하나님을 바로 예배하고 찬송하며 근심하는 이웃을 찾아 위로하고 품어주는 하나님의 파트너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지금이 은혜 받을 때이며 지금이 구원의 날이라며 지금을 강조했습니다.(고후 6:2) 우리들도 지금 여기서 그런 변화를 결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긍휼과 사랑을 더 깊이 경험하고 나누어주는 사순절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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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누구? 지금 어디? (렘 26:8–15, 눅 13:31–35)

1. 예레미야는 요시야 왕 때에 선지자로 부름을 받아 40년간 활동했습니다. 힘을 과시하던 앗수르가 무너지고 신흥 바벨론이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던 때입니다. 종교개혁을 주도하며 민생을 안정시켰던 요시야 왕이 주전 609년에 죽자 다음 왕들은 그것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했고 사람들은 다시 타락하고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외부적으로는 여전히 강한 애굽과 신흥 강국인 바벨론 사이에서 눈치를 봐야 했습니다. 유다의 지도자들은 애굽의 손을 잡기 원했지만 예레미야는 애굽과의 동맹을 반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다의 죄를 심판하려고 바벨론을 사용하기로 작정했기 때문입니다.

2. 예레미야를 눈물의 선지자라고 부릅니다. 민족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을 외쳐야 했기에 그의 눈에는 눈물이 마르지 않았습니다.(렘 9:1)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성전이 실로 같이 될 것이고 예루살렘 성도 황폐해져서 주민들이 살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렘 26:6) 가나안에 들어간 여호수아는 실로에 성막을 두었습니다. 그런데 블레셋과 전쟁할 때에 언약궤를 들고 나갔다가 빼앗겼습니다. 엘리 제사장과 그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그 날에 죽었습니다. 언약궤가 없는 성막은 황폐해졌고 더 이상 사람들도 찾지 않았습니다. 이런 역사를 아는 사람들에게 예루살렘이 실로처럼 황폐해진다고 말해야 했습니다. 반역자로 낙인찍힌 예레미야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 의해서 유다의 고관들과 모든 백성 앞에서 죽음의 위협을 받았습니다.(렘 26:8) 그런데도 예레미야는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가 그대로 임할 것이라고 분명하게 전했습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곤경에 처한 예레미야는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대신 심판을 받은 예수님을 생각하게 합니다. 예레미야와 예수님의 사역에는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의 영향을 받던 때이고 예수님은 로마의 지배를 받던 때에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예레미야는 거짓 선지자의 반대에 부딪혔고 예수님은 제사장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미움을 받았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길이 없다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루살렘이 영원할 것으로 생각했고 오히려 예레미야를 가두고 협박했으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예레미야는 형식에서 벗어나 참된 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할 것을 강조했고 예수님도 성전기능을 잃어버린 것을 지적하며 성전을 정결케 했습니다.

4. 어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헤롯이 죽이려 하니 빨리 예루살렘을 벗어나라고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음모를 꾸미는 헤롯을 여우라고 표현하며 십자가를 질 때까지 하던 대로 설교하고 귀신을 내쫓고 병을 고치며 자기 길을 가겠다고 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고 제 삼일에 부활하여 모든 일을 완성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거부하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탄식했습니다. 나봇과 스가랴가 예루살렘에서 죽임을 당했고 예레미야도 거기서 위협을 당했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었고 이제 예수님을 죽이려 합니다. 암탉이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으듯 말씀을 가르치며 회개의 기회를 주었지만 그들이 회개하지 않으니 결국 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이나 소돔 고모라처럼, 앗수르에 망한 북이스라엘과 바벨론에 망한 남 유다처럼 말입니다.

5. 예수님은 결국 그들의 손에 의하여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들을 위한 희생제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새 예루살렘인 교회의 머릿돌이 되었습니다. 그의 대속의 죽음을 믿는 자들이 죄에서 해방되어 새롭게 되고(고후 5;17)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고후 5:19)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요 1:12) 하늘 시민권을 갖게 했습니다. 빌 3:20-21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우리 믿는 자들이 아직은 죄지을 가능성도 있고 질병과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제한된 몸이지만 주님 재림 때에는 영광스럽고 썩지 않을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을 믿습니다.

6. 갈 4:4-5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예언의 성취로 오시어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좇아내며 하나님 나라를 알려주셨습니다. 때가 되자 십자가에서 죽고 다시 부활하여 모든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요 1:12)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게 하려고 제자들을 훈련시켰습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듣고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마 16:18)고 말씀했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그 사역이 계속되었고 신약교회가 생겨났습니다.(행 2장) 예수님은 모든 죄인들이 회개하고 구원받는 것을 기뻐하십니다.(벧후 3:9) 구원의 소식이 예루살렘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해지기를 기대하십니다.(눅 24:47) 이것을 위해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7. 이천년 교회 역사에서 성령께서는 예수님이 하던 가르치고 전도하고 회복하는 일을 지속해 오고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죄인들이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믿음을 갖게 합니다. 믿는 성도에게는 말씀을 삶에 적용하며 하나님을 더 깊이 알도록 도와주십니다. 영과 육이 건강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합니다. 그리기에 교회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성령과 함께 일해야 합니다. 예수님에게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마 9: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이 마음은 눅 15장 돌아온 아들의 이야기에 나오는 아버지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돌아온 아들을 무조건 품어주고 아들의 권위를 회복시킨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교회는 교회 밖의 사람들이 죄와 죽음의 억압에서 벗어나 천국의 기쁨을 누리도록 돌봐야 합니다.

8.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으라고 했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그 마음으로 서로 존중하고 한마음을 품고 교회를 섬기라고 가르쳤습니다.(빌 2:1-8) 우리의 신앙생활은 나의 필요를 위한 것이기도 하고 하나님의 필요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영과 육이 잘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또 다른 사람에게 구원의 길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염병과 전쟁의 소식으로 어려운 때를 삽니다. 염려와 문제는 항상 존재합니다. 그러나 자기사명을 아는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어려운 때를 지나면서 더 성숙하고 단단해져서 주님을 기쁘게 하며 이웃과 함께 평강을 누리고 나누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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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으로 승리하신 예수님 (눅 4:1-13)

1.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시험하지 않습니다.(고전 10:13) 다만 더 강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시련을 주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제물로 드리게 한 것처럼 믿음으로 결단해야 하는 시련을 주십니다. 시련을 견디면서 더 큰 믿음을 갖게 되고 그 믿음에 맞는 일도 하고 열매를 맛볼 수 있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게 된 것처럼 말입니다. 반대로 마귀는 신자를 믿음에서 멀어지고 죄를 짓도록 시험하고 유혹합니다. 마치 배고픈 사자가 먹이를 찾아 공격하는 것처럼 믿는 자들을 공격하여 믿음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마귀를 대적하고 맞서 싸우라고 합니다.(벧전 5:8)

2.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예수님은 40일간 금식하셨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이 육체적으로 약해지고 배가 고플 때에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유혹했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만나를 먹게 한 것처럼 기적을 베풀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존재라고 했습니다.(신 8:3) 먹고 사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것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이라고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마 6장에서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염려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마 6:33)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처럼 먹고 사는 문제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우선순위를 두고 살면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3. 마귀는 천하만국을 보이며 자기에게 절하면 모든 영광을 주겠다고 예수님을 유혹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인 것처럼 위장하는 것이 마귀의 전술입니다. 예수님은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만 섬기라.”(신 6:13)는 말씀으로 대응했습니다. 하나님만이 권세자이고 생명을 다스리는 분이며 피조물의 예배를 받을 분입니다. 잠깐의 세상영광을 얻고 인기를 얻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 성도의 행복입니다. 불안하여 점을 치거나 누구의 예언기도를 받으려고 쫓아다닐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독대하며 말씀을 통하여 인도하는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마귀는 또 예수님에게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보라고 유혹했습니다. 예수님이 정말 메시아라면 천사들이 와서 발도 다치지 않게 보호해줄 것이 아니냐고 시 91편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유혹했습니다.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신 6:16)는 말씀으로 대응했습니다.

4. 마귀는 하나님 나라를 방해하는 방해꾼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렸을 때 군중들을 동원하여 동일한 말로 시험했습니다.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마 27:40) 마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자기 정체성을 잊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세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처럼 말씀에 근거하여 마귀와 맞서 싸워야 합니다. 예수님이 세례 받을 때에 들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로 인해 기뻐한다.”라는 음성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눅 3:22) 성경을 가까이 하고 묵상하고 적용하면서 우리는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는 하나님은 마귀보다 훨씬 강한분입니다.(요일 4:4)

5. 우리가 구원의 확신을 갖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입니다. 롬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는 말씀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통가운데서 신음하던 이스라엘을 구원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했고 그들에게 말씀을 주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게 했습니다.(신 26:7-8)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들을 말씀으로 새롭게 했습니다.

6.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딤후 3:15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기에 우리를 교훈하고 책망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합니다. 의사의 손에 들려진 수술용 칼처럼 우리들의 속마음을 헤집고 생각을 조정하고 죄를 도려냅니다.(히 4:12)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주신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부지런히 자녀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심지어 손목에 매고 미간에 붙이고 문설주와 문에 기록해 두며 말씀을 가까이 했습니다.(신 6:6-9)

7.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습니다(고후 5:18) 그래서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하고 믿음을 굳게 하여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엡 6:10-11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검이라고 표현된 하나님의 말씀은 공격무기입니다. 예수님이 마귀에게 시험받은 이유는 마귀보다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성령에게 이끌려 말씀으로 마귀를 제압하여 메시아임을 확실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들도 말씀으로 무장되어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교제하는 기쁨을 누리기 바랍니다. 말씀으로 마귀를 이기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부흥이며 이웃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비결입니다.

8. 아담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도 유혹에 넘어갔지만 예수님은 말씀으로 마귀의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아담의 타락으로 죽음이 들어왔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회복되었습니다.(롬 5:12-15) 영적 전쟁의 승패는 말씀이 준비되어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이번 사순절에 예수님의 삶과 사역을 생각하며 말씀과 기도에 깊이 들어가기를 기대합니다. 교회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하고 또 전염병과 전쟁의 아픔을 겪는 이웃에게 주님의 위로가 임하기를 위하여 함께 기도합시다. 배고프고 배우지 못하는 사람들과 영적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기도합시다. 사역자들과 선교사님들을 위한 기도도 필요합니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눈물 흘리던 주님의 심정을 품고 겸손히 무릎을 꿇읍시다. 그리하여 영적으로 더 성숙해지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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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생활의 기쁨 (눅 9:28-36)

1.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가 하나님께 성실한 종으로 쓰임 받았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아들의 자격으로 하나님의 집안사람을 돌보며 모세보다 더 큰 영광을 받았다고 말합니다.(히 3:1-3)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몸을 희생 제물로 바쳐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실행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죽은 그의 몸을 사흘 만에 다시 일으켰습니다. 우리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음으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기에(히 3:6)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몸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들에게 그 영광을 맛보는 기쁨을 알려주셨습니다.

2. 예수님을 따라 산에 오른 제자들은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잠에서 깬 제자들의 눈에 해같이 빛나는 주님의 변모된 얼굴과 그의 영광이 보였습니다. 그 감동이 얼마나 컸던지 초막 셋을 지을 테니 그곳에 더 오래 머물자고 예수님께 청했습니다.(눅 9:31) 바울은 부활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오른쪽에 계시며 성도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했는데(롬 8:34) 제자들은 바로 그런 영광스런 주님의 모습을 보았던 것입니다. 율법의 대표자인 모세와 선지자의 대표인 엘리야가 등장한 것은 예수님이 율법과 선지자의 완성으로 오신 메시아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변모에 대한 기록은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 모두 기록되었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묻는 질문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고백한지 8일 후의 일이었습니다.

3.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소리가 구름 속에서 들렸습니다.(눅 9:35) 예수께서 세례를 받을 때에도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눅 3:21-22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 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인정하고 사용한다고 선언하기 위해서 구름과 소리로 그의 영광을 드러낸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의 편지에 이 감동을 나누었습니다. “지극히 큰 영광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벧후 1:17-18)

4. 예수님은 기도하러 제자들과 함께 산에 올라가셨고 거기서 그의 모습이 변했습니다. 눅 9: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막 9:3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마 17: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이것은 요한이 본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은 예수의 얼굴”(계 1:16)과 같은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 율법과 예언의 완성으로 오신 메시아라는 것을 알려주었지만 정작 그들과 나눈 대화는 십자가에서 죽게 될 일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냈습니다.

5.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요 5:39) 구약은 메시아의 오심에 대하여 말하고 신약은 육체로 오시어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구원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이사야는 고난 받는 종의 모습으로 메시아를 설명했습니다.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고 흠모할 만한 것이 없는(사 53:2) 모습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예수님은 겸손하게 새끼 나귀를 탔고 거기서 붙잡혀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본래부터 하나님이던 그의 영광을 보여주었습니다. 변모 산에서의 예수님은 빛나고 영광스런 모습이었습니다. 신비감에 젖은 제자들이 초막을 짓고 더 머물고 싶을 만큼 황홀했습니다. 구름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나서 보니 제자들의 눈에는 예수님만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다시 산을 내려와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거기에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6. 산 아래에는 문제들이 가득했습니다. 간질병에 들린 아이 하나를 고치지 못해 제자들이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귀신의 장난으로 수없이 넘어지고 경련을 일으켰습니다.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을 꾸짖고 아이를 치료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겨자씨만한 작은 믿음이라도 있다면 산을 옮길 수 있다고 말씀하며 믿음이 없고 타락한 시대라며 제자들을 책망했습니다.(마 17:17)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우리의 관심을 주님께 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받게 될 일에 대하여 말했지만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했고 오히려 누가 큰 자인가를 놓고 자기들끼리 싸웠습니다. 마치 모세가 산 위에서 율법을 받을 때에 산 아래에서 아론과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이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절하던 것과 같습니다.(출 32:4)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의 열매나 능력이 드러나기를 원하지만 정작 그렇지 못할 때에 갈등합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연약함입니다.

7. 예수님은 죄를 벌해야 하는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기 위해 자기 몸을 속죄 제물로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의 희생을 받으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셨고(골 2:13) 그를 믿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요 1:12) 요일 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에서 부활하여 모든 죽은 자들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셨습니다.(고전 15:20) 주께서 재림하는 날에 모든 죽은 자들이 무덤에서 일어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영원한 심판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 날에 우리는 주님과 같은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하여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 것입니다.(고전 15:42-44)

8. 제자들에게도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주님의 나라가 세워질 때 높은 자리에 앉기 원하는 욕심이 있었습니다. 정작 고난이 닥치자 다 예수님을 떠나버렸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충만해진 후에는 삶의 목적과 이유가 달라졌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가 그리스도이며 부활하신 주님이라고 담대하게 증거 했습니다. 성령은 방언이나 신유, 예언, 환상과 같은 은사를 주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합니다.(요 15:26) 육체의 욕심을 이기게 하고(갈 5:16) 마귀의 방해공작도 물리치게 합니다(엡 6:10) 어려움을 만나지만 평안을 누리도록 도와줍니다.(요 14:27) 전염병과 전쟁의 소문이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성령으로 충만하여 위로부터 오는 평안과 기쁨을 누리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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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은혜를 흘려보내자 (눅 6:27–38, 창 45:3–15)

1. 우리가 믿음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지속적으로 경험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하여 죄에 대한 심판에서 자유롭게 되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또 성령께서 날마다 우리를 도와주기에 믿음을 유지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보통사람들은 자기 욕심을 우선하여 살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기를 연습하며 거룩하고 구별된 생활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사도 바울은 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 하라고(롬 12:18) 권면했는데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찾는 사람들을 칭찬해 주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하나님께서는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죄를 지은 아담에게 가죽옷을 입혀 주시고 회복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창 3:15) 금송아지를 섬긴 일로 벌 받아야 할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을 때 “나 여호와는 자비롭고 은혜로우며 쉽게 노하지 않고 사랑과 진실이 풍성한 하나님이다.”(출 34:6)라고 자신을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도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눅 6:36)고 가르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죄인들을 용서해 주시려고 그의 아들을 십자가에서 희생시켰습니다. 예수님도 공적사역에서 힘없고 소외된 약자들에게 긍휼과 자비를 보여주셨습니다.

3. 우리가 세례를 받는 것은 우리가 받아야 할 죄에 대한 벌을 예수님이 대신 받았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흘린 피의 대가로 우리가 용서 받았다는 것을 믿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물속에 잠기는 의식에 참여함으로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님과 함께 나의 옛 성품은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새로운 사람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롬 6:3) 고전 15:21–22“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아담의 죄가 후손들에게 대물림 되었다면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여 새 생명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도 모든 믿는 자들에게 대물림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하나가 된 세례 받은 사람은 더 이상 죄와 상관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자기 유익이나 욕심을 좇는 옛 생활을 계속할 수 없습니다.

4. 구약의 백성들은 매 3년마다 십일조를 한 번 더 드렸는데 그것으로 레위인과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었습니다. 이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기희생이 필요했고 더 많이 절제해야 했습니다.(신 26:12-14) 믿는 사람들의 세상살이는 세상방법이 아닌 주님께서 가르쳐준 방법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친절하게 대하며 자기를 저주하는 사람을 오히려 축복하고 기도해 주라고 했습니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까지 돌려 대고 겉옷을 빼앗는 사람에게 속옷까지 내주라고 가르쳤습니다.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손해 보는 바보 같은 일이지만 이것이 주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것이며 교회가 힘써 연습하는 성품훈련입니다.

5. 세상은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경쟁하지만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달라야 합니다. 원수라도 사랑하고 선하게 대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자기를 희생하여 많은 사람을 살리고 구원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사랑은 고상하고 아름다운 것이지만 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하여 죽어야 합니다. 이것은 자기 능력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만 실천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 때문에 용서받았다면 다른 사람을 쉽게 비판하거나 평가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남을 평가하고 잣대질하는 그 헤아림으로 우리들이 헤아림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롬 12:19-21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6.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그 가르침을 먼저 실천해 보여주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자기를 못 박는 반대자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눅 23:34)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 때문에 용서를 받았다면 그 은혜를 흘려보내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자기 힘으로는 불가능한 것을 경험하기에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는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고 고백합니다.(롬 6:11) 그래서 하나님 나라와 의를 우선하며(마 6:33) 영적생활을 위해 훈련하고 무장하는 것입니다.(엡 6:11) 만일 우리가 이런 영적인 일에 게으르거나 세상의 가치를 따른다면 서로 미워하고 더 높아지고 유명해지려는 세상의 방법대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영적인 힘은 사라질 것이고 더 이상 하나님께 사용될 수 없을 것입니다.

7.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은 하나님의 지혜로 7년의 가뭄에 대비할 수 있었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아버지와 형제들과 그들의 식솔들이 먹을 수 있는 곡식을 제공하고 고센 땅을 내주어 거기 살도록 했습니다. 자기를 노예로 팔았던 형들이지만 원수 갚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을 선대하고 용서했습니다. 억울한 일을 겪으면서도 하나님 앞에서 절대 믿음을 지켰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높은 자리에 앉혀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경험한 요셉은 자신이 받은 은혜를 그대로 흘려보냈습니다. 하나님께서 형들을 사용하여 자신을 애굽으로 미리 보낸 것이라고 말하며 두려워 떠는 형들을 위로했습니다.(창 45:5-10)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의 태도입니다.

8. 교회는 하나님께서 준비한 고센 땅과 같은 곳이 되어야 합니다. 바로와 그의 땅에 내리던 재앙이 이스라엘이 거하는 고센 땅에는 내리지 않았습니다.(출 9:26) 그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뜻을 세상에 알려야 했기에 특별하게 보호하고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교회는 아직 부족한 사람들이 함께 하나님을 배우고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듬어지는 곳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며 먼저 경험한 은혜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위해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 때문에 오늘 우리가 여기 있게 되었다면 이제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흘려보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풍성한 것인지를 모든 세대에게 알게 하려고 우리를 축복의 통로로 불러주셨기 때문입니다.(엡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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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로 이끄시는 하나님 (마 4:1-11) 류성창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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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역할을 깨닫는 은혜 (눅 5:1-11 사 6:1-8)

1. 대상 14:1-2 “두로 왕 히람이 다윗에게 사신들과 백향목과 석수와 목수를 보내 그의 궁전을 건축하게 하였더라.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신 줄을 깨달았으니 이는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의 나라를 높이 들림을 받았음을 앎이었더라.” 다윗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자신을 왕으로 세워주셨고 나라를 바로 운영하여 만방에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도록 사용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웃나라 두로의 히람 왕의 마음을 움직여 최상급의 건축자재와 일꾼들을 지원하게 했고 그 결과 다윗궁전을 건축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자기 역할을 잘 감당했습니다.

2. 이사야 6장에는 이사야가 부름을 받고 헌신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사야는 성전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과 귀하고 높은 하나님을 천사들이 찬송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찬송소리가 얼마나 장엄했으면 성전 문지방의 터가 흔들렸고 성전에는 연기가 충만하였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영광을 본 후에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 만군의 여호와를 뵈었으니 화를 당하게 되었다고 두려워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타는 숯불을 그의 입술에 대주며 그의 죄를 깨끗하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을 위하여 갈 사람을 찾았고 이사야는 자신을 보내달라고 자원했습니다.(사 6:6-8) 하나님의 심판계획을 사람들에게 전해야 하는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것을 자기 역할로 수용했습니다.

3. 누가는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이 어떻게 부름 받았는지를 알려줍니다.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수에 서서”(눅 5:1) 천국복음을 전하기에 낮과 밤의 구분이 없었던 예수님은 밤새도록 헛수고하고 돌아온 베드로의 배위에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다가 옆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베드로와 그의 형제들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눅 5:4)고 말씀했습니다. 평생 고기 잡는 일을 하던 어부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말씀이었습니다. 그 시간은 고기가 잡히지 않는 시간이고 이미 밤새 헛수고하고 돌아와 빈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다시 던졌고 생각하지 못한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예수님의 신적인 권위를 경험한 베드로는 죄인인 자신을 떠나달라고 청했습니다.(눅 5:10-11)

4.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향하여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말했습니다.(요 1:29) 세례요한의 말에 요한의 제자였던 안드레가 예수님을 따라갔고 또 그의 형제 베드로를 예수님께 소개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반석이라고 불러주셨습니다. 세례요한은 그렇게 자기 제자들을 예수님께 양보했습니다. 마 4장에 예수님은 갈릴리 해변에서 바다에 그물을 던지고 있던 베드로와 안드레를 불러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며 부르셨습니다.(마 4:18-22)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름을 받을 때에 제자로서의 자격이 충분했던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와 배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즉시 따랐다고 기록되었지만 여전히 또 다른 곳에서는 배와 그물을 수선하고 있던 것을 보면 아직 완전한 헌신을 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예수님을 훌륭한 랍비로 존중하며 나름대로 열심히 따랐지만 여전히 제자로서의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5.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가 없습니다.(롬 11:29) 베드로가 그물을 던지자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게 된 것이 은혜였습니다. 베드로는 자연을 다스리는 주님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5:8)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두려워하는 베드로에게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눅 5:10)고 말씀하며 사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 아버지의 허락이 없이는 떨어질 수 없다고 말씀했습니다.(마 10:29) 하나님은 공중 나는 새도 먹이고 들풀도 입히고 우리들의 머리카락까지라도 셀만큼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우리들을 불러 여기 있게 한 것은 우리를 사용하려는 계획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6. 주님의 부름에 우리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문밖에 계신 주님을 안으로 모셔야 하고 그분과 함께 사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계 3:20) 하나님께서 누구를 부를 때에는 자신을 드러내 알려주시고 그 앞에서 죄를 회개하고 온전하게 회복시켜 주십니다. 우리들이 완전하지 않지만 믿음으로 응답하는 것은 이런 은혜 때문입니다. 제자들도 예수님과 함께 했지만 가르침을 다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직도 깨달음이 없느냐?” “어찌하여 알지 못하느냐?”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아” “내가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막 9:19)라고 책망했습니다. 제자들은 누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것인지를 놓고 힘겨루기를 했습니다.(눅 22:24) 예수님이 붙잡힐 때는 하나같이 예수님을 부인하고 떠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의 연약함을 미리 아셨고 그들을 위하여 보혜사 성령을 약속해 주셨습니다.(요 14:16)

7. 예수님은 항상 아버지의 뜻을 따라 성령과 함께 일했습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위임된 세상을 구원하는 일을 함께 수행하려고 제자들을 불러 세웠습니다.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막 3:14-15) 예수님은 이런 연약하고 부족한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해 주셨고(요 13:1) 그들을 위하여 목숨까지 내주었습니다. 그리고 보혜사 성령을 보내 그들을 도와주셨습니다. 허물 많은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사명을 새롭게 했고 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자 자기 역할을 바로 감당했습니다. 보혜사 성령께서는 그리스도를 증거 하여 믿음을 갖게 합니다.(요 14:26) 약한 자를 강하게 하고 말씀대로 살도록 감동하고 도전하여 주님의 몸인 교회를 세웁니다. 그 성령께서 우리의 주인으로 거하며 우리를 다스립니다.

8. 벧전 2:9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로 베풀어주신 그 은혜가 얼마나 풍성한지를 장차 올 모든 세대에게 드러내 보이기 위해서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엡 2:7) 우리를 불러 교회를 이루게 하고 여기에 있게 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우리를 통하여 주변 사람들을 구원하기 원하는 것입니다. 이 부름에 응답하여 가정과 일터와 교회에서 자기 역할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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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누리는 특권 (눅 4:31-37)

1. 예수님은 세상에 오시어 하나님 나라를 알려주셨고 더러운 귀신과 질병을 꾸짖고 내쫒아 사람들을 자유하게 했습니다.(눅 4:40–41) 예수님은 여러 지역의 회당을 중심으로 천국복음을 전했는데 설교하실 때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권위 있는 가르침에 놀랐습니다. 서기관들은 유대교의 전통이나 다른 랍비들의 이론을 들어서 율법을 해석하고 설교했지만 예수님은 풍성한 하나님의 지혜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 나라를 분명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권세가 있었고 다른 서기관들과 같지 않았습니다.(마 7:29)

2. 가버나움 회당에서 말씀을 전할 때에 한 귀신들린 방해꾼이 등장했습니다. ‘나사렛 예수님,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우리를 없애려고 오셨습니까? 나는 당신이 하나님의 거룩한 아들임을 압니다.’ 하고 외쳤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아들이라는 말은 기름부음을 받은 메시아라는 말입니다. 귀신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찬양한 것이 아니라 말씀사역을 방해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꾸짖으며 ‘떠들지 말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너라.’ 라고 말씀하자 귀신은 사람들 앞에서 그를 내동댕이치고 나가 버렸습니다. 사단은 하나님 나라 복음 전파를 방해하고 죄인들이 회개하는 것을 가로막습니다. 교회를 어지럽히고 성도들에게서 기쁨을 빼앗아가며 마음이 나누어지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귀신에게 명령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진 분입니다. 귀신도 예수님 앞에서 무서워 떠는 표적을 본 사람들은 예수님의 권위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3. 사람들은 무언가 권위 있는 것에 굴복합니다. 그것이 돈이든 명예든 자기 꿈이든 자기에게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것에 마음을 둡니다. 아담도 하나님의 품을 떠나 하나님처럼 되려는 교만한 마음을 품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 원했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로 큰 민족을 이루어 열방을 위한 제사장나라로 살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부름에 합당하게 살지 못했고 자기 욕심대로 살다가 나라를 잃어버리고 강대국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결국 평화의 왕으로 오는 메시아가(사 11:1~9)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나라를 회복시킬 것을 기다렸습니다.(미 5:1~9)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고 선포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다윗왕권을 가지고 오는 메시아가 나라를 회복시킬 것을 기다렸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스라엘이 회복으로 이해하고 자기 자리를 두고 서로 다퉜습니다.

4. 그러나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의 제자들은 달랐습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 2:36)라고 설교하며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소개하고 그를 믿고 구원을 받으라고 도전했습니다.(행 16:31) 하나님의 나라를 국가개념으로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나타나는 심령의 변화로 이해했습니다. 예루살렘교회와 안디옥교회가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한 것을 보면 분명해집니다. 그들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서로 사랑하고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었고 날마다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송했습니다.(행 2:44-47) 교회는 사람들의 칭찬을 들었고 다른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성령으로 충만한 하나님 나라이고 우리가 추구하는 교회의 모습이며 재림 때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모습입니다.

5. 하나님은 천지를 만들고 운영하는 주인입니다.(창 1:1) 눈에 보이는 세계는 물론이고 보이지 않는 세계도 다스리는 전능하신 분입니다. 선택받은 이스라엘은 물론이고 이방나라와 왕들도 다스립니다. 태초부터 계셨고 지금도 세상을 다스리며 앞으로도 영원까지 홀로 존재하실 분입니다.(시 90:2) 하나님이 왕이 되어 다스리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우리가운데 임했으며(마 12:28) 장차 재림 하실 때에 완성될 것입니다.(마 8:11) 하나님의 나라는 심령이 가난한 자(마 5:2), 천국은 사모하는 자(마 6:33), 겸손한 자(마 18:3) 거듭난 자(요 3:5)가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핍박도 견디며 서기관보다 더 의롭게 살며(마 5:10)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를(마 7:21) 노력하는 것입니다.

6.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주어 죄인들을 구원하여 주님의 풍성한 사랑가운데 거하게 합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는 성령을 모신 거룩한 성전이 되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이루어갑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며 주인으로 섬기도록 도와주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신 성도들은 교회 공동체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고 연습합니다. 장차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서 칭찬듣기를 소망하며 마귀와의 싸움을 계속해 갑니다.(엡 6:11)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치료하자 유대인들은 율법을 어겼다고 트집을 잡았지만 예수님은 율법의 핵심이 사람을 새롭게 하고 구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일이나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는 것입니다.(롬 14:17)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주안에서 기뻐할 수 있는 것이 성도가 누리는 특권입니다.

7. 하나님은 예수 믿고 변화된 성도들이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을 기뻐합니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라고 구원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타락한 아담을 징계할 때에도 망하게 한 것이 아니라 그를 회복시키기를 원했습니다. 사단은 믿는 자들을 방해하고 정죄하여 믿음에서 멀어지게 하고 기쁨을 앗아가지만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항상 성령 안에서 기뻐하고 담대하기를 원합니다. 예레미야를 불러 하나님의 뜻을 전하게 할 때 그에게 담대함을 주셨습니다.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1:7-8)

8.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 있다면 먼저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기쁘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서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갠다고 했습니다.(히 4;12) 그래서 말씀을 더욱 가까이 하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우리가 맛본 천국기쁨을 전하라는 성령의 부름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 일은 우리 힘보다는 권세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이며 성령과 함께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입을 벌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말할 때에 사단의 세력이 무너지고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믿고 누리는 기쁨이고 성령께 순종하는 성도의 영적 특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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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회복 (눅 4:16-30, 고전 12:12-31)

1.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설교하며 이사야 61장의 메시아에 대한 약속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 4:18-19) 그리고는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눅 4:20-21)라고 했습니다.

2. 이스라엘과 온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회복은 율법 안에서 이미 드러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안식일과 안식년과 희년제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들이 공동체 안에서 믿음으로 사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종이나 주인을 막론하고 안식일에는 모든 사람들이 일을 쉬고 하나님께 예배하게 했습니다. 안식년에는 농사하지 않고 땅을 쉬게 했으며 스스로 열리는 곡식은 가난한 사람과 나그네에게 주었습니다. 물론 십일조를 통하여 레위인들과 가난한 자들의 생계를 보장하여 공동체가 유지되게 했습니다. 50년마다 돌아오는 희년에는 팔려갔던 종들도 자유를 얻어 돌아왔고 담보로 넘어갔던 부동산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게 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이 주는 완전한 해방과 회복을 맛보게 했고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믿음으로만 가능했습니다.

3. 희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은혜로 얻는 완전한 구원을 미리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나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오래전부터 같은 동네에서 생활하던 청년 예수가 어느 날 자신을 메시아라고 자칭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눅 4:22)” 예수님의 설교는 들을 내용도 있었고 그가 행하는 기적은 기이했지만 그럼에도 예수님을 마리아와 요셉의 아들로 생각하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눈이 어두워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다고 하시며 그들을 깨우치셨습니다.

4. 예수님은 선지자들이 많은 사람에게 말씀을 가르쳤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경험한 것은 소수의 이방인이었음을 말씀했습니다. 사렙다 지역의 과부 한사람이 엘리야를 통하여 기적을 경험했고 많은 나병환자 중에 나아만 한 사람만이 엘리사를 통하여 치유를 받은 일을 말했습니다. 다수의 유대인이 아니라 소수의 이방인만이 구원의 은혜를 얻었다는 것을 말씀하자 유대인들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고 크게 화를 내며 예수님을 동네 밖 낭떠러지에 밀쳐 떨어뜨리려고 했습니다.(눅 4:28-29) 그들은 예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었으며 동정녀에게서 탄생한 메시아임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 받을 때에 성부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고 성령의 임재를 보여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 공개적으로 드러났음에도 자기들의 신념과 전통을 더 중요하게 여겨 믿지 못했습니다.

5. 그래서 말씀에 비추어 자신을 돌아보고 성령의 감동을 따라 순종하기를 연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한 회복과 구원은 하나님이 신실하게 일하실 것을 믿는 믿음이 아니고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70년이 지나자 약속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의 포로에서 건져내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냈습니다.(스 1:1-3) 바벨론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켜 백성들을 돌려보내 성전을 재건하게 했습니다. 회복과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이지 사람들의 이해와 수용에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고 더 깊이 알기를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모든 시대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복되어 평강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십니다.”(골 1:20)

6. 바벨론에서 돌아와 예루살렘에 다시 정착한 사람들은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고 생활의 터전을 일궈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으로의 정체성 회복이 필요했습니다.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는 백성들을 모아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주었습니다. 레위 사람들은 그 말씀을 바로 이해하고 적용하도록 백성들을 도와주었습니다. 백성들은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했고 자기들의 죄를 눈물로 회개했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겠다는 새로운 결단을 했습니다.(느 8:1-12) 율법을 어기고 이방여인과 결혼했던 사람 112명은 이방 아내들을 돌려보내고 하나님께 속죄의 제사를 드렸습니다.(스 10:19) 철저하게 회개한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회복을 기뻐하고 감사하며 성회로 모여 하나님께 예배했습니다. 금식을 멈추고 울음을 그쳤으며 기름진 음식과 단 음료를 먹고 마셨습니다. 미처 음식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먹으며 공동체적인 잔치를 즐겼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회복과 구원을 감사하며 드리는 참된 예배였습니다.

7. 교회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은혜를 누리고 나누는 천국 잔치집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 사람이든 그리스 사람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 되게 했고 또 모두 한 성령을 마시게 했기 때문입니다.(고전 12:13) 그러므로 교회는 희년정신을 살려 약하게 보이는 지체들을 더 귀하게 여기고 돌보며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고전 12:25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여러 직분과 다양한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며 조화를 이루어 구원의 감격을 마음껏 누리고 나누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8. 그래서 말씀으로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딤후 3:15-17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올 한해도 말씀을 더 가까이 하며 하나님을 깊이 배우고 경험하기 원합니다. 나사렛 사람들처럼 자기생각에 묶이거나 정체되지 않고 새로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그를 따르는 믿음이 이전보다 더 깊어져서 완전한 회복과 구원을 마음껏 누리고 나누는 교회가 되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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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경험하는 하나님 나라(요 2:1-11)

1.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용할 때는 자신이 누구인지 보여주고 믿음을 갖게 합니다. 모세를 바로에게 보낼 때에 하나님은 자신을 ‘스스로 있는 자’ ‘나는 나다’ ‘I am that I am,’ (출 3:7-15)라고 소개했습니다. 피조세계의 언어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스스로 존재하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들의 이해를 위해서 종종 표적을 사용하여 자신을 알게 합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구원할 때에 하나님은 유월절의 표적을 보여주며 믿게 했습니다. 출 12:13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예수님도 기사와 이적을 통하여 신적 권위를 보여주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결국 그를 구주로 믿고 구원을 받게 했습니다.

2. 요한복음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표적이 여럿 나옵니다. 가나 혼인잔치 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일(요 2:1-11) 외에도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친 일(요 4:46-54), 38년 된 병자를 치료한 일(요 5:1-16), 오천 명을 먹인 일(요 6:1-13), 물 위를 걷고(요 6:16-21),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요 9:1-7), 나사로를 살린 일(요 11:1-44)에 대하여 언급하며 예수께서 생명을 주시는 구원주요 메시아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요 20:30-31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라며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3. 예수께서 어머니와 함께 어느 결혼잔치에 참석했는데 마침 포도주가 떨어져 잔치를 준비한 주인이 난처한 지경에 처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 이 소식을 전했고 예수님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응답했습니다. 이 말은 ‘여자여 나와 당신에게 무엇이 있습니까,’ 혹은 ‘당신이 나에 대하여 어떤 권세가 있습니까?’ 라는 말인데 어머니와 점잖게 거리를 두는 공적인 언사로 해석합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는 표현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메시아의 공적 사역은 누구의 요청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잔치 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자신의 신적인 영광을 나타냈습니다. 이 일로 제자들의 믿음은 한층 굳어졌고 말씀에 순종한 하인들도 예수님이 행하는 표적을 경험하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4. 믿음은 들음에서 시작됩니다. 길이며 진리이고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가르치는 말씀을 듣는데서 깨달음과 믿음이 생깁니다.(롬 10:17)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을 사용해서 이스라엘의 질투심을 유발했고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찾지 않고 구하지 않는 이방사람들에게도 자신을 나타내는 분입니다.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이 돌아오기를 온종일 손을 내밀고 기다리는 아버지입니다.(롬 10:19-21) 아합과 이세벨이 선지자들을 죽이고 제단을 헐어버리던 시절에 엘리야는 자기 혼자만 남았다고 실망했지만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끝까지 사랑하는 분입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5.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믿음은 대단했습니다.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보고 그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예수님께 청했습니다. 예수님이 문제를 능히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잔치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예수께서 무엇을 말씀하든지 그대로 하라고 지시하며 예수님께 대한 절대 믿음을 보였습니다. 사실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했던 믿음의 여인입니다. 예수님을 잉태하는 과정에서 마리아는 자신에게 성령으로 잉태하게 될 것을 듣고 믿음으로 그대로 받았습니다. 남의 시선이나 불이익을 개의치 않았고 오직 하나님의 계획을 우선하며 그것을 수용했습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응답했습니다.(눅 1:38) 이것이 믿음입니다.

6. 사람들은 자기 지식과 경험에 근거해서 이해하고 판단합니다. 자기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선택하고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자기 한계를 넘어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능력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마리아는 자기 생각과 계획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듣는 것을 수태과정에서 이미 배웠습니다. 또 성전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잃어버린 예수를 찾으며 경험한 일들로 신적인 능력이 예수에게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소년 예수는 성전에서 선생들과 함께 토론하고 있었고 또 그가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것을 몰랐느냐고 대답할 때(눅 2:42-52) 마리아는 이 말을 마음에 담아두었습니다. 자기 생각과 경험을 하나님보다 더 우위에 두는 것은 믿음의 자세가 아닙니다. 믿음은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생각을 우선적으로 수용하는 결단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근거하여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7. 일군들의 순종도 대단합니다. 여섯 개의 항아리는 손과 발을 닦는 용도로 사용할 물을 담아두는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것도 힘든 일이고 그것도 아구까지 물로 가득 채우라니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물을 떠다가 잔치 상에 내놓으라니 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더니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그것도 최상급의 맛좋은 포도주라고 칭찬을 들었습니다. 9절에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 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이렇게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진행됩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 기쁨을 누립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으나 몸소 여러 가지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워서 완전하게 되셨고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히 5:8-9)

8. 제자들은 예수님이 행하는 일들을 함께 경험하며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 말씀에 순종하며 힘 있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행 1:8) 예수님은 잔치집의 좋은 포도주처럼 자신의 몸을 찢어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그를 믿는 자들을 구원하여 생명의 떡을 먹고 약속의 잔을 마시며 힘을 내게 하십니다.(고전 12:3)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는 것입니다.(롬 14:17) 주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충만하여 사는 것입니다.(요 15:11) 그러므로 날마다 동일한 일상을 반복하며 살지만 믿음으로 사는 우리에게는 날마다 주님을 새롭게 경험하는 기쁨의 시간이 됩니다. 새해에 하나님의 말씀을 더 가까이하고 순종하는 믿음의 성숙함과 진전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믿음으로 경험하는 하나님 나라의 즐거움을 크게 누리는 시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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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를 통하여 받는 복(눅 3:15-22, 롬 6:1-11)

1. 예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받기를 청하자 세례요한은 황송한 마음으로 사양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마 3:15)고 말씀했습니다. 마치 제사장이 희생짐승에게 안수하여 백성들의 죄를 전가시켰던 것처럼 예수님도 세례를 받음으로 세상의 죄를 자기 몸에 짊어졌습니다. 빌 2:6-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겸손하게 수용하여 따르기 위해서 몸소 세례를 받았습니다.

2. 예수님이 세례를 받을 때에 하늘로부터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눅 3:22)라는 성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기름 부음을 상징하는 비둘기가 예수님의 머리 위에 임했습니다. 예수께서 이제 메시아로서 구원사역을 시작한다는 것을 모두에게 알게 한 것입니다. 오래전에 이사야는 메시아 사역에 대해서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사 61:1~2)라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이 말씀을 인용하여 자신이 메시아인 것을 알렸습니다.

3. 예수님은 율법의 형벌과 저주아래 있는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죽었습니다. 그 피로 죄를 씻어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들을 죄에서 자유하게 했습니다.(마 3:15, 사 53:1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반드시 벌해야 하는 하나님의 의를 충족시키려고 십자가에서 죽은 것입니다. 그리하여서 죄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고 화목하게 만들었습니다. 벧전 3:18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는 외아들까지 희생하며 죄인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십자가에서 보여주셨고 또한 십자가에서 죄를 반드시 벌해야 하는 하나님의 공의도 함께 충족시켰습니다.

4.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받으시고 죄인들을 죄 없다고 인정하고 구원하여 자기 백성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사 43장에서 이사야는 죄 가운데 빠진 유다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1절,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7절, “내 이름으로 불리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21절,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했습니다. 비록 고통가운데서 종살이하며 죄를 깨닫고 회개해야 하는 과정이 앞에 놓여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을 통해 찬양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신실함이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5.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면 영생을 얻습니다.(요 3:16)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요일 4:9-10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독생자를 화목제물로 주기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 사랑은 우리가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깨닫지도 못할 때에 준비된 사랑입니다. 롬 5:8에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셨다고 말합니다.

6. 세례를 받는 것은 이런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거기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고 그가 이루어 놓은 대속의 죽음과 부활의 능력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롬 6:4,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또한 창세전에 우리를 선택하여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고 그리스도 안에서 불러주신 하나님의 은혜(엡 1:4)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홍해바다를 지나며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했던 것처럼(사 43:2) 세례를 통하여 구원을 확신하고 간증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을 공동체 앞에서 확인하는 것입니다. 세례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성령의 기름 부음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도 함께 누립니다.

7.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선지자, 제사장, 왕의 모습으로 일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는 우리들도 그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선지자의 역할을 하며 성령과 말씀으로 하나님 나라를 알게 한 것처럼 우리도 기록된 성경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세상에 알려야 하겠습니다. 주께서 제사장처럼 하나님을 섬기고 죄인들을 죄에서 해방 받게 했던 것처럼 우리들도 제사장으로의 사명을 인식하고 세상을 위해 중보하며 복음을 전하여 구원받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해야 합니다. 또 그리스도께서 권세와 능력이 있는 왕으로 일하신 것처럼 우리들도 예수 이름에 있는 영적 권세를 사용하여 어둠의 세력을 깨뜨리고 주님 나라 확장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8. 베드로는 행 2:28에서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라고 했습니다. 회개한 성도에게는 성령의 임재와 도움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롬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 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 하시겠느뇨.”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와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으로 우리들을 인도하고 사용하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힘과 능력이 되며 환란 중에 피할 바위가 된다는 것을 경험하게 하실 것입니다. 롬 11:29에서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에게 모든 필요를 채워주신다는(마 6:33)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고 주 안에서 복된 한 해를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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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께 경배하는 기쁨 (마 2:1-11) 직원헌신예배

1. 교회는 1월 6일을 주현절로 지켜왔습니다. 주현, 공현, 에피파니라는 말로 표현했는데 예수님의 신성이 공개적으로 드러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동방 박사들이 왕으로 태어난 아기 예수를 찾아와 경배했던 것을 기념하는 것인데 정교회는 세례요한이 예수님에게 세례를 준 것을 기념하기도 합니다. 그 시간과 방법이 어떻든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 세상에 오셨음을 기억하는 것이고 또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임마누엘로 함께 하신다는 것은 확인하는 날입니다. 새해의 첫 주일에 우리교회를 섬기는 직원들이 주님을 왕으로 모시고 헌신을 다짐하기에 적당한 날입니다.

2. 그리스도께서는 이사야가 예언한대로 어둠이 가득한 세상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사 60:1-3) 절망하고 낙심하던 유다백성들에게 이사야는 메시아의 오심과 회복을 예언했고 이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려주셨습니다. 죄인들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 그를 믿는 자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만들었습니다. 스스로 의로워질 수 없는 죄인들이 그의 대속의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했습니다.

3.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변화된 삶을 살았습니다. 자기가 핍박하던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바울은 율법의 의가 아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그 이후 바울은 이방인에게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전하는 일에 평생을 헌신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 가운데서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셔서,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부요함을 이방 사람들에게 전하게 하시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안에 영원 전부터 감추어져 있는 비밀의 계획이 무엇인지를 모두에게 밝히게 하셨습니다.”(엡 3:8-9)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을 믿고 구원받게 되는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교회를 사용하여 모든 사람들이 이 복음을 듣고 구원받기를 원합니다. 교회는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존재하고 우리들의 헌신도 바로 이 일을 위한 것입니다.

4. 동방에서 별을 연구하던 박사들이 별의 안내로 태어난 왕을 찾아 경배하기 위해서 길을 떠났습니다. 길을 인도하던 별은 예루살렘 근처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박사들은 자기들의 지혜를 동원하여 왕궁으로 들어가 새로 태어난 왕이 어디 계신지를 물었습니다. 헤롯은 물론 주변 사람들은 그 소식에 크게 당황했습니다. 헤롯은 선지자들에게 물어 베들레헴에서 왕이 태어날 것을 알아냈고 박사들에게 왕을 찾으면 자기에게도 알려달라고 청했습니다. 박사들이 베들레헴으로 길을 떠나자 사라졌던 별이 다시 나타나 아기 예수께로 그들을 안내했습니다. 다시 나타난 별을 보고 그들은 크게 기뻐했습니다. 박사들은 아기 예수께 경배하고 그가 왕이며 메시아임을 공개적으로 드러냈습니다. 그들은 헤롯의 칼을 피해 다른 길로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5. 박사들은 헤롯에게도 표시하지 않은 존경을 태어난 아기 왕 예수에게 드렸습니다. 그들의 경배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최고의 경배였고 최고의 선물도 함께 드렸습니다. 왕을 알현할 때처럼 준비한 그들의 선물에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최고 권세 자에게 드리는 황금은 예수께서 왕으로 태어났음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사용하는 유향을 드려 그가 제사장적인 삶을 살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시신을 처리할 때 쓰이는 몰약은 그가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위하여 대신 죽게 될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헌신에도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왕이며 제사장이며 구원자로 믿고 그에게 최고의 정성과 희생을 드리는 헌신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배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절하고 우리의 희생을 드리는 것입니다. 소원을 성취하고 무엇을 얻기를 기대하는 것은 그 다음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주시는 은총이 있어야만 바로 경배하고 예배할 수 있습니다.

6. 성경은 하나님의 때와 예언의 성취를 강조합니다. 로마의 인구조사 명령 때문에 나사렛에서 지내던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을 찾아가 거기서 해산을 했습니다. 이 일로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미 5:2) 라는 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를 애굽으로 피신하게 한 것이나 헤롯이 죽은 후에 다시 이스라엘로 돌려보내 나사렛에 정착하도록 인도한 것도 예수님이 나사렛사람이라고 불리게 될 예언의 말씀을 이루게 한 것입니다.(마 2:23) 시므온과 안나도 태어난 아기 예수께서 약속의 성취로 오신 메시아라는 것을 알고 그를 찬양했습니다.(눅 2:25-38)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소식이 널리 알려지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을 사용하십니다.

7. 교회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을 전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사명을 위해 존재합니다. 이 부름에 응답하는 성도들이 함께 주님을 높이고 찬양하고 경배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박사들이 먼 길을 여행하는 고생을 기쁘게 참아낸 것처럼 우리들의 신앙생활과 헌신에도 그런 인내와 수고가 들어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들에게 태어날 왕을 만나려는 목적이 분명했기에 최고의 경배를 드리고 헌신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의 예배와 섬김에도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목적의식이 분명해야 하겠습니다. 이 일은 우리를 구원해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확신하는데서 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영적 생활을 통하여 성장하고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8. 올해 교회 표어를 “말씀으로 다시 새롭게”라고 정했습니다. 말씀을 가까이하지 않고 영적 생활을 유지하거나 영적성장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각자의 은사와 부름에 따라 일을 분담하여 왕이며 주인이신 주님을 기쁘게 하는 한해가 되기를 원합니다. 혼돈과 두려움이 가득한 이때에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배우고 가르치는 일을 통해서 주님 주시는 평강을 누리며 교회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기를 원합니다. 책임을 맡은 직원들은 한마음 되어 주님을 닮는 일과 서로 섬기는 일에 앞장서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의 바른 헌신을 통해 주님을 기쁘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주님의 이름을 내걸고 있는 우리교회의 위상도 새로워질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왕께 경배하는 기쁨을 마음껏 누리는 복된 한 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4. 교회는 구원을 경험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모인 공동체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모인 사람들입니다. 우리같이 약한 자들을 충성스럽게 여겨 주시고 구원받을 때까지 인내하고 기다려주신 은혜에 감사하여 모인 것입니다. 아직 완전하지 못하지만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여 주님을 자랑하고 선전하기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님 닮기를 소원하고 자기를 포기하고 주님을 높이는 생활을 연습하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은 제자 디모데에게 받은 은사를 분명히 하고 직임에 전심전력하라고 권면했습니다.(딤전 4:15-16) 이것처럼 오늘 헌신예배를 드리는 직분자들은 구원의 도리를 바로 알고 그 은혜에 감사하여 주어진 일에 전심전력하며 주님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먼저는 구원의 확신에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선택하고 불러 구원하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에 대하여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의 핵심을 바로 알려줄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의 기초위에 자기 분야의 실력을 키워야 합니다. 예배 선교 교육 봉사 새가족 음악 재정 분야에서 협력하며 전문성을 키워가는 것입니다.

5. 바울은 갈 2:9에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과 같은 자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측근에서 더 많이 생각하고 경험하며 예수님을 섬긴 제자들입니다. 그들이 예루살렘 교회를 지탱했고 큰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우리교회의 직분자들은 우리교회를 세우는 기둥입니다. 이들의 수고와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 교회가 여기 있습니다. 주께서 여러분의 수고를 알아주시고 힘주시기 원합니다. 집사 권사 장로의 직임은 서열이나 계급이 아니라 주님의 몸인 교회를 세우기 위해 일을 분담한 것입니다. 기둥은 흔들리지 않아야 하고 자기 자리를 묵묵하게 지켜야 합니다. 서로 비교할 일도 없습니다. 집의 무게를 다 받쳐 들고도 견뎌내는 책임과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기둥이 흔들리면 집이 무너집니다. 우리를 보스톤중앙교회의 직분자로 세워주신 것은 교회를 든든하게 세워서 복음을 전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 자리를 굳게 지키는 기둥이 되어야 합니다.

6. 교회는 협력으로 세워집니다. 롬 12장의 말씀처럼 많은 지체가 한 몸을 이룹니다. 이처럼 다양한 은사를 가진 성도들이 협력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입니다. 엡 2:20-22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그리스도께서 기초가 되고 우리는 그 위에 세워진 기둥으로 서로 연결되어 하나님이 거하는 집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공동체 훈련도 필요하고 서로에게 대한 책임도 중요합니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행해야 합니다. 서로 존중하고 화목해야 합니다.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야 합니다(롬 12:11) 교회를 위한 협력은 열심히 모이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모든 일에 주인의식을 가진 일군이 되어주십시오. 그리고 정성껏 헌금하여 사역의 필요를 채우는 것입니다. 그래야 말씀에 든든히 서는 교회가 되고 복음을 전하는 영적 사역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7. 이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분은 성령님입니다. 우리 안에 거하는 성령과 함께 살며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이 그래서 필요합니다. 말씀을 읽고 공부하고 순종하여 우리와 함께 하는 성령님을 기쁘게 하는 신앙생활이 되게 합시다. 말씀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생기고 내 판단으로 신앙생활을 하기 쉽습니다. 올해 교회목표를 ‘말씀으로 다시 새롭게’라고 정한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말씀이 우리를 인도해 가도록 자기훈련에 힘써 한 해 만큼 더 성숙해지고 성장하는 새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1) 라는 칭찬을 듣도록 함께 노력합시다. 주의 은혜가 함께 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