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Sunday Ser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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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바른 자세 (렘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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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 감사하라 (시 136) 11/20/22 추수감사절

1. 시편 136편은 여호와께 감사하라는 노래로 가득합니다. 지존하고 전능하며 세상 모든 것을 주관하는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들의 필요를 공급해주고 문제를 해결해주어 그들이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는 것을 마음껏 자랑하도록 돌보아주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세어보면 그의 신실하고 인자하심에 대하여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바울도 살전 5:16-18에서 모든 일에 기뻐하고 기도로 항상 하나님과 교통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가르쳤습니다.

2. 예수 믿는 우리들은 신실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깁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그의 백성들을 위로할 때에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했습니다.(사 43:7) 부모는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합니다. 손자손녀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는 조부모의 마음을 보면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갈 3:26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아버지의 보호와 인도를 받고 사는 자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하려고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주셨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누리게 되었습니다.(시 23:6)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십자가에서 자신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롬 5:8)

3. 구약시대에 하나님께 드리던 여러 제사 중에 화목제사가 있습니다. 이 제사는 하나님과 평화를 유지하고 또 사람과 사람사이에 화목을 유지하기 위해 드리는 제사였습니다. 이 제사는 다른 제사와 달리 제물의 일부를 함께 나누어 먹으며 하나님의 식탁에서 교제하는 의미가 있는 제사입니다. Peace Offering 이라고 불리는 화목제사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여행이나 전쟁을 마친 후에 혹은 질병에서 회복된 후에나 특별한 은혜를 경험했을 때에 감사하는 감사제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하나님께 약속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서원제도 드렸습니다. 또 특별한 일이 없을 때라도 자원제 혹은 낙헌제를 드렸습니다. 이런 여러 목적을 갖는 화목제사는 하나님과 화평을 나누고 사람들 간에도 친목을 다지게 했습니다.

4. 에베소서는 그리스도께서 화목제물이 되어 하나님과 죄인들을 화목하게 했다고 설명합니다.(엡 2:14-18)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중보자가 되어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십니다. 우리들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만드는 일에 부름을 받았습니다.(고후 5:18) 화해의 직분은 예수님이 명령하신 전도의 명령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제물을 드리기 전에 우리에게 불편한 관계에 있는 형제가 있다면 먼저 화목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마 5:23-24) 그러므로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방법이 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설명했습니다.(롬 14:17) 성령 안에서 화목하게 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5. 성령을 충만하게 받은 처음 교회의 신자들은 행 2:46~47을 보면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잘 구성된 예배의식은 없었지만 그들은 성령의 감동을 따라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서로 사랑하고 찬송했습니다. 그들의 모임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찾아볼 수 없는 사랑의 섬김이 그들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주님께서 날마다 새로운 사람들이 찾아와 구원을 받게 했습니다. 교회의 힘은 함께 모이는데 있습니다. 구원받은 확신과 감격을 가진 사람들이 자주 모여 사랑을 나누는 것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성령의 도움으로 하나님을 높이고 예배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들끼리 함께 모여 서로 사랑하고 믿음을 굳게 다집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의 능력을 나누어주기를 노력합니다.

6. 이런 찬송시가 있습니다. 1. 날 구원하신 주 감사 모든 것 주심 감사/ 지난 추억인해 감사 주 내 곁에 계시네/ 향기로운 봄철에 감사 외로운 가을날 감사/ 사라진 눈물도 감사 나의 영혼 평안해/ 2. 응답하신 기도 감사 거절하신 것 감사/ 해처럼 높으신 감사 모든 것 채우시네/ 아픔과 기쁨도 감사 절망 중 위로 감사/ 측량 못할 은혜감사 크신 사랑 감사해/ 3. 길가의 장미꽃감사 장미꽃 가시감사/ 따스한 사랑의 가정 일용할 양식 감사/ 기쁨과 슬픔도 감사 하늘 평안을 감사/ 내일의 희망을 감사 영원토록 감사해/ 이 노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노래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주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성도는 고난 속에서도 감사합니다.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배우게 되기 때문입니다. (시 119:71) 그래서 우리들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기쁨으로 제사를 드리겠습니다. 주는 선하시니 내가 주의 이름을 찬양하겠습니다.”(시 54:6) 라고 말입니다.

7. 오늘 예배를 통하여 받은 은혜를 세어보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다짐이 새로워지기를 원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더 많이 나누기를 바랍니다. 감사절의 풍요로움이 우리들의 식탁에만 머물게 하지 말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외로운 사람들을 초청하여 함께 나누는 기회로 삼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찾는 자에게 만족함을 주시는 아버지입니다. 시 34:10은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께 넘치는 감사를 드림으로 영과 육에 풍성한 은혜와 복을 받아 누리기를 바랍니다. 아픔과 상처가 많은 이 시대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훈훈한 사랑을 맛보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간증을 통하여 많은 사람이 소망을 찾고 복을 누리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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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기억하자 (신 8:1–10)

1. 광야를 지나던 이스라엘은 목이 곧은 백성이었습니다.(신 9:6, 출 32:9) 가나안에 들어가 그 땅을 정복하게 되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지만 그것을 꿈꾸거나 거기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광야에서 문제를 만날 때마다 하나님의 생각을 묻기보다는 원망하는 자세를 보였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문제들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모든 것이 열악한 광야에서는 그렇다 치더라도 가나안에 들어가 안정과 풍요를 누리면서도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가나안 원주민들을 풍성하게 만들어준 가나안의 신이 하나님보다 힘 있어 보였습니다. 모세는 광야생활이 거의 끝나는 때에 가나안이 눈에 보이는 곳에서 광야에서 태어난 젊은 세대에게 지난 역사를 잊지 말고 기억하라고 설교합니다.

2. 2-3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그들을 겸손하게 낮추어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며 말씀에 순종하도록 훈련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먹고 마실까를 염려하기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요구하신 예수님의 가르침과 같습니다.(마 6:33) 애굽에서 430년을 살며 뼈 속까지 애굽 사람이 되었던 그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는 정화기간이었습니다.

3. 사람은 극한 상황에 처하면 그럴듯하게 포장되어 있던 겉모습이 벗겨지고 속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훈련은 혹독할수록 도움이 됩니다. 제가 선교사로 훈련받을 때에 6가정이 한 집에서 방 하나씩 나눠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치약을 짜는 일이나 설거지 하는 것 같은 사소한 문제로 충돌이 생겼습니다. 영혼구원을 위한 선교사의 삶이 자기습관과 자기주장을 버리고 서로용납하고 사랑하는 것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죽기까지 주님을 따르겠다고 큰소리했지만 자기에게 불리한 상황이 닥치자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마 26:35) 이방인 고넬료의 가정에 동일한 성령께서 강림하는 것을 보고나서야 이방인을 무시하던 편협한 생각을 버리고 그 집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었습니다.(행 11:17) 내가 죽어야 하나님을 볼 수 있고 말씀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4. 하나님께서는 광야 40년을 사용하여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훈련했습니다. 풀무불이 은을 단련하여 순결하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믿음위에 굳게 세우려고 여러 어려움을 주셨습니다.(벧전 4:12) 먼지만 날리는 광야에서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감정은 메말라버렸고 어떤 문제가 생기면 쉽게 흥분하고 지도자를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소망 없는 환경에서 그들의 눈을 하나님께 돌리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40년 동안 신실하게 그들을 먹였고 그들의 옷과 신발이 헤지지 않게 돌보셨습니다. 문제를 만날 때마다 해결책을 주셨습니다. 그러니 마땅히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말씀에 순종해야 했습니다.(신 8:5-6) 그러나 아쉽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믿음보다 당장의 괴로움이 더 컸습니다.

5. 모세는 가나안의 아름다움을 강조했습니다. 삭막한 광야에 비하면 가나안은 초지와 농지가 있는 아름다운 곳이며 젖과 꿀이 흐르는 곳입니다. 언제든지 마실 수 있는 물이 있고 제철에 열리는 농작물이 있고 땅 속에는 광물질이 있으니 천국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장차 들어갈 아름다운 가나안을 기대하며 현재의 고난을 이겨내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나안에 들어간 이후에도 풍요롭게 살게 하신 하나님을 잊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의 고난과 특별한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14절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17절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는 말씀을 보면 그들이 믿음으로 살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6.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갖도록 절기를 지키게 했습니다. “아빕월을 지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유월절 예식을 행하라. 이는 아빕월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밤에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라.”(신 16:17) 애굽에서 나오던 날을 새해의 첫 달로 정하여 기념하게 했습니다.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말라 죽음을 면했던 것을 기억하기 위해 유월절을 지키게 했습니다. 희생짐승의 피와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생명을 얻었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피는 십자가에서 흘린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와 같습니다. 우리의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새 생명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는 것처럼 더 이상 애굽의 노예가 아니라 새 생명을 얻은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는 절기였습니다.

7. 보리농사를 마치고 맥추절을 지켰습니다. 한해 농사를 마치면 광야생활을 기억하며 초막을 짓고 한 주간을 밖에서 보내며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안식일을 구분하여 쉬게 했으며 안식년에는 농사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먹을 것을 공급해주셨습니다. 십일조를 드려 공동체의 필요를 채우게 했습니다. 자기의 힘과 능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광야에서 만나를 먹여주신 그 하나님이 먹여주신다는 것을 경험하게 했습니다. 이런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감사는 그 하나님을 인정하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각종 위험에서 건져주시고 먹이고 입혀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게 했습니다. 신 16:3 “너의 평생에 항상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을 기억할 것이니라.” 때마다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도록 절기를 주신 것입니다.

8. 다음 주일은 추수감사주일로 지킵니다. 가나안을 위하여 광야의 훈련기간을 주셨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천국생활을 맛보고 준비하도록 교회를 주셨습니다. 오늘의 상황이 쉽지 않지만 장차 받을 하늘 상급을 기대하며 믿음으로 잘 이겨냅시다. 주님 재림의 날이 가까울수록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기고 교회를 든든하게 세워야 하겠습니다. 스펄존 목사님은 “눌린 자들을 위한 격려”라는 설교에서 “달빛에 감사하십시오. 햇빛을 받을 것입니다. 햇빛에 감사하십시오. 일곱 날의 빛과 같은 하늘의 빛을 받을 것입니다.”라고 감사를 강조했습니다. 빌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이스라엘을 지켜주신 하나님이 오늘 우리와도 함께 하십니다.(마 28:20) 그러니 우리도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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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망 예수 그리스도 (벧전 1:1-15)


1. 베드로 전서는 AD 64년쯤에 로마에서 기록되었습니다. 황제숭배를 거부하는 기독교인들이 핍박을 받던 때였는데 네로황제는 로마에서 일어난 큰 화제의 원인을 교회에게 돌리고 본격적으로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는 소아시아에 흩어져 살던 성도들이 이런 박해를 견딜 수 있도록 믿음의 근거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두게 했습니다. 외부에서 오는 핍박을 하나님 나라의 소망으로 이기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를 소망과 위로의 편지라고 부릅니다. 교회와 세상 혹은 거룩함과 속된 것 사이에서 갈등할 때나 지금처럼 모두가 힘들어하는 때에는 초심으로 돌아가 주님께로부터 소망을 찾아야 합니다.

2. 황제의 교회 박해는 시골까지 확대되었고 베드로와 바울도 이때에 순교당한 것으로 봅니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은 교회를 미워합니다. 어둠이 빛을 싫어하듯 세상은 교회를 무시하고 불공정한 평가를 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죽음을 감지한 베드로는 현재의 고난이 장차 받을 영광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며 하늘소망에 마음을 두었습니다. 사실 고난은 힘들고 어렵지만 지나고 뒤돌아보면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믿음도 성장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울도 고난 중에서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고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된 인격을, 연단된 인격은 희망을 갖게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롬 5:3-4)

3. 소아시아에 흩어져 살던 성도들은 고향을 떠난 나그네였고 전통적으로 믿던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가족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사회에서 제구실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금도 모슬렘 신자가 개종하면 대개의 경우는 고향과 친척을 떠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족의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하여 가족으로부터 살해를 당하기 때문입니다. 황제들은 기독교인의 사회적 지위를 인정하지 않았고 가진 것도 빼앗고 노예로 부렸습니다. 때문에 배교자들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공산치하와 일제치하에서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새로운 종교 활동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인생의 주인을 바꾸는 일이며 목숨을 내거는 일입니다. 불이익과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더 가치 있는 생명을 선택하는 일입니다.

4. 성도가 누릴 기업에 대한 이해가 확실하면 방향을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기업이라는 말은 구약의 12지파에게 나누어준 땅과 삶의 터전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땅이며 후손들이 선물로 받은 땅입니다. 신약에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 성도들이 누리는 영적인 축복을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 되고 새 언약의 중보자가 되어 하늘나라의 기업을 갖게 되었습니다.(히 9:15) 그것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유업입니다.(벧전 1:4) 베드로는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던 사람이지만 성령 충만을 경험한 후에는 능력 있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보다 하늘나라의 기업을 더 귀하게 여겼고 복음 때문에 받는 잠깐 동안의 고난을 장차 누릴 영광을 바라보는 소망으로 이겼습니다.(롬 8:18)

5.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습니다. 그러나 상급과 면류관은 주님을 섬기며 믿음으로 행한 일에 대한 보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할 때에 모두가 계산대 앞에 서게 될 것인데 믿음을 지킨 성도들은 생명의 면류관을 받고 하늘나라의 잔치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여기서 거룩한 백성답게 살아야 합니다. 어떤 일을 당해도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사욕을 버리고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벧전 1:14-15) 거룩하게 되는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는 것이며 말씀에 순종할 때에만 가능합니다.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보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것에서 가능합니다. 또한 진리로 깨끗하게 된 성도는 형제사랑하기를 힘씁니다. 우리가 거룩해졌다는 것이 형제사랑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벧전 1:22)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주님의 명령입니다.(눅 10:27)

6. 성도는 진리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몸부림합니다. 진리 안에 거할 때에 비로소 우리의 생각이 건전해지고 인격도 성숙해지고 영이 깨끗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도움을 더욱 구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성부 하나님을 증거 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것처럼 성령님은 오셔서 그리스도를 증거 하십니다.(요 15:26)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시고 우리가 바로 기도하지 못할 때라도 친히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십니다.(롬 8:26) 때로는 우리를 질책하고 다듬어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여 거룩한 하나님의 마음을 품도록 합니다. 형제를 사랑할 수 있는 힘도 주십니다. 고난 중에 부르짖는 이스라엘의 기도를 듣고 내려오시어 압제자의 손에서 구원해 주신 것처럼(출 3:7-8) 성령께서는 성도들안에 오셔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로 살게 합니다.

7. 지난 주간에 일어난 사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쉽고 안타깝고 사전에 통제하지 못한 정부와 공권력의 무능함에 화가 납니다. 그러다가도 우리도 그런 무능한 사람들 중의 하나라고 생각되어 마음이 눌렸습니다. 그나마 탄광에 매몰되었던 사람들이 살아와서 숨통이 조금 트입니다. 매몰되어 갇혔지만 둘이 서로 의지하며 구조될 수 있다는 소망을 놓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도는 세상에 선한 영향을 주어야 합니다. 재림을 기다린다고 세상을 외면하거나 무책임하게 은둔생활을 할 수는 없습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며 자기 역할을 해야 합니다.(롬 12:15) 오늘 각 기관의 총회가 있고 화요일에는 미국의 중간 선거가 있습니다. 이런 일들에 함께 하는 것도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협력하는 것입니다.

8. 우리의 소망은 십자가와 부활과 재림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 우리도 그분처럼 되고 그분의 참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소망을 갖고 자신을 깨끗하게 지켜야 하겠습니다.(요일 3:3) 성도는 하나님을 섬기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중보 하는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벧전 2:9) 고통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제시해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죄에서 깨끗하게 했고(요일 1:7)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여 새로운 소망을 얻게 되었다고 말해줍시다.(골 1:20) 어렵고 힘든 때일수록 서로 격려하고 사랑하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오늘 열리는 기관별 총회가 시대의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고 그것을 위해 협력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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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성경으로 (딤후 3:15-17)


1. 종교개혁의 물결이 유럽을 휩쓸 때 영국은 교회제도와 의식은 카톨릭의 것을 그대로 남겨두는 중도적 개혁을 시도했습니다. 대다수에게는 지지를 받았지만 철저한 개혁을 바라던 청교도들에게는 불만족스러웠습니다. 만인사제를 주장하는 개혁자들과 교직자와 평신도로 구분하여 복장도 달리하며 교회를 운영하던 기득권자들과 부딪혔습니다. 파면은 물론 화형까지 당해야 했습니다. 결국 분리를 주장하는 청교도들은 제도화된 국가교회를 떠나 성경적인 신앙생활을 하기위하여 신대륙을 찾게 되었습니다. 1620년에 메이플라워호를 탔던 100여명의 사람들은 첫해 겨울을 지나며 절반이 죽는 어려움을 겪으며 플리머스에 정착했습니다. 십년 후 1630년에는 잔 윈트롭이 700명의 사람들을 모아 11척의 배에 나눠 타고 와서 보스톤에 정착했습니다.

2. 윈트롭은 하나님께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 통치자와 그 질서를 따르는 각양의 사람들을 그의 지혜와 섭리가운데 사용하신다며 각기 다른 사람들이지만 새로운 곳을 찾아왔으니 하나가 되어 저 언덕위에 도시를 세워 모든 세상에게 본을 보이자고 했습니다. 제자들에게 세상의 빛이 되라며 산위의 동네는 잘 보인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했습니다.(마 5:14) 초대교회 성도들이 서로의 필요를 채워준 것처럼 서로 돌보며 경제생활에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부자가 되려는 욕심을 내려놓게 했습니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할 때 한마음이 되어 협력했던 것처럼 하나가 되자고 했습니다. 모세의 신명기 설교에서 복과 화가 앞에 있으니 선택하라고 했던 말씀을 인용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생명을 선택하자고 격려했습니다.

3. 그들은 말씀에 순종하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 거듭난 성도들을 등록교인으로 받았고 그렇게 등록된 교인만이 정치에 참여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습니다. 가정 예배를 철저하게 드렸고 가정에서부터 자녀들이 예수 믿고 거듭나도록 가르쳤습니다. 이것이 보스톤의 시작이고 미국역사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청교도의 신앙정신은 희석되고 다원화된 사회로 변했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 이민 온 사람들이 처음 플리머스에 세웠던 교회는 한 세기가 지나면서 유니테리안이 되었고 그 앞마당에 개척자들의 신앙정신을 계승하기 위해서 다른 회중교회가 세워졌지만 이 교단마저도 지금은 쇠퇴해가고 있습니다.

4. 교회도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는 사람들의 형편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집니다. 우리 시대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분별해야 할 이유입니다. 동성애 문제로 미국장로교회와 미국연합감리교회가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말씀 본래의 의미를 붙잡고 씨름하지 않으면 유행에 휩쓸려버리기 쉽습니다. 독일의 루터, 스위스의 츠빙글리, 프랑스의 존 칼빈 같은 개혁가들은 성경에서 벗어난 교회를 보았고 개혁을 외쳤습니다. 수많은 목사와 성도들이 성경적인 교회를 꿈꾸며 말씀과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려는 운동에 동참했습니다. 루터는 갈 3:11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라는 말씀에 도전을 받아 교회가 개혁되어야 문제를 적어 교회정문에 게시했습니다.

5. 루터는 사제들에게 죄를 용서하는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주님께서 주시는 죄의 용서를 선언하는 사람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죽은 자를 위한 죄의 용서는 더구나 잘못이고 그것을 빌미로 헌금 통에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날 때 연옥의 혼이 죄 용서를 받는다고 가르치며 면죄부를 판매하는 것은 큰 잘못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교구의 힘은 막강했고 자리를 두고 거래가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베드로 성당을 짓기 위한 건축비를 핑계로 면죄부를 팔았지만 그것은 부를 축적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루터는 가난한 신자들의 헌금보다 차라리 많은 재산을 가진 교황이 자기 돈으로 성당을 지으면 되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제도권에 숨어 평안을 설교하며 부를 축적하려는 사제들을 비난했으며 십자가와 고난을 통해 천국을 소유하도록 바로 가르치라고 주장했습니다.

6. 당시 신자들은 성경을 가질 수 없었기에 진리를 구분하지 못하고 교회가 가르치는 대로 따랐습니다. 구원을 위해서 믿음 위에 선행을 실천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미사는 십자가의 죽음을 재연하는 피 없는 제사이기에 사제가 집례 해야 하고 사제가 축복할 때에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마리아 숭배나 성자들에게 기도하는 것, 교황에게는 죄가 없다고 가르치는 것들은 성경보다 교회 전통에 따른 것입니다. 성경을 바로 알아야 분별할 수 있습니다. 교리나 전통이 성경보다 앞설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누가 기도했더니 금이빨이 되었다든지 입신하고 방언하고 넘어졌다는 현상에 솔깃합니다. 그런 능력 행하는 일들은 다른 종교에도 나타납니다. 왜 예수만 주장하고 편협한 신앙을 갖느냐면서 합리적이고 다양한 신앙의 형태를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말씀을 바로 알아야 참과 거짓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7. 사제들의 손에만 들려있던 라틴어 성경이 각자의 언어로 번역되고 출판되어 일반신자들의 손에 들려지게 된 것이 개혁의 힘이었습니다. 성경을 읽고 배우고 실천하자 분별력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배우고 따르는 사람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게 되었다는 것과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대신 죽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 배웠습니다. 하나님이 준비한 의롭게 되는 길을 믿음으로 걷게 되었습니다. 개혁가들이 ‘오직 성경으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성경적인 교회가 되기를 추구했던 것처럼 오늘의 교회도 날마다 개혁되어야 합니다. 살아있는 물고기가 물살을 거슬러 가는 것처럼 성도는 세속화의 흐름과 맞서 싸워야 합니다.

8.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합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은 우리를 교훈하고 책망하여 바르고 의롭게 살도록 안내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만들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합니다. 성경을 읽어야 예수님을 만납니다. 영적 생명을 가진 존재로 다시 태어납니다. 인격이 변합니다. 하나님이 주는 능력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에 기초한 신앙생활을 하며 자신을 돌아보자는 것입니다. 개혁정신이 느슨해지면 하던 대로 편안하게 한곳에 머물게 됩니다. 언제 상하는지도 모르게 변질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조명해주시는 은혜를 구하며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기자는 것입니다. 한번쯤은 성경을 꼼꼼하게 정독해 봅시다. 또 날마다 읽고 묵상하며 주의 음성을 듣는 기쁨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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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깊이를 더하라 (눅 18:1–14)

1.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기도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생활입니다. 구세군을 창시한 윌리암 부스는 다가오는 시대의 가장 큰 위험은 성령 없는 신앙생활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지 못한 기독교나 철저한 회개가 없는 죄의 용서, 거듭난 확신이 없는 구원, 지옥이 없는 천국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능력이 빠져버린 종교형태를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외면하는 시대에 사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삶의 방향을 찾고 기도로 성령 하나님과 깊이 교통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입니다.

2.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아직도 하나님나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세속적인 권세를 탐하는 제자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않기를 바라며 한 과부의 강청하는 기도를 비유로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사람도 귀하게 여기지 않는 불의한 재판장이 자기 원한을 풀어달라고 자주 찾아와 강청하는 과부의 청을 결국 들어줬다는 얘기입니다. 그녀가 얼마나 집요하고 간절하게 요청했던지 들어주지 않으면 계속 괴롭게 할 것을 염려하여 청을 들어주었습니다.(눅 18:2-5) 예수님은 악한 재판장도 그렇게 응답했다면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눅 18:7)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에서 믿음으로 사는 것은 고통스런 일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기도하고 낙심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3. 예수님은 또 스스로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기득권자들에게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비유로 말했습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기도하기를 자기는 다른 사람들처럼 토색하거나 불의를 행하지 않았고 간음하지 않았다고 자기 의를 드러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고 십일조도 드린다고 자랑했습니다. 외형적으로 보면 그는 모범적인 신앙인의 모습을 갖춘 사람입니다. 한편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18:13)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받은 사람은 바리새인이 아니라 세리였습니다.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진다고 하시며 어린아이처럼 순전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나라를 소유할 수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4. 예수님의 지상사역은 하나님나라를 선포하고 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천국복음을 전하고 병자를 치료하고 귀신에게 묶인 것을 풀어주셨습니다. 또 제자들에게 그것을 실습하고 전하게 했습니다. “때가 찾고 하나님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는 말씀으로 사역을 시작하신 예수님은 제자들도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전하게 했습니다.(눅 10:9) 부활 후에도 사십일 동안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했습니다.(행 1:3) 사도행전을 보면 제자들도 그리스도께서 하던 일을 그대로 행했습니다. 빌립은 사마리아 성에 들어가서 하나님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고 믿는 자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행 8:12) 바울도 하나님나라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전했습니다.(행 20:25)

5. 예수님이 가르쳐준 하나님나라는 하나님의 법이 적용되고 하나님이 주인이 되는 나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우리들이 구원받았다고 표현하는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최고의 우선순위로 놓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들은 장차 들어갈 천국을 기다립니다. 또한 지금 여기서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다스림을 맛보며 삽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나라는 이미 우리 안에 임한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답게 자기 욕심과 싸우고 사단의 공격에 맞서 싸우는 영적생활을 연습합니다.(벧전 5:8-9) 세속의 물결을 막아내고 천국백성의 감격을 누리고 나누는 것이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알려주신 하나님나라이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만들어가고 있는 하나님나라입니다.

6. 예수님은 공적사역을 시작하면서 40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사역하는 바쁜 중에도 새벽에 기도했고(막 1:35) 산에 올라가 기도했으며(마 14:23) 밤을 새워 기도했고(눅 6:12-13) 한적한 곳을 찾아 기도했습니다.(눅 5:16) 십자가를 지기 전날 밤에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했습니다.(눅 22:44) 십자가에 달려서도 자기를 매단 죄인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눅 23:24) 자신의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며 기도했습니다.(눅 23:46) 지금도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서 성도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롬 8:34) 예수님은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드러나기를 원하는 순종하는 아들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했습니다. 기도를 가르쳐주신 것도 자기 욕심을 채우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일원으로 능력 있게 살게 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기도했다면 하물며 우리는 더욱 기도해야 마땅합니다.

7. 요한은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요일 5:14)고 했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은 신나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특권을 하나님나라와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것에 사용해야 합니다. 마 6:31-33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부자 청년에게 자기 소유를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주님을 따르라고 한 것이나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한 말씀들은 하나님나라는 우리들이 바라는 세속적인 풍요나 성공보다 더 크고 가치 있는 것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우리가 자기 필요보다 하나님나라를 먼저 구하고 기도해야 할 이유입니다.

8.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요 14:27)라고 했습니다. 문제투성이인 삶의 환경에서 어떻게 평안을 누릴 수 있을까요? 우리의 속마음과 필요한 것을 미리 아시는 주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정치지도자이면서도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 쉬는 죄를 범하지 않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가르칠 것이라고 했습니다.(삼상 12:23) 백성을 돌보는 자리에서 기도하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하겠다고 결단한 것입니다. 기도로 하나님과 깊이 교통하며 자신의 한계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바빠서 기도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교만한 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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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익한 종의 유언 (신 4:1-10, 눅 17:5-10) 선교헌신예배 이경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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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성장과 예배 (눅 17:11–19 딤후 2:1–13) 10/9/22

1. 바울은 복음을 듣는 사람들이 영광스러운 구원을 받게 될 것을 기대하고 복음을 전하며 당하는 고난을 견뎠습니다. 그는 주님과 함께 죽으면 주님과 함께 살 것이고 참고 견디면 주님과 함께 다스릴 것이고 주님을 모른다고 잡아떼면 주님도 우리를 모른다고 외면할 것이라고 했습니다.(딤후 2:10-12)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뒤따르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뜻을 드러냈던 것처럼 우리도 성령의 도움으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뒤따릅니다.(막 8:34) 군사훈련을 통하여 잘 준비된 군인이 되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생활도 주님을 온전하게 따르기 위한 영적훈련이 필요합니다.

2. 제복을 입은 군인은 나라에 충성해야 하기 때문에 사생활에 얽매일 수 없습니다. 바울이 살던 때의 경기장은 요즘 같은 스포츠경기보다는 투사들의 싸움터였기에 살아남는 자만이 승자가 되었습니다. 농부는 제때 파종하고 땀 흘려 수고해야만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딤전 2:4-6) 바울이 디모데에게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고난을 견디고 성도들을 진리의 말씀으로 훈련시켜 준비된 자세로 주님을 섬기게 하라고 했습니다. 구원 받은 우리들은 장차 누릴 영광스런 새 하늘과 새 땅(벧후 3:13)을 기다리기에 잠시 받는 고난에 흔들리지 않고(롬 8:18) 영적생활을 지속합니다. 하나의 건물이 지어져 가듯이 교회공동체 안에서 성도들이 서로 연결되어 도움을 주고받으며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갑니다.(엡 2:22) 그리스도와 연합된 유기적인 관계에서 양분을 먹고 성장해 갑니다.

3. 신앙생활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영적성장이 멈추면 제자리를 맴도는 명목상의 신자가 됩니다. 신자로 불리기는 하지만 영적능력이나 영향력이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성행하는 이단의 가르침과 진리를 구분할 수 없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열심이 있는 사람은 이단에 넘어가기 쉽고 반대로 흔들림 없는 사람은 자리를 지키기는 하지만 실상은 죽은 나무처럼 무능한 신자가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게 그리스도의 완전한 수준까지 성장하라고 했습니다.(엡 1:17-19) 그것은 성령의 도움으로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로 부름 받은 것이 무엇이며 받을 상급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지를 깨닫고 성령의 능력으로 영적생활에서 승리하라는 것입니다.

4. 영적성장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예배에서 시작됩니다. 열 명의 문둥병자들이 예수님께 치료해 달라고 간청했을 때에 예수님은 그들의 청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제사장에게 보내 병이 나은 것을 확인받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이미 그들을 치료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제사장에게 가는 중에 병이 나은 것을 알았고 그 중의 한 사마리아 사람이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즉시 예수님께로 돌아와 엎드려 감사했습니다.(눅 17:16)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어서 제사장에게 가기 바빴던 아홉 명과는 달리 사마리아 사람은 영과 육을 살리는 주님에게 돌아와 감사했습니다. 예수님을 우선하는 그의 믿음이 그를 구원했습니다. 감사하는 일은 성도에게 기대하는 하나님의 뜻입니다.(살전 5:18) 사슴이 시냇물을 갈급함으로 찾는 것처럼 주님을 간절하게 찾는 것이 예배입니다.(시42:1)

5. 예수님은 다른 가르침에서 바리새인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를 말씀했습니다. 바리새인은 기도할 때에 서서 손을 들고 거룩한 목소리로 자기는 율법을 지키고 선을 행한다고 자랑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던 세리는 얼굴도 들지 못하고 엎드려 겸손히 회개하고 기도했습니다.(눅 18:10-14) 예수님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고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십니다.(벧전 5:5) 겸손한 사람에게서 영적생활의 변화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받은 우리는 구원 이후에도 배운 말씀대로 살고 우리의 생각과 습관을 그리스도에게 맞추어가는 것을 훈련합니다. 이것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이며 우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는 영적예배입니다.(롬 12:1-2)

6.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 풍성히 살아 있게 하십시오. 온갖 지혜로 서로 가르치고 권고하십시오. 감사한 마음으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여러분의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십시오. 그리고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에게서 힘을 얻어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골 3:16-17) 이런 영적 생활을 위해서 말씀을 가까이 하고 기도생활과 섬기는 일을 반복하여 훈련하는 것입니다. 삶의 우선순위를 혼동하지 않고 우리를 인도하는 성령께 순종하기 위해서 입니다. 예배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성령의 도움으로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요 4:24) 종교의식이면서도 우리가 사랑하는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하는 시간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천군천사와 함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 양께 있도다.”(계 7:10)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 양께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계 5:12-13)라고 예배하는 그 기쁨을 여기서 맛보는 것입니다.

7. 내가 주인 되어 살던 사람이 주님을 주인으로 모신다는 것은 큰 변화입니다. 주님을 더 깊이 경험하고 닮기 원하는 사랑의 관계에 들어선 성도들은 장차 누릴 영광스러운 상급을 바라보는 순례자입니다. 사도 요한은 끝까지 이기는 자가 받을 복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계 2:7) 둘째사망의 해를 받지 않으며(계 2:11)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누리고(계 2:26)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며(계 3:5) 하나님의 보좌에 함께 앉게 된다(계 3:21)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에서 해방된 것도 감사한데 하늘 영광을 누리며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되는 감격과 기쁨을 하나님께 표현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께서 기르는 양이라고 소유권을 인정하고 감사하며 찬송하는 것입니다.(시 100:3-4)

8. 팬데믹 이후의 흐트러진 예배생활이 다시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온라인예배로는 현장에서 느끼는 성령의 감동을 함께 경험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함께 소리 높여 부르는 찬송에서 얻는 힘이 약해졌습니다. 자기 일을 하면서 예배도 드릴 수 있다는 편리함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변화를 위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온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겠습니다.(마 22:37) 우리의 예배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 교제하고 성령의 감동을 통하여 들려주시는 말씀을 듣고 응답해야 하겠습니다. 예배가 회복되면 영과 육의 복을 누리게 됩니다. 교회공동체도 힘 있게 세워지고 하나님의 구원의 뜻을 세상 앞에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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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켜야 할 것들 (합 1:1-4 딤후 1:1-14) 10/2/22

1. 몇 년 전에 서둘러 운전하다가 교통법규를 위반하여 티켓을 여러 번 받았습니다. 결국 하루 종일 교육을 받아야 했고 시험에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덕분에 자동차 보험료도 더 내고 아직까지도 그 벌점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교육을 받으면서 듣기로는 2년 안에 티켓을 받으면 다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말 때문에 운전석에 앉을 때마다 조심하게 되었습니다. 법은 서로의 유익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고 모두가 지킬 때에 안전과 유익을 누립니다. 법질서가 바로 세워지지 않으면 서로가 불편하고 손해를 봅니다. 하나님께서도 자녀들이 자유와 행복을 누리도록 영적질서를 세워주셨고 그 질서를 따라 살게 했습니다.

2. 성도는 하나님이 통치자라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은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만의 것을 독창적이라고 가르치며 자기중심적으로 살게 하지만 성도는 하나님이 자기의 주인이라고 믿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베드로는 성도들을 향하여 하나님이 선택한 민족이며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으나 지금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이전에는 하나님의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불쌍히 여김을 받게 되었다고 설명했습니다.(벧전 2:9-10) 육체이기에 하나님처럼 거룩하지는 못하지만 부족함을 느끼고 회개할 때마다 한없는 사랑으로 품어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정죄하지 않고 오히려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합니다.

3. 하박국 선지자는 법을 오용하고 정의를 무시하는 악인들이 의인을 에워싼 현실을 하나님께 탄원했습니다.(합 1:3-4)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사람들을 사용하여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심판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방인을 들어 하나님의 백성을 심판한다니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내게 무엇이라 말씀하실는지 기다리고 바라보며 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떻게 대답하실는지 보리라.”(합 2:1)고 기도하며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은 종말이 속히 이를 것이니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주십니다.(합 2:4) 그리고 바벨론도 그들의 죄로 심판받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비로소 하박국은 주께서 하시는 일이 힘 있게 진행되기를 기도했고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말아달라고 청합니다.(합 3:2)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합 3:18-19) 절망 앞에서 오히려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고 찬송했습니다.

4. 성도들이 기대하는 최종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주님의 다시 오심입니다. 주님께서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 다시 오시는 그날은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는 날이며 믿음에 따르는 보상이 있는 날이기 때문입니다.(고전 4:5) 그날에 주님께서 믿음을 지키고 성령과 함께 수고한 성도들을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해주시고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게 하실 것입니다.(마 25:23) 우리들은 믿음으로 의롭다는 인정을 받았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어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롬 5:1-2) 그래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마 24:42,44)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지금 여기서 믿음을 따라 살며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연습하는 것입니다.

5. 바울이 구원받고 사도가 된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 때문이었습니다.(딤후 1:9) 이 약속은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는 구원의 약속입니다.(요 3:16)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 구원하신 것은 우리에게 어떤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와 은혜로 된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준비했다가 때가 되어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선물입니다.(엡 2:8)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 죄의 값을 치러주신 것도 감사한데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여 우리들도 장차 부활하게 된다는 것을 믿게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것입니다.(롬 5:8) 그래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삶의 중심에 두었습니다. 그 복음이 자기는 물론이고 모든 사람에게 기쁜 소식이 된다고 했습니다.

6. 구원의 확신과 부름에 대한 소명의식이 분명했던 바울은 복음을 위해 고난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구원하여 사명을 주신 주님께서 어떤 어려움에서도 지켜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질그릇같이 연약하지만 자기 안에는 보배이신 그리스도가 계시기에 모든 능력이 그로부터 나온다고 고백했습니다. 괴로움을 당해도 꺾이지 않고 난처한 일을 당해도 실망하지 않고 핍박을 받아도 버림당하지 않고 매 맞아 쓰러져도 죽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고난을 통하여 오히려 예수님의 죽음을 체험하고 고난을 받으며 예수님의 생명을 맛본다고 했습니다.(고후 4:7-10) 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더 이상 자기가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대신하여 산다고 말했습니다.(갈 2:20)

7. 나이 많은 사도는 로마 감옥에 갇혀서 죽음이 가까운 것을 알았습니다. 바울이 고난을 받으면서도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것은 그리스도께서 끝까지 자기를 지켜준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자기가 맡았던 책임을 이양하고 위임합니다. 배운 말씀을 성령의 도움으로 가르치고 또한 복음으로 인한 고난을 견뎌내라고 유언합니다.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믿음을 잘 지키고 자기가 가르쳐준 말씀을 믿음과 사랑으로 지켜내고 귀하게 여기라고 합니다. 성령의 도움을 받아 다른 사람들에게 잘 가르치라고 당부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으로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합니다.(딤후 1:7-8) 심한 핍박 때문에 배교하는 일이 많던 때에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곧 고난을 수용하는 일이었습니다.

8. 오늘 우리들은 다른 시대를 삽니다. 그러나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고난을 견디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이 우리를 그냥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홍수로 불어난 물속에서 나뭇가지를 잡고 살아난 사람처럼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진리를 알고 따르게 하는 성령의 도움이 절대 필요합니다.(요 14:16-17) 성령께서는 우리로 말씀을 순종하게 하고 성도의 직무를 감당할 수 있도록 지혜와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겔 36:27) 조상들에게 배운 믿음과 바울에게 배운 말씀과 사명이 디모데에게 대물림되었다면 우리들도 배운 말씀을 지키고 다음세대에게 가르쳐야 하겠습니다. 믿음에 굳게 서서 어떤 유혹과 고난도 이겨내는 주의 백성이 되기를 다짐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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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싸움에서 이겨라 (눅 16:19-31 딤전 6:7-12)

1. 누가복음 16장에는 한 부자와 거지 나사로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온갖 고생을 한 거지 나사로는 죽어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서 위로를 받고 그와 반대로 온갖 좋은 것을 누리던 부자는 죽어 음부에서 괴로움을 당하는 이야기입니다.(눅 16:25) 예수님은 이 비유를 기득권자들에 대한 경고로 말씀했습니다. 앞서 말씀했던 청지기비유에서 제물과 하나님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하자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이 비웃었습니다. 대중의 지지를 받고 스스로 높아진 그들은 하나님이 싫어하는 교만한 사람이었습니다.(눅 16:14-15) 율법과 선지자들이 전해준 하나님 나라가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이미 임했고 누구든지 믿고 순종하면 그 나라를 얻을 수 있게 되었음에도 그들은 율법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2.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열심히 배우고 가르쳤습니다. 모세 오경에서 지켜야 할 것 6천 가지를 뽑고 그중 613개를 정리해서 탈무드라고 이름 지어 가르치고 지켰습니다. 신명기의 말씀대로 율법의 말씀을 손목에 매고 미간에 붙이고 문설주와 바깥문에 붙였습니다.(신 6:5) 예수님은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까지로 막을 내렸다고 했습니다. 안내자 역할을 하던 율법이 기능을 다한 것이니 이제는 그림자인 율법보다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누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정신보다 문자에 매인 율법주의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자 함께 기뻐하기보다 안식일을 어겼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섰습니다.

3.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했습니다. 세상에는 부자가 되려고 욕심을 부리다가 시험과 함정에 빠지고 파멸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재물이 나쁜 것이 아니지만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면 하나님으로부터는 자연히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재물은 함께 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마 6:24) 예수님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는 반면에 부자는 이미 세상에서 그 위로를 받았다고 했습니다.(눅 6:20-24) 부자청년이 자기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따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근심했던 것을 보아도(마 19:21)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영적생활도 가능해집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물질보다는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영생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딤전 6:7-12)

4. 바울은 디모데에게 부자들을 가르칠 때에 그들이 금방 사라질 재물에 희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께 희망을 두도록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자녀들이 선을 행하며 이웃과 더불어 살도록 모든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자기 욕심을 버리고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공감하고 손을 펴기를 훈련하는 것입니다.(딤전 6:17-18) 예수님도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너희 보물이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눅 12:33)고 했습니다. 돈과 하나님 사이에서의 선택은 항상 자기 몫입니다. 재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고 이웃과 나누는 일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우선하는 사람의 선택입니다.

5. 부자가 죽은 후 지옥에서 고통을 받은 것은 재물을 자기만을 위해서 사용하고도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부자는 자기 집 앞에서 구걸하는 나사로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듣고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지옥에서 고통당하면서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나사로가 부러웠고 아직 살아있는 자기 형제들이라도 회개하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죽은 자가 다시 살아 전해주어도 회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정한 것이지만 죽음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히 9:27) 율법의 완성으로 오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반대하는 바리새인들은 회개하지 않고 자기만을 위해 살다가 망한 부자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6. 하나님께서는 자기만을 위해 욕심 부리는 사람들을 싫어합니다. 아모스는 이웃을 돌보지 않고 자기 배만 채우는 기득권자들을 비판했습니다. 그들은 상아 침대에 눕고 호화스러운 안락의자에서 기지개를 켜며 제일 좋은 양고기와 송아지 고기를 먹고 다윗처럼 노래를 지어 수금에 맞춰 흥얼거리고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고 귀한 향수를 몸에 바르면서도 이스라엘이 당할 파멸에 대해서는 슬퍼하지 않았습니다.(암 6:4-6) 이사야도 기득권자들이 가난한 자의 물건을 탈취하는 죄를 꾸짖었고(사 10:1-3) 형식적인 금식보다 주린 자에게 양식을 나누어주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이라고 했습니다.(사 58:6-7) 예레미야도 이방인과 힘없는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말라고 했고(렘 7:5-6) 에스겔도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학대하는 자는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겔 18:12-18)

7. 그렇다면 나사로가 가난한 거지로 살았기에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보상을 받은 것일까요? 그가 하나님의 도우심이라는 뜻을 가진 나사로라고 불린 것을 보아서 그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자이건 거지이건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고 성령의 도움으로 영적생활을 계속합니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 부름을 받은 우리들이기에 어떤 형편에서든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삽니다.(롬 8:28) 그래서 바울의 고백처럼 괴로움을 당해도 꺾이지 않고 난처한 일을 당해도 실망하지 않고 핍박을 받아도 버림을 당하지 않고 맞아서 쓰러져도 죽지 않습니다.(고후 4:8-9) 하늘 시민권을 가진 사람으로(빌 3:20)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선을 행하며 영적싸움을 계속해 가는 것입니다.

8. 예수님은 천국은 침노하는 사람의 것(마 11:12)이라고 했습니다. 힘으로 빼앗는 것처럼 복음의 능력으로 천국을 소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들은 자신만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며 성령께 순종하기를 노력합니다. 엡 6장에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할 것을 가르쳤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는 가나안 땅을 약속받고도 믿지 못하고 자기 맘대로 살다가 광야에 묻혀버린 사람들이 이 많았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들도 전쟁을 해서 땅을 취해야 했습니다. 바른 영적생활을 위해서는 자기욕심과 싸우고 마귀와 싸워 이겨야 합니다. 바울도 이미 얻은 구원을 지켜내려고 끝까지 싸우고 달렸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성령의 도움으로 영적싸움에서 이기고 그 열매를 이웃과 함께 나누는 복된 생활을 계속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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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영적승리 (대상 29:10-19, 엡 3:14-19) 9/18/22


1. 성도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주인을 위한 일꾼으로 혹은 주인의 것을 관리하는 청지기로 살아야 할 것을 가르쳤습니다. 바울도 성도들에게 먹든지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고전 10:31) 그래서 구원받은 우리들은 시간이나 물질을 자기 욕심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복에는 관심을 갖지만 하나님을 위해 희생하는 일은 힘들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맛본 성도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마음을 품고 삽니다. 부름에 합당하게 살며 자기 역할을 바로 하는 것이 성도의 영적승리입니다.

2. 성경의 맨 처음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선언합니다.(창 1:1)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만들었고 만물을 다스리고 사용하는 권한도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고 받아들인다면 거기에 방향을 맞춰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주시고 그것을 경작하며 관리하게 했습니다.(창 2:15) 아담은 관리자의 자격으로 하나님이 만든 피조물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아담은 사탄의 꾀에 넘어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고 그 결과 하나님이 주신 동역자의 권세를 사단에게 빼앗겨버렸습니다. 사탄은 공생애를 시작하는 예수님을 유혹하면서 자기가 그 권세를 넘겨받았으니 원하는 자에게 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3.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 승리의 길입니다. 청지기, 일꾼, 혹은 제자는 주인을 위해 일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을 위한 봉사와 헌신을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이 말년에 성전건축을 위해 준비했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자 지도자들과 백성들도 기쁜 마음으로 헌금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주인이고 자기들은 나그네인데 성전건축을 위하여 이렇게 많은 것을 드릴 수 있게 되었으니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감사했습니다. 대상 29:14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풍성한 건축비와 함께 수송아지와 수양과 어린양을 각각 천 마리씩 잡아 제사를 드렸고 백성들과 함께 기쁨의 잔치를 열었습니다. 다윗은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존귀하게 살다가 명예롭게 죽었습니다.(대상 29:28)

4.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의 동역자로 불렀고 교회를 향하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라고 했습니다.(고전 3:9) 세상을 다스리고 구원하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복음을 전했으며(고전 9:17) 이것을 하나님의 비밀을 다루는 일에 부름 받았다고 설명했습니다.(엡 3:2) 그는 주님과 한 몸이 되어 복음을 전했는데 그것은 자신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힘이었습니다. 바울은 능력 주시는 주님 안에서 일했기에(빌 4:13) 고난을 당할 때도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게 되었다고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5. 바울은 성도들의 속사람이 성령의 능력으로 강하게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의 마음에 항상 계셔서 그리스도의 사랑에 뿌리를 박고 기반을 굳게 하기를 기도했습니다.(엡 3:16-18)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어야만 바른 헌신이 가능하고 영적으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 편리한 방법으로 신앙생활 하려는 것을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달란트 설교에서 주인의 의도를 오해하고 쉬운 방법을 택했던 게으른 종을 이렇게 책망했습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네가 나를 그런 사람으로 알았느냐? 그렇다면 내 돈을 은행에 맡겼다가 내가 돌아왔을 때 이자와 원금을 함께 받도록 했어야 하지 않느냐?”(마 25:27) 자기 책임을 바로 감당하지 못한 일꾼은 결국 자기가 맡았던 한 달란트마저 빼앗겼고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쫓겨나 울며 이를 갈았습니다. 팬데믹을 지나면서 무디어진 우리의 영적 감각을 다시 되살려야 하겠습니다.

6. 영적승리를 위해서는 철저한 회개와 깊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스스로는 의로울 수 없는 죄인이며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회개의 시작입니다. 이미 죄 용서 받은 우리들은 무엇을 회개해야 할까요? 자기욕심을 벗어나 하나님을 우선하는 생활훈련이 필요합니다. 선을 알고도 행하지 못하는 게으름을 버려야 합니다.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는 적극적인 생활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성령 충만을 날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합심하여 기도하던 제자들이 성령 충만을 받아 성령의 힘으로 복음을 전하고 서로 사랑했습니다. 날마다 말씀을 배우고 기도하고 예배했으며 자기 소유를 팔아 서로의 필요를 채웠습니다. 세상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사랑을 실천했기에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겨 교회를 찾아왔습니다. 먼저 믿은 사람들의 변화된 생활을 보고 그들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구원을 받았습니다.(행 2:42-47)

7. 바울은 율법의 전통에서 벗어나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고 전하며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살았습니다.(갈 2:20) 우리들도 주님께 속한 지체로 살며 성령과 함께 일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합니다.(딤전 2:4) 그래서 성령께 순종하는 사람들을 불러 새로운 힘을 주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하게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게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여자들은 금이나 진주나 값진 것들로 치장하기보다 단정한 옷차림과 소박함과 정절로 단장하도록 했습니다.(딤전 2:8-10) 영적생활의 가치를 배우고 훈련하는 교회를 만들라는 것이었습니다. 성령께서는 지금도 순종하는 사람을 사용하여 교회를 세우고 세상을 새롭게 합니다. 우리들도 이미 이 거룩한 일에 부름을 받은 일꾼입니다.

8.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수치와 멸시를 당하신 것은 믿는 자에게 생명을 주고 풍성하게 누리게 하기 위함입니다.(요 10:10) 누구든지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믿고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요 3:16) 하나님께는 지금도 부름에 응답하는 성도들을 사용하여 구원의 소식을 세상에 알립니다. 지금은 마지막이 가까운 때이기에 믿는 우리들이 더욱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고전 4:7) 그 어느 때보다 믿음을 지키기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기 때문입니다. 열심을 내서 주님을 섬길 수 없을 만큼 모두가 자기 일에 바쁜 때입니다. 그러니 성도로 불러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감사하며 우리를 인도하시는 성령께 더욱 순종하여 영적으로 승리하는 가정과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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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기쁨이 되자 (눅 15:1-10, 신 30:15-20)

1. 눅 15장은 한 마리 잃은 양을 찾는 목자(3-7)의 비유와 사랑의 징표로 받은 동전을 잃었다가 찾은 여자(8-10)의 이야기와 잃었던 아들을 다시 찾은 아버지(11-32)에 관한 이야기를 통하여 잃었다가 다시 찾은 기쁨과 한 영혼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세 이야기의 결론은 하나입니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다는 것입니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됩니다.(눅 15:7,10) 한 사람의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2. 양 백 마리를 가진 사람이 하나를 잃어버리자 아흔 아홉을 들에 남겨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를 찾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아흔 아홉을 간수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하나를 되찾은 기쁨이 얼마나 컸던지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잔치를 위해 양을 잡았을 것이니 몇 마리를 갖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잃었다가 다시 찾은 기쁨과 한 영혼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열 드라크마를 가진 여자도 하나를 잃어버리자 불을 밝히고 온 집을 쓸며 찾았습니다. 사랑의 징표로 받은 동전이기에 다시 찾은 기쁨을 잔치로 나누었습니다. 아버지 집을 떠났던 아들이 모든 것을 잃고 비참한 형편에 처해보니 아버지의 풍요로움이 생각났습니다. 일꾼으로 써달라고 청했지만 아버지는 그에게 좋은 옷을 입히고 새 신발을 신기고 가락지를 끼워 아들의 신분을 회복시켰습니다. 잃었다가 찾은 아들이며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아들이라며 잔치를 열었습니다.

3. 예수님이 이 이야기를 하게 된 배경은 이렇습니다.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 모여들자 그것을 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죄인을 영접하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예수님을 정죄했습니다. 이들을 영접한 예수님은 식사를 함께 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을 인정하고 받아주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자신들이 무시하던 죄인들이 예수님께 인정받는 것이 싫었습니다. 세리와 죄인들은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고 의지할 곳도 없는 사람들이었기에 기득권자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환영하고 인정하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뜻이라는 것을 드러내려고 이 비유를 말했습니다. 죄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4.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자기들이 회개해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회개할 사람은 죄인과 세리와 창녀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멀리하는 것으로 자기의 거룩함을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율법과 전통을 예수님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지만 정작 율법의 완성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십자가에 매달았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자기를 내려놓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우선순위에 두고 따르는 적극적인 행위여야 합니다.(눅 14:27) 옛 성품은 죽고 주님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어떤 것이라도 예수님보다 중요하게 여기면 그것이 우상이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이용하여 자기 욕심을 채우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5. 예수님은 건축을 계획하는 사람이 가진 것을 계산하고 전쟁을 준비하는 사람도 자기 역량을 신중하게 계산하지 않느냐고 반문합니다.(눅 14:28-33) 부족한 역량으로 집을 짓다가 파산하기 쉽고 턱없이 부족한 군비로는 전쟁을 시작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으로 원하고 또 아무리 계산해 보아도 스스로 의롭게 될 수 없는 죄인이기에 자신을 내려놓고 전능하신 주님을 의지하는 것이 생명을 얻는 구원의 길입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막 10:27) 제한된 우리 힘으로는 십자가를 질 수 없고 주님을 우선할 수도 없습니다. 당장 눈앞의 일을 처리해야 하고 일터에서 일하고 가정을 돌보고 자녀 뒷바라지를 하다보면 예수님을 우선순위에 둔다는 것은 이론에 그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도움이 더욱 필요합니다.

6. 모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길로 행하며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면 생존하고 번성할 것이지만 마음에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섬기면 반드시 망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신 30:15-18)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심판으로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건져낼 것이라고 했습니다(겔 34:12) 그리고 다윗의 후손으로 오는 사람이 왕이 될 것이라며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약속했습니다. “내가 내 양을 구출하고 그들이 더 이상 희생물이 되지 않게 하겠다. 내가 내 양을 하나하나 심판하여 좋은 양과 나쁜 양을 가려낼 것이다. 내가 내 종 다윗과 같은 목자를 세워 내 백성을 다스리게 하겠다.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 것이다.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과 같은 그 목자는 그들의 왕이 될 것이다.”(겔 34:22-24)

7.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으로 세상에 오시어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롬 5:8) 그를 믿는 자를 구원해 주셨습니다.(요 3:16) 우리의 연약함을 알기에 성령을 보내 도와주십니다.(요 14:16) 이런 은혜와 오래 참아주심 때문에 오늘까지 이 길을 걸어왔습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고 노력하지만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의 갈림길에서 방황하는 우리들을 봅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며 주님을 우선하여 살기를 결단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예수님을 우선순위에 놓을 수 있을까요? 처음 사랑에 빠졌던 때를 생각하면 답이 나옵니다. 사랑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경험해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맛있는 것을 먹거나 좋은 곳에 가면 그 사람이 생각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하는 힘든 일은 오히려 기쁨이 됩니다. 이렇게 주님을 사랑하면 신앙생활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8. 다시 가을입니다. 명절이 되니 부모님의 사랑이 기억합니다. 독생자를 희생하여 우리를 사랑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도 생각납니다. 원하지 않는 테러로 죽은 수많은 사람들의 못 다한 시간과 아쉬움도 떠오릅니다. 제한된 인생을 살기에 한해를 잘 마무리하고 새해를 계획해야 하겠습니다. 팬데믹의 느슨함에서 벗어나 열심을 회복할 때입니다. 주님의 재림과 계산하는 날을 기다리는 우리들이기에 영적생활을 점검해야 하겠습니다. 한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는 일,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숙해지는 일, 영적사역을 잘 감당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함께 기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고 하나님을 더 기쁘게 하려는 노력이 새로워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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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으로 드리는 예배 (시 133편, 시 8편) 야외예배

1. 시 133편을 보면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가.‘라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형제는 핏줄은 물론이고 같은 목적을 갖는 민족이나 신앙공동체를 일컫는 말입니다.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에 모든 지파들이 한 마음으로 화합하고 단결했습니다. 서로 떨어져 살던 지파들이 절기 때마다 성전에 모여 예배하면서 한 형제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연합과 동거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예배가 되었습니다. 우리들도 수 년 동안 전교인수련회를 통하여 서로 사랑하고 배우는 예배의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전염병 때문에 세 번이나 쉬어보니 얼마나 아쉽고 그리운지 모르겠습니다. 주안에서 함께 먹고 자고 생각을 나누며 시간을 보내던 것이 성도의 거룩한 교제였던 것을 확인했습니다. 대신 오늘은 야외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2. 마 12: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다.” 행 4:32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없더라.”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감격 때문에 자기 소유도 나눌 만큼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만이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입니다. 자녀들이 화목하고 우애하는 것이 부모에게 기쁨이 되는 것처럼 그리스도에게 속한 우리들이 주 안에서 거룩한 교제를 나누며 예배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십자가 보혈로 죄 용서를 받은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피를 나눈 형제와 자매입니다.

3. 시 133편에서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다.’고 했습니다. 특별한 일을 맡길 때에 그 사람의 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대제사장의 임직식이나 왕의 대관식에 그렇게 했습니다. 대제사장 아론의 머리에 부은 기름이 수염을 타고 옷깃까지 흐르는 것과 또 헬몬 산의 이슬이 남쪽 시온 산으로 흘러내리는 것을 표현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모두에게 기름으로 상징된 거룩함과 이슬로 상징된 생명을 푸르게 하는 복이 고루 임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들에게도 이런 은혜가 있기 바랍니다.

4. 시온은 볼품없는 장소이지만 성전이 있기에 거룩합니다. 헬몬 산 높은 곳에서 눈이 녹아 흘러내려 남쪽의 시온의 생명체를 살게 하는 것처럼 성전에서 흐르는 생수가 믿는 자에게 영생의 복을 누리게 합니다. 교회는 이것을 세상에게 알려주는 곳입니다. 각 개인의 차이나 사람간의 불화가 여전히 존재하지만 교회는 그리스도 예수님 때문에 은혜와 복을 누리는 공동체입니다. 주님께서 거룩하기에 주님의 몸인 교회도 거룩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더욱 주님 안에서 함께 배우고 함께 성장해 가기를 노력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통하여 땅의 모든 백성들이 복을 받게 하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된 우리들을 사용하여 이 시대의 사람들을 복되게 할 것입니다.

5. 시 8:4-6에서는 “사람이 무엇인데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인데 주께서 그를 돌보십니까? 주께서는 그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광과 존귀의 관을 그에게 씌우셨습니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모든 것을 주께서는 사람이 다스리게 하시고 모든 것을 그의 발아래 복종하게 하셨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시의 저자인 다윗은 하나님께서 손가락으로 주물러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들고 그 모든 것을 사람에게 주어 다스리게 했다며 사람이 무엇이기에 그리 생각해주느냐고 노래했습니다. 깊은 영성을 가진 사람은 자연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고 찬송할 수 있습니다. 모든 만물을 제대로 관리해야 한다는 책임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는 물론이고 인간의 존재이유를 바로 알고 예배할 수 있습니다.

6. 인간은 창조주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기에 하나님과 교제하는 관계에서만 관리자의 책임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으로만 “온 땅에 주의 이름이 어찌 그리 위엄이 있습니까?“(시 8:9)라고 찬송할 수 있습니다. 창 1:28-29 “너희는 많은 자녀를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워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의 모든 생물을 지배하라. 내가 온 땅의 씨 맺는 식물과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었으니 그것이 너희 양식이 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대리자가 된 인간의 책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한 인간은 창조주를 무시하고 관리자의 책무를 버리고 자연을 훼손하고 욕심대로 살다가 자연은 파괴되고 기후가 변하고 이제는 먹거리마저 걱정하고 있습니다.

7. 교만한 사람은 창조주를 알 수 없습니다. 어린아이와 겸비한 사람만이 계시의 은혜로 창조주를 알 수 있습니다.(마 11:25) 그런 사람만이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시 8:1)라고 예배할 수 있습니다. 시 104:31 “여호와의 영광이 영원히 계속할지며 여호와는 자기 행사로 인하여 즐거워하실지로다.” 시 19: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지으신 만물을 기뻐하십니다. 만물은 하나님의 위대함을 높이고 드러냅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큰 기쁨의 대상입니다. 우리들의 예배는 하늘 보좌를 움직일 만큼 힘이 있고 하나님을 기쁘게 합니다.

8.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하여 자연을 칭송하는 사람이 있지만 우리들은 자연을 만들고 그것을 사용하여 우리와 교통하는 창조주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천국에서 드려지는 예배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흰옷을 입고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서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습니다.’라고 외치면 천사들과 장로들은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며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습니다. 아멘.‘이라고 할 것입니다.(계 7:9-12) 오늘 우리의 예배도 하나님을 높이고 구원의 감격으로 함께 즐거워하는 기쁨의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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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배우는 그리스도의 성품 (눅 14:1-14)

1.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를 닮아가는 사람입니다. 십자가를 지기까지 하늘 아버지의 뜻에 복종한 우리 주님을 배우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그 마음으로 서로를 돌보라고 했습니다. 빌 2:6-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주님을 따르는 일에 성장과 성숙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원망과 시비가 없이 서로 섬기며 빛의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2. 주님을 닮아가는 과정에 있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성품이 이미 우리 안에 싹트고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불러 구원하셨고 지금도 우리 안에서 일하시며 마지막 날까지 구원의 감격으로 살게 할 것입니다. 바울은 그것이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소원이라고 설명했습니다.(빌 2:13) 그래서 구원받은 자답게 살려는 거룩한 열정과 의지가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주님과 교제하는 영적생활의 훈련보다 우선 이해하기 쉬운 교리공부나 예배참석이나 교회전통을 지키는 것에 만족하려는 생각입니다.

3. 바리새인들은 누구보다 율법을 잘 지키려는 열심이 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과는 항상 충돌했고 결국 예수님을 반대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자기들이 믿고 따르던 것과 예수님의 가르침이 서로 부딪혔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율법을 깨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이단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준 일이 그들에게는 안식일을 범하는 죄가 되었습니다. 생명을 회복시키는 것보다 자기들이 지키는 교리와 신념이 중요했습니다. 사람보다 날을 더 중요시했습니다. 일상생활을 할 수 없던 병자가 치유되었지만 그것을 함께 기뻐하지 못했습니다. 안식일을 범했다는 생각이 더 컸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을 보며 안타까워 울던 예수님의 연민과 긍휼은 그들에게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기도록 주신 율법으로 오히려 다른 사람을 판단했습니다. 우리들이 서로를 불쌍히 여기며 사랑하기를 더 연습하고 배워야 하는 이유입니다.

4. 예수님은 초청받은 잔치자리에서 스스로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스스로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잠언 25:7-9에서도 “왕 앞에서 스스로 높은 체하지 말며 대인들의 자리에 서지 말라. 이는 사람이 네게 이리로 올라오라고 말하는 것이 네 눈에 보이는 귀인 앞에서 저리로 내려가라고 말하는 것보다 나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리에 대한 것보다 자기 의를 내세우며 높은 자리를 탐하는 잘못을 지적한 것입니다. 우리들이 주님과 더 깊은 교제를 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면 세상에게 마음을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더 많이 갖고 더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을 성공이라고 가르치는 세상의 가치로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5. 성도는 자기 힘이나 노력으로 살지 않습니다. 주님께 내 삶의 주인이 되도록 자리를 내드리는 것을 훈련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전능자입니다. 가난하게도 하고 부하게도 하며 낮추기도 하고 높이기도 할 권세가 있는 분입니다.(삼상 2:6-7) 우리들이 심사숙고하여 어떤 일을 결정하지만 결국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분은 하나님입니다.(잠 16:9) 그래서 우리의 생각과 삶을 하나님께 두고 삽니다. 그럴 때 비로소 그리스도의 긍휼과 겸손이 우리에게서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가 얼마나 겸손한 사람인지는 이웃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타납니다. 히 13: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약 4:6)

6. 예수님은 되돌려 받을 것을 기대하고 선을 행하는 것보다 다시 갚아줄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이나 불편한 사람을 섬기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고 했습니다. 소자에게 행하는 남모르는 선행이 마지막 날 하나님의 계산대 앞에서 드러날 것이고 그에 따르는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눅 14:12-14)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야고보 사도가 가르쳤습니다.(약 1:27) 그래서 하나님의 눈과 계산할 날을 의식하고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 21:34)

7. 어떤 주인이 잔치를 베풀고 사람들을 초청했지만 사람들은 자기 일이 바빠서 초청에 응하지 못했습니다. 새로 산 다섯 마리 소를 길들여야 하고 시간 맞춰 농사도 지어야 하고 갓 결혼했으니 신혼을 즐겨야 했습니다. 주인은 이들을 대신하여 거리에 있던 가난한 자들과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불러왔습니다. 그리고도 남은 자리가 있어서 길과 산울타리에 있는 사람들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잔치 자리를 채웠습니다.(눅 14:23) 이전에 초청했던 사람들은 하나도 잔치를 맛보지 못했습니다. 선민의식으로 가득했던 바리새인들보다 버림받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먼저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생명은 세상 어느 것보다 값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주님의 제자로 살기를 노력합니다. 율법을 중하게 여겼지만 정작 율법의 완성이신 예수님을 몰라봤던 바리새인들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8.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26-27,33)라고 했습니다.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시대에 우리가 살지만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히 드러내기를 원합니다.(빌 2:15)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과 겸손을 배우고 실천하는 우리들을 통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와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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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길을 선택하라 (사 66:18-23, 눅 13:22-30) 청장년선교회 헌신예배

1. 이사야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전했습니다.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난 백성들이지만 다시 회복시켜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아담에게 땅에 충만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존재가 되게 했던 것처럼, 아브라함을 통해 열방이 복을 받게 했던 것처럼 이스라엘을 다시 제사장 나라로 사용하여 땅의 모든 족속이 하나님을 알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성령의 강림으로 시작된 신약교회를 통하여 모든 사람을 회복하고 구원하는 하나님의 일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그 은혜의 대열에 함께 있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구원의 날에 여호와의 산에 사람들이 모일 것입니다.(사 66:18-20) 그날에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일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영광을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실 것입니다. 사람들이 동서남북 사방에서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석할 것입니다.(눅 13:29) 다른 나라로 흩어졌던 사람들이 고향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고 제사장과 레위인도 다시 세워지고 초하루와 안식일에 하나님을 예배하게 될 것입니다. 악인들이 망하는 것도 지켜볼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완전한 회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는 복음을 듣고 주님께 돌아온 수많은 이방인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의 율법에 얽매이지 않았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이방인 고넬료의 가정에 사도들이 경험했던 성령께서 임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이방인도 구원한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행 10:45)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교회를 통해 사람들을 구원합니다.

3. 예배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상과 구분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며 영적인 힘을 공급받습니다.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세상에 알릴 수 있습니다. 예배를 통하여 얻는 힘으로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살아있는 제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롬 12:1)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우리들은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면서 재림으로 펼쳐질 천국에서의 예배를 기다립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전능하신 주 하나님,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장차 오실 주님! 주님께서는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실 분입니다. 모든 것은 주님의 뜻에 따라 창조되었고 존재하게 되었습니다.”(계 2:8,11) 하늘의 천군천사가 노래하고 생명체의 대표들이 영원하신 하나님을 찬송하는 그 영광스런 예배에 함께 할 소망을 갖고 삽니다.(롬 5:2)

4. 구약의 제사는 정해진 법과 절차를 따라야 했습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말씀에 불순종하여 번제단의 불이 아닌 다른 불로 분향하다가 죽었습니다.(레 10:1-11) 구약의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미리 보여준 것입니다. 대제사장이 속죄일인 7월 10일에 세마포 옷을 입고 지성소에 들어가 자신과 백성들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피를 뿌린 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로 구원받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식이나 절차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힘입고 영과 진리로 예배하기를 힘써야 합니다.(요 4:24) 하나님께서는 형식에 매여 습관적으로 드리던 이스라엘의 제사를 기뻐하지 않았습니다.(암 5:21-23) 믿음에 합당한 열매가 있어야 바른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5. 유대인들은 자기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할례를 받은 약속백성이니(창 17:7-11) 당연히 구원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진리를 전하는 자신을 대적하는 유대인들을 향해 마귀의 자식이라고 질타했습니다. 아브라함이라면 진리를 말하는 예수님을 대적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요 8:37-45) 그러므로 형식이나 교리보다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하는 영적교통을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며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그리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스스로 자격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주인이 닫은 문을 두드리고 자기 의를 자랑해보지만 결국 쫓겨날 것입니다. 그들이 쫓겨난 후에 다른 사람들이 모여들어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가 있으니 스스로 삼가며 좁은 길을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6. 구원받은 우리들은 하나님나라의 책임 있는 백성으로 살며 믿음 안에 있는지를 스스로 시험하고 확증해야 합니다.(고후 13:5) 좁은 길을 선택하는 일은 세속적인 가치로는 불가능합니다. 겉모양은 하나님나라의 백성인데 실제로는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욕심으로 가득하다면 자기욕심을 이루기 위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세상 처세술로는 자기를 포기하고 자기십자가를 지고(눅 9:23) 주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본질상 진노의 자식(엡 2:3)으로 살던 옛 생활의 습관으로는 그리스도를 따를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에 대하여는 죽고 그리스도를 자랑하며 사는 사람입니다.(갈 2:20) 그것은 한 번의 결단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좁은 문을 통과한 후에도 때마다 좁은 길을 선택해야 하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기위해 박해도 견뎌내야 합니다.(딤후 3:12)

7. 신앙생활은 자신과의 싸움이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성장해야하는 긴 과정입니다.(엡 4:13)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과 싸우는 영적싸움이기도 합니다.(엡 6:12) 그러나 싸움이 끝난 후에 누릴 영광을 생각하면 견딜만한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긴 터널을 지난 후에 펼쳐질 빛나고 아름다운 모습을 기다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행한 것은 주님께서 마귀와의 싸움을 이미 승리로 마무리했기에(요 19:30) 우리는 그가 가신 길을 뒤따르면 됩니다. 영으로 깨어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고(엡 6:13-17) 성령께 순종한다면 우리의 싸움은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는 감동과 감격이 있는 복된 길이 될 것입니다. 시험과 환란을 만나기도 하지만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길입니다.(고전 3:10-15)

8. 교회는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여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교회를 통하여 성령을 의지하여 주의 백성으로 사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선교회는 연령대가 비슷한 사람들이 함께 교제하고 협력하도록 묶어놓은 연결고리입니다. 오늘 인생의 가장 바쁜 시간을 사는 청장년들이 헌신을 다짐합니다. 일과 가정을 세우고 자녀에게 본을 보여야 하는 여러분에게 우리 주님께서 특별한 지혜와 믿음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조금 한가해지면 영적인 일에 열심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를 닮고 신앙 인격을 키우는 일은 거기에 우선순위를 두고 결단할 때에만 가능한 일입니다. 좁은 문 좁은 길을 가는 신앙여정에 서로에게 좋은 믿음의 길동무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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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일 (눅 12:49-56)

1. 예수님은 제자들을 선택할 때에 자기가 원하는 사람들을 불렀습니다. 함께 거하며 전도도 하고 귀신을 내쫓는 권능을 갖게 하려고 12제자를 세웠습니다.(막 3:13-15) 제자들은 3년이나 되는 시간을 예수님과 함께 보내며 천국복음을 듣고 배우고 전했습니다. 눅 12장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충성된 종의 자세를 갖출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렇게 준비된 제자들이 성령으로 충만해져서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기를 원했습니다.(행 1:8) 오늘 말씀에 예수님은 불을 던지러 왔다고 했는데 이것을 성령, 말씀, 심판으로 다양하게 해석하기도 합니다만 그것이 무엇이든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 죄인들을 구원하려는 예수님의 마음인 것은 분명합니다.

2. 불은 모든 것을 태우는 무서운 힘이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태우는 불과 같고 바위를 부숴버리는 망치와도 같습니다.(렘 13:29) 그래서 죄인들의 죄와 허물을 불살라 버립니다. 불을 던지러 왔다는 것은 죄인들을 구원받게 하는 천국복음을 선포하신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고 그것을 풍성히 누리게 하려고 세상에 왔습니다.(요 10:10)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낸 것은 세상을 심판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아들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요 3:17) 구약에서 희생 제사를 드려 죄 용서를 받게 했지만 제사장도 죄인인지라 제사의 효력이 영원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반복하여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희생하여 드린 한 번의 제사로 영원한 속죄를 누리게 합니다.(히 10:11)

3. 세례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면서 자기 뒤에 오시는 그리스도께서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줄 것이라고 했습니다.(마 3:11-12)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들이 받는 회개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죄인들이 받아야 할 형벌을 십자가에서 대신 받았습니다.(롬 5:8)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예수님이 받을 세례는 구원사역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는 일을 말합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의 좌우편 자리를 청탁할 때에도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막 10:38)라고 했습니다. ‘회개하라.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외치며 공적사역을 시작한 예수님은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를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몸으로 보여주셨습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세상에 오시어 함께 거하며 하나님 나라를 알려주었고 또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도록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롬 6:3-5)

4. 사람은 자기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에 마음을 둡니다. 학예발표회에 참석한 학부형의 눈에는 자기자식만 크게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관심은 하나님나라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듣고도 마음에 불이 붙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안타까워했습니다. 예수님은 때마다 한적한 곳을 찾아 기도했습니다.(막 1:35) 제자들과 함께 동네를 찾아다니며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눅 8:1) 예루살렘을 위하여 눈물을 흘릴 만큼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했습니다.(눅 19:41) 그러나 유대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방해했고 그가 안식일을 어기고 병든 사람을 고치는 것을 문제 삼았습니다.(요 5:16) 결국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한다는 신성모독죄를 씌워 십자가에서 죽게 했습니다.

5. 예수님은 평화가 아닌 분쟁을 주러왔다고 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어머니와 딸이,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서로 싸워 갈라질 것이라고 했습니다.(눅 12:51-53) 이런 분쟁은 예수를 믿고 변화된 것 때문에 나타나는 영적갈등을 말합니다. 마귀에게 속한 것들이 감추어져 있다가 복음의 능력 앞에서 드러나기에 갈등과 긴장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안한 것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거기에 생명을 새롭게 하는 성령의 능력이 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제사하러 온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서 환전을 해주고 제사에 사용할 짐승을 팔던 일이 종교지도자들의 돈벌이가 되어 버렸을 때 예수님은 그들의 상을 뒤엎고 장사하는 사람들을 성전에서 내쫒았습니다.(막 11:15) 평온해 보이는 성전 뜰이었지만 기도하는 집을 장사하는 곳으로 바꿔버리고 역할을 바로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6. 복음에 대한 반응은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영접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고 영접하지 않는 사람은 심판을 받습니다.(요 3:18) 복음이 불처럼 확산되고 사람을 새롭게 한다면 그 복음을 듣고 믿어 새롭게 된 우리들이 그것을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그 타오르는 불길이 아직도 살아있다면 말입니다. 행 24장에 보면 더둘로라는 사람은 바울을 염병이라며 유대인을 소요케 하는 자라고 법정에 고소했습니다. 바울의 전도가 반란을 주도하는 것처럼 보였고 사회질서를 무너뜨리고 소요를 일으킨다고 보았습니다. 이 일은 예수 부활의 복음이 전염병처럼 빠르게 퍼졌고 소요가 일어날 만큼 생명력과 전파력을 가졌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들도 바울이 믿던 예수님을 믿습니다. 만일 우리가 입을 벌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한다면 우리도 그런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예수님에게서 나오는 능력입니다.

7. 예수님은 외식하는 지도자들을 향하여 날씨의 변화는 예측하면서 시대는 분간하지 못한다고 꾸짖었습니다.(눅 12:56) 교만한 종교지도자들은 복음으로 인해 변하는 세상을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을 듣고 보았지만 애써 믿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자기교만과 아집으로 가득하여 결국 따르는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죄인들을 살리기 위해 죽고 그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살아 믿는 자들이 부활의 능력으로 살게 합니다. 성령을 보내주시어 예수님을 더 확실하게 알고 믿게 합니다. 죄 용서의 확신을 갖고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합니다.(롬 5:1) 우리의 생활을 통하여 포로 된 자를 자유하게 하고 눈먼 자를 보게 하며 눌린 자를 자유하게 합니다.(눅 4:18) 이것이 우리가 구원받았음을 알게 하는 성령의 보증하고 확인해주시는 일입니다.(엡 1:13)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입니다.

8. 그래서 성도는 사탄과의 싸움을 그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신인 사탄이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복음을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때문입니다.(고후 4:4) 하나님 나라를 방해하는 어두움을 걷어내기 위해서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고 성령의 뜨거운 불씨를 우리 안에 계속 불태워야 하겠습니다. 우리 믿음의 근원이시며 우리 믿음을 완전케 하시는 예수님만 바라봅시다. 우리 주 예수님을 바라볼 때에만 모든 무거운 짐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목표를 향해 꾸준히 달려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히 12:1-3) 예수님이 주신 구원의 감격을 우리의 일상에서 자랑하고 전하는 제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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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주님께 (창 15:1-6, 눅 12:35-40)

1.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다시 나타나 그를 보호하고 상급이 되어주겠다며 아브람의 몸에서 날 아들이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창 15:4) 나이 많아 아들을 낳을 수 없다고 생각한 아브람이 식솔 중에서 충직한 종 하나를 택하여 상속자로 삼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생각을 바꾸었고 그의 가슴에 깊이 박혀 견고한 믿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밤하늘을 보여주며 그의 자손이 수많은 별과 같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씀하고 쪼갠 고기 사이를 횃불로 지나가며 그 약속을 믿게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의롭게 여겼습니다.(창 15:6)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보증해 주고 볼 수 없는 것들을 확증해 줍니다.(히 11:1)

2.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린 아브람은 구원의 역사에 크게 사용되었습니다. “이러므로 죽은 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히 11:12)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자녀들의 필요를 채워주며 함께 일하는 신실한 아버지입니다.(눅 12:32) 그래서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계신 것과 또한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히 11:9)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처럼 눈에 보이는 세상 것에 집착하거나 욕심을 따라 살지 않습니다. 공중의 새와 들의 꽃까지 먹이는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돌보아주실 것을 믿고(눅 12:29-31) 모든 염려를 맡기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추구합니다.

3. 예수님은 주인을 기다리는 충직한 종을 예로 들어 재림을 준비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생각하지 않은 때에 주인이 올 것이니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서 준비하고 기다리라고 했습니다.(눅 12:35,40) 이것은 항상 준비된 자세로 주인을 섬기는 충성된 종의 모습입니다. 큰 천을 둘둘 감아 입던 유대인의 옷을 생각하면 허리에 끈을 매는 것은 일할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등불을 켜는 것도 어두운 때에 들이닥칠 주인을 맞이하기 위한 것입니다. 서서 기다리는 것도 섬길 준비를 마쳤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허리에 띠를 띠고 지팡이를 들고 서서 무교병과 쓴 나물을 급하게 먹던 유월절을 생각하게 합니다.(출 12:11) 유월절은 애굽의 장자가 죽던 날 희생짐승의 피를 문에 발라 죽음에서 벗어났던 일을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모습과 같습니다.

4. 유대인들의 혼인예식이 밤에 이루어지던 것을 생각하면 혼인집에 방문한 주인이 언제 돌아올 것인지는 종잡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자세로 주인을 기다린다면 그는 분명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는 종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혼인잔치에 갔던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충직한 종처럼 재림을 준비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주님은 갈릴리 사람들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행 1:11)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기생전에 주님의 재림이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했다가 시간이 늦어지자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주님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시간개념의 차이를 말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아무도 멸망에 이르지 않고 회개하기를 바라기에 오래 참고 기다리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벧후 3:9)

5. 주님의 재림도 이야기 속의 주인처럼 기대하던 시간을 훨씬 넘겨서 한밤중이나 새벽녘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재림을 믿고 기다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한 때에 예고 없이 오실 것입니다. 그래서 도적이 올 것을 예비하는 사람처럼 재림을 준비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이렇게 준비된 종에게는 복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하리라. 주인이 혹 이경에나 혹 삼경에 이르러 이같이 하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눅 12:38) 깨어 주인을 기다리는 것이 종의 본분이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종들이 많습니다. 그러기에 준비된 자세로 주인을 맞는 종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영광스런 복을 준다고 말한 것입니다. 주인이 종을 자리에 앉히고 직접 섬긴다고 표현했습니다.

6. 주인이 종을 섬기는 것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으며 이런 섬김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허리에 띠를 매고 무릎을 꿇고 겸손하게 제자들을 섬겼습니다.(요 13:4, 5) 뿐만 아니라 자기 몸을 십자가에 내어주어 죄인들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했습니다.(요 3:16) 재림의 주님을 환영하는 충성된 종들은 하늘나라에서 영광스럽고 기쁜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요 12:26) 베드로는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벧전 5:1-4) 성도가 깨어 있다는 것은 우리들의 주인이신 주님과 깊이 교제하며 사모하는 마음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그 마음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드리는 예배에서 표현되고 또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에서 증명됩니다.

7.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눅 12:40) 모두가 자기만족을 위해 사는 세상에 함께 어울려 살지만 성도는 달리 살아야 합니다. 주께서 오늘 오시더라도 맞이할 수 있도록 깨어있는 파수꾼으로 살아야 합니다.(시 130:6). 그리할 수 있는 비결은 우리의 마음을 주님에게만 둘 때 가능합니다. 우리의 피난처가 되는 주님께 마음을 두는 것이 성도의 복입니다.(시 73:28) 우리들이 성령을 의지하여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기면(롬 12:11) 혼탁한 세상에 살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자기욕심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롬 13:14) 성도에게 약속된 하늘상급에 대한 목표가 분명해지고 그것을 향하여 달려갈 수 있습니다.(엡 3:14)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기대감으로 믿음의 여정을 계속할 수 있게 됩니다.(벧후 3:12-13)

8.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성도들이 주님의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을 생활에 적용하며 순종하는 것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큰 영광과 기쁨이 됩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2) 성도가 받을 상은 의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등으로 설명되었는데 오늘의 금메달로 이해하면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그 상을 바라보고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엡 6:14) 열심을 품고(롬 12:11) 각자에게 주신 은사를 활용하여 주님을 섬깁시다.(롬 12:3) 주님께 마음을 두는 우리의 수고를 반드시 알아주시고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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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부요한 자 (눅 12:13-21)

1. 솔로몬은 사람이 일평생 염려하며 수고하지만 그 결과는 슬픔뿐이며 밤에도 쉬지 못하고 노력해보지만 그것도 결국 헛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전 2:23) 인생을 오래 경험한 사람들은 인생살이가 바람을 잡는 것과 같이 헛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세상은 더 많이 갖기 위해서 경쟁해야 하는 구조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정말 가치 있는 것을 우선적으로 선택하지 않으면 방향을 잃어버리고 세상의 흐름을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우리에게 모든 것을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라고(딤전 6:17) 가르칩니다.

2.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순종의 삶을 배우며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갑니다. 무엇을 먹고 마실 것인지를 염려하기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하나님의 자녀로 삽니다.(마 6:33) 보이는 세상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합니다. 바울은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 3:5)라고 가르쳤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며 마치 돈이 하나님처럼 힘을 가진 것으로 설명했습니다. 예수님께 영생에 대해 묻던 부자 청년은 자기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말씀에 근심하고 돌아갔습니다. 자기 재산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마 19:16-22)

3. 한 청년이 상속문제로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형이 재산 분할을 일방적으로 했던 것 같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런 문제들이 생기면 랍비에게서 율법에 근거한 해답을 찾곤 했습니다. 그들은 부자가 되는 것이 복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재물을 모으는 것을 생의 최고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재물에 대한 욕심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어리석은 부자를 비유로 들어 말씀했습니다. 한 부자가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고 이제는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할 것을 꿈꾸었습니다. 이런 부지런한 사람은 모두에게 부러운 대상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열심히 일하여 저축하고 노년을 편하게 보내겠다는데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어리석은 자라고 했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눅 12:20)

4. 인간은 내일도 알지 못하는 제한적인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부르면 즉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가야하는 존재입니다.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존재입니다.(약 4:14) 그런데도 영원히 살 것처럼 욕심을 부리고 재산증식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눅 12:19) 이 사람은 자기를 위해서는 수고했지만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대하여는 부요하지 못했기에 어리석다고 취급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상속문제로 찾아온 청년에게 예수님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눅 12:15)라고 말씀했습니다. 평소에는 하나님 나라에 관심 없다가 자기 문제가 급해지니 예수님을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에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5. 인간을 부요하게 하는 것은 재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시 119:104, 딤후 3:16) 신자는 재물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지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먹여주신다는 믿음으로 살며 재물의 유무와 상관없이 자족하는 마음으로
평강을 누려야 합니다. 자기욕심만을 위해서 재물을 사용한다면 끝없는 인간의 욕심을 다 충족시킬 수 없기에 결국 피폐해지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정당하게 돈을 벌고 바로 사용해야 합니다. 일꾼에게는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고 약한 사람의 것을 착취하거나 불의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아야 합니다. 충동구매나 사치를 배제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짜임새 있게 돈을 사용해야 합니다. “만일 너희가 세상의 재물도 충실히 다룰 수 없다면 누가 너희에게 하늘의 것을 맡길 수 있겠느냐.”(눅 16:11) 돈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고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6. 예수님은 불의한 청지기 비유(눅 12장)나 달란트 비유(마 25장)에서 주인의 돈을 자기 생각대로 관리하다가 심판받은 게으르고 악한 종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것을 관리하는 성실한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구약성도들이 희생제물과 화목제물을 드린 것처럼 우리의 예배에도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드려 하나님을 기쁘게 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헌금은 재정의 공급자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믿음과 희생의 표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한 레위인과 제사장의 생활을 돕고 성전을 유지하고 사회 약자인 과부와 고아와 객을 먹이도록 십일조를 드리게 했습니다. 자신을 희생하는 정성으로 드리는 우리의 헌금은 복음을 전하는 일과 공동체의 필요를 채워주는 일에 사용됩니다.(고후 9:11-14) 우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믿습니다.(히 11:3) 그래서 재물이나 명예나 세상의 것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탐심이고 우상숭배이기 때문입니다.

7. 하나님이 돈의 주인이고 나는 관리자가 되어야(마 25:14-30) 내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우리들은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교회를 유지하고 복음을 전하고 구제와 선교의 일을 하며 보물을 하늘에 쌓기를 힘씁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0-21) 성령으로 충만했던 초대교회 선배들은 자기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과 나눴습니다.(행 2:45) 이런 선한 나눔을 통하여 복음이 전해졌고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의 수가 늘었습니다.(행 2:47) 하나님께서는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고후 9:7) 돈에게 얽매이지 말고 하나님께 마음을 두고 살기를 함께 노력합시다.

8.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부탁했습니다.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딤전 6:17-19)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잠 11:25) 하나님이 맡겨주신 것으로 다른 사람을 윤택하게 하는 나눔이 하늘에 보화를 쌓는 일이며 하나님께 부요한 사람이 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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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생활의 유익 (창 18:20-33 시 40:1-5 눅 11:1-4) 7/24/22

1. 우리들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해 갑니다. 기도를 하면 할수록 자기욕심은 내려놓게 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한 것들이 응답되는 것을 경험한 선배들은 삶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하나님을 자랑했습니다.(시 40:1-5) 그런데도 어느 분은 하나님의 뜻대로 될 것인데 사람의 기도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고 묻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로 이해하면 대답이 됩니다. 자녀에게 줄 좋은 선물을 준비한 아버지는 아버지에게 관심을 보이고 선물을 달라고 요청하는 자녀를 결코 싫어하지 않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소통하고 교제하는 통로입니다.

2. 예수님은 공생애 사역동안에 늘 기도하며 하나님 아버지와 생각을 나눴습니다. 새벽에도(막 1:35) 저녁에도(마 14:23) 때로는 밤을 지새우며(눅 6:12) 기도했습니다. 바쁜 중에도 한적한 곳을 찾아 산이나 들에서 기도했습니다. 제자들을 세우는 일(눅 9:28,29)이나 십자가를 앞두고는 더 깊은 기도를 했습니다.(눅 22:41-44) 예수님이 필요한 것들이 많아서 하나님 아버지의 도움을 구한 것이었을까요? 물론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에 두고서 애써 기도하기도 했지만 그 어느 때라도 예수님은 기도로 하나님 아버지와 깊은 영적교통을 나눴습니다. 이렇게 기도의 본을 보여주셨기에 제자들도 예수님처럼 기도하고 싶었고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에게 기도의 모범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3. 기도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게 하는 것입니다. 죄로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대속의 은총을 힘입어 죄에서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사죄의 은총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눅 15장에서 집나간 아들을 기다리던 아버지는 다시 돌아온 아들의 죄를 묻지 않고 품어주고 그에게 가락지를 끼워주고 새 신과 새 옷을 입혀 아들의 신분을 회복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런 사랑으로 우리를 용서하고 그리스도로 옷 입혀 주셨습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우리의 죄를 옮겨버리고 기억도 하지 않습니다.(시 103:12) 그리스도 안에서 흠 없고 책망 받을 것이 없는 거룩한 존재라고 안정해 주십니다.(골 1:21) 우리를 양자삼아 주시어 그리스도를 맏형으로 모시게 했습니다.(롬 8:29)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라고 부르는 하나님 아버지를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게 했습니다.(롬 8:14-15)

4. 예수님이 가르쳐준 기도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담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뜻이 우리 가운데에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라는 말씀입니다.(마 6:33) 그리고 우리의 필요를 구하되 그것마저도 자기 욕심을 위한 것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공동체 안에서 함께 사랑하고 기뻐할 수 있는 도구가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얻고 서로 용서하고 악에게 지지 않고 승리하는 성도의 생활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한 수단이 됩니다. 우리의 이웃에게 하나님 나라의 감격을 생활 속에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5. 이런 믿음으로 구하는 사람은 받을 것이며 찾는 사람은 찾을 것이고 두드리는 사람에게는 열릴 것입니다.(눅 11:10) 육신의 아버지들도 자기 자식에게는 가장 좋은 것을 주기 원하는데 하물며 하늘 아버지께서도 가장 좋은 것인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눅 11:13) 성령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생각을 잘 아는 분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알려주셨기에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롬 8:15-16) 그러므로 성령을 따라 살면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성령의 충만을 기도하는 것은 성령과 함께 하나님의 뜻대로 살며 하나님을 드높이려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도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통로이며 우리를 살게 하는 영적인 호흡이라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6.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그런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 계획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소식을 듣고 성안의 많은 사람을 불쌍히 여기며 기도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의인과 죄인을 함께 벌하겠느냐며 하나님의 공의에 근거하여 기도했습니다. 그가 제시한 의인의 수는 50명에서 45,30,20,10명까지 줄었지만 하나님은 숫자에 개의치 않고 의인이 있다면 그로 인해서 소돔성이 살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기도는 조카 롯을 살리려는 개인적인 목적에서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가 이뤄지기를 바라는 기도였습니다.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창 18:18-19) 아브라함은 열방을 복 받게 하려는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의인과 악인을 함께 죽이지 말아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7.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응답해 주신다는 것을 믿습니다.(마 6:33) 그러니 구원받는 사람이 더 많아져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를 위하여 기도해야겠습니다. 바울도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고 세움을 받고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가르쳤습니다.(골 2:6)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가 되어 주셨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돔 성을 심판할 때에 아브라함의 기도를 기억하고 롯을 건져 주셨습니다.(창 19:29) 날마다 습관처럼 기도하던 다니엘과 친구들은 위기의 순간에 믿음으로 대처하여 자신도 살고 모두에게 하나님을 알렸습니다.(단 6:10) 우리의 기도도 그렇게 쓰임받기를 원합니다.

8. 하나님께서는 불완전한 이스라엘을 회복하고 세워주시어 열방 가운데 거룩한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이도록 사용했습니다. 그 결과로 구원을 행하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되었습니다.(겔 36:23)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양자로 받아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통하여 찬송받기를 기뻐하십니다.(엡 1:6) 모두가 힘들어하는 때에 우리가 있습니다. 지금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는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을 많은 사람들과 나눠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하고 회복시키는 것을 기대하고 기도합시다. 하나님의 나라가 넓어지는 것을 함께 바라봅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사용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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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를 맺게 하는 하나님 (창 18:1-14, 골 1:21-29)

1. 아브라함이 어느 날 길가는 세 사람에게 잠시 쉬어가기를 청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과 두 천사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실 것을 믿게 하고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기 위하여 가는 중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손님 접대하기를 즐겨하던 사람입니다. 그 날도 손님들을 앉혀놓고 급하게 아내에게 떡을 만들게 하고 종들에게 요리를 시켰습니다. 그들이 그늘에 앉아 식사하는 동안 아브라함은 옆에 서서 시중을 들었습니다.(창 18:8) 히브리서는 아브라함이 손님 접대하는 것을 즐겨하다가 부지중에 천사를 접대했다고 말합니다.(히 13:2) 하나님께서 음식을 잡수신 것은 아브라함과 대화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도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먹으며 교제했습니다.(눅 24:41-43) 우리의 식탁교제도 성만찬처럼 주님 안에서 나누는 성도의 교제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창 17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손이 번성하게 될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 증거로 집안의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아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을 표시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라는 뜻의 이름인 ‘아브람’을 ‘열국의 아버지’라는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바꿔주셨습니다. 그의 아내 사래도 사라라고 바꾸어주시고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의 이름을 이삭으로 부르라고 했습니다. 이런 자상하고 큰 은혜를 입은 아브라함이지만 창 17:17-18에서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겠다는데도 늙고 지친 자신을 보며 이스마엘이나 보고 사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3. 그래서 창 18장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다시 찾아오신 것입니다. 마치 창세기 1장과 2장에서 창조에 대한 것을 중복하여 강조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확실하게 믿게 하려는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내년 이맘때에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텐트너머에서 들은 사라 본인도 속으로 웃었습니다.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12절) 생물학적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상태이고 남편도 나이가 많은데 아이를 갖는다니 어처구니가 없고 웃음이 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이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영적인 생활을 하면서도 여전히 육체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오늘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4. 하나님은 사라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창 18:13-14) 사라는 웃지 않았다고 했지만 하나님은 사라가 웃었다고 하시며 ‘하나님께 불가능한 일이 있단 말이냐?’라고 분명하게 못을 박으십니다. 우리의 형편이 어떻든지 하나님은 말씀하신대로 실행하는 분입니다. 아들을 낳는 것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몫이지만 그 일을 가능하게 하는 분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입니다. 히브리서는 그들이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임신하였고 하늘의 별과 바다가의 모래처럼 많은 자손을 얻었다고 말합니다.(히 11:11-12)

5. 하나님의 자상함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75세 때 그를 불러 하나님의 계획을 알려주고 지시할 땅으로 가게 했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순종하여 고향을 떠났습니다. 여러 훈련과정을 거치고 99세가 되자 그 약속을 다시 주셨습니다. 야고보는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벗(약 2:23)이라고 불렀지만 그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연약한 부분이 회복되도록 기다려 주신 은혜의 결과였습니다. 자기를 보호하려고 아내를 누이라고 두 번이나 거짓말했고(창 12:10-20, 20:1-18) 인간적인 해결책으로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낳기도 했습니다.(창 16:1-15)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아브라함을 사용했습니다. 아들을 주신다는 약속을 믿게 하려고 제물사이를 횃불로 지나가기도 하고(창 15:17) 사람의 모양으로 찾아와 대화하고 음식을 먹으며 약속을 믿게 만들었습니다.

6. ‘나 주가 할 수 없는 일이 있느냐?’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일한다는 것입니다. 연약한 아브라함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일을 이루어 간다는 것입니다. 롬 4:19-22 “아브라함은 자기 나이가 백세가 다 되어 몸은 죽은 것과 다름이 없었고 그의 아내 사라도 나이가 많아 도저히 출산할 수 없는 것을 알고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불신앙으로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에 더욱 굳게 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이루실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믿음 때문에 그를 의롭게 여기셨습니다.“ 믿음은 자기 힘을 의지하거나 그러다가 현실에 부딪혀 적당히 적응하거나 주저앉는 것이 아닙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행하실 것을 믿고 발을 내딛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를 힘입고 성령의 도움을 받아 신실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7. 롬 4:23-25 “하나님이 그를 의롭게 여기셨다는 말은 그에게만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다 의롭다는 인정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 때문에 죽임을 당하셨고 우리가 의롭다는 인정을 받게 하시려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열방을 구원하고 복 주려고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께서 우리시대의 사람들을 축복하려고 우리들을 먼저 불러 여기에 있게 했습니다. 요 15:15-16 “이제부터는 내가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른다. 오히려 내가 너희를 친구라고 부른 것은 내가 아버지께 들은 것을 모두 너희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너희가 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선택하여 세웠다. 이것은 너희가 세상에 나가 열매를 맺게 하고 그 열매가 항상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8. 바울은 만세전부터 감추어졌던 하나님의 비밀이 성도들에게 알려졌다고 말했습니다. 그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영광과 소망이 되신 주님(골 1:25–26)이라고 가르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여기로 불러주시고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주셨습니다. 그래서 함께 예배하고 후배들을 말씀으로 가르치며 문화학교와 구역선교를 통하여 복음을 전하려 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도마에게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 20:27)고 했던 말씀을 기억합니다. 우리의 구원을 다시 점검하고 믿음의 훈련을 계속하여 더 많은 사람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열매를 풍성하게 거두는 여름철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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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눅 10:25-37 레 19:9-18 골 1:9-12) 창립38주년기념

1. 율법은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가르칩니다.(눅 10:27)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계명의 완성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형제를 사랑하는 구체적인 일에서 나타나야 합니다.(레 19:18) 예수님은 그것을 누가복음에서 선한 사마리아 사람을 예를 들어 가르쳤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가 앗수르에 망한 이후에 타민족과 섞이게 된 것 때문에 그들을 무시했습니다. 심지어 유대인들은 여행할 때에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하지 않기 위해서 먼 거리를 우회할 만큼 반목이 심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사람을 이웃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2.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어떻게 영생을 얻는지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율법이 무어라고 가르치는지를 물었고 그는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 같이 사랑하라.’고 했다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대로 행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은 이웃이 누구냐고 되묻습니다. 예수님은 비유로 대답했습니다. 여리고로 내려가는 도중에 한 사람이 강도를 만나 다 죽게 된 채로 버려졌습니다. 마침 제사장과 레위인이 그의 곁을 지났지만 무시하고 자기 길을 갔지만 사마리아 사람은 그 사람을 불쌍히 여겨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부어 응급조치를 하고 주막으로 옮겨 치료받도록 조처해주었습니다. 말씀을 마친 후에 예수님은 세 사람 중에 강도만난 사람의 이웃이 누구인지를 그에게 묻습니다. 그는 선을 행한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대답합니다.

3. 제사장과 레위인은 예배를 인도해야 해서 부정한 시체를 만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정한 것도 일정시간이 지나면 정결해질 수 있으니 그것도 핑계일 뿐입니다. 종교적인 훈련이 잘 된 그들은 강도만난 사람을 방치했지만 유대인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던 사마리아 사람은 오히려 자기 길을 멈추고 상처받은 사람에게 필요한 조처를 취했습니다. 다친 사람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에게는 더 급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은 일상생활 속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웃에게 무심하거나 자기 일에만 바쁘다면 우리의 신앙은 이론에 그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요일 4:2)라고 했습니다. 형제의 필요를 외면하는 사람이 형제를 사랑한다고 할 수 없고 그런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더더욱 사랑할 수 없습니다.

4.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자기들의 율법기준으로 판단하고 정죄했습니다. 그래서 피가 섞인 사마리아 사람들을 이웃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병자를 치료하고 스스로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예수님을 용납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습니다. 예수는 자기들의 율법가치체계를 흔드는 반역자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우리의 믿음을 근거로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게 잣대질하기 쉽습니다. 종교가 다르다고 미워하고, 인종을 구분하고 편애하거나,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실수도 합니다. 서로 인정하고 섬기는 것이 주의 이름으로 행하는 선입니다. 예수님이 율법사에게 ‘가서 이와 같이 행하라.’고 한 것은 상대를 정죄하고 구분하는 그의 의와 편견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죄인들의 친구가 되신 것처럼 그렇게 행하라는 것입니다.

5. 사랑은 모든 율법을 완성하는 것이며 모든 허물을 덮는 것입니다. 사랑의 관계에 있으면 남을 해치거나 다치게 할 이유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죄인들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겨 자신을 희생 제물로 내주었습니다.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우리의 죄 값을 치루기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보여준 것입니다.(롬 5:8) 주님은 우리들의 상처에 복음이라는 치료제를 발라주었습니다. 자기 경비를 들여 강도만난 사람을 주막으로 옮겨 치료받게 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주님은 상처 받은 우리들을 교회로 옮겨다 놓고 성령으로 함께 하시며 정성껏 돌보셨습니다.(눅 10:34-35)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겠다는 소원을 가질 만큼 회복되었습니다.

6.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교인들이 복음을 듣고 열매를 맺고 성장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바울이 그들이 예수를 잘 믿고 서로 사랑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진리의 말씀을 잘 배웠고 약속을 믿고 하늘나라를 소망했습니다.(골 1:4-5) 이전에는 악한 행실 때문에 하나님과 원수였지만 이제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믿는 자들을 거룩하고 책망 받을 것이 없는 사람으로 세우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희생 당하셨다는 것을 깨달은 후에는 그들의 삶의 목적과 방향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골 1:21-22) 바울은 교인들이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되기를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바울은 교인들이 유업을 물려받을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깨닫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은 교인들이 마지막 날에 받을 상급을 위하여 믿음의 경주를 잘 하기를 기도했습니다.

7. 우리교회도 38년을 지나면서 여러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을 배웠습니다. 우리의 인내심이 부족하여 실수할 때도 있었지만 신실하신 하나님은 때마다 우리를 위로하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과거의 여러 성도들과 목회자들이 이 교회를 섬기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고 수고하고 땀을 흘렸기에 오늘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길이 보이지 않을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해답을 주셨고 그럴 때마다 주의 말씀에 순종하고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교회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라 주님이라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우리들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내일도 주님의 손에 올려드립니다. 우리가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기며 서로 뜨겁게 사랑하면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사용하실 것입니다.

8. 엡 2:20-22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영적인 지혜와 총명을 주시어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의 능력을 충만하게 해주시어 순례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도록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후배들도 하나님을 향한 우리들의 믿음과 형제를 사랑하는 것을 보고 배우기를 기대합니다. 주께서 우리를 사용하여 세상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능력주시는 주님 안에서 우리가 그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빌 4:13) “여러분도 그와 같이 행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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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누리는 감격 (사 66:10-14, 눅 10:17-24)

1. 1760년대의 영국은 전쟁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서 미국에 정착한 개척자들에게 인지세와 물품 세를 부과했습니다. 개척지에 정착한 사람들은 자기들을 대변해줄 대표도 본국에 보내지 못하는데 많은 세금을 내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한 보스톤의 청년이 세관경비병에게 눈덩이를 던진 것을 이유로 영국군은 무차별 발포를 하여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영국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은 점차 고조되었고 1773년 12월 16일에는 보스톤 앞바다에 정박한 영국 동인도회사의 배에 실린 티를 모두 물에 던져버린 보스톤 티 파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영국은 이 일에 대해 벌금을 부과하고 보스턴 항구를 폐쇄했습니다. 개척지의 자체의회도 해산하고 영국군 총독에게 권한을 주어 통제했고 군대 주둔을 위한 비용도 부담하게 했습니다. 결국 1775년 4월 19일에 콩코드에서 민병대와 영국군사이에 렉싱톤 전투가 일어났고 그것은 독립전쟁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2.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논의한 대륙회의는 버지니아의 토마스 제퍼슨, 매사추세츠의 존 아담스, 코네티컷의 로저 셔먼, 펜실베니아의 벤자민 프랭클린, 뉴욕의 로버트 리빙스턴으로 5인 위원회를 구성하여 독립선언문의 초안을 작성하게 했습니다. 1776년 7월 2일에 모인 대륙회의에서 독립을 결의하고 이틀 후 7월 4일에는 13개 식민지 대표단들이 토머스 제퍼슨이 작성한 독립선언문을 채택하고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이 후에도 영국과의 싸움은 7년이나 지속되다가 1783년 9월 3일에 파리 조약을 맺으며 영국은 미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모든 통치에서 손을 뗐습니다. 자유를 쟁취하는 일에는 여러 사람의 땀과 희생이 필요했습니다.

3. 성경도 자유에 대하여 가르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죄의 값을 대신 지불하고 우리를 죄에서 자유롭게 하신 것을 말합니다. 죄는 과녁을 벗어난 화살처럼 하나님의 계획에서 벗어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를 무시하고 떠나버린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과의 단절은 죄이며 죽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과를 금한 것은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만족을 누리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단은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속여 아담으로 교만한 마음을 품게 했습니다.(창 3:4-5) 아담은 자기욕심을 선택하여 사단의 종이 되었고 하나님이 주신 자유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자유를 다시 찾아주려고 죄에 대한 벌을 대신 받았습니다.(갈 5:1)

4. 이사야는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을 떠난 북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망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상을 숭배하는 남 유다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고 속히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서도 제사를 드렸으니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런 형식적인 예배행위는 오히려 하나님을 진노하게 했습니다.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사 1:13-14) 하나님께서는 삶의 열매는 없으면서 성전 마당만 밟는 그들의 형식적인 종교행위를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5. 사 66:2-4(현대인의 성경) “나는 겸손한 마음으로 크게 뉘우치며 내 말을 두렵게 여기는 자에게 은혜를 베푼다. 그러나 자기 멋대로 행하며 죄 짓는 일을 기뻐하는 자들은 소를 잡아 제사를 드려도 사람을 죽이는 것과 다름이 없으며 양으로 제사를 드려도 개의 목을 꺾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들이 곡식을 드리는 소제는 돼지의 피를 드리는 것과 같고 그들이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양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내가 그들이 받을 형벌을 택하고 그들이 무서워하는 재앙을 보낼 것이다. 이것은 내가 불러도 그들이 대답하지 않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듣지 않고 오직 내 앞에서 악을 행하며 내가 기뻐하지 않는 것을 택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의를 행하지도 않고 형제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자기욕심을 위해 형식에 매인 예배를 드렸습니다. 욕심이 가득한 그들의 예배는 우상숭배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6. 하나님은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갖는 사람에게 은혜를 주십니다.(사 66:2, 5) 나라를 잃고 강대국의 포로가 되는 심판 중에서도 하나님은 이런 마음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을 남겨두셨습니다. 남은 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진행되었습니다. “내가 예루살렘의 평화를 강물처럼 넘치게 하고 온 세계의 재물이 너희에게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오게 하겠다. 너희가 어머니의 젖을 빨며 그 무릎에 앉아 노는 어린아이와 같을 것이다. 어머니가 자기 자식을 위로하듯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이니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을 것이다.”(사 66:12-13) “내가 만들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존속할 것이 분명한 것처럼 너희 후손과 너희 이름도 분명히 존속할 것이다.”(사 66:22) 하나님은 자기 마음에 합당한 사람들을 세워 일하십니다.

7. 예수님은 공생애의 마지막이 가까워오자 70명의 제자들을 따로 세워 아직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마을에 가서 전도하게 했습니다. 돌아온 제자들은 복음을 듣는 사람에게서 귀신이 도망가고 그들이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고 보고했습니다. 예수님은 기뻐하시며 제자들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인해 더 기뻐하라고 말했습니다.(눅 10:20) 제자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자기 일이나 혈육의 정도 미뤄놓을 때가 있고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소망으로 인내하고 주께서 주시는 위로와 평강을 누립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을 사명으로 알고 주님의 명령에 순종합니다.(마 28:19-20) 그 일을 위해서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께서 오시어 교회와 함께 하며 돕고 위로하고 상담하고 중보해주십니다.(롬 8:12-17)

8. 우리들은 복 받고 성공하기 위한 신앙생활에 머물지 않습니다. 자기 신앙을 지키는 것은 물론이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하나님 나라의 훼방꾼인 마귀를 대적하고(약 4:7) 영적싸움을 계속합니다. 내가 져야할 십자가는 피하지 않고(눅 9:23) 자기 욕심은 십자가에 못 박고 부활하신 주님을 절대 의지합니다.(갈 5:24)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이 이웃사랑에서 나타나게 합니다. 그 사랑의 관계를 통하여 나를 변화시킨 복음의 능력이 흘러가게 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가 구원받은 감격으로 살며(눅 19:9) 더 많은 죄인과 세리들을 예수님께 인도한 것처럼 말입니다. 바비큐와 폭죽놀이로 독립을 축하하는 오늘 우리에게 죄의 굴레에서 자유롭게 된 구원의 감격이 더 새롭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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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 (왕상 19:11-18, 눅 9:51-62, 갈 5:13-26) 6/26/22

1. 엘리야가 자기 홀로 남았다는 절망감과 자신을 겨눈 이세벨의 칼 앞에서 두려워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엘리야야, 너는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바알 선지자들과의 싸움에서 크게 이겼지만 자기를 죽이겠다는 이세벨의 말 한마디에 무너져 죽기를 청할 만큼 힘들었던 엘리야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풀어 먹고 쉬며 힘을 얻어 호렙산으로 인도했습니다. 모세가 불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던 그 산에 서게 했습니다. 엘리야는 혼자 남았다고 두려워했지만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사람 칠천을 남겨두셨습니다.(왕상 19:17) 하나님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 해답을 주시며 사명을 새롭게 합니다.

2.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기대와는 다르게 세미한 소리로 다가오셨습니다. 세미한 소리는 짧은 침묵의 소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강풍이나 지진으로 강하게 일하실 때도 있지만 조용하게 다가와 자상하게 만져주기도 합니다. 죄를 짓고 숨어 있던 아담을 찾아와 구원의 길을 제시한 하나님(창 3:15), 약속을 받고도 확신하지 못하는 아브라함에게 찾아와 다시 아들을 약속한 하나님(창 18:1)이 우리에게도 해답을 갖고 찾아오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라고 가르쳤습니다.(딤후 2:15)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배우고 묵상하고 또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편협한 우리의 경험으로가 아니라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로 하나님을 배웁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롬 8:9) 그래서 성령을 모신 우리들은 욕심대로 살지 않고 성령께 순종하기를 날마다 훈련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의 메신저인 그리스도를 세상에 오셨습니다. 사람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를 자상하게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여러 제자들을 메신저로 안수하고 파송하여 하나님 나라를 전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희생제물이 되어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그 죽음으로 죄의 값을 치루시고 다시 부활하여 그를 믿는 사람들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했습니다.(요 3:16) 교회역사에 이 복음을 전하는 일군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복음을 듣고 예수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믿음의 선배들처럼 죄 용서를 얻고 자유를 누리게 하는 해방의 복음을 생활 속에서 전하고 나누기 원하는 것입니다.(갈 5:11)

4.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하게 될 때의 이야기입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을 점령한 앗수르는 수도 사마리아에 사는 사람들을 앗수르로 이주시키고 대신 여러 다른 민족의 사람들을 강제로 옮겨와 사마리아에서 살게 했습니다. 어느 날 사마리아 지역에 사자가 출몰하여 몇 사람을 물어 죽였습니다. 그러자 앗수르 왕은 그 지역의 신이 노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포로로 잡혀 온 제사장 한 사람을 돌려보내 하나님을 예배하는 법을 가르치게 했습니다. 사마리아에 정착한 사람들은 그렇게 하나님도 섬기고 또 자기들이 원래 섬기던 신도 함께 섬겼습니다. 피가 섞이고 종교가 섞인 이런 역사 때문에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싫어했습니다. 예수님의 일행을 환영하지 않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향하여 제자들조차 하늘에서 불을 내려 살라버리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5. 예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십자가를 지러 가는 예루살렘으로의 여정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자로서의 생활이 어떠해야하는지를 여러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가르쳤습니다. 한 사람이 예수님을 따라서 어디든 가겠다고 장담했습니다.(눅 9:57) 그런데 예수님은 그를 칭찬하고 환영하기 보다는 자신은 머리 둘 곳이 없는 사람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십자가를 앞에 둔 예수님의 마음이 무겁기도 하고 또 사명을 위해 사는 것 자체가 고독한 생활이라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주님은 세상의 미움을 받고 머리 둘 곳조차 없지만 하나님 나라를 전하고 십자가를 지는 자기 길을 묵묵하게 걸어갔습니다. 땅에서 풍요를 누리고 성공하려는 보상 심리로 예수님을 따르려고 하면 실망할 수 있습니다. 가치 있는 것을 선택할 때는 덜 가치 있는 것들은 과감히 버려야만 합니다. 땅의 필요를 외면할 수는 없지만 영적생활의 우선순위를 혼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6. 또 한 사람은 예수님의 부름에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고 말씀합니다.(눅 9:60) 이 사람의 아버지가 정말 죽었다면 율법에 따라 주검을 본 이 사람은 이미 부정하여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공개적인 장소에 나온 것으로 보아 그의 아버지가 죽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고 핑계일 뿐입니다. 아버지의 장례가 중요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는 중요한 일도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바쁜 일을 다 미루고 우선 처리하는 장례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것입니다. 어릴 적 목사님이 부흥회에 참석하라고 광고할 때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다고 생각하고 시간을 구분해 놓으라고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신앙생활은 우선순위의 문제입니다.

7. 또 다른 한 사람은 먼저 가족과 작별인사라도 하고 따르겠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62절에서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합니다. 쟁기질은 앞으로 똑바로 움직여야 하는 일입니다. 소를 몰면서 뒤를 돌아보면 똑바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과거의 죄는 잊고 구원의 감격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모든 우선순위를 뒤로 미루고 먼저 장례를 치루는 것과 같은 우선순위를 적용한다면 더 적극적으로 주님을 기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먹고 입는 것보다 하나님 나라와 의를 우선하는 것이 믿음의 바른 자세인 것을 알면서도(마 6:33) 현실과 타협하는 우리들의 약함을 반성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면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을 것인지에 대한 두려움은 더 이상 우선순위가 되지 못합니다. 그것이 믿음으로 누리는 자유입니다.

8. 여러분의 해결되어야 할 현실문제는 무엇입니까? 가정을 돌보고 일터에서 일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일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되는 것보다 더 중요할까요? 주께서 십자가에서 죄의 값을 지불하여 이루어 놓은 자유와 해방을 믿고 누리는 것이 더 급하지 않겠습니까? 구원의 감격을 맛본 사람은 하나님 사랑과 형제 사랑을 실천하여 자신도 복되게 살고 또 다른 사람을 복음에 이르도록 안내할 수 있습니다.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 자기위주의 신앙생활과 현실안주를 바라는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여 하나님 나라를 우선하는 성령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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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자유를 얻는 길 (눅 8:26-39, 갈 4:1-7)

1. 전염병 때문에 모두가 고생하는데 한편에서는 전쟁으로 많은 사람이 죽고 아파합니다. 모든 나라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에게는 최선의 결정이었을 것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여러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지만 외부적인 형편들이 풀려야 가능한 것들이라 쉽지 않습니다. 일상의 자유를 누리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절실하게 배우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떠난 상태를 죄라고 하고 그것을 죽음이라고 설명합니다. 인간 스스로 자유와 행복을 선택한 것이 결과는 오히려 불행이었습니다. 마틴 루터가 말한 것처럼 물고기는 물에서 자유를 얻고 병아리는 어미 날개 아래에서 자유를 누리듯이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참 자유를 누리는 존재입니다.

2. 그래서 선지자들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에게 절하는 이스라엘에게 속히 돌아오라고 외쳤습니다. 은혜를 입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시편 78:56-61 “그들은 지존하신 하나님을 시험하고 반항하여 그의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며 그들의 조상들 같이 배반하고 거짓을 행하여 속이는 활 같이 빗나가서 자기 산당들로 그의 노여움을 일으키며 그들의 조각한 우상들로 그를 진노하게 하였으매 하나님이 들으시고 분내어 이스라엘을 크게 미워하사 사람 가운데 세우신 장막 곧 실로의 성막을 떠나시고 그가 그의 능력을 포로에게 넘겨주시며 그의 영광을 대적의 손에 붙이시고.“ 하나님은 자신이 선택한 백성들이라도 죄에서 돌이키지 않을 때에는 그들을 떠나고 그들을 원수의 손에 넘겨 고통을 받게 했습니다. 하나님과의 단절이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3. 이사야는 우상을 섬기고 악을 행하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따라 옳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사 65:2)라고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적극적으로 “내가 야곱에게서 씨를 내며 유다에게서 나의 산들을 기업으로 얻을 자를 내리니 내가 택한 자가 이를 기업으로 얻을 것이요 나의 종들이 거기에 살 것이라.”(사 65:9)라고 선택한 백성들이 그의 거룩한 산에서 평화를 누리며 살게 될 것을 약속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반역자 같은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먼저 자신의 손을 내미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무관심하고 자기들 욕심대로 사는 사람들을 깨우치기 위해서 그의 아들을 보내주셨습니다.

4.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를 벌해야하는 하나님의 공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대신 죄의 값을 치르고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요 3: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롬 5:8-9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로 의롭다는 인정을 받았으니 틀림없이 그분을 통해 하나님의 무서운 형벌에서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 어떤 형편에 있는 사람이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참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모든 묶인 것들에서 해방되는 은혜를 받습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5. 예수께서 이방인들이 사는 데가볼리 지역을 방문했습니다. 거기에는 벗은 몸으로 무덤 사이를 배회하는 귀신 들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군대귀신에 사로잡혀 있었고 아무도 그를 제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불쌍히 여겨 고쳐주셨습니다. 예수께서 귀신에게 그에게서 나오라고 명하자 귀신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라고 부르며 아직 무저갱으로 떨어질 때가 아니니 돼지 떼로 들어가게 해 달라고 애걸했습니다.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간 귀신은 이천 마리나 되는 돼지 떼를 물에 수장시켜 버렸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자유를 되찾은 청년에 대한 관심보다 경제적 손실을 걱정하며 동네를 떠나 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행한 크신 일을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는 온 동네 사람들에게 자신을 구원하신 예수님에 대해 자랑했습니다.(눅 8:26-39)

6.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하나님과 교통할 때에만 존엄성을 유지하고 가치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자기욕심에 사로잡히게 되고 하나님 나라의 훼방꾼인 귀신은 뒤에서 교묘하게 속여 서로 빼앗고 싸우고 죽이게 합니다. 귀신들린 사람이 자기 삶의 터전을 떠나 벗은 몸으로 무덤 사이에서 방황하며 삶의 가치와 목적을 잃어버린 것처럼 말입니다. 에덴에서의 아담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질서를 따르지 않고 자기 욕심을 따르다가 에덴에서 쫓겨났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과의 단절이고 죽음입니다. 이스라엘도 하나님을 떠나 이방사람들이 섬기던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죄에 빠진 인간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아야만 했습니다. 예수님이 귀신들린 청년을 회복시켜준 것처럼 하나님은 이렇게 형편없는 자들을 자기 백성으로 불러주셨고 때가되자 그 아들을 보내 죄인들의 죄를 모두 씻어주시고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해주셨습니다.(갈 4:4)

7.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이 요구하는 죄의 대가를 십자가에서 지불해주셨습니다. 그가 희생제물 되어 죄인들을 위해 죽음으로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켰습니다. 그리하여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고 진정한 해방을 누리게 했습니다.(요 3:16) 우리는 주께서 행하신 구원의 일을 귀로 듣고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것을 물려받을 양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빠로 부르는 후계자가 되었습니다.(갈 4:7) 이것이 예수를 믿고 누리는 특권입니다. 수가성 우물에 물을 긷던 여인이 생수이신 예수님을 만나 자기 삶의 갈증을 해결했습니다.(요 4:1-30) 돈의 노예가 되어 삶의 가치를 잃어버렸던 세리장 삭개오도 예수님을 만나 돈으로부터 자유하게 되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눅 19:1-10)

8.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른 모습의 짐을 지고 삽니다. 그러나 그것을 예수님에게 맡기면 그가 묶인 것들을 풀어주고 쉼과 자유를 주신다고 약속했습니다.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요 8:36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롬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행 16:31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계 3:20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예수를 주로 인정하고 믿는 것이 참 자유를 누리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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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협력(엡 1:3-14, 잠 8:22-31) 6/12/22 야외예배

1. 우리가 어렸을 때에는 부모님에 대하여 깊이 알지 못하다가 나이가 들면서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게 됩니다. 우리들이 결혼하고 자식을 기르면서 부모를 위대하게 여기고 또 나이 들어가는 부모를 아쉬워하게 됩니다. 하물며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들이 더 큰 부모이신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해 정도에 따라 신앙의 깊이와 모습이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 17:3)이라고 했습니다.

2. 오늘은 삼위일체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삼위일체라는 말은 세 위격을 가진 하나님이 한 몸으로 존재하고 그러면서도 각기 독립된 사역의 분야가 있다는 것을 근거로 생겨난 표현입니다. 교리적인 이해도 중요하지만 그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하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것은 극히 일부분이고 제한적이기 때문에 성경이 말하는 것만큼만 이해해야 합니다. 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만나주신 것이 은혜입니다. 죄인들을 위해서 화목제물이 되신 그리스도를 조명해주시는 성령의 은혜가 그래서 날마다 필요합니다.

3.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삼위 하나님께서 구원을 위해서 어떻게 협력하는지를 설명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우리의 구원을 계획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세상에 오시어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알려주셨고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 죄인들이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길을 여셨습니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을 우리에게 적용하고 그것을 보증해 주십니다.(엡 1:3-13) 삼위 하나님이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렇게 협력합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를 말할 때에는 논리적이고 지식적인 이해에 머물지 말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세 분 하나님께서 서로 협력하고 교제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은혜를 받은 성도로서 교회공동체 안에서 서로 협력하고 하나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감격을 찬송하고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일도 함께 해야 합니다.(엡 1:14)

4. 예수님은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1)라고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인 것처럼 성도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요한은 세상을 창조하신 아버지께서 말씀이신 그리스도와 처음부터 함께 계셨다고 설명합니다. 요 1:1-3 “우주가 존재하기 전에 말씀되시는 그리스도가 계셨다. 그분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바로 그분이 하나님이셨다. 그리스도는 맨 처음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모든 것은 그분을 통해서 창조되었으며 그분 없이 만들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잠언서도 지혜이신 그리스도께서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했다고 말합니다.(잠 8:22-31) 우리들이 거룩한 공교회를 믿고 성도의 교제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나인 것처럼 모든 교회가 하나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5. 바울은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보내 여자에게서 태어나게 하시고 율법의 지배를 받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이 아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성령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셔서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습니다.“(갈 4:4–6)라고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설명했습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육체로 세상에 오시어 영으로 볼 수 있는 하나님 나라를 알려주셨습니다.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 주셨기에 그를 믿는 사람들은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온 인류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이 되었습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오순절 성령강림을 체험한 제자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분명하게 이해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어보면 분명합니다. “이스라엘 사람 여러분, 이 말을 들으십시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하나님은 나사렛 예수님을 통해 기적과 놀라운 일을 여러분 가운데 베푸셔서 그분을 여러분에게 증거해 주셨습니다. 이 예수님은 하나님이 미리 아시고 정하신 계획에 따라 여러분에게 넘겨졌는데 여러분이 악한 사람들의 손을 빌어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죽음에 붙들려 계실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행 2:22-24)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오른편에 계시며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에게 받아서 부어 주셨다고 설명했습니다.(행 2:33) 지금도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께서는 교회위에 항상 함께 하시며 구원의 일을 계속하고 계십니다.

7. 우리들도 그 부름에 응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삼위 하나님의 협력처럼 우리들도 교회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각자가 자기 구원을 위해서 일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교회 공동체는 성령께서 주시는 구원의 감격이 폭발적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신분이 변한 것이기도 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영광을 누리는 자격을 얻은 것이기도 합니다. 성령의 도움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롬 8:29)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벧후 1:4)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위하여 자기 아들을 주신 하나님(요 3:16)을 따라서 우리도 서로 사랑하고 하나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8. 그동안 팬데믹 때문에 자유롭게 모이지 못하던 우리들이 오늘 오랜만에 야외에서 모였습니다. 모처럼 얼굴과 얼굴을 대하고 또 함께 식탁의 교제를 나누면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엡 1:14 “성령께서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우리가 받을 것이라는 것을 보증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이 구원을 받아 그분의 영광을 찬양하도록 하십니다.” 서로 다른 지체들이 모였지만 하나 되게 하는 성령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천국의 기쁨을 함께 나눕시다. 영원한 생명을 지금 여기서 함께 경험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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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함께 (요 3:16-21, 사 32:15-20)성령강림절 맥추감사주일

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불러 자기 백성으로 삼아주셨습니다.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셨고 율법을 지키고 희생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게 했습니다. 출 19:5-6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만하면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나 유효했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하나님처럼 되려고 했던 교만한 죄가 시대마다 반복되었습니다.

2. 하나님은 죄인들을 홍수로 심판하려고 노아를 택하여 심판과 구원의 소식을 전하게 했습니다.(창 6:17-18) 그러나 사람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방주에 들어가 구원받은 사람들은 노아의 식구들뿐이었습니다. 그러면 노아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계획대로 살아야 마땅했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은 하나의 언어와 하나의 말로 자기 힘을 과시하며 하나님처럼 되려고 했습니다.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창 11:3-4)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고 거만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언어를 흩어 알아듣지 못하게 했고 하나님과 견주려던 그들의 일은 중단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나뉘고 흩어졌습니다.(창 11:9)

3. 오늘은 성령강림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한 후 열흘 동안 약속을 붙들고 함께 기도하던 제자들에게 성령께서 강림했습니다. 그들은 급하고 강한 바람소리를 들었고 각 사람의 머리위에 임한 불을 보았습니다. 성령께서는 제자들의 혀와 입을 사용하여 여러 지방에서 모인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는 구원에 관하여 자기 말로 듣게 했습니다. 바벨탑사건으로 나뉘었던 언어의 장벽을 무너뜨려 은혜의 복음이 전해지게 했습니다.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여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겨 이르되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행 2:4-8)

4. 성령께서 각자의 말로 복음을 듣게 했고 복음을 듣고 회개한 사람들은 모여 교회를 형성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를 알려주신 것처럼 성령께서는 그리스도를 알려주고 믿고 따르게 합니다. 오늘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구원을 세상에 알리려고 성령께서 교회를 세우고 성도들을 도와주십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 14: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5.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이 요구하는 죄의 값을 치루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주심으로 새 언약의 보증이 되었습니다.(히 7:22) 예수님은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 14:13-14)라고 약속했습니다. 주께서는 죄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과 평화를 이루게 했습니다. 또 다른 보혜사, 곧 진리의 영인 성령을 보내어 구원사역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성령께서는 오늘도 교회의 구성원인 우리들과 함께 구원의 일을 계속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요 14:16)라는 말씀은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한다는 약속이며 동시에 우리가 성령과 함께 일해야 한다는 부름이기도 합니다.

6.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요 3:20) 세상은 어둠에 속하였기에 빛이신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말씀과 성령으로 어둠을 드러내고 몰아내기에 세상은 당연히 그를 미워했습니다. 어둠에 속한 사람의 마음은 요동치는 바닷물과 같아서 쉼과 평안이 없습니다.(사 57:20-21) 그러나 주님 안에 거하는 성도는 참 평안과 완전한 회복을 누립니다.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사 57:15)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 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사 57:19)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이것이 성령과 함께하는 성도가 누리는 복입니다.

7.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회개하는 자에게 죄의 용서를 주고 성령을 부어주어 참 빛인 그리스도 안에 머물며 평강을 누리게 합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지혜인 그리스도를 알게 하고(고전 1:24) 그리스도 안에서의 완전한 구원과 회복을 누리게 합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복을 누리도록 교회와 성도들을 사용합니다. 연약한 우리를 도와주시어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일할 수 있게 합니다. 죄와 상관없는 거룩한 성도(요 3:21)로 살면서 구원의 감격을 자랑하게 합니다.(롬 5;2) 영혼이 잘되고 범사를 형통하게 도와주십니다.(요삼 1:2) 이사야는 죄 때문에 심판받아 황량한 광야처럼 되어버린 이스라엘이지만 장차 하나님께서 열매가 가득하고 정의로운 세상에서 안전하게 거하도록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사 32:15–18) 하나님의 구원은 완전한 회복입니다.

8. 성령강림절, 맥추감사주일에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돌아봅니다. 어려운 때에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가운데 살게 됨을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풍성한 꼴을 얻으며(요 10:9)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을 살리는 복의 통로(창 12:3)로 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성령의 은혜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롬 12:2)하며 믿음으로 살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교회와 성도들을 세우셨으니 증인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힘주실 것을 믿습니다.(행 1:8) 우리들의 신앙여정이 성령과 함께 하는 기쁨으로 더욱 충만하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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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증인(행 1:1-11, 엡 1:17-23)

1. 엊그제 목요일은 주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것을 기념하는 승천일이었습니다. 무덤에서 부활하신 주님은 부활하신 몸을 여러 사람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무덤을 지키던 여인들은 물론이고 제자들과 40일을 함께 보내며 하나님 나라를 말씀했고 500명 이상 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기도 했습니다.(고전 15:6) 예수님의 승천은 약속한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고 성도의 거처를 준비하려고 지상사역을 마치고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 우편에 다시 앉으신 것입니다.

2.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은 장엄했습니다. 예수님은 구름을 탄 듯 구름 속으로 올라갔고 그 하늘에는 구름이 가득했습니다.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막에 임하신 하나님의 모습도 구름으로 나타났고(출 40:34) 변화 산에서도 구름이 예수님과 제자들을 에워쌌습니다.(마 17:5, 눅 9:34) 재림 때에도 구름타고 오신다고 했습니다.(마 24:30) 예수님은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가운데로 들어갔습니다. 제자들은 그 모습을 계속 지켜보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예수님은 보이지 않고 빈 하늘만 보였습니다. 그때 흰옷 입은 두 천사가 나타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 1:11)라고 제자들을 정신 차리게 했습니다.

3. 그것은 마치 변화 산에서 그 일의 의미보다 신기함에 사로잡혀 초막을 짓고 더 머물자고 했던 제자들의 모습과 같았습니다. 빈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제자들에게 이제 그만 정신 차리고 예수를 깊이 생각하도록 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의 때를 묻던 제자들에게 오히려 성령으로 펼쳐질 하나님의 나라를 기대하게 했습니다. 승천하신 모습 그대로 영광가운데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실 것도 알려주었습니다. 이날의 경험은 제자들에게 오래 기억되었고 재림을 확신하는 믿음을 갖게 했습니다. 육체로 오신 예수님은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신 죽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다시 살려내 하늘로 올리시어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 이름에 무릎을 꿇고 구주라고 고백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했습니다.(빌 2:9-11) 승천은 육체로 오시어 지상 사역을 완성하신 주님께서 다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영광을 회복한 것입니다.

4. 승천하신 예수님은 약속대로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셨고 때가되면 다시 돌아와 믿는 자들을 데리고 가서 영원히 거기서 살 것입니다.(요 14:2-3) 주님은 지금도 성도들의 거처를 마련하고 계시며 대제사장으로 중보의 일을 하고 계십니다.(히 4:14-15) 교회에게 말씀과 성령으로 함께 하시며 복음이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해지도록 일하고 계십니다. 엡 1:22-23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굴복시키시고, 그분을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분의 충만함입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가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히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 성도들을 그 영광에 참여하게 할 것입니다.

5. 예수님은 잡히시던 날에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또 제자들을 통하여 믿게 될 미래의 성도들을 위해서도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는 믿는 자들이 주님과 하나가 되어 주님의 영광에 동참하기를 바라는 기도였습니다. 요 17:24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사람들도, 내가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게 하여 주시고, 창세전부터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셔서 내게 주신 내 영광을, 그들도 보게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 육체를 입고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하늘 아버지와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셨습니다. 그의 거룩한 영광을 보여주고 그를 믿게 만들어 하나님 아버지께로 우리를 인도했습니다.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을 사랑하셨고 그 사랑으로 세상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요 3:16)

6.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알려주고 또 하나님의 공의를 충족시키려고 십자가에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었습니다. 부활하고 승천하신 것도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영광에 동참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사도들은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했고 복음을 듣고 믿는 사람에게 교회는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의미하는 것이고(갈 3:26-29) 그가 보내신 성령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육체의 제한을 가진 우리들이 전능하신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례 받고 교회생활을 하는 것은 종교 활동 차원을 훨씬 넘어서는 일입니다. 주님을 믿고 따르는 것이며 그 주님의 성품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 것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따라 복음의 증인으로 살면서 말입니다.

7. 교회는 영적 생활을 배우는 훈련장입니다. 다락방에 모여 성령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한마음 한 뜻으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성령께서 불과 능력으로 그들에게 임했고 새로운 힘을 주었습니다. 성령의 도움으로 회개하는 사람들이 늘었고 예루살렘 교회는 날마다 함께 모여 말씀을 배웠고 합심하여 기도했고 서로 뜨겁게 사랑했습니다.(행 2:42-47) 교회 공동체의 생명력은 함께 모이는데 있습니다. 같은 주님을 섬기고 같은 신앙을 고백하고 같은 재림의 소망을 갖는 것입니다. 함께 모여 예배하며 영적 힘을 나누고 그 힘으로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을 불러 함께 거하며 한 몸을 이루게 하신 것처럼(행 1:14) 한 성령 안에서 부름 받은 우리들도 주님 안에 거하며 주의 재림을 기다리며 복음의 증인으로 삽니다. 그가 장차 우리에게 생명수 샘물을 마시게 하고 생명나무 과실을 먹게 할 것을 기대하면서 말입니다.(계 22:2)

8. 교회는 세상에게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곳입니다. 성도의 교제와 섬김은 궁극적으로는 복음을 전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 일을 하기에 우리가 완전하지 못하다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도움이 필요하고 또한 우리끼리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사랑하기를 더 훈련해야 합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인격과 언어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복음을 가로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을 낮춰 육체가 된 것처럼 이제 우리가 성육신 정신으로 낮아져 서로를 섬기되 주님께 하듯 해야 합니다.(마 10:42) 헬라어의 증인(말투스)이란 단어는 순교자(마르투스)라는 단어와 같은 어근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무장된 성숙한 신자가 되어 죽음 앞에서라도 사실대로 말할 수 있는 복음의 증인이 되기를 함께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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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누리는 기쁨(요 16:19-24 계 21:1-8)

1. 육체를 갖고 사는 우리들은 염려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초대교회는 복음의 감동을 누구보다 크게 누렸지만 항상 유대교의 박해가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이 망한 이후에도 로마의 종교탄압은 계속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일은 로마황제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로 여겨져서 생명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께서 주시는 구원의 확증과 천국의 소망으로 기뻐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십자가 고난을 당하는 주님을 볼 때는 실망하고 흩어졌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다시 만나고 성령의 충만을 경험한 후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오늘은 어려움을 이기고 기쁨을 유지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2. 우선은 성도의 정체성이 분명해야 합니다. 성도로 부름 받은 우리들은 하나님의 품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죄를 용서받은 것은 물론이고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항상 계시며 평강과 기쁨을 유지하도록 힘을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 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요 1:12) 값없이 주시는 생명수 샘물을 마시고 구원받은 사람입니다.(계 21:6)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이며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벧전 2:9) 성도의 분명한 정체성과 구원에 대한 확증은 자신은 물론 가족에게까지 구원의 감격을 갖게 합니다.(행 11:14)

3. 구원받은 성도에게도 고난은 여전히 찾아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십자가 고난을 당하는 주님을 보며 실망할 것을 미리 아셨기에 그들이 고난을 이겨내고 평안을 누리기를 원했습니다.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3-24)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 14:16) 예수님은 제자들의 승리를 위해서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고 보혜사 성령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또 성령께서 어려움을 이기도록 힘을 주십니다.

4. 성령께서는 성도와 함께 하며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요 16:13)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합니다. 성부 하나님의 구원계획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을 믿게 합니다. 또한 성도의 연약함을 도와주시며 환란을 당하여 제대로 기도하지 못할 때에라도 성도를 위하여 중보해주십니다.(롬 8:26-27). 그리고 장래의 일도 알게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십자가와 부활을 이해하도록 도와주셨듯이 우리들에게도 천국을 소망하는 믿음으로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게 합니다. 사실 기도는 우리의 필요를 구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른 기도생활을 하면 베데스다 연못에서 주님을 만나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걷고 뛰며 찬송했던 환자의 변화와 같은 변화의 열매가 우리의 생활에서 나타납니다.

5. 성도는 장차 들어갈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사도요한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환상으로 보고 우리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천사가 높은 산으로 요한을 데리고 가서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인 천국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곳은 죄와 사망과 인간적인 고통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거룩한 곳입니다. 구속받은 성도들만 그곳에 들어가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거합니다. 천국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며 교회의 미래입니다. 그 성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왔다고 표현한 것은 천국이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마치 신부가 남편을 위해 단장하는 것처럼 천국은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순결한 모습을 보였습니다.(계 21:9,10) 지상의 교회는 천국의 분점입니다. 천국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하고 수정같이 맑게 빛나는 것처럼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통하여 천국의 기쁨과 영광을 지금 여기서 맛보는 것입니다.

6. 그런데 요한은 새 예루살렘 성에서 성전을 보지 못했습니다.(계 21:22) 전능하신 하나님과 어린 양이 바로 성전이 되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성전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을 만나고 교제하던 곳인데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들과 교제하는 천국에는 건물로 지어진 성전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설명해주신 예수님은(요 8:12) 전능하신 하나님과 함께 영광중에 계십니다. 천국은 해나 달의 빛도 쓸 데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비추고 또 어린 양이 등불이 되어 비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비추는 그곳은 밤이 없는 곳이기에 문을 닫을 필요도 없는 안전한 곳입니다. 그 밝은 곳에서는 아무것도 감춰진 것 없이 밝히 들어나는 곳입니다.

7. 하나님을 경배하는 충성된 성도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갈 것입니다.(계 21:24) 찬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구원받은 성도들만 들어가는 곳입니다. 적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과 우상을 숭배하며 음행을 행하고 거짓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은 결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이 들어갑니다.(계 21:27)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믿는 사람만이 영생을 소유한 사람이고 하나님과 어린 양의 성품과 뜻에 합당한 사람입니다. 구원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받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구원에 합당한 변화의 열매가 반드시 뒤따라야 합니다. 그런 살아있는 믿음을 끝까지 유지하는 사람만이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8. 성도는 고난을 통하여 다듬어지기에 모든 환경에서 기뻐해야 합니다. 다윗은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의 구원을 믿고 찬송했습니다. 선지자들은 죄를 심판하는 하나님의 경고의 소식을 대언하면서도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소식을 들은 하박국 선지자는 창자가 뒤틀리고 입술이 떨리고 뼈가 썩고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와 올리브 나무에는 거둘 열매가 없었고 외양간에는 양도 소도 없는 절망적인 현실이었지만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겠다.”고 의지적으로 기쁨을 노래했습니다.(합 3:16-18) 기쁨은 성령의 열매입니다.(갈 5:22) 그러므로 현재의 어려움에게 지지 말고 기쁨의 근원이며 신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구원의 감격을 새롭게 하고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을 의지적으로 붙잡고 기뻐하십시오. 이것이 성도가 누리는 기쁨이며 영적인 특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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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을 아는 사람. (고후 5:11-21) 남선교회 헌신예배

1. 사람은 자기가 누구이며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를 바로 알면 제대로 처신할 수 있고 자신감 있게 살 수 있습니다. 세상을 다 가질 수도 없고 모든 것을 완벽하게 처리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자기 일에서는 자신감을 갖고 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바울에게 많은 약점이 있었지만 복음전도와 교회를 위해서는 누구보다 열정이 있었고 그 일에 자기를 투신했습니다. 그가 이룬 위대한 업적은 따라갈 수 없지만 자기 한계를 바로 알고 부름에 응답하여 복음전도에 온 마음을 바쳤던 사명을 감당하는 자세는 우리가 함께 배우기 원합니다.

2. 바울을 괴롭힌 어려움은 바울이 정말 사도인가 하는 소문이었습니다. 바울과 생각을 달리하는 율법주의자들은 바울의 사도로서의 자격을 폄하하며 교회를 어지럽혔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서 돌고 있는 이 소문 때문에 직접 방문하여 해결하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 사이에 우리에게는 전해지지 않은 ‘눈물로 쓴 편지’혹은 ‘엄중한 편지’라고 불리는 편지가 있었는데 이 편지 때문에 그 문제가 일단락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고린도후서에서는 화목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그의 편지는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후 1:1-2)라고 시작됩니다.

3. 고린도후서는 개인적인 내용을 많이 담고 있습니다. 바울이 추천서 없이 사람을 가르친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다른 어떤 추천서보다 복음 안에서 변화된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이 확실한 추천서라고 했습니다.(고후 3:1-3) 바울의 말이 어눌하다고 험담하는 것에 대해서도 자기는 말은 부족하지만 대신 많은 학식을 가졌다며 다른 사도보다 뒤지지 않는다고 변호했습니다.(고후 11:3-4) 돈을 받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것에 대해서도 믿음이 어린 성도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다른 교회로부터 헌금을 받았다고 했습니다.(고후 11:7-9) 사도직을 수행하면서 옥에 갇히고 매를 맞고 위험에 처했던 일들을 열거하며(고후 11:23-27) 자기의 약함을 자랑했고 영적경험도 조심스레 언급했습니다.(고후 12:1-4). 또한 어려움에 처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구제헌금에 동참해 주기를 부탁하기도 했습니다.(고후 8:1-5)

4.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난 이후에 변했습니다. 주님을 만나는 자리에서 본 강한 빛 때문에 앞을 보지 못하고 있을 때 성령께서 아나니아를 보내 기도해주라며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행 9:15-16)고 했습니다. 바울이 자기 사명을 바로 알았기에 바른 헌신을 했습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분명한 회개가 있었고 자기 사명을 바로 알았기에 그리 헌신할 수 있었습니다.

5. 바울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14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한다고 말하며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항상 그런 마음으로 교회와 성도들을 섬겼습니다. 빌 2:17에서는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라고 고백했습니다. 전제는 희생제물 위에 포도주를 부어 드리는 제사입니다.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교회와 성도들이 주님 앞에서 바로 세워지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이 사명을 아는 사람의 태도이며 올바른 헌신의 자세입니다. 바울에게 교회와 성도를 섬기는 일은 주님을 향한 봉사였고 그래서 고난도 기쁘게 받았습니다.(벧전 4:13) 복음전도와 교회에 우선순위를 두고 살았던 바울의 헌신을 함께 배우기 원합니다.

6. 예수님은 자기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린 선한 목자입니다. 요 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그 안에서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려고 자신을 내주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약속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롬 5:6)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롬 5:8) 바울이 자신의 화려한 과거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얻으려고 결단할 수 있었던 것은 십자가 사랑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십자가 사랑을 경험하고 보니 예수를 믿고 따르는 것이 복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제자로 살기를 연습하는 것입니다.

7. 우리들은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의 옛 사람은 죽었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와 함께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났음을 믿습니다. 예수께 속한 사람이 되었으니 우리들도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여 주님을 사랑하는 포로가 되었다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5절은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합니다, 성도의 생활 목표와 정체성과 방향에 대해 말해줍니다. 성도는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18절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21절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거룩한 성도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8.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거룩한 성도는 또 다른 사람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 때문에 하나님과 상관없던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일을 널리 자랑해야 합니다.(엡 2:7) 헌신예배를 드리는 남선교회 회원들과 우리 모두가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여 각자의 사명을 바로 깨닫고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기를 위한 신앙생활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신앙생활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때문에 가정이 영적으로 살아나고 직장이 복된 일터가 되고 교회가 더 든든하게 세워지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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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안의 한 가족 (엡 6:1-4), 어버이주일, 윤준희 전도사님

엡 6:1-4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훈계와 훈계로 양육하라”
Ephesians (6:1-4 ESV) “Children, obey your parents in the Lord, for this is right. “Honor your father and mother” (this is the first commandment with a promise), “that it may go well with you and that you may live long in the land.” Fathers, do not provoke your children to anger, but bring them up in the discipline and instruction of the L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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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점검할 일 (요 21:1-17) 어린이주일

1. 오월은 어린이주일과 어버이주일이 있는 달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고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라고 설명했습니다.(요 5:17-18) 세상을 구원하려는 하늘 아버지의 계획에 순종하여 아들은 십자가에서 죄인들을 위하여 대신 죽었고 아버지는 죽은 아들 예수를 다시 살렸습니다. 모든 이름 위에 높여주셨고 마지막 날에 심판하는 권세도 주셨습니다.(요 5:20-22) 뿐만 아니라 그 아들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요 1:12) 우리가 이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게 되었고(롬 8:14-15)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다시 점점해 보기를 원합니다.

2. 성도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숙해지는 것은 어린아이가 자라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아이들은 삶의 모든 경험을 통해 배우고 성장합니다. 언제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말이 트이고 친구가 생기고 청소년기를 지나고 어른이 됩니다. 이것처럼 우리들이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에도 여전히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면서 영적으로 성장해 갑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위하여 친히 중보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기 때문입니다.(롬 8:26) 그래서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를 목표로 삼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엡 4:13) 만일 처음 상태에 머물러 있거나 과거의 신앙체험만을 간직하고 있다면 오늘도 성화의 과정에 있다는 감동을 놓치기 쉽습니다. 날마다 먹고 자는 일상을 통해 성장하는 아이들처럼 성령과 교제하며 깨어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영적으로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3. 베드로가 언제 회심하고 변화되었는지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처음 제자로 부름 받았을 때에 메시아를 만난 기쁨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요 1:42)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많은 고기를 잡은 베드로는 주님의 신적인 권위 앞에 압도되어 자기가 죄인이라고 고백했습니다.(눅 5:8)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고백하여 칭찬을 듣기도 했지만(마 16:16) 예수님이 심문당할 때에는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 주님을 사랑하느냐고 묻는 질문에 당혹해 하기도 했습니다. 성령 충만을 경험한 후에는 능력 있는 설교로 부활소식을 전했습니다.(행 2:32-33, 36) 이런 과정들을 통하여 베드로는 점점 변화되었고 제자로 만들어져 갔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숙해지는 점진적인 과정입니다.

4. 주께서는 밤새 헛수고한 제자들에게 배 오른쪽에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게 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바로 알아보았습니다. 말씀대로 깊은 곳에 그물을 던져 많은 고기를 잡은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불도 지펴 몸을 녹이게 했습니다. 그 식탁은 오병이어의 경험을 생각하게 했고 성만찬을 제정해 주시던 식탁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낙심한 제자들을 회복시키는 주님의 돌봄이었습니다. 음식을 먹은 후에 베드로에게 ‘이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세 번이나 질문하십니다. 베드로는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것을 기억하고는 마음에 깊이 고민했습니다. 결국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니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도 주께서 아십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주님의 양을 먹이라는 책임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베드로처럼 약한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성령님의 도움이 큰 은혜입니다.

5.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이미 우리를 계획했습니다.(엡 1:4) 그리고는 하나님을 알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의 계획은 분명하고 확실했습니다. 아브라함을 큰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고 복을 주어 하나님의 이름을 크게 떨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창 12:2-3) 다른 사람들에게 복을 나누어주는 존재로 사용하려고 그를 불렀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수용했고 고향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는 곳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서는 것이고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자녀의 바른 자세입니다. 모세가 타는 불꽃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지만 바로에게 가서 백성들을 내보내라고 말하는 일은 여러 번 사양했습니다. 자신의 무능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하고는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가 믿음으로 하나님 편에 서자 하나님의 손이 평생 함께 했고 하나님의 구원의 일을 이루어 낼 수 있었습니다.

6. 자기의 생각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뜻을 수용하는 것이 순종이며 성도의 바른 자세입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하고 배울 수 있습니다. 엡 6;1-4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이 말씀은 가정에서 서로가 지켜야할 질서이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성도의 생활원칙입니다. 가정에서 하나님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을 배워야 더 큰 가정인 교회와 나라에서도 질서를 따를 수 있습니다. 성도는 옛사람을 벗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워진 사람입니다.(엡 4:22-24) 그러므로 새롭게 된 증거를 보여야 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고 화합하는 것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계명으로 받았기 때문입니다.(마 22:37-40)

7. 하나님나라는 공동체입니다. 물론 개인이 회심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만 그는 또한 하나님의 집에 소속되는 것입니다. 어느 개인이 주님을 만나 변화되었다면 그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것이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접붙여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성도가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 공동체를 떠나 혼자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각자 다양한 성도들이 서로 연합하고 연결되어 하나가 될 때에 그리스도의 몸이 건강하게 세워집니다. 엡 2:20-22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놓은 기초 위에 세워진 집이며 그리스도 예수님은 친히 그 머릿돌이 되셨습니다. 머릿돌이 되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건물 전체가 서로 연결되어 점점 거룩한 성전이 되어가고 여러분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계실 집이 되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고 있습니다.”

8. 개인주의가 편만한 세상입니다. 신앙생활마저 자기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경건생활의 차원을 넘어서 교회를 통해 온 세상을 구원하고 회복시키려는 하늘 아버지의 뜻을 품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먼저는 가정에서 바른 질서를 배우고 교회에서 하나님 사랑과 형제 사랑을 연습해서 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손에 사용되어야 하겠습니다. 온 교우들이 서로 격려하고 뜨겁게 사랑하여 활력이 넘치는 교회를 만들어갑시다.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누리고 나누는 영적감동이 있는 교회생활이 되게 합시다. 하나님 자녀로서의 기쁨이 넘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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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삶의 자세와 여정 (삼상 6:7-12) 여선교회헌신예배 박영표 목사

그러므로 새 수레를 하나 만들고 멍에를 메어 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소에 수레를 메우고 그 송아지들은 떼어 집으로 돌려보내고 여호와의 궤를 가져다가 수레에 싣고 속건제로 드릴 금으로 만든 물건들은 상자에 담아 궤 곁에 두고 그것을 보내어 가게 하고 보고 있다가 만일 궤가 그 본 지역 길로 올라가서 벧세메스로 가면 이 큰 재앙은 그가 우리에게 내린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를 친 것이 그의 손이 아니요 우연히 당한 것인 줄 알리라 하니라. 그 사람들이 그같이 하여 젖 나는 소 둘을 끌어다가 수레를 메우고 송아지들은 집에 가두고 여호와의 궤와 및 금 쥐와 그들의 독종의 형상을 담은 상자를 수레 위에 실으니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선까지 따라 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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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어요. 우리가 기뻐하는 이유 (고전 15:16-20)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For if the dead are not raised, then Christ has not been raised either.
And if Christ has not been raised, your faith is futile; you are still in your sins.
Then those also who have fallen asleep in Christ are lost.
If only for this life we have hope in Christ, we are to be pitied more than all men.
But Christ has indeed been raised from the dead, the firstfruits of those who have fallen asl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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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귀를 탄 예수님 (요 12:12-19 빌 2:5-11)

1. 오늘은 종려 주일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들어갈 때 사람들이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환영하던 것에서 유래했습니다. 종려나무는 의, 아름다움, 승리 등을 상징하는데 사람들은 자기 옷을 길에 펴고 종려가지를 흔들며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메시아를 호산나를 외치며 환영했습니다. 물론 열렬하게 환영하던 사람들은 몇 날이 지나지 않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돌변하겠지만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기위한 자기의 길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사순절을 지나며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을 생각했는데 이번 주간은 십자가 고난에 대하여 집중해보기 바랍니다.

2.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갈 때에 다른 전쟁영웅처럼 멋진 말을 타지도 않았고 권세를 가진 정치인들처럼 호화로운 마차를 타지도 않았습니다. 대신 초라하고 작은 나귀새끼를 탔습니다.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행렬 같아 보였지만 그것은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십자가에서 죽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요 12:14-15에서는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기록된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라며 스가랴 9:9-10 예언의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스가랴는 하나님께서는 이방나라를 심판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공의의 왕이며 구원자이고 평화의 왕이신 메시아를 보낼 것인데 그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예언대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3.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맞은 편 마을에 가서 매어있는 나귀를 끌고 오라고 했습니다. 나귀 주인이 물으면 주께서 쓰겠다고 대답하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말씀대로 행했고 나귀주인도 선뜻 나귀를 내주었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리던 메시아의 구원의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하나님의 시간표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졌기에 자신의 것을 선뜻 내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들어오기 전에 누가 더 높은지를 놓고 싸웠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어머니를 동원하여 예수님께 청탁을 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서 권력을 잡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귀주인은 자신의 이름도 알려주지 않고 자기의 것을 드리는 헌신의 본을 보였습니다.

4. 예수님이 성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몰려들어 자신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호산나를 외치며 환영했습니다. 예수님을 수행하던 제자들의 어깨에도 힘이 들어갔을 것입니다. 이제 곧 출세하여 예수님과 함께 큰일을 하리라고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려고 가는 길이었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들이 항상 영으로 깨어 있어야 예수님과 한 방향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지금도 준비된 성도들과 함께 세상을 다스리며 준비된 영혼을 구원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교회가 주님께 바로 쓰임 받으려면 자기욕심을 내려놓고 그리스도의 겸손한 마음을 본받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하나님과 같은 본성을 가진 분이 종의 모습을 취했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했습니다.(빌 2:6-8) 이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의 바른 자세입니다.
5. 그리스도께서 세상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대신 죽었기 때문에 죄인들이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십자가는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이라도 희생시키며 죄인들을 구원하려는 사랑을 보여줬고 그렇게라도 죄를 벌해야 하는 하나님의 공의도 만족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온전하게 치료하기 위해서 그의 아들의 몸에 상처를 당하게 했습니다.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악함 때문입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 우리의 병이 나았습니다.(사 53:5-6)

6. 그리스도의 고난은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당해야 할 고난을 주님께서 대신 감당했습니다. 그 혐오스럽고 비참한 십자가 고난을 생각하면 우리는 죄를 미워하고 멀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죄인에 대하여는 가혹하고 엄하게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진노를 지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바로 묵상하며 우리는 공포로 얼어붙고 죄의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가를 잊을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고난을 당하면서도 반항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마치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양처럼 묵묵하게 하나님의 뜻을 수용했습니다.(사 53:7) 이렇게 순종하는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높여주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에 무릎을 꿇고 주님으로 고백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했습니다.(빌 2:9-11)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억할 때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찬송합니다.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신 죽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우리가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7. 제자들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가신 일에 대하여 제대로 알지 못하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스가랴의 예언이 예수님을 말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요 12:16) 주님께 헌신을 다짐했던 제자들이지만 나귀를 타신 예수님과 고난당하는 예수님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말씀과 성령으로 항상 깨어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눅 9:23에서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자기 권리를 포기하고 주님의 뜻을 우선하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버려야 할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죄에 물든 세상에서 죄를 멀리하는 것입니다. 내 것을 희생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순종하면 죄 용서의 능력이 또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게 될 것입니다.

8. 고전 10:31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말씀을 기억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우선하여 생각합니다. 지난 주일에 우크라이나를 위해 정성을 모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주님께 드리는 헌신의 표시로 마음을 모아주셨습니다. 이것이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 교단 본부를 통하여 현지로 전달되게 할 것입니다. 이번주간은 주님의 십자가 고난을 생각하는 주간입니다. 죄를 미워하고 멀리하고 거룩함을 배우는 시간이 되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선택할 수 있는 성숙한 믿음을 배우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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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눅 20:9–19 사 43:1-7)

1. 예수님은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들어 예수님을 반대하고 맞서던 대제사장,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 헤롯 당원들을 질책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여 메시아를 죽이고 결국 심판에 처해진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한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을 준비하고 소작인들을 고용하여 경작을 맡겼습니다. 타국에 나가있던 주인은 소작료를 받으려고 종들을 보냈는데 농부들은 종을 때리고 빈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런 악한 일은 세 번이나 반복되었고 주인은 결국 자기 아들을 보냈습니다. 아들은 존중하겠거니 생각했지만 농부들은 포도원을 탈취할 것을 모의하고 상속자인 아들을 죽여 버렸습니다. 주인은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줄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눅 20:16). 그러나 예수님을 반대하던 자들은 그렇게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고 대답합니다.

2.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주인이 울타리도 치고 망대도 세우고 즙 틀을 준비한 것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종교지도자들에게 백성들을 영적으로 인도하도록 모든 것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사명을 다하지 못했고 오히려 기회를 남용하여 자기욕심을 채우려고 백성들을 압제했습니다.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았고 오히려 핍박했으며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주인은 당연히 대신 세를 낼 사람에게 포도원을 맡길 것입니다.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들을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요 1:12) 예수께서는 반대자들의 손에 죽임을 당했지만 부활하였고 믿는 자에게 영생을 주시는 구원주가 되셨습니다.(고전 1:18)

3. 예수님은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 머릿돌이 되는 것은 왜인가를 묻습니다. 사람이 이 돌 위에 떨어지면 깨질 것이고 돌이 사람위에 떨어지면 가루로 만들어 흩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돌로 비유했습니다. 마치 건축자들에게 버림당한 쓸모없는 돌처럼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거절당하고 십자가에서 죽지만 주께서 세우는 교회의 가장 중요한 모퉁이 돌이 되었습니다.(눅 20:17) 교회는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놓은 기초 위에 세워진 집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머릿돌이 됩니다.(엡 2:20) 머리돌이 무너지면 건축물이 지탱되지 않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 돌을 반대하고 공격하는 자들은 가루처럼 망하게 될 것입니다.

4. 우리들이 구원받았다고 확신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에 근거합니다. 아무리 착하고 법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도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롬 3:23)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는 믿음으로 얻습니다. 이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죄를 위해 죽으셨고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구원은 자신의 의로운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를 믿는 믿음으로 얻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선물입니다.(엡 2:8)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었기에 그 대속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고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빌 3:10)

5. 우리는 이스라엘을 보고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을 배웁니다. 사 41:8-9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과 선택을 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같은 마음으로 예수 믿는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으로의 특권을 잃어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져 눈이 멀고 귀가 먼 종이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회개시키려고 바벨론을 들어 심판하면서도 그들을 구원할 여호와의 종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사 42: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하나님은 자기백성을 끝까지 사랑하는 분입니다.(요 13:1)

6. 그 구원자는 겸손과 사랑으로 통치하고 승리와 기쁨의 나라를 건설할 것입니다. 메시아로 오시는 그분은 강하고 힘 있는 구원자이면서도 동시에 힘없고 초라한 모습으로 설명되었습니다. 이런 이중적인 설명은 세상을 만든 전능한 하나님이 인간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육체로 오시어 십자가에서 대신 죽게 된다는 것을 미리 설명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가 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찔리고 상한 것은 사람들의 허물과 죄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나음을 얻게 되었습니다.(사 53:1-9) 하나님께서는 절망하고 낙심하는 이스라엘을 자기백성으로 삼아주셨고 끝까지 지켜주셨습니다. 사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7. 하나님은 고레스 왕을 통하여 바베론 포로기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이방나라의 왕이지만 고레스를 하나님의 목자요 하나님의 기쁨을 성취할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사 44:28) 그것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실 완전한 구원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을 죄에서 건져주시고 영생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도록 날마다 지켜주십니다.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사 43:2-3) 예수님도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고 했습니다.

8. 사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를 구원해주신 이유는 하나님 은혜의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게 하려는 것입니다.(엡 2:5-7) 우리가 예수 믿고 하나님께 속한 새 이스라엘이 되었으니 이제는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의 일을 크게 노래하고 자랑해야 하겠습니다. 바울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 싸운 디모데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딤전 6:11)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산다는 자존감이 분명해지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받는 특별한 사람답게 조금 불편하고 어려운 때를 살지만 그러기에 더욱 주님만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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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마음을 연습 합시다 (눅 15:11-24, 고후 5:16-21)

1. 눅 15장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잘 설명해줍니다. 어떤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아 도시로 나가 자기 원하는 대로 살다가 실패했습니다. 인생 밑바닥을 경험한 아들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아버지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아버지는 멀리서 걸어오는 아들을 보고 불쌍히 여겨 뛰어가 그를 품에 앉고 입을 맞추었습니다.(눅 15:20) 그의 잘못을 따지지 않고 오히려 좋은 옷을 입히고 신발을 신기고 가락지를 끼워주어 아들의 신분을 회복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아버지처럼 죄인들을 불쌍히 여겨주셨습니다. 죄의 노예였던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그 죄를 씻어주시고 의롭다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

2. 기독교의 화해는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말합니다. 죄를 지은 아담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고 그의 후손들은 모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롬 3:23) 마귀에게 속하여 자기 욕심대로 사는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 되었습니다.(엡 2:4) 하나님과 단절되어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사 59:2) 이런 죄인들을 회복시키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중보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처럼 죄인들의 죄를 짊어지고 대신 희생당했습니다. 그가 십자가에서 대신 죽음으로 하나님과 죄인사이를 가로막았던 담이 허물어졌습니다.(엡 2:14)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용서하는 이유는 십자가에서 흘린 예수 그리스도의 피 때문입니다.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

3.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주심으로 하나님과 원수처럼 지내던 죄인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불러 훈련하신 후에 복음전도를 명하신 것도 복음을 듣는 자들이 하나님과 화목해지는 일을 위한 것입니다. 바울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고후 5:18)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주신 것은 구원의 은혜를 사람들에게 자랑하게 하려는 것입니다.(엡 2:7) 구원받은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또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책임을 부여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4. 그러므로 모든 민족을 예수님의 제자로 세우는 일(마 28:19),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막 16:15), 그리스도에게 속한 양을 먹이고 돌보는 일(요 21:16),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사는 일(행 1:8)은 또 다른 사람들에게 구원의 경험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그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신자는 하나님이 구원자이며 힘과 노래가 된다고 힘주어 자랑할 수 있습니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사 12:2)

5. 예수님은 화목의 직책을 수행하는 사람의 자세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어떤 악한 사람이 일만 달란트나 되는 큰 빚을 탕감 받고도 자기에게 작은 빚이 있는 사람을 독촉하고 재판에 넘겼습니다. 그가 탕감 받은 것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를 당연히 불쌍히 여기고 탕감해주어야 했지만 그리하지 않았습니다.(마 18:21-35) 빚진 자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상대에게 긍휼을 베풀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대주고 속옷을 빼앗는 사람에게 겉옷까지도 내주라고 했습니다.(마 5:39) 세상 방법과는 다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무조건적인 사랑과 용서를 경험했기에 또 다른 사람을 그렇게 용서하고 불쌍히 여기며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화목의 일을 수행하는 구원받은 신자가 갖추어야 할 자세입니다.(마 5:39-41)

6. 복음을 전하는 일은 이런 마음을 일상에서 표현하고 드러내는 것입니다. 빈자리를 채우려고 이웃을 초청하는 것이 아니라 한 생명을 귀하게 여겨 주님을 만나도록 안내하기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을 바꾸고 자기의 편안함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안전지대가 있습니다. 거기에 머물면 편안합니다. 그런데 그 안전지대에서 나와서 새로운 환경으로 들어가야 새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음식 하나를 맛보는 일도 익숙한 나의 입맛을 내려놓아야 가능합니다. 강아지를 식구로 생각하는 이웃과 함께 하려면 강아지는 밖에서 사는 짐승이라는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래야 상대의 마음을 얻을 수 있고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계가 형성되기 이전에 아무리 복음을 말한다 해도 들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7. 행 10장은 베드로가 어떻게 유대인의 편견을 내려놓고 이방인 고넬료에게 전도할 수 있었는지를 소개합니다. 베드로가 평생 먹지 않았던 더럽다고 여기는 음식을 받아먹으라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럴 수 없다고 하자 하나님이 깨끗하게 한 것을 더럽다고 하지 말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고넬료도 기도하다가 환상 중에 베드로를 청하여 말씀을 들으라는 음성을 듣고 사람을 보냈습니다. 베드로가 자기고집을 내려놓고 고벨료의 집에 가서 말씀을 전할 때에 자기들에게 임했던 성령께서 같은 방법으로 이방인에게 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제야 하나님께서 이방인도 구원하신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행 11:18) 유대인의 특권의식과 이방인을 무시하는 생각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자기 안전지대를 허무는 일이 되었고 다른 사람을 편견 없이 수용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 일 후에 교회는 이방인 선교에 눈이 열렸고 예루살렘과 이방지역에서 크게 확장되었습니다.

8. 교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곳입니다. 배운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함께 하고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더불어 삽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이 함께 도움을 주고받습니다. 그러기에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서로를 불쌍히 여기며 사랑해야 합니다. 바울은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롬 1:14)고 했습니다. 교회를 핍박하던 바울은 주님을 만난 이후에는 빚진 자의 심정으로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다음주일에 우리는 전쟁으로 아픔을 겪는 우크라이나 형제들을 위해서 특별헌금을 실시합니다. 이름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빚진 자의 심정으로 내 것을 나누는 거룩한 희생을 연습해 보기 원합니다. 생명을 불쌍히 여기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들을 품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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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회개 (눅 13:1-9, 사 55:1-7)

1. 바이러스로 온 세상이 죽음의 위협 앞에 있고 우크라이나에서는 무고한 생명이 죽는 전쟁의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각자의 생활이 바빠서인지 다른 사람들의 아픔이 쉽게 와 닿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구호품도 보내고 특별한 기도를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우리들도 사순절을 보내며 예수님의 긍휼의 마음을 배워 슬픔당한 사람들과 함께 울고 그들을 위해서 손을 펼 수 있기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은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쉽게 판단하고 정죄하며 그것에서 자기 의를 자랑하던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을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2.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찾아와 빌라도가 성전에서 희생제물을 드리던 갈릴리 사람들을 죽였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죄가 더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하시며 회개하지 않으면 이처럼 망하게 된다고 경고했습니다. 아마도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릴 목적으로 소식을 전했을 것입니다. 이 일이 누구의 잘못으로 일어난 것인지를 물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다른 지방 사람들보다 과격하여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앞장서 싸웠습니다. 이런 일로 어떤 해에는 유월절 제사를 드리던 갈릴리 사람들 3천명이 로마에 의해 학살당하기도 했고 또 어떤 때는 2만 명이나 죽기도 했습니다. 삼일만세운동과 한국전쟁의 아픔을 겪은 우리로서는 갈릴리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이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3. 만일 예수님이 그 일에 대한 책임이 로마에게 있다고 대답하면 로마를 반대하는 반역자가 될 것이고 죽은 사람들의 죄 때문이라고 대답하면 율법주의자들의 생각에 동조하는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의도대로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간교함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남의 불행을 보며 불행을 당한 사람들의 죄 때문이라고 정죄했고 거기서 상대적으로 자기 의를 드러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종교적인 편견과 잘못된 생각을 깨뜨리려고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 13:3, 5)라고 반복하여 말씀했습니다. 그 누구도 닥쳐오는 재난이나 죽음을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지금 평안하다고 그것이 자기 의로움 때문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준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서 세운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서 죽은 18명도 예루살렘에 있는 다른 사람들보다 죄가 많아서 죽은 것이 아니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4.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불행을 쉽게 정죄하거나 판단하기보다는 그들과 함께 아파하고 슬퍼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우리도 언제든지 그런 아픔을 겪을 수 있는 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런 일을 반면교사로 삼아 주님과의 관계에 바로 서있는지를 스스로 돌아보고 점검할 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의 비유를 더 들었습니다.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고 열매를 기다렸지만 열매가 맺히지 않자 찍어버리기로 작정합니다. 관리인은 더 열심히 관리하고 거름도 줄 것이니 한 해만 더 기다려달라고 간청합니다. 당시는 포도원에 여러 가지 과실수를 심었다고 하는데 문제는 삼년이 지나 열매를 맺을 때가 되었음에도 열매가 없었다는 것이고 주인은 그것을 찍어버리려고 했지만 관리인의 간절한 청 때문에 다시 기회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5. 주인은 죄를 심판하는 하나님이고 관리인은 중보자 예수님을 말합니다. 열매 맺어야 할 나무는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은 이 주인처럼 열매 없는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분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에게 화가 임할 것이라고 경고한 것이나 예루살렘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기를 기대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눅 13:34) 예수님은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여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이 회개의 기회를 갖기를 원했습니다.(마 23:13-15) 멸망에 처한 소돔성을 위해서 간절하게 중보 했던 아브라함처럼 말입니다.(창 18:22-32)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지금 화를 당하지 않았다고 해서 자기 의를 자랑하지 말고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구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다가 주후 70년에 로마군에 의해서 철저하게 무너지고 망했습니다.

6. 주님은 한 영혼도 망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속히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립니다.(벧후 3:9) 겔 33:11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사 55:6-7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욜 2:13 “너희의 옷이 아닌 너희의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돌아오라. 그분은 은혜로우시고 긍휼이 많으시며 화를 내는 데는 더디시고 사랑이 풍부하시며 마음을 돌이켜 재앙을 거두기도 하시는 분이시다.”

7. 회개는 잘못을 뉘우치는 것만은 아닙니다. 삶의 태도를 바꾸고 즉시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회개는 옷을 찢거나 재를 뒤집어쓰는 형식보다 마음 깊이 아파하고 죄를 미워하는 적극적인 행위입니다. 자신의 죄 때문에 주님께서 채찍을 맞고 창에 찔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것을 경험할 때에만 굳어버린 마음을 깨뜨릴 수 있습니다. 고후 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회개를 이루어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거니와 세상의 근심은 사망을 이루느니라.” 죄는 하나님의 계획에서 빗나간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미 신자가 된 우리들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살지 못한 게으름을 회개해야 합니다. 구원받았으니 되었다고 생각하는 자기만족이나 주님과의 더 깊은 교제를 회피하는 소극적인 자세에서 돌아서야 하겠습니다.

8. 다윗은 환란을 당하는 중에도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송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시 63:1-2)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생명보다 귀하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는 고백입니다. 이 어려운 때에 하나님을 바로 예배하고 찬송하며 근심하는 이웃을 찾아 위로하고 품어주는 하나님의 파트너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지금이 은혜 받을 때이며 지금이 구원의 날이라며 지금을 강조했습니다.(고후 6:2) 우리들도 지금 여기서 그런 변화를 결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긍휼과 사랑을 더 깊이 경험하고 나누어주는 사순절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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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누구? 지금 어디? (렘 26:8–15, 눅 13:31–35)

1. 예레미야는 요시야 왕 때에 선지자로 부름을 받아 40년간 활동했습니다. 힘을 과시하던 앗수르가 무너지고 신흥 바벨론이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던 때입니다. 종교개혁을 주도하며 민생을 안정시켰던 요시야 왕이 주전 609년에 죽자 다음 왕들은 그것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했고 사람들은 다시 타락하고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외부적으로는 여전히 강한 애굽과 신흥 강국인 바벨론 사이에서 눈치를 봐야 했습니다. 유다의 지도자들은 애굽의 손을 잡기 원했지만 예레미야는 애굽과의 동맹을 반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다의 죄를 심판하려고 바벨론을 사용하기로 작정했기 때문입니다.

2. 예레미야를 눈물의 선지자라고 부릅니다. 민족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을 외쳐야 했기에 그의 눈에는 눈물이 마르지 않았습니다.(렘 9:1)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성전이 실로 같이 될 것이고 예루살렘 성도 황폐해져서 주민들이 살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렘 26:6) 가나안에 들어간 여호수아는 실로에 성막을 두었습니다. 그런데 블레셋과 전쟁할 때에 언약궤를 들고 나갔다가 빼앗겼습니다. 엘리 제사장과 그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그 날에 죽었습니다. 언약궤가 없는 성막은 황폐해졌고 더 이상 사람들도 찾지 않았습니다. 이런 역사를 아는 사람들에게 예루살렘이 실로처럼 황폐해진다고 말해야 했습니다. 반역자로 낙인찍힌 예레미야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 의해서 유다의 고관들과 모든 백성 앞에서 죽음의 위협을 받았습니다.(렘 26:8) 그런데도 예레미야는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가 그대로 임할 것이라고 분명하게 전했습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곤경에 처한 예레미야는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대신 심판을 받은 예수님을 생각하게 합니다. 예레미야와 예수님의 사역에는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의 영향을 받던 때이고 예수님은 로마의 지배를 받던 때에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예레미야는 거짓 선지자의 반대에 부딪혔고 예수님은 제사장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미움을 받았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길이 없다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루살렘이 영원할 것으로 생각했고 오히려 예레미야를 가두고 협박했으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예레미야는 형식에서 벗어나 참된 마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할 것을 강조했고 예수님도 성전기능을 잃어버린 것을 지적하며 성전을 정결케 했습니다.

4. 어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헤롯이 죽이려 하니 빨리 예루살렘을 벗어나라고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음모를 꾸미는 헤롯을 여우라고 표현하며 십자가를 질 때까지 하던 대로 설교하고 귀신을 내쫓고 병을 고치며 자기 길을 가겠다고 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고 제 삼일에 부활하여 모든 일을 완성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거부하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탄식했습니다. 나봇과 스가랴가 예루살렘에서 죽임을 당했고 예레미야도 거기서 위협을 당했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었고 이제 예수님을 죽이려 합니다. 암탉이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으듯 말씀을 가르치며 회개의 기회를 주었지만 그들이 회개하지 않으니 결국 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이나 소돔 고모라처럼, 앗수르에 망한 북이스라엘과 바벨론에 망한 남 유다처럼 말입니다.

5. 예수님은 결국 그들의 손에 의하여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들을 위한 희생제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새 예루살렘인 교회의 머릿돌이 되었습니다. 그의 대속의 죽음을 믿는 자들이 죄에서 해방되어 새롭게 되고(고후 5;17)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고후 5:19)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요 1:12) 하늘 시민권을 갖게 했습니다. 빌 3:20-21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우리 믿는 자들이 아직은 죄지을 가능성도 있고 질병과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제한된 몸이지만 주님 재림 때에는 영광스럽고 썩지 않을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을 믿습니다.

6. 갈 4:4-5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예언의 성취로 오시어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좇아내며 하나님 나라를 알려주셨습니다. 때가 되자 십자가에서 죽고 다시 부활하여 모든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요 1:12)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게 하려고 제자들을 훈련시켰습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듣고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마 16:18)고 말씀했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그 사역이 계속되었고 신약교회가 생겨났습니다.(행 2장) 예수님은 모든 죄인들이 회개하고 구원받는 것을 기뻐하십니다.(벧후 3:9) 구원의 소식이 예루살렘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해지기를 기대하십니다.(눅 24:47) 이것을 위해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7. 이천년 교회 역사에서 성령께서는 예수님이 하던 가르치고 전도하고 회복하는 일을 지속해 오고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죄인들이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믿음을 갖게 합니다. 믿는 성도에게는 말씀을 삶에 적용하며 하나님을 더 깊이 알도록 도와주십니다. 영과 육이 건강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합니다. 그리기에 교회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성령과 함께 일해야 합니다. 예수님에게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마 9: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이 마음은 눅 15장 돌아온 아들의 이야기에 나오는 아버지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돌아온 아들을 무조건 품어주고 아들의 권위를 회복시킨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교회는 교회 밖의 사람들이 죄와 죽음의 억압에서 벗어나 천국의 기쁨을 누리도록 돌봐야 합니다.

8.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마음을 본받으라고 했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그 마음으로 서로 존중하고 한마음을 품고 교회를 섬기라고 가르쳤습니다.(빌 2:1-8) 우리의 신앙생활은 나의 필요를 위한 것이기도 하고 하나님의 필요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영과 육이 잘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또 다른 사람에게 구원의 길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염병과 전쟁의 소식으로 어려운 때를 삽니다. 염려와 문제는 항상 존재합니다. 그러나 자기사명을 아는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어려운 때를 지나면서 더 성숙하고 단단해져서 주님을 기쁘게 하며 이웃과 함께 평강을 누리고 나누는 우리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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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으로 승리하신 예수님 (눅 4:1-13)

1.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시험하지 않습니다.(고전 10:13) 다만 더 강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시련을 주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제물로 드리게 한 것처럼 믿음으로 결단해야 하는 시련을 주십니다. 시련을 견디면서 더 큰 믿음을 갖게 되고 그 믿음에 맞는 일도 하고 열매를 맛볼 수 있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게 된 것처럼 말입니다. 반대로 마귀는 신자를 믿음에서 멀어지고 죄를 짓도록 시험하고 유혹합니다. 마치 배고픈 사자가 먹이를 찾아 공격하는 것처럼 믿는 자들을 공격하여 믿음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마귀를 대적하고 맞서 싸우라고 합니다.(벧전 5:8)

2.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예수님은 40일간 금식하셨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이 육체적으로 약해지고 배가 고플 때에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고 유혹했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만나를 먹게 한 것처럼 기적을 베풀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존재라고 했습니다.(신 8:3) 먹고 사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것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이라고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마 6장에서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염려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마 6:33)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처럼 먹고 사는 문제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우선순위를 두고 살면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3. 마귀는 천하만국을 보이며 자기에게 절하면 모든 영광을 주겠다고 예수님을 유혹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인 것처럼 위장하는 것이 마귀의 전술입니다. 예수님은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만 섬기라.”(신 6:13)는 말씀으로 대응했습니다. 하나님만이 권세자이고 생명을 다스리는 분이며 피조물의 예배를 받을 분입니다. 잠깐의 세상영광을 얻고 인기를 얻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는 사람으로 사는 것이 성도의 행복입니다. 불안하여 점을 치거나 누구의 예언기도를 받으려고 쫓아다닐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독대하며 말씀을 통하여 인도하는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마귀는 또 예수님에게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보라고 유혹했습니다. 예수님이 정말 메시아라면 천사들이 와서 발도 다치지 않게 보호해줄 것이 아니냐고 시 91편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유혹했습니다.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신 6:16)는 말씀으로 대응했습니다.

4. 마귀는 하나님 나라를 방해하는 방해꾼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렸을 때 군중들을 동원하여 동일한 말로 시험했습니다.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마 27:40) 마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자기 정체성을 잊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세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처럼 말씀에 근거하여 마귀와 맞서 싸워야 합니다. 예수님이 세례 받을 때에 들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로 인해 기뻐한다.”라는 음성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눅 3:22) 성경을 가까이 하고 묵상하고 적용하면서 우리는 말씀하시는 그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는 하나님은 마귀보다 훨씬 강한분입니다.(요일 4:4)

5. 우리가 구원의 확신을 갖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입니다. 롬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 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는 말씀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통가운데서 신음하던 이스라엘을 구원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했고 그들에게 말씀을 주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게 했습니다.(신 26:7-8)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들을 말씀으로 새롭게 했습니다.

6.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딤후 3:15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기에 우리를 교훈하고 책망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합니다. 의사의 손에 들려진 수술용 칼처럼 우리들의 속마음을 헤집고 생각을 조정하고 죄를 도려냅니다.(히 4:12)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주신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부지런히 자녀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심지어 손목에 매고 미간에 붙이고 문설주와 문에 기록해 두며 말씀을 가까이 했습니다.(신 6:6-9)

7.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습니다(고후 5:18) 그래서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하고 믿음을 굳게 하여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엡 6:10-11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검이라고 표현된 하나님의 말씀은 공격무기입니다. 예수님이 마귀에게 시험받은 이유는 마귀보다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성령에게 이끌려 말씀으로 마귀를 제압하여 메시아임을 확실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들도 말씀으로 무장되어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교제하는 기쁨을 누리기 바랍니다. 말씀으로 마귀를 이기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부흥이며 이웃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비결입니다.

8. 아담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도 유혹에 넘어갔지만 예수님은 말씀으로 마귀의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아담의 타락으로 죽음이 들어왔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회복되었습니다.(롬 5:12-15) 영적 전쟁의 승패는 말씀이 준비되어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이번 사순절에 예수님의 삶과 사역을 생각하며 말씀과 기도에 깊이 들어가기를 기대합니다. 교회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하고 또 전염병과 전쟁의 아픔을 겪는 이웃에게 주님의 위로가 임하기를 위하여 함께 기도합시다. 배고프고 배우지 못하는 사람들과 영적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기도합시다. 사역자들과 선교사님들을 위한 기도도 필요합니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눈물 흘리던 주님의 심정을 품고 겸손히 무릎을 꿇읍시다. 그리하여 영적으로 더 성숙해지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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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생활의 기쁨 (눅 9:28-36)

1.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가 하나님께 성실한 종으로 쓰임 받았다면 그리스도께서는 아들의 자격으로 하나님의 집안사람을 돌보며 모세보다 더 큰 영광을 받았다고 말합니다.(히 3:1-3)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몸을 희생 제물로 바쳐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실행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죽은 그의 몸을 사흘 만에 다시 일으켰습니다. 우리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음으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기에(히 3:6)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몸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들에게 그 영광을 맛보는 기쁨을 알려주셨습니다.

2. 예수님을 따라 산에 오른 제자들은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에 대하여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잠에서 깬 제자들의 눈에 해같이 빛나는 주님의 변모된 얼굴과 그의 영광이 보였습니다. 그 감동이 얼마나 컸던지 초막 셋을 지을 테니 그곳에 더 오래 머물자고 예수님께 청했습니다.(눅 9:31) 바울은 부활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오른쪽에 계시며 성도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했는데(롬 8:34) 제자들은 바로 그런 영광스런 주님의 모습을 보았던 것입니다. 율법의 대표자인 모세와 선지자의 대표인 엘리야가 등장한 것은 예수님이 율법과 선지자의 완성으로 오신 메시아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변모에 대한 기록은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 모두 기록되었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묻는 질문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고백한지 8일 후의 일이었습니다.

3.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소리가 구름 속에서 들렸습니다.(눅 9:35) 예수께서 세례를 받을 때에도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눅 3:21-22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 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인정하고 사용한다고 선언하기 위해서 구름과 소리로 그의 영광을 드러낸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의 편지에 이 감동을 나누었습니다. “지극히 큰 영광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벧후 1:17-18)

4. 예수님은 기도하러 제자들과 함께 산에 올라가셨고 거기서 그의 모습이 변했습니다. 눅 9: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막 9:3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마 17: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이것은 요한이 본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은 예수의 얼굴”(계 1:16)과 같은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 율법과 예언의 완성으로 오신 메시아라는 것을 알려주었지만 정작 그들과 나눈 대화는 십자가에서 죽게 될 일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뜻을 이루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냈습니다.

5.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요 5:39) 구약은 메시아의 오심에 대하여 말하고 신약은 육체로 오시어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구원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이사야는 고난 받는 종의 모습으로 메시아를 설명했습니다.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고 흠모할 만한 것이 없는(사 53:2) 모습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예수님은 겸손하게 새끼 나귀를 탔고 거기서 붙잡혀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본래부터 하나님이던 그의 영광을 보여주었습니다. 변모 산에서의 예수님은 빛나고 영광스런 모습이었습니다. 신비감에 젖은 제자들이 초막을 짓고 더 머물고 싶을 만큼 황홀했습니다. 구름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나서 보니 제자들의 눈에는 예수님만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다시 산을 내려와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거기에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6. 산 아래에는 문제들이 가득했습니다. 간질병에 들린 아이 하나를 고치지 못해 제자들이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귀신의 장난으로 수없이 넘어지고 경련을 일으켰습니다.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을 꾸짖고 아이를 치료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겨자씨만한 작은 믿음이라도 있다면 산을 옮길 수 있다고 말씀하며 믿음이 없고 타락한 시대라며 제자들을 책망했습니다.(마 17:17)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우리의 관심을 주님께 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받게 될 일에 대하여 말했지만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했고 오히려 누가 큰 자인가를 놓고 자기들끼리 싸웠습니다. 마치 모세가 산 위에서 율법을 받을 때에 산 아래에서 아론과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것이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절하던 것과 같습니다.(출 32:4)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의 열매나 능력이 드러나기를 원하지만 정작 그렇지 못할 때에 갈등합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연약함입니다.

7. 예수님은 죄를 벌해야 하는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기 위해 자기 몸을 속죄 제물로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의 희생을 받으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셨고(골 2:13) 그를 믿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요 1:12) 요일 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에서 부활하여 모든 죽은 자들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셨습니다.(고전 15:20) 주께서 재림하는 날에 모든 죽은 자들이 무덤에서 일어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고 믿지 않는 자에게는 영원한 심판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 날에 우리는 주님과 같은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하여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 것입니다.(고전 15:42-44)

8. 제자들에게도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주님의 나라가 세워질 때 높은 자리에 앉기 원하는 욕심이 있었습니다. 정작 고난이 닥치자 다 예수님을 떠나버렸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충만해진 후에는 삶의 목적과 이유가 달라졌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가 그리스도이며 부활하신 주님이라고 담대하게 증거 했습니다. 성령은 방언이나 신유, 예언, 환상과 같은 은사를 주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합니다.(요 15:26) 육체의 욕심을 이기게 하고(갈 5:16) 마귀의 방해공작도 물리치게 합니다(엡 6:10) 어려움을 만나지만 평안을 누리도록 도와줍니다.(요 14:27) 전염병과 전쟁의 소문이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성령으로 충만하여 위로부터 오는 평안과 기쁨을 누리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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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은 은혜를 흘려보내자 (눅 6:27–38, 창 45:3–15)

1. 우리가 믿음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지속적으로 경험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하여 죄에 대한 심판에서 자유롭게 되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또 성령께서 날마다 우리를 도와주기에 믿음을 유지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보통사람들은 자기 욕심을 우선하여 살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기를 연습하며 거룩하고 구별된 생활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사도 바울은 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 하라고(롬 12:18) 권면했는데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찾는 사람들을 칭찬해 주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하나님께서는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죄를 지은 아담에게 가죽옷을 입혀 주시고 회복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창 3:15) 금송아지를 섬긴 일로 벌 받아야 할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을 때 “나 여호와는 자비롭고 은혜로우며 쉽게 노하지 않고 사랑과 진실이 풍성한 하나님이다.”(출 34:6)라고 자신을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도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눅 6:36)고 가르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죄인들을 용서해 주시려고 그의 아들을 십자가에서 희생시켰습니다. 예수님도 공적사역에서 힘없고 소외된 약자들에게 긍휼과 자비를 보여주셨습니다.

3. 우리가 세례를 받는 것은 우리가 받아야 할 죄에 대한 벌을 예수님이 대신 받았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흘린 피의 대가로 우리가 용서 받았다는 것을 믿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물속에 잠기는 의식에 참여함으로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님과 함께 나의 옛 성품은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새로운 사람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롬 6:3) 고전 15:21–22“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아담의 죄가 후손들에게 대물림 되었다면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여 새 생명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도 모든 믿는 자들에게 대물림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하나가 된 세례 받은 사람은 더 이상 죄와 상관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자기 유익이나 욕심을 좇는 옛 생활을 계속할 수 없습니다.

4. 구약의 백성들은 매 3년마다 십일조를 한 번 더 드렸는데 그것으로 레위인과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었습니다. 이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기희생이 필요했고 더 많이 절제해야 했습니다.(신 26:12-14) 믿는 사람들의 세상살이는 세상방법이 아닌 주님께서 가르쳐준 방법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친절하게 대하며 자기를 저주하는 사람을 오히려 축복하고 기도해 주라고 했습니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까지 돌려 대고 겉옷을 빼앗는 사람에게 속옷까지 내주라고 가르쳤습니다.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손해 보는 바보 같은 일이지만 이것이 주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것이며 교회가 힘써 연습하는 성품훈련입니다.

5. 세상은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경쟁하지만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달라야 합니다. 원수라도 사랑하고 선하게 대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자기를 희생하여 많은 사람을 살리고 구원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사랑은 고상하고 아름다운 것이지만 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자신에 대하여 죽어야 합니다. 이것은 자기 능력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만 실천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 때문에 용서받았다면 다른 사람을 쉽게 비판하거나 평가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남을 평가하고 잣대질하는 그 헤아림으로 우리들이 헤아림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롬 12:19-21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6.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그 가르침을 먼저 실천해 보여주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자기를 못 박는 반대자들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눅 23:34) 우리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 때문에 용서를 받았다면 그 은혜를 흘려보내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자기 힘으로는 불가능한 것을 경험하기에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는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님과 함께 죽었다고 고백합니다.(롬 6:11) 그래서 하나님 나라와 의를 우선하며(마 6:33) 영적생활을 위해 훈련하고 무장하는 것입니다.(엡 6:11) 만일 우리가 이런 영적인 일에 게으르거나 세상의 가치를 따른다면 서로 미워하고 더 높아지고 유명해지려는 세상의 방법대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영적인 힘은 사라질 것이고 더 이상 하나님께 사용될 수 없을 것입니다.

7.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은 하나님의 지혜로 7년의 가뭄에 대비할 수 있었습니다. 어려운 시기에 아버지와 형제들과 그들의 식솔들이 먹을 수 있는 곡식을 제공하고 고센 땅을 내주어 거기 살도록 했습니다. 자기를 노예로 팔았던 형들이지만 원수 갚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을 선대하고 용서했습니다. 억울한 일을 겪으면서도 하나님 앞에서 절대 믿음을 지켰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높은 자리에 앉혀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경험한 요셉은 자신이 받은 은혜를 그대로 흘려보냈습니다. 하나님께서 형들을 사용하여 자신을 애굽으로 미리 보낸 것이라고 말하며 두려워 떠는 형들을 위로했습니다.(창 45:5-10)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의 태도입니다.

8. 교회는 하나님께서 준비한 고센 땅과 같은 곳이 되어야 합니다. 바로와 그의 땅에 내리던 재앙이 이스라엘이 거하는 고센 땅에는 내리지 않았습니다.(출 9:26) 그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뜻을 세상에 알려야 했기에 특별하게 보호하고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교회는 아직 부족한 사람들이 함께 하나님을 배우고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듬어지는 곳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며 먼저 경험한 은혜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위해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 때문에 오늘 우리가 여기 있게 되었다면 이제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흘려보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풍성한 것인지를 모든 세대에게 알게 하려고 우리를 축복의 통로로 불러주셨기 때문입니다.(엡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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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로 이끄시는 하나님 (마 4:1-11) 류성창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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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역할을 깨닫는 은혜 (눅 5:1-11 사 6:1-8)

1. 대상 14:1-2 “두로 왕 히람이 다윗에게 사신들과 백향목과 석수와 목수를 보내 그의 궁전을 건축하게 하였더라.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신 줄을 깨달았으니 이는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의 나라를 높이 들림을 받았음을 앎이었더라.” 다윗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자신을 왕으로 세워주셨고 나라를 바로 운영하여 만방에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도록 사용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웃나라 두로의 히람 왕의 마음을 움직여 최상급의 건축자재와 일꾼들을 지원하게 했고 그 결과 다윗궁전을 건축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자기 역할을 잘 감당했습니다.

2. 이사야 6장에는 이사야가 부름을 받고 헌신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사야는 성전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과 귀하고 높은 하나님을 천사들이 찬송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찬송소리가 얼마나 장엄했으면 성전 문지방의 터가 흔들렸고 성전에는 연기가 충만하였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영광을 본 후에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 만군의 여호와를 뵈었으니 화를 당하게 되었다고 두려워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타는 숯불을 그의 입술에 대주며 그의 죄를 깨끗하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을 위하여 갈 사람을 찾았고 이사야는 자신을 보내달라고 자원했습니다.(사 6:6-8) 하나님의 심판계획을 사람들에게 전해야 하는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것을 자기 역할로 수용했습니다.

3. 누가는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이 어떻게 부름 받았는지를 알려줍니다. “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수에 서서”(눅 5:1) 천국복음을 전하기에 낮과 밤의 구분이 없었던 예수님은 밤새도록 헛수고하고 돌아온 베드로의 배위에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러다가 옆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베드로와 그의 형제들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눅 5:4)고 말씀했습니다. 평생 고기 잡는 일을 하던 어부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말씀이었습니다. 그 시간은 고기가 잡히지 않는 시간이고 이미 밤새 헛수고하고 돌아와 빈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다시 던졌고 생각하지 못한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예수님의 신적인 권위를 경험한 베드로는 죄인인 자신을 떠나달라고 청했습니다.(눅 5:10-11)

4.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향하여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말했습니다.(요 1:29) 세례요한의 말에 요한의 제자였던 안드레가 예수님을 따라갔고 또 그의 형제 베드로를 예수님께 소개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반석이라고 불러주셨습니다. 세례요한은 그렇게 자기 제자들을 예수님께 양보했습니다. 마 4장에 예수님은 갈릴리 해변에서 바다에 그물을 던지고 있던 베드로와 안드레를 불러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며 부르셨습니다.(마 4:18-22)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름을 받을 때에 제자로서의 자격이 충분했던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와 배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즉시 따랐다고 기록되었지만 여전히 또 다른 곳에서는 배와 그물을 수선하고 있던 것을 보면 아직 완전한 헌신을 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예수님을 훌륭한 랍비로 존중하며 나름대로 열심히 따랐지만 여전히 제자로서의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5.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가 없습니다.(롬 11:29) 베드로가 그물을 던지자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게 된 것이 은혜였습니다. 베드로는 자연을 다스리는 주님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5:8)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두려워하는 베드로에게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눅 5:10)고 말씀하며 사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 아버지의 허락이 없이는 떨어질 수 없다고 말씀했습니다.(마 10:29) 하나님은 공중 나는 새도 먹이고 들풀도 입히고 우리들의 머리카락까지라도 셀만큼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우리들을 불러 여기 있게 한 것은 우리를 사용하려는 계획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6. 주님의 부름에 우리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문밖에 계신 주님을 안으로 모셔야 하고 그분과 함께 사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계 3:20) 하나님께서 누구를 부를 때에는 자신을 드러내 알려주시고 그 앞에서 죄를 회개하고 온전하게 회복시켜 주십니다. 우리들이 완전하지 않지만 믿음으로 응답하는 것은 이런 은혜 때문입니다. 제자들도 예수님과 함께 했지만 가르침을 다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직도 깨달음이 없느냐?” “어찌하여 알지 못하느냐?”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아” “내가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막 9:19)라고 책망했습니다. 제자들은 누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것인지를 놓고 힘겨루기를 했습니다.(눅 22:24) 예수님이 붙잡힐 때는 하나같이 예수님을 부인하고 떠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의 연약함을 미리 아셨고 그들을 위하여 보혜사 성령을 약속해 주셨습니다.(요 14:16)

7. 예수님은 항상 아버지의 뜻을 따라 성령과 함께 일했습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위임된 세상을 구원하는 일을 함께 수행하려고 제자들을 불러 세웠습니다.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막 3:14-15) 예수님은 이런 연약하고 부족한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해 주셨고(요 13:1) 그들을 위하여 목숨까지 내주었습니다. 그리고 보혜사 성령을 보내 그들을 도와주셨습니다. 허물 많은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사명을 새롭게 했고 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자 자기 역할을 바로 감당했습니다. 보혜사 성령께서는 그리스도를 증거 하여 믿음을 갖게 합니다.(요 14:26) 약한 자를 강하게 하고 말씀대로 살도록 감동하고 도전하여 주님의 몸인 교회를 세웁니다. 그 성령께서 우리의 주인으로 거하며 우리를 다스립니다.

8. 벧전 2:9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로 베풀어주신 그 은혜가 얼마나 풍성한지를 장차 올 모든 세대에게 드러내 보이기 위해서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엡 2:7) 우리를 불러 교회를 이루게 하고 여기에 있게 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우리를 통하여 주변 사람들을 구원하기 원하는 것입니다. 이 부름에 응답하여 가정과 일터와 교회에서 자기 역할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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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누리는 특권 (눅 4:31-37)

1. 예수님은 세상에 오시어 하나님 나라를 알려주셨고 더러운 귀신과 질병을 꾸짖고 내쫒아 사람들을 자유하게 했습니다.(눅 4:40–41) 예수님은 여러 지역의 회당을 중심으로 천국복음을 전했는데 설교하실 때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권위 있는 가르침에 놀랐습니다. 서기관들은 유대교의 전통이나 다른 랍비들의 이론을 들어서 율법을 해석하고 설교했지만 예수님은 풍성한 하나님의 지혜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 나라를 분명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권세가 있었고 다른 서기관들과 같지 않았습니다.(마 7:29)

2. 가버나움 회당에서 말씀을 전할 때에 한 귀신들린 방해꾼이 등장했습니다. ‘나사렛 예수님,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우리를 없애려고 오셨습니까? 나는 당신이 하나님의 거룩한 아들임을 압니다.’ 하고 외쳤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아들이라는 말은 기름부음을 받은 메시아라는 말입니다. 귀신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찬양한 것이 아니라 말씀사역을 방해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꾸짖으며 ‘떠들지 말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너라.’ 라고 말씀하자 귀신은 사람들 앞에서 그를 내동댕이치고 나가 버렸습니다. 사단은 하나님 나라 복음 전파를 방해하고 죄인들이 회개하는 것을 가로막습니다. 교회를 어지럽히고 성도들에게서 기쁨을 빼앗아가며 마음이 나누어지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귀신에게 명령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진 분입니다. 귀신도 예수님 앞에서 무서워 떠는 표적을 본 사람들은 예수님의 권위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3. 사람들은 무언가 권위 있는 것에 굴복합니다. 그것이 돈이든 명예든 자기 꿈이든 자기에게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것에 마음을 둡니다. 아담도 하나님의 품을 떠나 하나님처럼 되려는 교만한 마음을 품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 원했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로 큰 민족을 이루어 열방을 위한 제사장나라로 살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부름에 합당하게 살지 못했고 자기 욕심대로 살다가 나라를 잃어버리고 강대국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결국 평화의 왕으로 오는 메시아가(사 11:1~9)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나라를 회복시킬 것을 기다렸습니다.(미 5:1~9)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고 선포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다윗왕권을 가지고 오는 메시아가 나라를 회복시킬 것을 기다렸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스라엘이 회복으로 이해하고 자기 자리를 두고 서로 다퉜습니다.

4. 그러나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의 제자들은 달랐습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 2:36)라고 설교하며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소개하고 그를 믿고 구원을 받으라고 도전했습니다.(행 16:31) 하나님의 나라를 국가개념으로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나타나는 심령의 변화로 이해했습니다. 예루살렘교회와 안디옥교회가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한 것을 보면 분명해집니다. 그들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서로 사랑하고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었고 날마다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송했습니다.(행 2:44-47) 교회는 사람들의 칭찬을 들었고 다른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성령으로 충만한 하나님 나라이고 우리가 추구하는 교회의 모습이며 재림 때에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모습입니다.

5. 하나님은 천지를 만들고 운영하는 주인입니다.(창 1:1) 눈에 보이는 세계는 물론이고 보이지 않는 세계도 다스리는 전능하신 분입니다. 선택받은 이스라엘은 물론이고 이방나라와 왕들도 다스립니다. 태초부터 계셨고 지금도 세상을 다스리며 앞으로도 영원까지 홀로 존재하실 분입니다.(시 90:2) 하나님이 왕이 되어 다스리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우리가운데 임했으며(마 12:28) 장차 재림 하실 때에 완성될 것입니다.(마 8:11) 하나님의 나라는 심령이 가난한 자(마 5:2), 천국은 사모하는 자(마 6:33), 겸손한 자(마 18:3) 거듭난 자(요 3:5)가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핍박도 견디며 서기관보다 더 의롭게 살며(마 5:10)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를(마 7:21) 노력하는 것입니다.

6.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주어 죄인들을 구원하여 주님의 풍성한 사랑가운데 거하게 합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는 성령을 모신 거룩한 성전이 되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이루어갑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며 주인으로 섬기도록 도와주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신 성도들은 교회 공동체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고 연습합니다. 장차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서 칭찬듣기를 소망하며 마귀와의 싸움을 계속해 갑니다.(엡 6:11)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자를 치료하자 유대인들은 율법을 어겼다고 트집을 잡았지만 예수님은 율법의 핵심이 사람을 새롭게 하고 구원하기 위한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일이나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는 것입니다.(롬 14:17)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주안에서 기뻐할 수 있는 것이 성도가 누리는 특권입니다.

7. 하나님은 예수 믿고 변화된 성도들이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을 기뻐합니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라고 구원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타락한 아담을 징계할 때에도 망하게 한 것이 아니라 그를 회복시키기를 원했습니다. 사단은 믿는 자들을 방해하고 정죄하여 믿음에서 멀어지게 하고 기쁨을 앗아가지만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항상 성령 안에서 기뻐하고 담대하기를 원합니다. 예레미야를 불러 하나님의 뜻을 전하게 할 때 그에게 담대함을 주셨습니다.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1:7-8)

8.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일이 있다면 먼저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기쁘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서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갠다고 했습니다.(히 4;12) 그래서 말씀을 더욱 가까이 하기를 힘쓰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우리가 맛본 천국기쁨을 전하라는 성령의 부름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 일은 우리 힘보다는 권세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이며 성령과 함께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입을 벌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말할 때에 사단의 세력이 무너지고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믿고 누리는 기쁨이고 성령께 순종하는 성도의 영적 특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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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회복 (눅 4:16-30, 고전 12:12-31)

1.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설교하며 이사야 61장의 메시아에 대한 약속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 4:18-19) 그리고는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눅 4:20-21)라고 했습니다.

2. 이스라엘과 온 세상을 향하신 하나님의 회복은 율법 안에서 이미 드러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안식일과 안식년과 희년제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들이 공동체 안에서 믿음으로 사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종이나 주인을 막론하고 안식일에는 모든 사람들이 일을 쉬고 하나님께 예배하게 했습니다. 안식년에는 농사하지 않고 땅을 쉬게 했으며 스스로 열리는 곡식은 가난한 사람과 나그네에게 주었습니다. 물론 십일조를 통하여 레위인들과 가난한 자들의 생계를 보장하여 공동체가 유지되게 했습니다. 50년마다 돌아오는 희년에는 팔려갔던 종들도 자유를 얻어 돌아왔고 담보로 넘어갔던 부동산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게 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이 주는 완전한 해방과 회복을 맛보게 했고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믿음으로만 가능했습니다.

3. 희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은혜로 얻는 완전한 구원을 미리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나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오래전부터 같은 동네에서 생활하던 청년 예수가 어느 날 자신을 메시아라고 자칭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눅 4:22)” 예수님의 설교는 들을 내용도 있었고 그가 행하는 기적은 기이했지만 그럼에도 예수님을 마리아와 요셉의 아들로 생각하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눈이 어두워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다고 하시며 그들을 깨우치셨습니다.

4. 예수님은 선지자들이 많은 사람에게 말씀을 가르쳤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경험한 것은 소수의 이방인이었음을 말씀했습니다. 사렙다 지역의 과부 한사람이 엘리야를 통하여 기적을 경험했고 많은 나병환자 중에 나아만 한 사람만이 엘리사를 통하여 치유를 받은 일을 말했습니다. 다수의 유대인이 아니라 소수의 이방인만이 구원의 은혜를 얻었다는 것을 말씀하자 유대인들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고 크게 화를 내며 예수님을 동네 밖 낭떠러지에 밀쳐 떨어뜨리려고 했습니다.(눅 4:28-29) 그들은 예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었으며 동정녀에게서 탄생한 메시아임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 받을 때에 성부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고 성령의 임재를 보여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 공개적으로 드러났음에도 자기들의 신념과 전통을 더 중요하게 여겨 믿지 못했습니다.

5. 그래서 말씀에 비추어 자신을 돌아보고 성령의 감동을 따라 순종하기를 연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한 회복과 구원은 하나님이 신실하게 일하실 것을 믿는 믿음이 아니고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70년이 지나자 약속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의 포로에서 건져내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냈습니다.(스 1:1-3) 바벨론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켜 백성들을 돌려보내 성전을 재건하게 했습니다. 회복과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이지 사람들의 이해와 수용에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고 더 깊이 알기를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모든 시대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복되어 평강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십니다.”(골 1:20)

6. 바벨론에서 돌아와 예루살렘에 다시 정착한 사람들은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고 생활의 터전을 일궈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으로의 정체성 회복이 필요했습니다.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는 백성들을 모아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주었습니다. 레위 사람들은 그 말씀을 바로 이해하고 적용하도록 백성들을 도와주었습니다. 백성들은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했고 자기들의 죄를 눈물로 회개했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겠다는 새로운 결단을 했습니다.(느 8:1-12) 율법을 어기고 이방여인과 결혼했던 사람 112명은 이방 아내들을 돌려보내고 하나님께 속죄의 제사를 드렸습니다.(스 10:19) 철저하게 회개한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회복을 기뻐하고 감사하며 성회로 모여 하나님께 예배했습니다. 금식을 멈추고 울음을 그쳤으며 기름진 음식과 단 음료를 먹고 마셨습니다. 미처 음식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먹으며 공동체적인 잔치를 즐겼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회복과 구원을 감사하며 드리는 참된 예배였습니다.

7. 교회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은혜를 누리고 나누는 천국 잔치집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 사람이든 그리스 사람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 되게 했고 또 모두 한 성령을 마시게 했기 때문입니다.(고전 12:13) 그러므로 교회는 희년정신을 살려 약하게 보이는 지체들을 더 귀하게 여기고 돌보며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고전 12:25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여러 직분과 다양한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며 조화를 이루어 구원의 감격을 마음껏 누리고 나누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8. 그래서 말씀으로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딤후 3:15-17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올 한해도 말씀을 더 가까이 하며 하나님을 깊이 배우고 경험하기 원합니다. 나사렛 사람들처럼 자기생각에 묶이거나 정체되지 않고 새로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그를 따르는 믿음이 이전보다 더 깊어져서 완전한 회복과 구원을 마음껏 누리고 나누는 교회가 되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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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경험하는 하나님 나라(요 2:1-11)

1.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용할 때는 자신이 누구인지 보여주고 믿음을 갖게 합니다. 모세를 바로에게 보낼 때에 하나님은 자신을 ‘스스로 있는 자’ ‘나는 나다’ ‘I am that I am,’ (출 3:7-15)라고 소개했습니다. 피조세계의 언어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스스로 존재하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들의 이해를 위해서 종종 표적을 사용하여 자신을 알게 합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구원할 때에 하나님은 유월절의 표적을 보여주며 믿게 했습니다. 출 12:13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의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예수님도 기사와 이적을 통하여 신적 권위를 보여주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결국 그를 구주로 믿고 구원을 받게 했습니다.

2. 요한복음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표적이 여럿 나옵니다. 가나 혼인잔치 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일(요 2:1-11) 외에도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친 일(요 4:46-54), 38년 된 병자를 치료한 일(요 5:1-16), 오천 명을 먹인 일(요 6:1-13), 물 위를 걷고(요 6:16-21),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요 9:1-7), 나사로를 살린 일(요 11:1-44)에 대하여 언급하며 예수께서 생명을 주시는 구원주요 메시아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요 20:30-31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라며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3. 예수께서 어머니와 함께 어느 결혼잔치에 참석했는데 마침 포도주가 떨어져 잔치를 준비한 주인이 난처한 지경에 처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 이 소식을 전했고 예수님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응답했습니다. 이 말은 ‘여자여 나와 당신에게 무엇이 있습니까,’ 혹은 ‘당신이 나에 대하여 어떤 권세가 있습니까?’ 라는 말인데 어머니와 점잖게 거리를 두는 공적인 언사로 해석합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는 표현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메시아의 공적 사역은 누구의 요청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잔치 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자신의 신적인 영광을 나타냈습니다. 이 일로 제자들의 믿음은 한층 굳어졌고 말씀에 순종한 하인들도 예수님이 행하는 표적을 경험하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4. 믿음은 들음에서 시작됩니다. 길이며 진리이고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가르치는 말씀을 듣는데서 깨달음과 믿음이 생깁니다.(롬 10:17)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을 사용해서 이스라엘의 질투심을 유발했고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찾지 않고 구하지 않는 이방사람들에게도 자신을 나타내는 분입니다.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이 돌아오기를 온종일 손을 내밀고 기다리는 아버지입니다.(롬 10:19-21) 아합과 이세벨이 선지자들을 죽이고 제단을 헐어버리던 시절에 엘리야는 자기 혼자만 남았다고 실망했지만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끝까지 사랑하는 분입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5.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믿음은 대단했습니다. 혼인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보고 그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예수님께 청했습니다. 예수님이 문제를 능히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잔치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예수께서 무엇을 말씀하든지 그대로 하라고 지시하며 예수님께 대한 절대 믿음을 보였습니다. 사실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했던 믿음의 여인입니다. 예수님을 잉태하는 과정에서 마리아는 자신에게 성령으로 잉태하게 될 것을 듣고 믿음으로 그대로 받았습니다. 남의 시선이나 불이익을 개의치 않았고 오직 하나님의 계획을 우선하며 그것을 수용했습니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응답했습니다.(눅 1:38) 이것이 믿음입니다.

6. 사람들은 자기 지식과 경험에 근거해서 이해하고 판단합니다. 자기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선택하고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자기 한계를 넘어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능력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마리아는 자기 생각과 계획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듣는 것을 수태과정에서 이미 배웠습니다. 또 성전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잃어버린 예수를 찾으며 경험한 일들로 신적인 능력이 예수에게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소년 예수는 성전에서 선생들과 함께 토론하고 있었고 또 그가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것을 몰랐느냐고 대답할 때(눅 2:42-52) 마리아는 이 말을 마음에 담아두었습니다. 자기 생각과 경험을 하나님보다 더 우위에 두는 것은 믿음의 자세가 아닙니다. 믿음은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생각을 우선적으로 수용하는 결단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근거하여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7. 일군들의 순종도 대단합니다. 여섯 개의 항아리는 손과 발을 닦는 용도로 사용할 물을 담아두는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항아리에 물을 채우는 것도 힘든 일이고 그것도 아구까지 물로 가득 채우라니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물을 떠다가 잔치 상에 내놓으라니 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더니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그것도 최상급의 맛좋은 포도주라고 칭찬을 들었습니다. 9절에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 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이렇게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진행됩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 기쁨을 누립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으나 몸소 여러 가지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워서 완전하게 되셨고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히 5:8-9)

8. 제자들은 예수님이 행하는 일들을 함께 경험하며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 말씀에 순종하며 힘 있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행 1:8) 예수님은 잔치집의 좋은 포도주처럼 자신의 몸을 찢어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그를 믿는 자들을 구원하여 생명의 떡을 먹고 약속의 잔을 마시며 힘을 내게 하십니다.(고전 12:3)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는 것입니다.(롬 14:17) 주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충만하여 사는 것입니다.(요 15:11) 그러므로 날마다 동일한 일상을 반복하며 살지만 믿음으로 사는 우리에게는 날마다 주님을 새롭게 경험하는 기쁨의 시간이 됩니다. 새해에 하나님의 말씀을 더 가까이하고 순종하는 믿음의 성숙함과 진전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믿음으로 경험하는 하나님 나라의 즐거움을 크게 누리는 시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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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를 통하여 받는 복(눅 3:15-22, 롬 6:1-11)

1. 예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받기를 청하자 세례요한은 황송한 마음으로 사양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마 3:15)고 말씀했습니다. 마치 제사장이 희생짐승에게 안수하여 백성들의 죄를 전가시켰던 것처럼 예수님도 세례를 받음으로 세상의 죄를 자기 몸에 짊어졌습니다. 빌 2:6-8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겸손하게 수용하여 따르기 위해서 몸소 세례를 받았습니다.

2. 예수님이 세례를 받을 때에 하늘로부터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눅 3:22)라는 성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기름 부음을 상징하는 비둘기가 예수님의 머리 위에 임했습니다. 예수께서 이제 메시아로서 구원사역을 시작한다는 것을 모두에게 알게 한 것입니다. 오래전에 이사야는 메시아 사역에 대해서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사 61:1~2)라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이 말씀을 인용하여 자신이 메시아인 것을 알렸습니다.

3. 예수님은 율법의 형벌과 저주아래 있는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죽었습니다. 그 피로 죄를 씻어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들을 죄에서 자유하게 했습니다.(마 3:15, 사 53:1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반드시 벌해야 하는 하나님의 의를 충족시키려고 십자가에서 죽은 것입니다. 그리하여서 죄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고 화목하게 만들었습니다. 벧전 3:18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는 외아들까지 희생하며 죄인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십자가에서 보여주셨고 또한 십자가에서 죄를 반드시 벌해야 하는 하나님의 공의도 함께 충족시켰습니다.

4.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받으시고 죄인들을 죄 없다고 인정하고 구원하여 자기 백성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사 43장에서 이사야는 죄 가운데 빠진 유다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1절,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7절, “내 이름으로 불리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21절,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했습니다. 비록 고통가운데서 종살이하며 죄를 깨닫고 회개해야 하는 과정이 앞에 놓여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을 통해 찬양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신실함이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5.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면 영생을 얻습니다.(요 3:16)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요일 4:9-10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독생자를 화목제물로 주기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 사랑은 우리가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깨닫지도 못할 때에 준비된 사랑입니다. 롬 5:8에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셨다고 말합니다.

6. 세례를 받는 것은 이런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거기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고 그가 이루어 놓은 대속의 죽음과 부활의 능력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롬 6:4,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또한 창세전에 우리를 선택하여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고 그리스도 안에서 불러주신 하나님의 은혜(엡 1:4)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홍해바다를 지나며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했던 것처럼(사 43:2) 세례를 통하여 구원을 확신하고 간증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을 공동체 앞에서 확인하는 것입니다. 세례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성령의 기름 부음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도 함께 누립니다.

7.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선지자, 제사장, 왕의 모습으로 일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는 우리들도 그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선지자의 역할을 하며 성령과 말씀으로 하나님 나라를 알게 한 것처럼 우리도 기록된 성경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세상에 알려야 하겠습니다. 주께서 제사장처럼 하나님을 섬기고 죄인들을 죄에서 해방 받게 했던 것처럼 우리들도 제사장으로의 사명을 인식하고 세상을 위해 중보하며 복음을 전하여 구원받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해야 합니다. 또 그리스도께서 권세와 능력이 있는 왕으로 일하신 것처럼 우리들도 예수 이름에 있는 영적 권세를 사용하여 어둠의 세력을 깨뜨리고 주님 나라 확장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8. 베드로는 행 2:28에서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라고 했습니다. 회개한 성도에게는 성령의 임재와 도움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롬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 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 하시겠느뇨.”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와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으로 우리들을 인도하고 사용하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힘과 능력이 되며 환란 중에 피할 바위가 된다는 것을 경험하게 하실 것입니다. 롬 11:29에서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에게 모든 필요를 채워주신다는(마 6:33)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고 주 안에서 복된 한 해를 보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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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께 경배하는 기쁨 (마 2:1-11) 직원헌신예배

1. 교회는 1월 6일을 주현절로 지켜왔습니다. 주현, 공현, 에피파니라는 말로 표현했는데 예수님의 신성이 공개적으로 드러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동방 박사들이 왕으로 태어난 아기 예수를 찾아와 경배했던 것을 기념하는 것인데 정교회는 세례요한이 예수님에게 세례를 준 것을 기념하기도 합니다. 그 시간과 방법이 어떻든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 세상에 오셨음을 기억하는 것이고 또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임마누엘로 함께 하신다는 것은 확인하는 날입니다. 새해의 첫 주일에 우리교회를 섬기는 직원들이 주님을 왕으로 모시고 헌신을 다짐하기에 적당한 날입니다.

2. 그리스도께서는 이사야가 예언한대로 어둠이 가득한 세상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사 60:1-3) 절망하고 낙심하던 유다백성들에게 이사야는 메시아의 오심과 회복을 예언했고 이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려주셨습니다. 죄인들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 그를 믿는 자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만들었습니다. 스스로 의로워질 수 없는 죄인들이 그의 대속의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했습니다.

3.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변화된 삶을 살았습니다. 자기가 핍박하던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바울은 율법의 의가 아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그 이후 바울은 이방인에게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전하는 일에 평생을 헌신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 가운데서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셔서,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부요함을 이방 사람들에게 전하게 하시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안에 영원 전부터 감추어져 있는 비밀의 계획이 무엇인지를 모두에게 밝히게 하셨습니다.”(엡 3:8-9)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을 믿고 구원받게 되는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교회를 사용하여 모든 사람들이 이 복음을 듣고 구원받기를 원합니다. 교회는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존재하고 우리들의 헌신도 바로 이 일을 위한 것입니다.

4. 동방에서 별을 연구하던 박사들이 별의 안내로 태어난 왕을 찾아 경배하기 위해서 길을 떠났습니다. 길을 인도하던 별은 예루살렘 근처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박사들은 자기들의 지혜를 동원하여 왕궁으로 들어가 새로 태어난 왕이 어디 계신지를 물었습니다. 헤롯은 물론 주변 사람들은 그 소식에 크게 당황했습니다. 헤롯은 선지자들에게 물어 베들레헴에서 왕이 태어날 것을 알아냈고 박사들에게 왕을 찾으면 자기에게도 알려달라고 청했습니다. 박사들이 베들레헴으로 길을 떠나자 사라졌던 별이 다시 나타나 아기 예수께로 그들을 안내했습니다. 다시 나타난 별을 보고 그들은 크게 기뻐했습니다. 박사들은 아기 예수께 경배하고 그가 왕이며 메시아임을 공개적으로 드러냈습니다. 그들은 헤롯의 칼을 피해 다른 길로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5. 박사들은 헤롯에게도 표시하지 않은 존경을 태어난 아기 왕 예수에게 드렸습니다. 그들의 경배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최고의 경배였고 최고의 선물도 함께 드렸습니다. 왕을 알현할 때처럼 준비한 그들의 선물에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최고 권세 자에게 드리는 황금은 예수께서 왕으로 태어났음을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사용하는 유향을 드려 그가 제사장적인 삶을 살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시신을 처리할 때 쓰이는 몰약은 그가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위하여 대신 죽게 될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헌신에도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왕이며 제사장이며 구원자로 믿고 그에게 최고의 정성과 희생을 드리는 헌신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배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절하고 우리의 희생을 드리는 것입니다. 소원을 성취하고 무엇을 얻기를 기대하는 것은 그 다음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주시는 은총이 있어야만 바로 경배하고 예배할 수 있습니다.

6. 성경은 하나님의 때와 예언의 성취를 강조합니다. 로마의 인구조사 명령 때문에 나사렛에서 지내던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을 찾아가 거기서 해산을 했습니다. 이 일로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미 5:2) 라는 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를 애굽으로 피신하게 한 것이나 헤롯이 죽은 후에 다시 이스라엘로 돌려보내 나사렛에 정착하도록 인도한 것도 예수님이 나사렛사람이라고 불리게 될 예언의 말씀을 이루게 한 것입니다.(마 2:23) 시므온과 안나도 태어난 아기 예수께서 약속의 성취로 오신 메시아라는 것을 알고 그를 찬양했습니다.(눅 2:25-38)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소식이 널리 알려지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을 사용하십니다.

7. 교회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을 전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사명을 위해 존재합니다. 이 부름에 응답하는 성도들이 함께 주님을 높이고 찬양하고 경배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박사들이 먼 길을 여행하는 고생을 기쁘게 참아낸 것처럼 우리들의 신앙생활과 헌신에도 그런 인내와 수고가 들어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들에게 태어날 왕을 만나려는 목적이 분명했기에 최고의 경배를 드리고 헌신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의 예배와 섬김에도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목적의식이 분명해야 하겠습니다. 이 일은 우리를 구원해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확신하는데서 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영적 생활을 통하여 성장하고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8. 올해 교회 표어를 “말씀으로 다시 새롭게”라고 정했습니다. 말씀을 가까이하지 않고 영적 생활을 유지하거나 영적성장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각자의 은사와 부름에 따라 일을 분담하여 왕이며 주인이신 주님을 기쁘게 하는 한해가 되기를 원합니다. 혼돈과 두려움이 가득한 이때에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배우고 가르치는 일을 통해서 주님 주시는 평강을 누리며 교회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기를 원합니다. 책임을 맡은 직원들은 한마음 되어 주님을 닮는 일과 서로 섬기는 일에 앞장서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의 바른 헌신을 통해 주님을 기쁘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주님의 이름을 내걸고 있는 우리교회의 위상도 새로워질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왕께 경배하는 기쁨을 마음껏 누리는 복된 한 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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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출 13:1-13) 송년주일

1. 지난 두 주간 아내가 코로나에 걸려서 격리되어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한 집에 살면서 멀쩡한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다행스럽고 감사하기도 했습니다. 손 씻고 마스크 사용하며 조심하지만 사실 우리 힘으로는 스스로를 병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는 힘이 없는 존재입니다. 더구나 살고 죽는 문제는 생명의 주인이신 창조주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이 절대 필요한 존재입니다.

2.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생활하며 고통가운데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세워 그들을 구출하기로 작정했고 모세는 백성들을 내보내달라고 바로에게 청했습니다. 그러나 바로는 모세의 말을 듣지 않았고 여호와가 누구냐고 반문하며 하나님을 욕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자신이 누군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바로 왕과 이집트 땅에 재앙을 내렸습니다. 나일강물이 피가 되어 악취를 풍기게 하고, 개구리와 파리로 온 동네를 덮고, 전염병과 피부병을 주었고, 우레, 메뚜기, 암흑으로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짐승이나 사람의 첫 태생이 죽는 재앙을 내리자 비로소 바로 왕은 두 손을 들고 모세의 요구를 들어주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했다고 기록하며 하나님의 위대함과 공의로움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3. 이 싸움은 하나님께서 바로와 애굽 사람들이 섬기는 신들과의 전쟁에서 이겼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바로의 술객들이 일부의 것을 흉내 내기는 했지만 결국 패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재앙가운데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재앙이 내리지 않았다는 것이 특이합니다. 출 11:7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개 한 마리도 그 혀를 움직이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를 구별하는 줄을 너희가 알리라.” 결국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지키는 하나님이며 애굽의 술객과 그들의 신들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생명의 주관자이며 역사를 운영하는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분은 자기 이름을 위하여 사람을 세우기도 하고 폐하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분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구원하셨고 자기백성으로 삼아 여기까지 인도하셨고 전염병의 위험에서도 보호해 주셨습니다.

4. 첫 태생이 죽는 재앙의 밤에 이스라엘 가정은 짐승의 피를 문에 발라 죽음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희생짐승의 피를 통하여 구원해주신 날을 기념하며 유월절로 지켰습니다. 유월절 밤에 죽음에서 건짐 받은 첫 태생들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 되었습니다. 출 13:12-13 “너는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과 네게 있는 가축의 태에서 처음 난 것을 다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 수컷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나귀의 첫 새끼는 다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그렇게 하지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꺾을 것이며 네 아들 중 처음 난 모든 자는 대속할지니라.” 모든 짐승의 첫 태생은 주님께 바치고 맏아들은 대속의 의미로 속전을 내게 했습니다. 하나님께 속한 소유물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원의 일을 두고두고 기억하고 자녀들에게 가르쳐 그들이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분명하게 했습니다.

5. 요셉과 마리아도 모세의 법을 따라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식을 행했습니다.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는 말씀을 따라 아기를 주께 드리고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기 위해서였습니다.(눅 2:22) 이렇게 드려진 예수님의 일생은 하나님의 손에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를 유월절 희생짐승처럼 피 흘리게 하고 그를 믿는 자들을 죽음으로부터 구원해 주셨습니다. 십자가는 흉스럽고 부담스런 사형 틀이지만 예수께서 피흘려주심으로 모든 믿는 자들에게 죄에서 자유를 얻고 죄의 결과로 오는 죽음에서 구원받게 했습니다.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 5:7)는 말씀처럼 예수님은 자기를 희생하여 우리를 살게 했습니다.

6.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시인하고 믿는 것은 죄에서 자유를 얻고 구원을 얻는 길이 됩니다. 광야에서 뱀에 물려 죽게 된 사람들에게 모세가 놋 뱀을 장대에 매달고 그것을 바라보는 자마다 다시 살게 했던 것처럼 예수님도 십자가에 매달려 그를 믿는 자마다 구원을 받게 했습니다.(요 3:14-15)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는 그가 주는 참 평안을 누립니다.(요 14:27) 그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아서 모든 두려움에서 보호받고 영생을 누리게 합니다. 시므온이 하나님을 섬기다가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오시는 아기 예수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했던 것과 같은 감격을 누리게 합니다. “주님, 이제 주님께서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이 종을 세상에서 평안히 떠나가게 해주십니다. 내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주님께서 이것을 모든 백성 앞에 마련하셨으니, 이는 이방 사람들에게는 계시하시는 빛이요,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눅 2:29-32)

7. 우리들의 신앙생활은 이런 영적감격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게 되고 주님 안에서 거룩한 생활을 하게 되었으니 우리는 그 사랑에 감사하며 날마다 기쁨으로 살아갑니다. 고센 땅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를 받으며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는 이시대의 환란과 어려움에서 보호를 받으며 사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구원받은 사람들이 함께 모인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친절을 베풀며 겸손함과 온유함과 오래 참음을 연습합니다. 서로 용납하고 용서하고 사랑하기를 힘쓰며 그리스도의 평화가 우리를 지배하도록 자신을 다스립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한 생활을(살전 4:3) 하는 것이고 주 안에서 평화를 누리고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것(골 3:12-17) 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8. 한해를 돌아보니 여러 가지 일들이 생각납니다. 함께 자유롭게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런 중에도 영상으로 예배하며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말씀을 가까이하고 기도하며 영적 생활을 유지하는 자생력을 습득하는 기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어려움을 통하여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어 스스로 설 수 있게 했다고 믿습니다.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고전 15:10)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왔음을 고백하며 감사로 한해를 마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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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왕 예수 그리스도 (마 1:18–25, 눅 2:15–20) 대림절 넷째 주일, 성탄주일

1.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나 불신자나 모두에게 고루 햇빛과 비를 주십니다. 이것을 일반은총이라고 말합니다. 그에 비해서 특별은총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특별한 관계 안에서 주는 은혜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의로운 자녀로 인정해 주시는 것은 특별한 은혜입니다.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의 몸을 통하여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은 일반은총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2. 영원하고 전능하신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만든 창조주이며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에게서 태어나게 하신 것을 믿습니다. 십자가에서 죽고 다시 부활한 것도 믿습니다. 그리고 그가 심판주로 다시 오실 것도 믿습니다. 예수께서 동정녀의 몸에서 나심으로 사 7:14에서 예언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말씀이 성취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창 3:15에서 약속한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할 여자의 후손으로 오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죄 없는 하나님이지만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오시어 인간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참 하나님이며 참 인간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3.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메시아의 오심을 예언하게 했고 때가 되니 그 일을 실행하셨습니다. 미가 선지자는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미 5:2)고 예언했는데 말씀대로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출생했습니다. 또 가브리엘 천사를 마리아와 요셉에게 보내 구주탄생의 일을 알려주었는데 그의 말대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정부 지시를 따라 호적 하러 고향에 갔지만 배후에는 예언을 성취하는 하나님의 섭리하심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생사화복은 물론 인류전체의 역사도 주관하는 분입니다. 구주탄생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눅 2:10)입니다. 주께서 죄와 사망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여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가득한 새 하늘가 새 땅으로 인도하여(롬 8:2) 참 평화를 누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4.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행하는 구원의 일을 세상이 알게 되도록 사람들을 사용합니다. 마리아는 주께서 자기의 비천함을 불쌍히 여겨 주시어 큰일을 행하는 중에 자기를 사용해 주셨다고 찬양했습니다.(눅 1:48~49) 요셉도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하는 일에 대하여 잠깐 고민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는 부름에 순종했습니다. 사 9:6-7 “한 아기가 태어났으니 우리에게 주신 아들이다. 그가 우리의 통치자가 되실 것이니 그 이름은 ‘위대한 스승’, ‘전능하신 하나님’, ‘영원히 계시는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 하리라. 그의 왕권은 한없이 신장되고 그의 나라는 언제나 평화로울 것이며 그가 다윗의 왕위에 앉아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공정함과 의로움으로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다.” 메시아의 오심과 그의 나라에 대한 예언은 구주탄생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나라 건설을 위하여 지금도 교회를 불러 사용합니다.

5. 하나님은 약한 자들을 선택하여 자신의 강함을 드러냅니다.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은 사회의 약자 층에 속하는 보통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목자들을 사용하여 구주탄생의 소식을 세상에 공개적으로 알렸습니다. 목자들이 천사의 말을 듣고 베들레헴에 가봤더니 정말 그곳에 아기 예수께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었습니다.(눅 2:12) 그들은 주님께 찬양하고 천사의 말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메시아이신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신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들은 참 평화를 주려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눈으로 확인했고 그 감격과 감동을 주변사람들에게 알려준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주님께서는 지금도 성령을 통하여 주님을 믿게 하고 그 구원의 감격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게 합니다. 이 구원의 좋은 소식은 그렇게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온 세상에 펴졌습니다.

6.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라는 약속은 구주탄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를 믿는 자들은 구원을 받고 성령과 함께 살아갑니다. 구주탄생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구체적으로 실행된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이 이 땅에 나타난 것입니다.(딛 2:13)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결코 외면하지 않았고 약속대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죄인들을 구원했습니다.(사 62:11-12) 십자가는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미워하는지를 보여주는 공의의 상징입니다. 동시에 십자가는 아들까지 희생하여 죄의 값을 치르게 하고 믿는 자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하고 하나 되게 했으니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평이 됩니다.(엡 2:14)

7. 예수님이 태어나신 베들레헴은 빵집이라는 뜻입니다. 그 이름처럼 예수님은 많은 사람을 살리고 배부르게 했습니다. 오늘 교회는 예수님처럼 사람을 배불리는 빵집역할을 해야 합니다. 주께서 주시는 신령한 음식을 먼저 먹고 또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어 그들로 배부르게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몸을 내주어 우리로 생명을 얻게 한 것처럼 말입니다. 사도요한은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셨고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로 내주셨으니(요일 4:9-10, 14) 그 사랑을 경험한 성도들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가르쳤습니다.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 기쁨과 평화를 얻은(롬 5:11) 우리들이기에 우리가 경험한 하나님의 사랑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야 하겠습니다.

8. 길 잃은 자들이 주께 돌아오는 일에는 하나님의 선택도 있어야 하고 먼저 믿은 사람들이 복음의 능력을 생활로 보여주는 수고도 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받아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3:7)는 말씀처럼 주님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여 그의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했습니다.(히 10:10) 우리 모두는 어느 때보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주시는 구원의 기쁨과 능력이 우리를 새롭게 하는 힘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참 평화가 우리를 힘나게 할 뿐 아니라 또 다른 사람을 복되게 하는 성탄선물로 나눠지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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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조사에서 배우는 교훈 (민 1:1-4, 습 3:14-20)

1. 한해가 저무는 때에 교회는 한해를 결산하고 새해를 계획하는 사무총회를 엽니다. 사무총회를 준비하면서 성경에 나오는 인구조사가 생각났습니다. 대개의 나라들에서는 세금을 거두기 위한 것과 전쟁에 대비하기 위한 목적으로 인구조사를 실시합니다. 요즘은 그 통계를 민생복지를 위해 사용하기도 합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도 광야 생활을 시작하는 때(민 1장)와 마치는 때(민 26장)에 백성들의 수를 세었습니다.

2. 인구조사를 통하여 하나님 백성으로의 소속감과 정체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후 둘째 해 둘째 달 첫날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백성 전체의 인구를 조사하게 했습니다.(민 1:1-2) 그때까지는 시내산에 머물며 성막과 궤를 만들고 하나님 백성으로의 삶의 원칙들을 배웠습니다. 이제는 광야생활을 통하여 배운 것을 적용해야 했습니다. 애굽의 노예생활의 습관들을 버리고 가나안에 들어가 제사장 나라로 살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출 30장을 보면 20세 이상의 남자들은 자기 목숨 값으로 반 세겔의 돈을 속전으로 냈습니다. 속전을 낸 장정들은 하나님께서 질병으로부터 보호해 주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출 30:16) 사무총회는 입교절차를 거쳐 우리 교회의 정회원이 된 분들이 함께 살림을 논의하는 모임입니다. 이 교회를 섬기게 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인정하고 한 식구로서의 책임감 있는 성도로 소속감을 새롭게 하기를 원합니다.

3. 인구조사를 통하여 공동체의 질서가 세워졌다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20세의 남자들의 수를 세어보니 약 60만 명이 되었습니다.(민 1:3) 그들의 식구들까지 생각하면 수백만 명은 되었을 것인데 이들이 함께 움직이기 위해서는 질서가 필요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말씀을 받아 백성들에게 전했습니다. 각 지파마다 세워진 리더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도록 자기 식솔들을 격려했습니다. 이런 협력을 통하여 많은 수의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고 사람들의 협력을 통하여 그것을 집행하십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했습니다.(롬 14:17) 교회는 그 어떤 형편에서라도 성령 안에서의 거룩함과 화평을 유지해야 합니다. 사무총회를 통하여 기쁨으로 협력하는 질서가 굳게 세워지기를 기대합니다.

4. 이렇게 중요한 인구조사에 레위지파는 계수에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민 1:47-49) 그들은 전쟁보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전담했습니다. 레위인들은 각 가정의 장자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드려진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성막에 관계된 일을 전담했는데 이동할 때 성막기구를 옮기거나 외부인들이 성막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지켰습니다.(민 1:50-53) 민 3:12-13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첫 태에 처음 난 자를 대신케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 처음 난 자는 다 내 것임은 내가 애굽 땅에서 그 처음 난 자를 다 죽이던 날에 이스라엘의 처음 난 자는 사람이나 짐승을 다 거룩히 구별하였음이니 그들은 내 것이 될 것임이니라. 나는 여호와니라.” 처음 태생을 하나님의 것으로 구분한 이유를 유월절에서 찾고 있습니다. 희생짐승의 피 때문에 생명을 보전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구원받아 거룩한 제사장으로 부름 받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5. 2차 인구조사는 여호수아가 광야에서 출생한 신세대들에게 가나안에 들어가 치룰 전쟁을 준비하고 가나안 땅을 미리 분배하기 위해서 실시했습니다.(민 26장) 가나안 정복전쟁을 위한 준비이기도 하고 광야생활을 돌아보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두 번째 인구조사의 결과를 보면 1차 때와 비교하여 1,820명이 감소했습니다. 그런 중에도 레위지파는 1,000명이 늘었습니다. 애굽에서 노예로 지낼 때에는 바로가 염려할 정도로 인구가 늘었는데 광야에서 하나님의 기적과 보호가운데 살면서는 오히려 인구가 감소했습니다. 광야생활의 척박함도 이유가 되겠지만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게 행동하다가 벌을 받은 것도 큰 이유가 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출애굽 1세대들은 가데스바네아에서 하나님께 불평하고 반역하다가 다 광야에 묻혔습니다.(신 1:35) 그러나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레위지파는 그런 중에도 인구가 늘었습니다. 어떤 환경에 있는가보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은혜 안에 머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웁니다.

6.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받지만 구원받은 후에는 부름에 합당하게 살아야 할 책임이 뒤따릅니다. 구원받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이 어려운 때에도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헌신하며 교회를 지켰습니다. 우리들의 순수한 헌신과 봉사를 계속 기쁘게 받아주시기를 원합니다. 대상 21장에는 다윗의 인구조사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런데 1절에서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라고 말합니다. 다윗이 성전건축을 준비하고 주변 나라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서 인구조사를 했는데 이것이 하나님보다 자기 힘을 의지하도록 부추기는 사단의 꼬임에 넘어간 교만한 결정이라고 말합니다. 이 잘못된 결정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전염병으로 무고한 백성 7만 명이 죽었습니다. 다행히 다윗이 철저하게 회개하고 희생 제사를 드린 후에 용서를 받았습니다.(대상 21:26-27)

7. 순간이라도 은혜를 망각하면 교만하기 쉽고 사단은 그것을 이용하여 우리를 넘어뜨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긍휼을 날마다 구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속전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하고 적용했다면 실수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만 산다는 겸손한 마음을 잃어버리자 자기 군사력을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성도의 영적승리와 기쁨의 이유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옥에 갇혀서도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주께서 주시는 평강과 기쁨이 그를 그리스도 안에 머물게 했기 때문입니다.(빌 4:4,7) 시대적으로 어려운 때에 살지만 주께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기에 두려워하거나 의기소침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바라보는 하나님께서 잔칫날 기뻐하듯 우리로 인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로 승리하게 하여 하나님과 사람에게 칭찬을 듣도록 높여 사용해 주실 것입니다.(습 3:15-17)

8. 한해를 돌아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성취했다면 그것은 우리같이 약한 자를 사용하여 자신의 위대함을 나타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몸을 속전으로 내주셨음을 다시 감사합니다.(딤전 2:6) 이 대속의 은혜 때문에 우리가 구원의 감격을 누리고 천국을 소망하며 한해를 살았습니다. 잠 16: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는 말씀대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겸손한 마음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고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또 한해를 맞이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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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에 합당한 열매(말 3:1-7, 눅 3:7-14) 대림절 둘째 주일

1.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으시고 흡족해 하셨지만 아담은 하나님처럼 되려는 교만한 마음으로 사단의 꼬임에 넘어갔고 결국 하나님의 법을 어겼습니다. 노아시대에도 바벨탑 사건 때도 인간들은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했고 무엇이 정의이고 선인지에 대한 기준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자신을 계시해 주셨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기준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제사장 나라로 살 수 있게 된 것은 큰 은혜요 특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때마다 하나님에게서 멀어졌고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 회복시키기를 원했습니다.

2. 바벨론 포로로 고생을 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를 작정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던 사람들조차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죄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해방의 감격도 잠시였고 바벨론이후에 생겨난 바사제국의 지배를 다시 받아야 했습니다. 병충해로 농사를 망쳐 먹을 것이 부족했고 기대하던 하나님 나라의 건설도 요원했습니다. 제사장들마저 자신의 임무에 소홀했고 율법의 규례를 무시하고 아무 제물이나 하나님께 드렸습니다.(말 1:7,8) 백성들은 당연히 윤리적으로 타락했고 이방인과 통혼했으며 하나님 백성으로의 순결성을 잃었습니다.(말 2:10-16) 바벨론에서 성행하던 마법사들과 우상숭배가 자연스레 따라왔습니다. 거짓증언도 성행했고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를 무시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야 할 십일조와 헌물을 자기 욕심대로 가로챘기에 제사장과 사회 약자를 돌보는 기능이 약화되었습니다. 이런 죄악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했습니다.

3. 말라기 선지자가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외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말 3:7)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포로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에게서 다시 영적인 부패와 도덕적인 타락이 자리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첫사랑을 잃지 않고 순결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때마다 말씀의 거울 앞에 자신을 비춰보아야 합니다. 바울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다고 말하며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단정했습니다.(롬 3:10) 하나님의 은혜의 품을 떠나서는 인간 스스로 거룩하게 살 수 있는 능력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속량의 은총을 힘입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순종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선지자는 죄 가운데 있는 무지한 백성들을 향하여 돌아오라고 외친 것입니다.

4. 포로기 이후의 사람들을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들로 비유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도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안녕과 복지는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만 유지될 수 있습니다. 구원받았다고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법을 준수해야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출 19:5-8) 하나님과 원만한 관계에서 그의 목소리를 듣고 순종하는 것이 성도의 행복입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타락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예배의 회복을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이 받을 만한 생활이 되지 못하면 형식적으로 드리는 예배로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하는 것은 그래서 옳은 말입니다. 참된 회개 없이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말 2:15-17)

5.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을 실천해야 하는 이유는 마지막 심판의 날이 있기 때문입니다. 말라기는 메시아가 오시는 날에 불의와 죄는 심판당하고 동시에 구원과 회복이 이루어질 것을 말했습니다. 여호와의 날로 설명된 그 날은 재난의 날이며 심판의 날입니다.(말 4:1,3,5) 그러나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에게는 그 날은 축복의 날이요 생명의 날입니다. 그날에 구원받은 성도들은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뛸 것이며(말 4:2)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 책에 자기의 이름이 있는 것으로(말 3:16) 기뻐할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 요한이 마지막 날에 대하여 전해주는 내용과 일치합니다. 말라기는 메시아 오심을 준비하는 메신저가 올 것이라고 말하며 글을 마쳤습니다.(말 3:1) 약속대로 세례요한이 와서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알렸습니다.

6. 세례요한은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하며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했습니다.(눅 3;3) 세례요한의 사역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아로 오셨다는 것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요 1:29-31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세례요한이 전하고 가르치던 회개의 설교는 지금도 교회를 통해 계속되고 있습니다. 교회는 복음을 전하여 듣는 자들이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도록 안내합니다.(눅 3:6) 지금도 주님께서는 오만하고 교만한 마음을 그의 자비로 덮어 겸손하게 하고 말씀과 성령으로 새롭게 하십니다.(빌 1:6)

7.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어떻게 맺는 것일까요? 다니엘서를 보니 다니엘과 친구들은 왕이 먹는 기름진 음식과 포도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결단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으로 죄와 타협하지 않는 그들의 결단을 귀하게 여긴 하나님께서 그들을 높이고 사용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나라들의 장래를 알게 하는 왕의 꿈을 해석하게 했습니다. 세상의 나라들은 망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하다는 것을 세상에 드러내게 했습니다. 다니엘은 믿음의 동지들과 함께 합심하여 기도하며 어려운 문제를 헤쳐 갔습니다.(단 2:17-18) 꿈을 해석할 때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일했고 사자에게 던져지고 타는 불에 던져질 위험의 순간에도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죽기를 각오하는 믿음으로 버텼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사용된 승리의 비결이었습니다.

8. 회개는 후회나 안타까움을 넘어 방향을 송두리째 바꾸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첫사랑을 버린 것을 회개해야 했습니다. 라오디게아교회는 스스로 교만하여 자신을 바로 보지 못하는 영적 교만을 회개해야 했습니다.(계3장) 전염병으로 두려워하거나 무엇을 먹고 살 것인지에 대한 염려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우선하는 믿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마 6:33) 속히 임할 주님의 날에 우리 모두가 심판대 앞에 서야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기쁘게 하기 위한 구체적인 목표 설정이 필요합니다. 흐트러진 예배 생활을 추스르고 조정하여 영적인 성숙을 이루어야 하겠습니다.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깁시다. 순간을 살지만 영원한 하나님 안에 사는 우리들이기에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그의 손에 사용되려는 거룩한 열망이 새로워져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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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렘 33:14-18, 눅 19:28-38) 대림절 첫째 주일


1. 오늘부터 교회력이 새로 시작됩니다. 대림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생각하는 절기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것을 기억하고 또 재림하실 주님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예레미야는 렘 33:14-15절에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일러 준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살 것이며 이 성은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으리라.” 라고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예언했습니다.
2. 다시는 일어설 것 같지 않던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다시 새로운 공동체로 탄생하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포로에서 돌아와 풍요롭게 살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또 다윗 왕의 왕권이 이어지게 하고 레위 지파가 제사장의 일을 하도록 회복시키고 아브라함과 영적 후손들과 맺은 약속을 성취하겠다고 했습니다. 물론 예레미야가 이 예언을 선포한 시기는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지은 죄 때문에 심판을 받아 강대국의 포로가 되어야 하는 때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앞으로의 일에 소망을 갖도록 선지자를 통하여 미리 말씀해 주셨습니다. 택한 백성에게 고난은 심판이라기보다는 회복을 위한 연단과정이었습니다. 강대국의 속국이 되어 완전히 사라진 것과 같은 다윗 왕권이 메시아의 오심으로 이어지게 했습니다.
3. 이사야도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고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겠다고 예언했습니다.(사 7:14) 여호와의 영에 감동된 메시아가 오셔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고, 포로에게 자유를 주시고,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보복의 날을 선포하며, 슬픈 자를 위로할 것(사 61:1-2)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이 말씀은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이스라엘의 관계를 살펴볼 때 더 분명해집니다.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사 1:2, 5:1-7) 하나님은 배은망덕한 유다를 되돌리기 위해서 심판해야 했고 그들은 어려움을 겪으며 회개하고 엎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서도 하나님은 메시아를 통한 구원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4. 예언의 성취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자신을 내주기 위해서 겸손한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세상의 가장 빈곤한 사람의 모습으로 말구유에서 탄생하여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했고 또 십자가를 지기위해 작은 나귀를 탄 겸손한 왕의 모습으로 예루살렘에 들어갔습니다.(마 21:5) 예수님은 다윗의 왕권을 물려받은 분이지만 눈부신 왕좌대신 십자가의 영광을 그의 머리에 쓰셨습니다. 렘 23:5-6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이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고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이루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5.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말씀과 성례전을 통하여 교회에 들어와 죄의 용서와 영생을 주십니다. 바울이 살전 3:13절에서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라고 기도한 것처럼 주께서는 성도들을 거룩하고 흠이 없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몸과 피를 먹을 때마다 예루살렘 성문에서 예수님을 맞으며 환호했던 군중들처럼 소리 높여 예배해야 합니다. 마 21:9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마땅한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그가 영광중에 다시 오실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심판 주로 오실 그날에 각 나라와 사람들은 두려워하겠지만 구원받은 우리는 평안을 누릴 것입니다.
6. 누가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이렇게 전했습니다. 눅 21:25-28 “해와 달과 별들에서 징조들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 때문에 어쩔 줄을 몰라서 괴로워할 것이다.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올 일들을 예상하고 무서워서 기절할 것이다.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에 사람들은 인자가 큰 권능과 영광을 띠고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일어서서 너희의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구원이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재림에 대한 기다림은 성도가 가지는 특권이며 자기 정체성을 새롭게 하는 일입니다. 롬 13:11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7. 겸손하고 온유한 평강의 왕(사 9:6)으로 오신 주님은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주심으로 구원을 완성했습니다. 전쟁 영웅들처럼 군중들의 환호를 받았지만 내용은 달랐습니다. 스가랴가 예언했던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슥 9:9)라는 메시아 약속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복음서는 나귀 탄 왕의 모습을 강조했습니다. 백성들의 환호에는 로마로부터의 해방을 기대하는 마음이 들어 있었고 예루살렘에 새로운 메시아의 왕국이 세워질 것을 고대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예루살렘을 본 예수님은 자기 정체성을 잃고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난 그들을 보고 안타까워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멸망에 이르지 않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마음(겔 33:11)으로 그들을 위해 우셨습니다.(눅 19:41-48)
8.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원의 일을 위해서 오셨고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생각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하나님이 일하는 것을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기를 돌아보는 일이 그래서 필요합니다. 나귀를 타신 예수님의 겸손한 모습은 높은 권좌에서 나오는 권세보다 높았습니다. 자신이 친히 죽어 모든 사람을 살게 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었습니다. 전염병과 생존을 위한 걱정이 많은 요즈음 우리는 천국의 기쁨과 성도의 비밀이 무엇인지를 보여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기쁨이 있습니다. 천사가 전하여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구주탄생이었듯이 우리가 믿고 섬기는 예수 그리스도는 믿는 자에게 죄에서 자유하게 하며 영원히 하나님의 품에 머물게 합니다. 왕이면서도 자신을 낮추고 희생하여 우리를 살게 하신 주님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소망을 주는 성도와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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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는 이유 (신 8:1-20) 추수감사주일

1. 뒷마당의 나무에서 떨어지는 단풍잎이 제법 멋이 있습니다. 때가되면 모든 자연은 하나님의 보호와 다스림 속에서 자기 할 일을 합니다. 사람도 떡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에 근거하여 사는 존재입니다.(신 8:1-10) 사람은 생명의 주인이신 창조주의 섭리와 다스림을 따라 사는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은 율법과 복음을 주셨고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이 질서를 따라 살며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성도는 생명과 건강과 부요함이 창조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믿고 감사하는 사람들입니다.

2. 신명기는 모세가 광야에서 출생한 출애굽 2세대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라고 설교한 내용입니다. 모세는 그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는지를 기억하게 했습니다.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는 현재를 알 수 없고 미래도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광야생활은 믿음 없이 살다가 벌 받은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가는 훈련 과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백성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사랑의 매를 들기도 했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경험했고 말씀에 순종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사람들은 어려운 일을 만나면 믿음의 가치를 발견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극복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포기하고 주저앉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의식주와 모든 필요를 채워주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믿음으로 살며 감사해야 했습니다.

3. 광야의 척박함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는 천국이었습니다. 가나안은 광야와 달리 아름답고 골짜기와 산지에 물이 넉넉했습니다. 초원도 있고 밀과 보리, 포도와 무화과, 석류와 감람나무 열매가 풍성했습니다. 꿀도 나고 산에는 철과 구리도 많이 났습니다. 가나안은 옥토요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가나안에 들어가 풍요로움에 취하지 말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해야 했습니다.(신 8:7-10). 거기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구원을 전하는 제사장 나라로 살아야 했습니다. 모세가 가나안의 풍요로움에 빠져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을 섬기지 못하도록 그렇게 경고했지만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간 후에 그곳의 풍요에 취해버렸고 타락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4. 이스라엘의 실패는 인간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직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구원을 받는 것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었습니다. 구원은 우리의 믿음을 보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잠언 30:8-9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라는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겸손한 기도이며 구원받은 성도가 취해야 할 바른 자세입니다. 예수님은 마 21:22에서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고 약속했습니다. 이것은 물질의 풍요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고 평강으로 인도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빌 4:6-7)
5. 감사는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행위입니다. 감사는 스스로의 힘으로 형통한 삶을 이루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것마저 가능하도록 인도해주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권위와 신실하심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근거한 믿음의 표현입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우리들이지만 감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향한 사랑과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불러 자신을 보여주셨고 우리는 믿음으로 응답하여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때마다 성찬을 먹으며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자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배부름과 배고픔에 흔들리지 않고 풍부와 궁핍에 적절하게 대처하며 감사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야 합니다.

6. 누가복음에는 열 문둥이가 예수님을 만나 자기들의 병을 치료해주시기를 간절하게 청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겨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이미 깨끗하게 한 후에 제사장에게 그 몸을 보이고 온전하다는 것을 인정받으라고 한 것입니다. 제사장에게 가던 중에 사마리아사람 하나가 자기 몸이 나았다는 것을 느끼고 가던 길을 돌아와 예수님께 엎드려 감사했습니다. 그는 자기 몸이 나은 것을 자각하는 순간 즉시 돌아와 감사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칭찬했습니다.(눅 17:11-19) 그리고는 다른 사람들은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며 감사를 가르쳤습니다. 그는 때를 미루지 않는 즉각적인 감사로 더 큰 복을 받았습니다. 살전 5:18에서는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일이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며 뜻이라고 가르칩니다. 감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풍성한 복을 누리게 한 약속입니다.

7. 하나님은 택한 백성들이 절기를 지키며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게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절기 때마다 일손을 멈추고 함께 모여 잔치를 열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 같은 약자들을 돌보고 함께 나누어 먹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고 고루 나누며 정의를 실천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감사의 예배도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공동체의 일이 되어야 합니다. 누구 하나도 소외되지 않고 하나님의 돌봄과 사랑을 받는 가족으로의 정을 나누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성도의 정체성을 새롭게 하는 거룩한 만남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의 다스림 가운데서 살도록 서로 격려하고 돌보아야 합니다.

8. 오랜만에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온 교우들이 함께 예배하는 기쁨이 있습니다. 감사의 예배에 함께 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이 주시는 평강이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요즈음 같은 환란의 때에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고 보호해 주는 것은 사회적 거리두기나 얼굴 마스크나 백신이 아니라 생명을 주관하는 하나님의 품에 거하는 일입니다. 비록 어려운 시기이지만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증거 하는 일에 더 열심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두움이 진할수록 빛은 밝게 빛납니다. 부패가 심할수록 소금의 진가가 들어납니다. 주님 오실 때가 가까울수록 교회는 모이기에 더욱 힘을 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름에 합당한 거룩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럴 때에 더 풍성한 감사가 우리에게 생겨날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감사의 이유가 더 많아지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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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성전인 예수그리스도 (요 2:13-25, 막 13:1-13)

1. 예수님이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기록이 여러 번 나옵니다. 요한은 공생애 초기에 참된 성전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리기 위해 기록했고 마가는 고난당하기 전 종말에 관하여 가르치는 대목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당대의 최고의 재질로 지어진 아름답고 웅장한 건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자랑했지만 예수님은 돌 위에 돌 하나가 남지 않을 만큼 처참하게 무너져버릴 것을 말씀했습니다.(막 13:1-8)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상을 엎은 일에 대하여 무슨 권세로 그러는지 증표를 보이라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성전을 헐면 사흘 만에 세우겠다고 말씀했습니다. 그가 십자가에서 죽고 삼일 만에 다시 부활하게 될 것을 말씀하며 그가 곧 성전이라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2.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서 장사하는 자들의 상을 엎으며 하나님의 집을 장사치들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화를 내신 것은 당시의 타락하고 부패한 신앙형태를 지적하신 것입니다. 성전 안에서의 매매행위는 오래된 관행이었습니다. 그들은 제사하는 사람들이 가져온 제물은 거절하고 자기들이 준비한 짐승을 사게 했습니다. 또 성전 세를 낼 때도 로마의 화폐는 받지 않고 환전하게 했습니다. 제사하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이제는 수익사업이 되었고 성전 안으로 옮겨왔습니다. 제사정신보다 형식과 의식을 중요시했고 이익을 챙기며 점점 부패해졌습니다. 오죽하면 하나님은 이미 오래전에 이사야를 통하여 그들이 드리는 제물에 진절머리가 나서 더 이상 짐승의 피를 기뻐하지 않는다고 말씀하기도 했습니다.(사 1:11-17) 하나님 나라를 찾는 가난한 마음 없이 자기만족을 얻으려는 예배 자들을 거절하신 것입니다.

3, 사실 구약의 성막이나 성전은 하나님 임재의 상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으로 존재하는 하나님을 만나 죄 용서를 얻을 수 있도록 마련해준 장소였습니다. 예수님이 육체로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알려주셨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모형인 구약시대의 성전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을 헐어버리라는 혁신적인 선언을 하신 것은 참 성전인 자신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무너진 성전을 삼일 만에 다시 세우겠다는 것은 46년 동안에 걸쳐 지어진 눈에 보이는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고 삼일 만에 다시 부활하실 자신의 몸을 말한 것이었습니다. 십자가 대속의 죽음과 부활로 세워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성전이고 거기 속한 성도의 몸도 성령이 거주하는 성전이 되었습니다.(고전 3:16)

4. 예수님은 또한 하나님의 집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십니다. 당시의 제사장들은 죄를 용서받기 위한 제사를 매일 드렸지만 그것은 영원하지 못했고 다시 죄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때마다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몸을 희생제물 삼아 영원한 제사를 드려 믿는 자들을 죄에서 자유롭게 했습니다. 그가 드린 속죄의 제사는 믿는 자들을 영원히 거룩하고 흠이 없는 온전한 자로 만듭니다.(골 1:22)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갑니다. 예수께서는 지성소를 가로 막았던 휘장을 찢고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찢어진 휘장은 곧 그의 육체입니다. 그가 희생의 피를 흘림으로 우리가 그 은혜로 하나님께 나가게 되었습니다.

5. 성도는 예수의 피로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세례로 깨끗하게 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유일한 구원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교회의 존립을 흔드는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는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마음을 다하여 서로 사랑하고 선한 일을 하며 서로 격려해야 합니다. 주님의 재림이 가까울수록 서로 격려하고 모이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히 10:17-22). 다니엘은 마지막 환란의 때에 관한 환상을 보았습니다. 천사장 미가엘이 나타나 생명책에 기록된 백성들을 환란에서 피하게 하는데 그때에 많은 사람이 무덤에서 일어나 영원한 생명을 얻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수치와 모욕을 받게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늘의 별처럼 영원히 빛나는 것도 보았습니다.(단 12:1-3) 성도에게는 이런 영광스러운 미래가 약속되어 있습니다.

6. 예수님은 제자들이 당할 어려움을 알고 보혜사 성령을 보내 견뎌내게 했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막 13:13) 성령께서는 진리의 영(요 14:17)이기에 진리이신 예수님을 알게 합니다.(요 15:26) 말씀을 생각나게 가르쳐주십니다.(요 14:26)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알게 합니다.(롬 8:16) 우리가 바로 기도하지 못할 때에도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십니다.(롬 8:26)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게 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에 우리가 삽니다. 믿음으로 살려고 작정하면 할수록 반대세력이 거세게 닥쳐옵니다. 그래서 성령 안에서 깨어있어야 합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이 우리의 자고 있는 것을 보지 않도록 믿음으로 살며 인내하고 깨어있어야 하겠습니다.(막 13:35-36)

7. 유월절 절기에 기적을 경험한 군중들은 물론이고 제자들조차 예수님의 말씀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요한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요 2:22)고 기록했습니다. 그들은 기적을 보고 믿음을 가졌지만 십자가 고난 앞에서 그 믿음은 무용지물이었습니다. 부활을 목격하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 후에야 그들의 영적 생활에 능력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아는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고 말씀을 이해하고 믿도록 도와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문제해결을 받거나 기적을 경험했기에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성령의 도움으로 이해하고 믿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에서 떠나게 하는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서 완전무장하고 성령 충만을 날마다 기도해야 합니다.(엡 6:11)

8. 하나님의 은혜를 돌아보고 감사하는 계절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믿음의 표현이고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통로입니다. 살전 5:15-17 “항상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시 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라고 했습니다. 감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감사로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참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가게 되었음을 감사합시다.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고 늘 함께 해주시는 성령의 내주하심과 인도하심에 감사합시다. 이 어려운 팬데믹 중에도 보호해주시고 형통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노래를 크게 불러 드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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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외국인입니다. (히 11:13-17) 박도술 목사님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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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열매(롬 3:19-28)

1. 바울은 모든 사람들이 죄로 인해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죄는 과녁에서 빗나간 화살처럼 하나님의 계획에서 벗어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생각을 함께 나누고 함께 일하는 동역자로 만들었지만 아담은 타락하여 하나님을 떠났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추구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계획에서 벗어나 자기만족과 쾌락을 추구하려고 하나님을 떠난 것을 죄라고 말합니다. 아담 이후의 사람들은 타락한 본성을 따라 죄를 지으면서도 죄를 분별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을 불러 율법을 주고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알려주었지만 그들은 율법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여전히 하나님을 떠나 악과 거짓을 행합니다. 선보다는 악을, 의보다는 불의를, 빛보다는 어둠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2. 이런 죄 가운데 있는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길이 없었습니다. 죄를 알게 하는 율법의 기준에서 벗어났으니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실 타락한 인간에게는 율법을 지킬 힘이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인간은 하나님처럼 의롭고 거룩하며 진리 안에 거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할 존재였습니다, 처음 사람은 하나님이 보기에도 심히 좋았고(창 1:31) 거기에 하나님의 생기를 받은 영적인 존재(창 2:7)였습니다. 그러나 죄 때문에 하나님과 멀어지고 죽음으로 떨어졌습니다. 죄는 인간을 사로잡아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마음을 무능하게 만듭니다. 성선설과 성악설에 대해 논쟁하지만 바울은 타락한 인간의 모습을 철저히 비관적으로 말합니다. 이것이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처지이며 심판입니다. 사도요한은 믿는 자는 영생을 얻지만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는데(요 3:16-17)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은 이미 죽음이며 심판이고 살았으나 실상은 죽은 것입니다.

3. 하나님은 거룩함에 대한 기준을 잃어버린 인간에게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의 영광을 다시 보여주었습니다. 마치 운전하다 방향을 잃었을 때에 지피에스를 다시 설정하면 현재위치가 표시되고 가야 할 방향을 찾을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흠이 없고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어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려주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도록 길을 내주셨습니다.(요 1:4)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세상에 드러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유일한 길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만 하나님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행 16:31)

4. 구원은 우리의 노력이나 행위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 얻습니다. 요일 4:10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롬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요 8:31 “너희가 내 말대로 살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어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엡 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하나님께서 죄인들과 화목하려고 그리스도를 보내신 일은 우리를 향한 배려요 은혜입니다.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받습니다.(요 3:16)

5. 십자가는 인간의 죄를 멸하는 것입니다.(갈 5:24)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죄의 노예가 되었던 인간을 해방시켜 주었습니다.(롬 8:2)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의 요구에 대해 값을 지불하고 죄의 용서와 의롭다는 인정을 받게 했습니다. 완전한 의를 이루었고 율법을 완성시켰으며(롬 10:4) 믿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롬 5:18-19) 이렇게 십자가에서 이룬 대속의 은혜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엡 2:8-9)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우리가 십자가를 통하여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6.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을 친구로 삼았고(마 11:18-19) 그들을 죄와 사망에서 건져냈습니다. 율법을 지키던 사람들은 죄인들과 어울리는 예수님을 비판했지만 예수님은 생명을 구하는 일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사도요한은 천국의 아름다움을 설명하며 계 14:6에서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의 은혜를 우리에게뿐 아니라 구원받아야 할 모든 사람에게 주셨음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 흘리고 화목제물이 되어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킴으로 죄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게 되었습니다.(롬 3:23-26) “나 같은 죄인이 용서함 받아서 주 앞에 옳다함 받음은 확실히 믿기는 어린 양 예수의 그 피로 속죄함 받았네”.(찬 257장) 복음은 누구에게나 고루 나누어져야 할 기쁜 소식입니다.

7. 하나님의 지혜는 열매로 증명됩니다.(마 11:19) 하나님의 지혜인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희생시켜 죄인들을 구원했습니다. 종은 주인의 집에 영원히 거하지 못하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집에 영원히 거합니다. 그런 권세를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 누구를 자유롭게 하면 자유롭게 되는 것입니다.(요 8:35)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제자삼아 주고 죄에서 자유롭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진리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우리들도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의 권세를 가지고 살아갑니다.(요 8:35)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열매입니다.

8.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만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습니다. 출신성분이나 열심이나 봉사활동의 유무보다는 십자가에서 흘린 보혈로 죄 씻음을 받는 것이 우선입니다. 하나님은 의롭고 선하고 거룩한 분이고(롬 7:12)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엡 2:3)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우리를 구원하는 분(행 4:12)이고 진리와 생명이라는 것을 믿고(요 14:6) 죄 사함을 얻고(엡 1:7)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요 1:12) 영생을 선물로 얻었습니다.(요일 2:25) 이제는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어(롬 8:17) 성령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장차 주님과 함께 영광중에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요 14:3; 살전 5:10) 이런 구원의 열매와 확신으로 어려운 때를 극복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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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삶으로 살아내라 (막 10:46-52)

1. 예수님은 공생애 마지막에 십자가 고난을 통하여 죄인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구원의 길을 열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고난을 당할 것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제자들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막 10장에는 영생에 대하여 묻던 부자청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율법을 잘 지키고 영생에 관심이 있었지만 정작 가진 재물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라는 말씀을 순종하지 못하고 재물 때문에 근심하고 돌아섰습니다. 그런가하면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은 주님의 나라가 세워지면 높은 자리에 앉아보려는 욕심으로 청탁하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다른 제자들이 화를 낸 것을 보면 모두 같은 욕심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예수님과는 다른 기대와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2.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예수님과 같은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재물에 마음을 두었기에 영생을 포기해야 했던 부자청년이나 제자이면서도 명예에 대한 욕심을 포기하지 못한 야고보와 요한은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예수님과는 다른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앞을 보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던 소경 바디매오는 다른 차원의 믿음을 보였습니다. 그는 활동이 자유롭지 못했고 그러다보니 가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보지 못하는 이유를 죄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회 통념이 있었기에 사람들로부터 무시를 당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배울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누구보다 예수님을 바로 이해했고 메시아로 믿고 고백했습니다.

3.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예수님을 나사렛에서 출생한 예수로만 알지 않았고 다윗의 자손이며 메시아라고 믿었습니다. 시각을 잃은 사람들은 듣고 느끼고 기억하는 쪽이 발달합니다. 그는 길가에 앉아 구걸하며 사람들이 들려주는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전하는 하나님나라 소식을 전해 듣고 복음을 깨달았습니다. 죽은 인성 과부의 아들도 살리고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렸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과 많은 병자를 고쳐주신 소식을 듣고 그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메시아이며 그리스도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을 만나려는 소원과 열망을 품었습니다. 마침 예수님이 지나간다는 소문을 듣자 지체하지 않고 소리 높여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이것은 예수님께 대한 그의 신앙고백이며 예배였습니다.

4. 지식은 행동이 뒤따라야 가치가 있습니다. 행함으로 옮겨지지 않는 이론과 지식적인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약 2:17) 롬 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그는 주변 사람들의 핀잔에도 불구하고 소리 높여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그런 적극적이고 간절한 부르짖음이 예수님의 발길을 멈추게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름을 듣자마자 겉옷을 벗어 던지고 즉각 달려갔습니다. 겉옷은 그가 가진 소유의 전부였지만 그것마저 내던졌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뛰면 넘어지고 부딪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의 부름에 대해 적극적인 믿음의 결단과 행동을 보였습니다.

5. 예수님이 무엇해주기를 원하는지 묻자 보기원한다고 바로 대답했습니다. 보지 못하는 자가 보고 싶은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가 보려는 것은 야고보와 요한이 원하던 세상적인 명예욕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그가 눈을 뜨자마자 곧 예수님을 따른 것을 보면 분명합니다. 믿음으로 반응하는 그의 자세에서 배울 것이 많습니다. 그는 겉옷을 벗어버렸습니다. 신앙을 위해서는 얽매이기 쉬운 것, 죄의 고리와 습관, 게으름과 미적거림, 그리고 자기를 의지하는 교만한 마음을 벗어 던져야 합니다. 잠시 동안의 기쁨을 얻으려고 영원한 천국의 감격을 놓칠 수 없습니다. 힘쓰고 애쓰고 인내하며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야 합니다. 마음의 소원과 신앙의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한 성도의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6. 예수님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자기의 병을 치료받거나 문제를 해결받기 원하는 사람도 있었고 반대편에 서서 흠잡을 빌미를 캐내기 위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 예수님께 배우고 실습한 제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믿고 삶으로 살아낸 사람은 바디매오 입니다. 고난을 당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예수님을 향하여 메시아이며 그리스도라고 공개적으로 드러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칭찬하고 그의 믿음이 그를 구원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눈을 떠 보게 되었고 즉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막 10:52) 그는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막 1:1)을 정확하고 확실하게 믿고 살아낸 사람입니다. 막 10: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바디매오는 이 믿음 때문에 자기 문제도 해결 받았고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을 들어냈습니다.

7. 주님은 지금도 죄인들을 새롭게 합니다. 마음과 눈을 열어 보게 하고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경험하게 합니다. 십자가를 통해 주신 영생의 기쁨을 알게 하고(막 10:49-52) 나가서 구원받은 자답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복음을 생활로 살아내게 합니다. 주님은 죄인들이 죄를 용서받도록 희생제물을 드리던 대제사장과 같습니다. 주님은 거룩하고 순진하고 순결하고 죄인들과 구별되며 하늘보다 높은 분입니다. 죄가 없으시기에 다른 대제사장들처럼 자기 죄를 위해 희생제물을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죄 없으신 그분은 자기 자신을 제물로 드려 단번에 구원의 일을 완성했습니다.(히 7:26-27) 이 좋은 소식이 우리들의 삶을 통하여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를 기대하십니다. 그래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기를 힘써야 합니다.(딤후 4:2)

8. 예레미야는 포로생활에서 회복시킨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렇게 전했습니다. “내가 그들을 북녘 땅에서 데리고 오겠으며, 땅의 맨 끝에서 모아 오겠다. 그들 가운데는 눈 먼 사람과 다리를 저는 사람도 있고, 임신한 여인과 해산한 여인도 있을 것이다. 그들이 큰 무리를 이루어 이곳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돌아올 것이며 그들이 간구할 때에 내가 그들을 인도하겠다. 그들이 넘어지지 않게 평탄한 길로 인도하여 물이 많은 시냇가로 가게 하겠다.”(렘 31:8-9) 이런 회복의 약속 때문에 지금도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롬 10:13) 구하는 사람이 얻고 찾는 사람이 찾게 되고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 열어 주십니다(마 7:8) 그러니 더 많은 죄인이 돌아오기 바라는 주님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며 복음을 삶으로 살아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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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대상 28:1-10, 행 13:1-3) 선교헌신예배

1. 어느 가정이든 어린아이는 부모에게서 영향을 받고 자랍니다. 가정의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배우고 부모가 일군 업적이나 가업을 이어받기도 합니다. 부모가 하던 일을 억지로 하면 힘들지만 부모를 기쁘게 하려는 효심으로 일하면 부모와 함께 꿈을 꾸고 함께 일하는 동역자가 됩니다. 육신의 부모도 그러하고 하나님께 향한 성도의 신앙행위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거처가 될 성전을 짓기를 원했지만 전쟁을 치루며 피를 많이 흘린 이유로 그 아들 솔로몬에게 성전 짓는 일을 물려줘야 했습니다. 솔로몬은 아버지의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과 말씀에 순종하는 자세를 배웠고 왕권을 영원히 견고하게 하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도 물려받았습니다.

2. 하나님은 다윗을 기쁘게 여겼습니다. 그가 완전하고 무흠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마음을 가진 것을 귀하게 보셨습니다. 다윗은 자기 궁궐은 크고 좋은데 하나님은 초라한 텐트에 계셔야 하는 것이 마음 편하지 않았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이 건축물 안에 계시는 것은 아니지만 다윗은 하나님의 집을 아름답게 짓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이런 마음과 생각을 기뻐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성전건축을 허락하지 않는 것을 알고는 준비한 모든 것을 솔로몬에게 넘겨주며 하나님을 성실한 자세로 섬기며 성전을 지으라고 부탁했습니다.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의도를 아시나니 네가 만일 그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만일 네가 그를 버리면 그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그런즉 이제 너는 삼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택하여 성전의 건물을 건축하게 하셨으니 힘써 행할지니라.”(대상 18:9-10)

3. 아버지를 존경하며 사랑하고 순종하는 자녀가 효자입니다. 솔로몬과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에 그런 자세여야 했습니다. 순종은 복 받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살피고 그 속마음과 동기까지를 들여다보는 분입니다.(잠 21:2) 그러므로 두 마음을 품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의도된 계산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주권자로 인정하며 그를 기쁘게 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이 성도의 마땅한 자세입니다. 오늘은 선교헌신예배로 구분하여 예배합니다. 선교를 명령으로만 생각하면 의무감이나 책임감으로 일하다가 기쁨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구원을 가장 기뻐하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효의 마음으로 순종하면 그것은 기쁨이 되고 복을 받는 길이 됩니다.

4. 선교는 하나님의 계획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이며 교회의 존재 목적입니다. 아담은 죄를 짓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망치고 하나님의 형상도 잃어버렸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가죽옷을 입히고 여자의 후손을 통한 회복을 약속해 주셨습니다.(창 3:15)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선교사로 파송하여 구원을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십자가 대속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자는 그가 누구든지 구원을 받습니다. 이 구원의 소식을 전하고 알리는 것이 선교입니다. 그러므로 선교는 교회의 목적이고 성도의 정체성이며 구원의 은혜를 맛본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복음을 생활로 살아내는 표현방법입니다.

5. 성도는 하나님의 구원을 세상에 알게 하는 전파자요 선전 꾼입니다. 하나님나라의 신비와 구원의 은혜를 자기 것으로만 간직하지 않고 부지런히 나누고 전하여 다른 사람도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벧전 2:9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기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업적을, 여러분이 선포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고 싶은 열망 때문에 자기 생활의 방향을 송두리째 바꾼 사람입니다. 그 부름이 얼마나 강력했던지 그가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자기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고전 9:16)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구원의 일을 위해서 발 벗고 나서는 것이 마땅합니다.

6. 예루살렘교회가 한창 부흥할 때는 하루에 수 천 명이 개종하는 일도 있었지만 이방선교에는 관심을 두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핍박을 통하여 예루살렘이 아닌 이방지역으로 교인들을 흩었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복음을 생활로 살아냈고 그 결과 안디옥교회가 세워졌고 바울과 함께 더 많은 이방지역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다윗이 성전을 지어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고 했던 것처럼 안디옥 교회는 성령께 순종하고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회개가 일어나고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순종하는 사람들을 사용하십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한 성령의 역사는 이렇게 이방 지역으로 흘러갔고 교회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했고 오늘 우리에게까지 이르러 구원의 확신을 갖게 했습니다. 이제는 우리들이 또 다른 사람에게 그 복음을 전해주어야 할 차례입니다.

7. 제가 30년 전에 필리핀선교사로 파송 받아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15년을 그들과 함께 살면서 배운 것은 복음은 프로그램으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로 전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거룩한 생활이 간증이 될 때 주님의 이름이 전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선교사를 위해 함께 기도하며 후원하던 성도들의 헌신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중에는 지금까지 저를 선교사로 부르며 기도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선교사를 위한 기도를 자기 사역으로 알고 기도하는 분들입니다. 덕분에 저는 지금 여기서도 선교사의 마음으로 여러분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선교사님들을 후원하고 기도하는 일은 영적생활의 능력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헌신과 기도의 힘이 선교지에 전달되고 선교현장에서의 열매들이 우리에게 전해져서 함께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선교협력에는 이런 끈끈한 나눔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8. 우리교회는 멕시코의 김규식 권인선 선교사님의 어린이 사역과 아마존의 김천식 정순미 선교사님의 제자훈련사역과 하나님의 선교회 김인곤 목사님과 협력하며 필리핀의 타북 신학교를 돕고 있습니다. 또 교단 신학교와 감찰회도 후원하고 리뉴와 어라이스 같은 연합사역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문화센터의 여러 통로를 통하여 이웃을 섬기고 복음의 열매를 나누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의 근황을 파악하고 구체적으로 기도하며 계속 협력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의 이런 협력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복음의 능력이 흘러가게 하고 또 우리를 영적으로 성숙하게 할 것입니다. 적은 능력을 갖고도 복음을 지켜낸 빌라델비아 교회는 구원을 위한 열린 문이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계 3:8)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선교에 헌신하여 주님의 칭찬을 듣는 성숙한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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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열매를 기대하며 (암 5:6-15 막 10:17-22)

1. 어느 시대나 생명을 주관하는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면 사람들이 최선의 것을 선택한다 해도 자기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여호와를 찾고 그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에서 떠나서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물론이고 함께 살아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무시하고 억압했습니다. 빈부차이는 심해지고 공정한 재판을 찾기 어려웠습니다.(암 5:10-13). 힘없는 사람들은 억울하게 압박과 핍박을 당했습니다. 그런데도 기득권자들은 호화판 생활을 했습니다(암 6:4-6). 당연히 사회정의는 무너지고 불공정거래와(암 8:4-6) 뇌물을 주고받는 일이 성행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악이 되었습니다.

2. 암 5:14–15 “너희는 살려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같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정의를 세울지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불쌍히 여기시리라.” 아모스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들에게(암 5:12)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하며 하나님께서 엄하게 심판하실 것이라고 경고하고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짓는 자들을 멀리하고 선을 행하고 말씀을 따라 바르고 정의롭게 사는 사람들과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그가 붙여주신 사람들을 사랑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돌보며 함께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핵심입니다.

3. 어느 날 재물이 많고 율법을 잘 지키던 부자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영생을 얻는 법을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한분만이 선하다고 말씀했습니다.(막 10:18) 선하다는 것은 흠이 없고 죄가 없으며 절대 초월자이신 하나님의 성품을 말하는 것입니다. 청년은 영생에 관심이 있었지만 정적 하나님을 바로 알고 신뢰하는데서 온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죄에 물들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롬 3:23) 그러기에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먼저 은혜를 주시고 하나님을 알게 해주시지 않으면 인간 스스로는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통하여 죄를 용서해 주시고 의롭다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은혜로만 구원에 이르고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4. 당시의 사람들은 계명을 지키고 선을 행함으로 영생을 얻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계명을 지키면서도 영생에 대하여 무지한 청년에게 되묻듯이 계명이 가르치는 것을 말씀합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부모를 공경하라는 내용을 언급했습니다. 청년은 어려서부터 계명을 잘 지켰다고 자기 의를 자랑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 곧 그가 가진 재물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는 일을 명하십니다. 그런 후에 와서 예수님을 따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청년은 재물이 많았기 때문에 그것을 포기하지 못하고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막 10:21-22)

5. 영생을 추구하는 일은 의미 있는 일이지만 그것을 위해서 자기의 소유를 포기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기의 소유나 힘을 의지하지 말고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고 했습니다.(눅 9:23) 신앙생활은 주의 말씀을 듣고 거기에 우선순위를 두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부자 청년이 재물을 포기하지 못하고 근심하며 돌아갔다는 것은 재물이 그를 보호해주는 힘이 되고 우선순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하셨는데 이 말은 재물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재물에 마음을 두고 있기 때문에 천국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도 중요하고 재물을 모으는 일도 필요하지만 그것으로는 천국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가난한 사람이 다 천국에 가는 것도 아닙니다.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보고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는 은혜로 받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구원하고 영생을 주시는 주권자이십니다.(막 10:27)

6. 우리들이 구원받았음을 믿고 신앙생활 하는데 그것조차도 우리들의 의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부자 청년의 이야기 바로 앞에는 예수님이 어린 아이를 축복하며 아이들과 같이 겸손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했습니다.(막 10:13-16) 어린아이처럼 겸손하고 순종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부자 청년의 이야기와 함께 연결하여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적인 일에 관심을 가졌던 청년이고 율법도 나름대로 잘 지키던 사람입니다. 종교 활동에는 완벽했지만 율법을 지키는 자기 노력으로 하나님을 찾는 자연인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영적이고 선한 사람이라도 자기 노력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이것이 죄의 영향을 받고 있는 인간의 한계입니다. 그렇기에 마음과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두고 은혜의 자리로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만 마음을 두고 자기의 것을 의지하지 않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천국을 얻습니다.(마 5:3)

7. 그래서 날마다 주의 음성을 들으며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의 음성으로부터 멀어지면 살아계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도 마음이 강퍅하여 고집을 부리다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도 못하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망했던 사람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히 3:12-14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서 믿지 않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떠나가는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여러분은 ‘오늘’이라는 시간이 있을 동안에 매일 서로 권면하여 아무도 죄의 유혹으로 못된 고집을 부리지 않게 하십시오. 우리가 처음에 가졌던 확신을 끝까지 지키면 모든 것을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게 될 것입니다.”

8. 교회는 이것을 위해 존재합니다. 우리들의 영적생활에 이전보다 주님을 더 뜨겁게 사랑하는 열매가 맺히도록 함께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을 만나는 시간과 비례합니다. 말씀묵상과 기도하는 시간이 기쁨이 되어야 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서로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함께 권면하고 돌보아 모두가 믿음에 머물게 해야 합니다. 히 10:23-25 “약속하신 분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희망을 굳게 붙듭시다. 그리고 서로 격려하여 사랑과 선한 일을 위해 힘쓰도록 하십시오.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모이기를 중단하지 말고 서로 격려하여 주님이 오실 날이 가까울수록 더욱 모이는 일에 힘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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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생활의 원리 (창 2:18–25, 막 10:1-12)

1.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창 1:26-27) 그래서 서로 소통하고 함께 생각을 나누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적인 존재입니다. 사람이 혼자 거하는 것이 보기에 좋지 않아서(창 2:18) 하나님은 아담의 갈비뼈 하나를 취하여 여자를 만들어 남자에게 주었습니다.(창 2:21-22) 둘이 하나가 되어 함께 협력하고 상의하며 살도록 가정을 만들어주셨습니다. 성령강림으로 신약교회가 탄생했습니다. 성령께서는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와 상주하시며 믿음을 주어 함께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게 합니다. 성경에 공동체의 의미로 쓰인 ‘코이노니아’라는 단어는 ‘참여’, ‘연보’, ‘상통’, ‘사귐’, ‘교제’, ‘나누어줌’, ‘동업’, ‘통용’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공동체는 함께 있는 것만이 아니라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2. 공동체 생활의 힘은 협력과 하나 됨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독립된 일을 하면서도 한 하나님으로 존재합니다. 성부 하나님은 사람을 구원하기로 계획하고 예정하고 선택해 주셨고 성자께서는 몸으로 세상에 와서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 그 피로 죄인들을 구원하셨고 성령께서는 복음을 믿을 수 있는 믿음을 주시고 믿는 자에게 구원을 보증해 주십니다. 각자의 역할을 통하여 서로 협력하여 한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보여주셨습니다.(엡 1:1-14) 남자는 땀 흘려 가족을 부양하고 여자는 출산에 대한 일을 하면서 한 가정을 세웁니다. 교회도 직분 자들을 세워 협력하게 합니다. 구역이나 기관을 나누는 것도 서로 협력하여 하나의 몸을 세우려는 것입니다. 몇 사람만 일하는 교회는 건강하지 못합니다. 구성원 모두가 자기 역할에 충실할 때에 힘이 생겨 다른 사람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3. 결혼은 혼자 살던 자기 생활에서 떠나 배우자와 함께 새로운 가정을 만드는 것입니다. 성경은 결혼을 남자가 부모의 돌봄에서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하나가 되는 것(창 2:24, 막 10:7)이라고 설명합니다. 각자의 습관이나 환경에서 또 다른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서로를 용납하고 적응하고 또 다른 하나가 되는 것이 진정한 협력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각자의 기대도 있고 과거의 교회에서 훈련받은 것들이 있지만 이 교회에서 서로 용납하고 적응하여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 협력입니다. 바른 협력은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고 존중하여 힘을 모으는 것입니다. 직원회를 하다보면 결정하는 대로 뒤따라가겠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모두가 한걸음 뒤에 서려고 한다면 나설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주인의식을 갖고 생각과 힘을 모아야 협력과 발전이 있습니다.

4. 세상 구원을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신부인 교회는 결혼관계에 있습니다. 세상의 결혼제도에서도 이혼이나 간음이 합당하지 않은 것처럼 교회도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가 아닌 다른 믿음을 갖는 우상 숭배나 변질된 이단 사상을 갖는 일은 영적 간음입니다.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히 13:4)라고 했습니다. 가정이나 교회에서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여 하나 됨을 유지해야 합니다. 자기유익과 편리를 위해서 상대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고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5. 결혼관계 밖에서 성적인 만족을 찾는 것은 간음입니다. 간통죄가 없어졌다고 우리들까지 죄를 용납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조항보다 율법정신을 강조했습니다. 이성을 보고 음욕을 품으면 이미 간음한 것이고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살인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배우자를 버리는 것도 죄이고 배우자가 다른 곳에 눈을 돌리도록 무관심한 것도 죄가 됩니다. 적극적으로 사랑하지 않는 것은 이미 깨진 관계입니다. 공동체를 하나 되게 하는 접착제가 있습니다. 부부에게는 몸과 마음의 결합이 그것이고 성도에게는 성령 안에서 서로 뜨겁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집니다.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하나라는 것을 확인하고 유지시켜야 합니다. 자기 일에 바쁘고 공동체를 배려하지 못하다가 깨지면 아물기 어렵고 아물었다가도 다시 깨지고 짓무르기 쉽습니다. 부부나 성도들이 뜨겁게 사랑하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내주신 그리스도처럼 가정이나 교회에서 먼저 사랑하기를 연습해야 합니다.(엡 5:24-25)

6. 하나님이 하나가 되게 하신 것을 사람이 임의로 나눌 수 없습니다.(막 10:9) 나누어지는 것은 사람의 욕심에 의한 것입니다. 자기 편리나 더 좋아 보이는 그 무엇을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에 바빠 사람에게 무관심하게 되는 죄를 경계해야 합니다. 사람을 잃으면 더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것이고 협력관계도 깨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찢고 희생하여 죄인들이 회개하고 그의 몸인 교회를 이루게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교회와 결혼한 것입니다. 그 결혼 약속 때문에 믿는 자들이 구원을 받게 되고 재림의 날에 영광스러운 자리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히 2:8-10) 그러니 죄를 셈하지 않고 보혈로 덮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공동체생활에 적용하여 한 몸을 이룹시다.

7. 가정과 교회에서 결혼의 원리를 적용하여 먼저 희생하고 배려하여 하나 됨을 유지해야 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자들입니다.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습 3:17)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쁜 마음으로 선택하고 구원해 주셨습니다.(신 7:7-8).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요일 4:9-11)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고 거룩하고 흠이 없는 신부가 되게 했습니다.(엡 5:26-27)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요함과 부활생명과 거룩함에 참여하게 했습니다. 우리들이 안전과 만족을 느끼는 것은 물질의 넉넉함에 있지 않습니다. 신랑이신 주님을 인정하고 그에게 순종하고 정조와 믿음을 지킬 때 참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가정과 교회공동체에서는 그것을 확인하고 날마다 훈련하는 것입니다.

8. 팬데믹 이후의 교회를 생각합니다. 이민자의 수가 늘지 않고 새로운 식구들이 예전과 같이 많지 않은 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여기서 우리들끼리 서로 협력하고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손님 같은 마음으로가 아니라 주인의 마음으로 모든 일에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배우고 순종하기를 힘쓰고 서로 뜨겁게 사랑하고 마음을 모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자녀들과 다음세대들이 우리를 따라 믿음으로 든든히 설 것입니다. 문화학교를 통하여 이웃을 섬기며 복음을 전하는 일도 왕성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통하여 주님께서 세상을 다스리는 왕으로 세세토록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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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로 공동체를 세우라 (민 11:1-17, 막 9:38-50)

1.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평화를 깨는 것은 불평과 원망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불평불만이 많았습니다.(민 11:4) 광야생활에 지치고 힘든 것도 이유였지만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잊고 당장의 불편함만 생각한 탓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불평에 대하여 경고하기 위해서 그들의 진 가장자리에 불을 지펴 태웠습니다. 모세의 간절한 회개기도 덕분에 불은 곧 꺼졌지만 하나님께 불평하면 징계를 받는다는 것을 교육했고 그 장소의 이름을 불붙음이라는 뜻을 가진 디베라로 불렸습니다. 불평불만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반항이며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입니다.

2. 그래서 때마다 돌아보며 기도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약 5:16-18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병든 사람의 치유를 위한 기도나 불신자의 죄를 위한 회개의 기도도 엘리야가 비오기를 간절하게 기도하던 그런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기도를 통하여 구원의 기쁨을 유지하고 공동체를 세울 수 있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의 원망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3. 원망과 불평은 죄의 결과로 오는 것들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은혜에 자족할 줄 모르고 하나님처럼 되려는 교만한 마음으로 죄를 지었습니다. 아담은 여자를 원망했고 여자는 뱀을 핑계했습니다.(창 3:12-13)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역행하고 불평불만을 한 것은 악한 일이었습니다.(출 16:2-8) 약 5:9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고 경고하십니다. 하나님은 불평하며 불신앙으로 원망하는 자들을 징계하여 자신의 공의를 나타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서라도 하나님께 되가 되는 불평과 원망을 삼가 해야 합니다. 빌 2:13-14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고 했습니다.

4. 이스라엘은 하나님께만 눈과 마음을 두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들과 함께 섞여 지내던 이방지역 출신의 사람들이 먼저 불평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애굽 생활을 동경하며 그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던 것들을 부정하는 말을 했습니다. 고기를 먹고 싶다고 불평하던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메추라기를 바람으로 몰아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빨사이에 고기가 아직 남아있는 때에 불평하던 자들을 쳐 죽였습니다.(민 11;33) 모세는 백성들의 짐을 해결해주기가 너무 버겁다고 하소연했고 하나님께서는 70명의 장로들을 세워 협력하도록 조처했습니다.(민 11:11-16) 모세에게 주신 성령을 그들에게도 주어 일을 감당하게 했습니다. 모세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5. 여호수아는 장로들이 성령을 받는 장소에 참석하지 않았던 두 사람도 예언하게 된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고 그들에게 리더의 자격을 주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할 수 있으면 모든 사람이 선지자 되기를 원한다고 말하며 하나님이 성령을 주셔서 예언하게 되었으니 지도자로서의 자격이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에게서도 비슷한 일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루는 자기들과 함께하는 사역 팀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쫒는 것을 보고 말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용납하라고 하며 반대자가 아니라면 한편이라고 말했습니다.(막 9:39-41) 자기들만이 자격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교만을 버리고 서로를 인정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공동체의 화평은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하는데서 유지됩니다.

6. 예수님은 주님의 이름으로 베푼 선행에는 상이 있다고 하시며 힘없는 작은 소자라도 실망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소자라고 무시하고 실망시키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낫다고 경고했습니다. 이런 실수는 자기만이 자격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자기만족과 교만에서 옵니다. 그래서 모든 문제를 주님과 상의하고 그 앞에서 삼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항상 말씀에 복종하고 두렵고 떨리는 자세로 살며 은혜로 주신 구원을 이루어가야 합니다.(빌 2:12) 특히 죄의 문제는 더욱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단절시키는 것이 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손과 발과 눈이 죄를 짓게 하면 차라리 찍어버리라고 말했습니다.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멀쩡한 육체를 갖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낫다고 경고했습니다.

7.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신실하게 응답해 주십니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죄에 대하여는 철저하게 벌하는 엄한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항상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썩을 육신을 갖고 살면서도 하나님을 인정하는 영적생활의 중요성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하기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는 회개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회개하지만 교회 공동체 앞에서 서로에게 죄를 고하고 회개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만큼 죄의 문제를 심각하게 취급한 것입니다. 공동체가 함께 기도할 때에 주님의 이름으로 사함을 얻고 깨끗하게 됩니다. 막 9:50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너희는 무엇으로 그것을 짜게 하겠느냐? 너희는 너희 가운데 소금을 쳐 두어서, 서로 화목하게 지내어라.” 공동체 안에서 서로 화목하고 사랑하고 존중하기를 위해 기도함으로 주신 사명을 이루어낼 수 있습니다.

8. 공동체의 화목을 깨는 것은 불평불만이고 이것은 자기만이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자기만이 혼자 힘들게 일한다고 생각하는 교만에서 오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어려움을 기도로 해결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기쁜 일을 만나면 찬송하고 감사하듯 말입니다. 병든 자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해 함께 기도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을 초청하여 문제를 나누고 함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동체를 사용하십니다. 가정도 교회도 나라도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이 드러나는 곳입니다.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3:8-9) 기도로 이런 복을 누리고 하나님께 사용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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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을 누리는 길 (약 3:13-18, 빌 2:5-14)

1.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던 사람들이 만나서 사랑을 하고 가정을 이루지만 서로의 차이를 느끼고 갈등을 겪습니다. 그 갈등 때문에 상처받고 미워하다가 깨지는 가정이 있는가 하면 갈등을 잘 해결하여 서로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지는 가정도 있습니다. 갈등은 가정이나 교회나 다른 어떤 조직체 안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성도는 이런 문제를 만날 때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해결하고 평강을 누려야 합니다. 성도는 평강을 먼저 누리고 의의 열매를 거두는 피스메이커,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약 3:18)

2. 성령으로 충만하던 초대교회도 문제를 경험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갇히는 어려움이 있었지만(행 3장) 외부에서 오는 핍박은 오히려 교회를 깨어 기도하게 했고 더 깊은 차원의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일처럼 정직하지 못한 일도 생겼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을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는 수단으로 사용했고 자기욕심으로 일부를 감추었는데 그것이 성령을 속인 죄가 되어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교회의 순결성을 해치는 거짓을 용납하지 않는 하나님 앞에서 교회는 정신을 번쩍 차렸습니다.(행 4장). 그런가하면 이방인출신 헬라파 과부들이 교회의 구제 명단에서 빠졌다고 불평하며 히브리파 사람들과 갈등을 빚었습니다.(행 6:1) 사람들은 종종 본질이 아닌 출신성분과 배경을 문제 삼습니다. 인종차별이나 바이러스의 책임을 아시안들에게 뒤집어 씌워 미워하는 일도 같은 문제입니다.

3. 사도들은 구제문제로 교회가 갈등을 겪자 말씀과 기도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었습니다. 그리고 구제하는 일을 위해서는 집사들을 선택하여 일임했습니다.(행 6:2). 성령으로 충만하고 지혜가 있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자들을 뽑아(행 6:5-6) 집사로 임명했습니다. 사실 집사라는 말은 식탁 옆에서 섬기는 웨이터나 먼지 나는 마당을 청소하는 종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교회 직분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리더로 인정받는 자격증이 아니라 낮은 자리에서 더 많이 봉사하라고 주는 자리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우리들은 문제의 본질을 바로 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하나님이 주시는 분별력과 지혜로 해결해야 합니다. 모든 일에 있어서 원망과 시비가 없어야 합니다.(빌 2:4)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그가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기에 그렇습니다.

4. 사단은 불평과 불만을 사용하여 한 몸인 가정이나 교회를 깨뜨립니다. 미움이 앙금처럼 남게 하고 평강을 누리지 못하게 하며 상처와 쓴 뿌리가 커지게 합니다. 부부싸움을 하고 잘 풀지 못하면 그것이 차곡차곡 쌓여서 문제가 커지는 경우를 봅니다. 서로에게 힘이 되어야 할 부부가 한 지붕 두 가족처럼 지내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경은 기도하는 목적이 아니라면 분방하지 말고 사탄이 유혹할 수 있는 틈을 주지 말라고 가르칩니다.(고전 7:5)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보혈로 덮어주시고 책망 받을 것 없는 거룩한 백성으로 인정해 주셨습니다.(골 1:22) 그러니 우리 욕심이나 세상 지혜를 의지하지 말고 주님의 마음을 배워 겸손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문제를 해결하며 평강을 유지해야 하겠습니다.

5. 안디옥 교회에서 선교사로 파송 받은 바울과 바나바에게도 갈등이 있었습니다. 2차 여행을 계획할 때 마가를 데리고 갈 것인지를 놓고 갈등을 겪었습니다. 바나바의 조카였던 마가가 1차 선교 여행 때 밤빌리아에서 중도하차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선교지를 이탈한 마가 때문에 바울은 실망했고 그런 무책임한 사람을 2차 여행에 데리고 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가려고 했습니다.(행 15:37-38). 이 문제로 의견조율이 되지 않자 두 사람은 결국 따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고향인 구브로로 갔고 바울은 마가대신 실라와 함께 2차 여행을 떠났습니다.(행 15:39-41) 바나바는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타입이었고 바울은 일중심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각자의 길에서 최선을 다하다 보니 마가는 바나바의 도움으로 좋은 사역자가 되어 마가복음을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바울도 후에는 마가를 동역자로 인정했습니다.(딤후 4:11)

6. 평강을 누리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온유함과 겸손함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본래 하나님이셨지만 하나님의 권리를 누리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을 취하였고 사람이 되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습니다.(빌 2:5-8) 우리는 그 그리스도의 겸손과 온유한 마음을 배우고 연습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문제를 만날 때에 마음속에 시기와 미움을 품고 있으면 악한 일을 피할 수 없습니다. 야고보는 이런 악한 일들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 땅의 것이고 정욕에 속한 것이며 귀신의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약 3:14) 혼란이나 분열은 대부분 교만한 마음으로 상대를 폄하하고 자기주장을 펼 때 생깁니다. 그래서 정욕과 세상적인 욕심을 피하고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손하기를 훈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를 사용하기 때문입니다.(벧전 5:6)

7. 하나님이 주는 지혜는 순결하고 평화를 사랑하고 너그럽고 양순하고 자비와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위선도 없습니다.(약 3:17) 그리스도께서는 순종으로 구원을 이루셨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아들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사흘 만에 다시 살리셨습니다.(막 9:31) 그리스도께서 털 깎는 자 앞에서 순한 양처럼 십자가를 수용했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겸손과 온유한 마음을 배워 성숙한 성도의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예수 믿고 변화된 우리들이만 우리의 환경은 여전히 죄와 유혹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것 말고는 이길 방법이 없습니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약 4:8)

8. 모든 것보다 거짓되고 심히 사악한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렘 17:9) 그래서 날마다 우리의 마음을 지키고 성령 안에 머물기를 노력하며 영적싸움을 계속합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때마다 기억하며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이미 죽은 자라는 것을 기억하고 겸손을 배웁니다. 그리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누가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것인지를 두고 힘자랑하던 실수를 우리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가치로 다투던 제자들에게 어린 아이처럼 겸손함으로 서로 섬기라고 가르쳤습니다. 소자에게 행한 것이 곧 주님과 아버지 하나님께 행하는 것이 된다고 말씀했습니다.(막 9:36-37) 그러므로 세상방법이 아닌 주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겸손하고 온유한 주님의 마음을 배워 실천함으로 참 평화를 누리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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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복이 될지라(창 12:1-5) 강덕식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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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평안을 나누십시오. (막 7:24-37, 사 35:1-7)

1. 구원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한 회복입니다. 세상을 만든 창조주께서 ‘보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기뻐하던 그 완전한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가물어 메마른 땅에 내리는 단비가 생명을 새롭게 하는 것처럼 예수 믿고 구원 받는 일은 이런 풍족함과 완전함을 누리는 것입니다. 때마다 문제를 만나고 어려움을 당하며 살지만 믿음은 그 문제를 넘어 회복과 구원을 주시는 전능하신 주님을 누리게 합니다.

2. 이사야는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은 전 우주의 완전한 회복이라고 설명합니다. 메시아가 오실 때에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고 소망을 얻게 될 것을 말했습니다.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의 하나님께서 복수하러 오신다. 하나님께서 보복하러 오신다. 너희를 구원하여 주신다.”(사 35:4)고 했습니다. 그 구원의 날에는 눈먼 사람의 눈이 밝아지고, 귀먹은 사람의 귀가 열릴 것입니다. 다리를 절던 불완전한 사람도 사슴처럼 뛸 수 있게 될 것이고 입이 열리지 않아 말을 못하던 혀가 풀려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마른 광야에서 물이 솟아나고 척박한 사막에서 시냇물이 흐를 것입니다.(사 35:5-6) 구속함을 받은 자들이 거룩한 대로를 걸으며 기쁨을 누릴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성도들의 눈물을 닦아주는(계 21:4)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누리는 기쁨과 같은 것입니다.

3.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수로보니게 이방여인이 자기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달라고 예수님께 간청했습니다. 자녀의 병을 낫게 하려는 부모의 심정은 절박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개에게 주는 것이 옳지 않다고 말씀하며 그 여인의 믿음을 시험했습니다. 그 여인은 개들도 그 상에서 떨어지는 것을 먹는다고 말하며 부스러기 은혜라도 좋으니 고쳐주시기를 간청했습니다.(막 7:27-28) 예수님은 그녀의 믿음을 보고 딸을 귀신에게서 놓임 받게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인본주의적이고 형식적인 종교생활을 하며 자기들의 종교적 기득권을 주장하며 이방인들을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방인에게도 구원이 이르렀다는 것을 이 일을 통하여 보여주셨습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막론하고 믿는 자 그 누구에게라도 구원을 주시는 복음의 보편성을 드러내셨습니다.

4. 데가볼리 이방 지역에서도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와 안수하여 달라고 청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불쌍히 여겨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풀려 말이 분명해지도록 했습니다. 침을 뱉어 흙에 이기고 혀를 만지고 열리라고 명령하여 그를 낫게 행했습니다. 침과 흙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치유하시는 분임을 경험적으로 알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고 손으로 만지니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막 7:35) 마른 땅에서 생수가 솟아나듯 그가 완전하게 회복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모든 것을 잘하였도다. 못 듣는 사람도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한다.’(막 7:37)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잘했다는 것은 성부 하나님의 창조사역이 완전했던 것처럼 성자 예수님의 구속사역도 완전하다는 것을 노래한 것입니다. 이 일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메시아임을 모두에게 드러내셨습니다. 육체의 질병은 물론이고 근본적인 영적인 문제도 해결해 주시는 분임을 공개적으로 드러냈습니다.

5. 주님은 지금도 마음의 귀와 양심의 혀가 마비된 사람들을 새롭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귀먹은 사람들이 세상에 가득합니다. 그들은 자기 위주의 삶을 살면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자기 유익을 위해서 의와 진실을 외면하고 침묵하며 불의와 타협하는 혀 마른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정의가 외면당하고 불평등과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부정부패가 성행하고 자기욕심을 채우려고 서로 싸웁니다. 심지어 종교라는 이름으로 인권을 유린하고 생명을 해치는 잘못된 열심을 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혼돈이 가득한 세상에 하나님을 섬기는 구원받은 우리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에 대한 책임이 먼저 믿은 우리들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일을 자랑하도록 우리를 부르셨기 때문입니다.(벧전 2:9)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야 하는 때입니다.

6.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을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되(약 2:8) 말로만 하지 않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면서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는다고 믿는다면 자기만을 위한 기도에서 벗어나 공동체를 유익하게 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서로 판단하고 정죄하거나 더 많이 가지려고 경쟁하는 것은 세상의 방법입니다. 만일 교회 안에서조차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거나 기득권을 챙기려고 한다면 복음으로 변화되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택하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거나 정죄하는 잘못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대신 사랑의 열매로 믿음을 증명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약 2:1-5)

7. 열매를 보고 그 나무를 압니다. 헐벗고 굶주린 형제에게는 당장 배불리 먹고 몸을 가릴 수 있는 의복이 필요합니다. 그들의 필요는 채워주지 않으면서 그럴듯하게 말하는 것은(약 2:15-17) 아무런 능력을 나타내지 못하는 죽은 믿음입니다. 귀신들도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지식적으로는 알았지만 구원을 받지는 못했습니다.(약 2:18-20) 그러나 아브라함에게는 이삭을 바치는 행동이 있었고 기생 라합에게도 정탐꾼들을 숨겨주는 행동이 뒤따랐기에 구원을 받았습니다.(약 2:21-25)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약 2:26) 신앙은 지식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열매로 나타나야만 의미가 있습니다. 실천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8. 그 어느 때보다 주님 주시는 참 평안이 나누어져야 할 때입니다. 전염병의 위험과 자연재해로 지구상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품어주고 위로하며 손잡아주는 작은 실천이 필요할 때입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자기 소유를 나누어 주십시오.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빌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참 평안을 나누는 일에 도전해 보십시오. 주님의 임재를 더욱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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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바른생활 (신 4:1,2,9, 고후 6:14-7:1)

1. 신앙생활은 그 사람의 됨됨이를 말해줍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정변으로 이슬람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한국에 들어오자 그들이 먹지 않는 돼지고기는 제공하지 않겠다고 배려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하루 다섯 번씩 기도하고 그들의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구별된 생활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또 연예 프로그램에 나온 미얀마 사람이 집안에 불단을 만들어 놓고 드나들 때마다 거기 절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앞에서는 몸가짐도 단정하게 하고 아이 기저귀도 갈지 않는다고 합니다. 필리핀에서 지낼 때 집집마다 거실 한편에 마리아와 아기 예수 상을 모셔놓고 드나들 때마다 헌화하고 기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기가 섬기는 대상과 깊은 관계를 맺고 사는 것이 곧 신앙생활입니다.

2. 우리들도 믿음의 대상인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삽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요 1:12)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주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입니다. 그러기에 거룩한 하나님을 본받아 우리도 거룩하기를 노력하며 부정한 것들을 멀리합니다.(레 11:44~45) 그렇지만 정체성이 흔들리고 방황할 때도 있습니다. 바울도 같은 고민을 하다가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롬 8:28)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기를 해방했다고(롬 8:2) 승리를 노래했습니다. 살아 있는 물고기는 물살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있으면 자기 정체성을 잃지 않고 혼탁한 세상도 이길 수 있습니다.

3. 고린도는 큰 도시였고 여러 문화가 공존하다보니 사람들의 생각이 진보적이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도 다른 종교 활동을 하는 사람에게서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이 우상숭배와 음행으로 얼룩진 모호한 신앙생활을 하다가 바울로부터 호된 질책을 당했습니다. 교회 안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거짓교사들이 있었고(고후 4:11) 서로 나뉘고 싸우는 것은 물론 근친상간이나 동성애를 허용하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고(고후 6:14) 경고했습니다. 우상에서 벗어난 성도들이 다시 우상으로 되돌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우상을 불법, 어둠, 사단을 뜻하는 벨리알 등으로 표현했고 성도들을 의, 빛, 성전으로 표현하며 둘은 함께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4. 바울은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는 이사야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여(사 52:11) 성도의 바른 생활을 가르쳤습니다. 우리들은 세례를 통하여 옛 성품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새로운 존재로 태어났습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지만 다시 옛 생활로 돌아가는 것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구원받은 자답게 살기위해서는 말씀이 중심에 있게 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약해지면 악한 것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바울이 말한 음란,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독, 속임, 음탕, 질투, 비방, 교만, 우매함 등이 다 헛된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입니다. 그러기에 무엇보다도 우리의 마음을 지키고(잠 4:23) 주님 안에 머물기를 힘써야 합니다.

5. 바울은 마귀의 간계를 대적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합니다.(엡 6:11-13) 완전무장을 하고 영적 싸움에 임하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방패임을 고백하고 공격무기인 말씀을 붙들고 영으로 깨어 기도하는 생활이 필요합니다.(엡 6:4-18) 죄와 싸워 이기고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마귀는 공중권세 잡은 자인데 교묘한 전략으로 성도들을 믿음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편안한 신앙생활을 통하여 느슨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니 우리의 신앙색깔이 분명해야 합니다. 세례요한은 헤롯의 죄를 지적하다가 죽임을 당했고(막 6:17-28) 예수님도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고 구원을 베풀기 위해서 십자가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예수님을 증언하다가 죽임을 당한 앞서간 순교자들도(계 6:11)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위한 빛나고 가치 있는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입니다.(시 116:15) 이런 선택은 영적 무장이 되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6. 세례의 의미가 이런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목을 내놓는 결단입니다. 세례를 통하여 주님과 함께 죽고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롬 6:4) 그러므로 이 약속을 가진 성도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고후 7:1) 구원도 거룩함도 악을 이기는 승리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에만 가능합니다. 우리 스스로는 거룩함이나 경건을 나타낼 수 없는 연약한 존재이고 더구나 죄의 홍수 가운데서 살기 때문입니다. 영적 승리는 자신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신 구원의 일을 믿고 수용하는 믿음에서 옵니다. 다행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그렇게 거룩한 자로 받으셨습니다.(엡 2:5-7)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고 또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세워주셨습니다.(골 1:21-22)

7.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친 자녀로 삼아주셨고 애굽에서는 물론 바벨론에서도 그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거룩한 제사장 나라로 불러 하나님을 세상에 알리고 자랑하게 했습니다. 그들이 경험한 하나님을 자녀 손에게 전수하게 했습니다.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린 대속의 피로 죄를 씻어주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해 주셨으니 그 하나님을 세상에 알리고 자랑하고 자녀들에게 전수해 주려고 합니다. 성도의 신앙생활은 복음의 능력이 무엇이며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경험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우리 몸이 하나님이 거하는 성전이라는 것을(고전 3:16) 아는 것이고 거룩한 주님 안에서 날마다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8.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를 새롭게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하고 그 안에 머무는 것이 우리가 힘써 노력할 일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에 대하여 날마다 죽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어울려 살지만 세상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따라 갈 수는 없습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이 이방인들과 동화되어 이방인들의 우상을 숭배하고 음행을 따라한 것처럼 살 수 없습니다. 어려운 때를 살지만 그러기에 더욱 열심을 내서 주님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세례 받을 때의 약속을 기억하고 영적생활에 더욱 힘써야 하겠습니다. 다음 주일부터는 본당에서 예배하게 됩니다. 예배생활의 틀을 다시 정비하고 서로 격려하여 더욱 건강한 교회로 거듭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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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목을 도모하십시오. (고후 5:18-21)

1. 이사야 시대의 사람들은 입술로는 주님을 찬양하고 섬기는 것 같았지만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었고 죄 가운데서 살았습니다.(사 29:13)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났고 당장 눈에 보이는 이방 사람들을 따라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자기 정체성도 흔들렸고 제사장 나라의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혼란한 때에 이사야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가 오셔서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해 주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세상의 지혜나 총명이 무용지물이 되고 귀머거리가 듣고 소경이 보는 기이한 일이 생겨날 것(사 29:14-19)이라고 외쳤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친히 행하는 일이며 하나님은 시대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들을 사용하여 구원의 일을 진행했습니다.

2.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옆에서 지켜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을 주시는 주님이라는 것을 확신했고 그 소식을 담대하게 전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부활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이들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사람들은 마음에 찔림을 받았고 회개하고 삼천 명이 동시에 세례를 받는 일도 일어났습니다.(행 2:41) 교회는 부활의 복음을 전하면서 과부와 고아를 돌보는 사회정의를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사역이 확장되면서 교회는 말씀사역과 구제사역을 분리해야 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 전하는 일에 집중했고 칭찬을 듣는 성령 충만한 집사들을 선택하여 성도를 돌보는 일을 분담시켰습니다.(행 6:1-6) 이들의 협력으로 교회는 흥왕했고 구원받는 자의 수는 늘었습니다.

3. 바울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설명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주신 것처럼 남편도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교회는 건물이나 프로그램보다는 성도로 부름 받은 사람들 곧 그리스도를 만나 구원 받은 신실한 자들의 모임을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믿는 자들을 세례의 물로 씻어주시고 복음의 말씀으로 깨끗하게 했습니다. 그들을 거룩하게 구분하여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워주셨습니다. 티나 주름 잡힌 것 없고 거룩하고 흠이 없는 교회로 거듭나게 했습니다.(엡 5:25-26) 교회는 그리스도의 깨끗한 신부이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상속을 풍성하게 누리는 통로입니다.(엡 1:18) 그러므로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고 교회를 통하여 구원의 능력을 경험해야 합니다.(엡 3:21)

4.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국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을 치료하며 구원하던 영적 사역을 계속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으로 충만하여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주님이라는 것을 전했던 것처럼 오늘 교회도 성령의 도움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을 주시는 주님이라는 것을 세상에 전합니다. 교회는 복음을 바로 설명하고 전하기 위해서 신앙신조와 교리를 정립했고 교회제도나 교회정치의 틀을 조직하여 사용했습니다. 많은 교회와 교단들이 각자의 교리나 전통을 달리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주님 되심을 분명하게 전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복음의 핵심이 흐려질 때마다 회개운동이 다시 일어났고 새로운 교단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교회의 머리이며 주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실패할 수 있지만 주님께서 교회를 새롭게 하여 사용한다는 증거입니다.

5.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십자가에 내주어 피 흘림으로 죄인들과 하나님사이의 막힌 담을 허물어 주셨습니다.(엡 2:14) 하나님과 멀리 있던 사이가 가까워지고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둘 사이의 막힌 담을 헐고 가깝게 만들기에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화평이라고 고백합니다.(엡 2:11-18) 이것은 창 3:15에서 여자의 자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뱀은 여자의 자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말씀을 성취시킨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다시 부활하여 죄와 죽음의 권세를 깨뜨렸습니다. 베드로는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고(행 4:12)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로 죄를 용서 받고 자유하게 되며 구원을 얻기 때문입니다.

6. 바울은 하나님과 원수 된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죽음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고(롬 5:10) 설명했습니다. 죄는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것이고 죄가 하나님과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화목제물이 되어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 받아주신 것입니다. 사형 틀이던 십자가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십자가에서 피 흘린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으면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됩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는 하나님과의 화평이며 성도가 누리는 특권이고 은혜입니다.(롬 5:1) 바울은 고후 5:18에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구원받은 우리들이 이웃과 화목하게 지내며 복음을 전하여 그들도 하나님과 화목하게 만드는 것이 화목의 직책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7. 고린도교회는 예수 믿고 거듭난 성도들이었지만 아직 성숙하지 못했습니다. 온갖 패거리정치와 분열과 음행과 우상숭배와 근친상간과 같은 세상의 유행을 단절하지 못했습니다. 윤리와 도덕적인 문제는 물론이고 십자가의 도와 부활에 대한 오해가 있었고 성령의 계시에 대해서도 무지했습니다. 분명 예수 믿고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성도의 거룩한 삶의 능력이 나타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거듭난 성도에게는 성화의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성령께 순종하며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품의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이런 변화가 있어야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할 수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주께 하듯 하며(골 3:17) 주님과 동행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구원은 한번 믿음으로 받지만 영적으로 성숙해지고 성품이 바뀌는 성화의 과정은 날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8. 하나님은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백성, 하나님의 소유로 삼아주시고 하나님이 행하는 구원의 일을 선전하게 하십니다.(벧전 2:9) 그러므로 먼저 하나님과의 화목을 성령 안에서 마음껏 누리고 그것을 드러내고 자랑해야 하겠습니다. 다음세대를 교육하고 문화학교를 운영하고 선교사님을 후원하는 일도 영적훈련의 통로가 됩니다. 이 어려운 때에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구원의 감격을 누리며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일에 다시 열심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십자가를 앞에 둔 주님은 하늘 아버지가 함께 하심을 믿고 강하고 담대했습니다.(요 16:33) 우리의 주인이며 힘과 능력이 되는 주님께서 언제 어디서든 우리와 함께 해주십니다. 다시 처음 마음으로 돌아가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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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마음을 새롭게 하십시오(수 24:14-28)

1. 여호수아는 죽음이 임박하자 모든 지파의 지도자들을 불러 세우고 마지막 부탁을 합니다. 먼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지켜주신 하나님의 구원의 일을 하나씩 열거합니다. 역사를 주관하는 분이 하나님이며 그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신실하게 보호하고 인도했으니 그 은혜를 잊지 말고 하나님만 섬기라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자신과 가문은 여호와만을 섬기겠다고 의지를 천명하자 백성들도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맹세합니다. 그러나 가나안의 이방종교와 그들의 풍습의 영향을 받을 백성들의 약함을 알기에 다시 다짐하게 했습니다.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임할 것이라며 결단에 대한 책임을 재확인시켰습니다. 여호수아는 백성들과 약속을 맺고 모든 말씀을 가르친 후에 그들의 결단을 기억하도록 돌을 취하여 상수리 나무아래에 세워 기념비로 삼습니다.

2. 신앙적 결단은 누구의 선동이나 강요에 의해서 일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마음을 움직여 하나님을 몸소 경험하게 될 때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백성들에게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왕상18:21)라고 촉구하며 이방제사장들과 영적 대결을 벌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정쩡한 자세로 바알과 하나님을 함께 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은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을 태우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나서야 마음이 움직였고 여호와가 참 신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결단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깊이 배우지 않은 채 감정으로만 결단했기에 쉽게 흔들렸습니다.

3. 엘리야 시대의 왕은 아합입니다. 아합 왕은 바알을 섬기는 제사장의 딸 이세벨과 결혼했고 그녀의 영향으로 왕은 물론 나라 전체가 바알숭배에 빠졌습니다. 바알신앙은 국교가 되어버렸고 바알신당이 늘어나는 반면 여호와의 단은 헐리고 선지자들은 죽임을 당했습니다. 모든 왕보다 더 악한 왕으로 기록된 아합과 이세벨을 향하여 엘리야는 우상숭배의 잘못을 경고하고 갈멜산에서 대결을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렇게까지 변할 수 있다는 것이 큰 경고가 됩니다. 하나님께만 마음을 두고 하나님을 깊이 배우는 말씀훈련 없는 신앙생활은 주변 환경의 영향을 쉽게 받고 어느 사이에 하나님에게서 멀어질 수 있다는 교훈을 배웁니다. 이스라엘에 가끔 선한 왕이 일어나 종교개혁을 하고 회개하기도 했지만 다시 우상숭배의 길로 들어갔다가 결국은 망하고 말았습니다.

4. 수 24:19-20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은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 너희의 잘못과 죄들을 사하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는 백성들을 무시하는 말이 아닙니다. 제한된 인간이 거룩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만만치 않기에 자기 결단에 신중해야 하고 최선을 다하여 자기 결정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재차 확인시켜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금한 통혼정책을 무시했고 우상숭배에 쉽게 물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시대도 있었습니다.

5. 예수님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 라고 했습니다. 세상과 하나님을 함께 섬기려는 두 마음으로는 신앙의 순결성을 지킬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생명의 떡이기에(요 6:51) 누구든지 그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시며 그와 연합하면 그를 통하여 생명을 얻고 빛에 거하게 됩니다.(엡 5:8,14) 그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은 그의 영 곧 성령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에 살면서도 시와 찬미와 거룩한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거룩한 존재로 살아갑니다.(엡 5:18–19) 나의 힘으로만 살면 흔들릴 것이 분명하지만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지키고 인도하셨던 그 하나님이 우리를 말씀과 성령으로 지키고 훈련하여 능력 있게 세워주실 것이기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다만 그 은혜를 기억하고 그 안에 거하기를 노력할 따름입니다.

6. 바울의 권면을 들어봅시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후 6:14-16) 이 말씀은 여호수아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수 24:15)라고 말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더 가치 있는 것을 위해 자기 것을 포기하라는 말씀입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하나님 없는 세속적인 것에서 구별된 것을 말합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성전인 거룩한 집이 되는 것입니다. 하늘 가치관으로 사는 날마다의 훈련입니다.

7. 예수님은 천국에 대하여 말씀하며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마 13:44-46) 어떤 사람이 보화가 감추어진 밭을 발견하고는 자기 소유를 다 팔아서 그 밭을 샀다는 것입니다. 또 진주장사가 좋은 물건을 찾으면 모든 것을 투자하여 그것을 소유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정든 집이나 가치 있는 물건을 포기하는 일은 힘들지만 더 가치 있는 것을 갖기 위해서 그리 한다면 그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천국을 갖기 위해서 세상의 것들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손에 넣을 때까지는 자기가 알고 있는 정보만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두 마음을 버리고 하나만을 선택해야 합니다.

8. 엡 5:8-10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로 우리가 의롭게 되었습니다. 빛의 자녀는 빛에 거하며 빛을 드러냅니다. 그 빛은 빛이신 주님 자신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면 그분이 스스로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은 우리가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주님 자신의 것인데 우리를 통하여 나타나는 것입니다. 주님과 하나가 되고 함께 거하는 것이 주님을 기쁘게 하는 일입니다. 주님을 더 깊이 알려는 영적 갈증이 새로워져서 두 마음을 떨쳐내 버리고 다시 열심을 내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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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부름에 합당한 생활(엡 4:1-16)

1. 하나님은 시대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일을 시키려는 목적보다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함께 거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과 함께 거하며 함께 마음을 나누려고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막 3:14) 우리의 신앙생활이 일 중심이거나 혹은 만사형통을 위해 하나님께 청탁하기 위한 단계에서 속히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 복이 되게 하고 열방을 복되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을 믿고 그 부름에 응답하는 일이 우선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믿고 응답하여 발을 내딛자 하나님께서 약속을 이루어갔습니다. 그의 후손이 민족을 이루고 제사장 나라가 되어 하나님을 세상에 알리게 했습니다.

2.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이해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첫걸음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자신을 보여주고 알게 하는 계시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엡 3:3) 하나님은 창세전부터 우리를 계획하고 선택하여 거룩하고 흠이 없는 아들이 되게 했습니다.(엡 1: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몸으로 세상에 와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알려주시고 자신을 희생 제물로 십자가에 내주었습니다. 죄인들을 위해 대신 죽어 죄의 값을 치루고 그를 믿는 모든 사람을 죄에서 건져내 주셨습니다. 우리들도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을 힘입어 죄 용서를 받고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엡 3:6) 흠 없고 책망 받을 것이 없는 거룩한 존재가 되었습니다.(골 1:22) 성령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치고 보증해 주어 우리로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했습니다.(엡1:13-14)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하늘의 신령한 복입니다.(엡 1:3)

3. 구원은 자기 노력이나 행위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주는 은혜며 선물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을 자랑하거나 하나님이 부르는 또 다른 사람을 내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엡 2:8-9) 선물은 베푸는 사람의 의지에 따른 것이지 받는 사람이 선택할 수 없습니다. 다만 주신 분의 은혜를 감사하고 그분의 마음을 헤아리고 선전하면 됩니다. 교회는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구원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전하기 위하여 세워주신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세상을 그리스도로 충만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서 세운 거룩한 공동체입니다.(엡 1:23)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고(골 1:18)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지체입니다.(고전 12:27) 둘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기에 교회는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보여주어야만 합니다.

4.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십자가의 희생 제물로 내어주신 것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고 그의 덕을 선전하게 하려는 것입니다.(벧전 2:9) 그것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였다(롬 8:1-2)는 감격을 먼저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능력과 기쁨을 세상에 전하게 하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오늘의 교회는 구약백성들이 열방을 위한 제사장으로 부름 받은 것과 같습니다.(출 19:5-6) 그러므로 예수 믿는 우리들은 새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바로 이해하고 부름에 합당한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구원의 감격을 더 많은 사람들이 누리도록 우리의 생활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마 28:19-20)

5. 구원의 일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일을 드러내고 누구에게 적용되게 하는 것은 성도의 역할입니다. 새롭게 믿기로 작정하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유명한 목사님의 설교와 가르침 때문보다는 이웃에 사는 경건하고 신실한 성도의 생활을 보고 감명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것을 지켜보는 이웃들이 도전을 받고 마음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결국 믿음을 갖도록 도전하는 성령의 부름에 그들도 응답하게 됩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요 6:44)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구원의 일이 성도의 생활을 통하여 세상에 드러나고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6. 하나님의 부름에 합당한 생활은 주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2) 어떤 이유에서든 교회 공동체의 하나 됨을 깨뜨리는 것은 하나님께 합당하지 않습니다. 다양한 은사를 주신 것은 서로 협력하여 한 몸을 세우고 그 일을 통하여 교회를 온전하게 하려는 것입니다.(엡 4:12) 아무리 큰 은사를 받았어도 교회 공동체 안에서 검증되어야 하고 화합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만하게 되고 결국 하나님께 버림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기 때문입니다.(벧전 5:5) 영적생활은 윤리적인 생활을 부정하지 않습니다.(엡 4:25-32)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칭찬을 듣도록 성품훈련을 계속해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힘써 배우고 그를 닮으려는 노력이 있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7. 교회는 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계획을 세상에 알려야 하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교회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지체입니다. 생명을 가진 몸이 자라고 성장하듯 교회는 모든 면에서 서로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받으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만큼 성장해야 합니다.(엡 4:13) 교회가 성장한다는 것은 교회운영을 위해 회원을 많이 모집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기 위하여 더 열심히 모이고 배우고 전하는 실천을 말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베푸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삶을 통하여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러기위해서 성도들은 윤리적으로도 흠이 없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칭찬을 들어야 우리가 전하는 복음을 귀담아 들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 은사를 다양하게 주신 이유도 서로 보충하고 협력하여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자라게 하려는 것입니다.(엡 4:16) 교회성장은 그리스도의 성품을 배우려는 각자의 변화로부터 시작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영적갈증이 각자에게서 일어날 때 교회도 함께 성장할 것입니다.

8. 성도는 생활에 대한 두려움과 염려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믿음이 없는 이방인들처럼 먹고 마시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마 6:33) 어린아이처럼 잘못된 가르침에 속고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엡 4:14) 영생을 소유한 자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여 자신을 주신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와 의를 우선하여서 우리를 먹이고 인도하며 평안과 형통함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거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마음과 뜻을 하나로 묶어 영적 성장을 추구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고 성결한 성품을 힘써 배우고 실천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의롭고 거룩한 성도의 모습을(엡 4:24) 갖추기 위해서 함께 꿈꾸고 함께 노력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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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 예수 그리스도(출 16:31-35, 요 6:47-51)

1. 도쿄 올림픽이 한창입니다. 메달을 딴 선수들마다 비슷한 소감을 말합니다. 그를 믿고 응원해준 여러 사람의 도움이 있어서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그 분야 선배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영광을 얻게 되었다고 감사하고 앞으로 후배들의 건투를 기대한다고 하는 것을 봅니다. 이 나라의 이민 역사를 보아도 앞서 이민 온 사람들이 차별과 어려움을 견디며 이민자의 권리를 세웠기에 오늘 우리가 그것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음 세대의 평안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환난, 곤고, 박해, 기근, 적신, 위험, 칼 등을 언급하며 이것조차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어낼 수 없다고 고백했습니다.(롬 8:35) 이런 단어들은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를 어렵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며 심지어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들입니다.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서 처음 교회들이 실제적으로 겪었던 일들입니다. 한국교회 초기 선배들도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모진 고난을 겪은 것을 압니다. 어려운 역사의 고비를 믿음으로 견뎌낸 선배들의 희생과 순교가 있었기에 오늘 우리들이 편하게 교회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음세대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신앙생활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맛본 자들이 공동체 안에서 함께 배우고 서로 연결되어 하나님이 거하는 성전으로 지어져 가는 것입니다.(엡 2:20-22)

3.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 지 두 달이 지나자 가지고 나온 식량이 떨어졌습니다. 생존을 걱정하는 백성들의 입에서는 불평이 터져 나왔습니다. 출 16:3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죽게 하는도다.” 다급한 마음에서 나오는 솔직한 불평이었지만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계획을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했거나 아직 하나님과 깊은 신뢰관계가 생기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연약한 백성들에게 자신의 영광을 보여주어 믿음을 갖게 했습니다. 하늘로부터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어 먹는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출 16:12).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양식은 일용할 양식이 되었고 하나님 안에서의 영적 생명을 유지하는 참 떡이 되었습니다.(출 16:4,8,12)

4. 만나는 매일 아침에 서리처럼 내렸고 그날 먹을 분량만 거두어야 했습니다. 안식일은 거룩하게 구분하여 쉬어야 했기 때문에 안식일을 위해서는 전날에 갑절로 거두게 했습니다.(출 16:26) 이것을 어기고 안식일에 만나를 거두러 나가더라도 허사였습니다. 하나님은 만나를 통하여 하나님만 바라보게 했습니다. 자기 욕심으로 많이 거두어도 썩어버렸습니다. 그 날에 필요한 일용할 양식으로만 거두게 했습니다. 이것은 내일에 대한 염려를 내려놓고 하나님이 날마다 먹이고 입힐 것을 믿고 따르게 한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며 자기 힘과 노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백성임을 배우게 했습니다. 우리가 주일을 구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것도 하나님만 의지한다는 안식일 정신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먹이고 입히고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5. 하나님께서는 후손들을 위하여 만나를 간직하게 했습니다.(출 16:32) 한 오멜짜리 항아리에 만나를 담아 지성소의 언약궤 안에 간직했습니다. 거기는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십계명이 적힌 돌 판도 함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고 은혜로 사는 존재라는 것을 만나 항아리를 보며 기억하게 했습니다. 그것을 보관한 지성소의 궤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만남의 장소이고 희생의 피를 뿌려 죄를 용서받는 속죄의 장소입니다.(출 25:22) 후손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자기 생활의 가장 중요한 자리에 하나님을 모시게 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가장 우선되고 중요한 자리에 하나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권리와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는 마음의 지성소를 가꾸고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가 주시는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이런 영적생활이 우리의 후손들을 믿음으로 살게 하는 증거물이 될 것입니다.

6.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로 삽니다. 광야생활을 통하여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신 8:3) 예수님도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마귀의 유혹을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3-4)는 말씀으로 물리쳤습니다. 이스라엘이 만나를 먹고 생명을 유지한 것처럼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구원과 영생을 받습니다.(요 6:48-51) 만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로부터 오는 참 떡입니다.(요 6:32-33) 그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기 위해 하늘로부터 내린 만나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까지 만나를 먹은 것처럼 성도는 하나님 나라에 이를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그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누구든지 그에게 나오는 자는 배고프지 않고 누구든지 그를 믿기만 하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습니다. 그는 생명의 떡이며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생을 얻습니다.(요 6:27,35)

7. 우리들이 영생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전적인 은혜입니다.(엡 2:8-9)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우리들이 같은 주님을 섬기는 형제가 되었고 같은 신앙고백을 하며 한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습니다.(엡 4:4-6) 성만찬을 통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백성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고백합니다. 주의 몸을 먹고 마시며 그리스도와 친밀한 영적 교제를 나눕니다. 또한 주님의 몸인 교회의 일원이 되어 주님을 모신 한 공동체로 성장해 갑니다. 엡 4:15-16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8. 오늘 우리는 일 년 반 만에 모여 예배합니다. 각자의 처소에서 영상으로 예배하던 우리들이 여기 예배의 현장에서 역사하는 성령의 은혜를 함께 맛보는 것은 공동체 예배의 큰 유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는 우리의 신앙생활이 이런 어려움을 통하여 더 단단해질 것입니다.(롬 8:29)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넓고 깊고 길고 높은지 우리는 평생을 배워도 다함이 없을 것입니다.(엡 3:17-19) 아들까지 희생하여 우리를 사랑해주신 하나님께서 이런 어려운 때에도 우리의 영과 육의 필요를 넉넉하게 채워주실 것입니다.(롬 8:32). 참 떡이며 만나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일용할 양식이 되게 합시다. 그리하여 이 믿음과 기쁨을 대물림하는 가정과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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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과 진리로 예배하자 (요 4:19-26, 롬 12:1-2)

1. 우리들은 예배하면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교제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는 거기에 응답하며 예를 갖추어 엎디어 절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물론 우리의 필요를 따라 하나님께서 선처해주시는 기쁨도 누리지만 예배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것이고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예배에는 의식과 절차도 필요하고 그것을 통하여 영으로 임재 하는 하나님을 만나고 사랑을 고백하며 거룩한 교제로 나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얼굴을 대면하여 만나는 기쁨처럼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경험을 나누는 거룩한 교제가 바로 예배입니다.

2. 예배는 가장 좋은 최고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를 만들고 구원하신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과 찬송을 드리는 것입니다.(시 96:8)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이 창조주이며 우리의 구원 주라는 것을 드러냅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다른 종교에서 복을 구하고 자기 문제 해결을 위해서 정성을 드리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은 자기 기분에 따라 무자비하게 생명을 해치는 분도 아니고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생각 없는 조형물도 아닙니다. 형편에 따라 약속을 바꾸고 말을 바꾸는 인간(민 23:19)들과는 다른 절대자입니다.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분이며 사람을 자신의 형상대로 만들고 그들과 생각을 나누고 함께 일하는 분입니다.(창 1:28)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라고 했으니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는 것이(시 150:6)마땅합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엎드려 절하고 입을 맞추며 최고의 존경의 예를 드리는 것이고 그 앞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 어디서 예배하는가보다 어떻게 예배하는지를 강조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인지 그리심 산에서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로 알고 예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요 4:23-24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우리는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알게 하는 성령의 도움을 통하여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성령의 감동을 따라 하나님의 구원을 이해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경험한 성도들이 하나님을 높이고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자랑하고 찬양하며 부름에 합당하게 사는 것이 우리의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영적인 예배입니다.(롬 12:1-2)

4. 그러므로 예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만이 되어야 합니다. 결혼예배나 임직예배처럼 사람을 위한 예식에 예배라는 단어를 붙이지 말자는 분들이 있습니다. 유일하신 하나님만이 예배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배하는 우리들은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가 계신 것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자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행위인 예배를 우리 생각대로만 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그가 기뻐하는 대로 예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5.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과 사랑을 나누는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고는 참으로 만족하고 기뻐했습니다.(창 1:26-27). 하나님과 함께 생각을 나누고 함께 일하며 소통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신이 만든 것에게 이름을 지어주게 했고 또한 그것을 다스리게 했습니다.(창세기 1:28) 이런 막힘없이 소통하고 함께 일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예배였습니다.(롬 2:1-2) 창조주와 피조물의 명령하고 수행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신뢰하고 소통하고 교제하는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졌고 그 결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피하게 되었습니다.(창 3:8)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깨진 것입니다.

6.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켰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주신 것은 하나님과 죄인들을 화목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화목은 둘 사이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이며 이것이 곧 예배의 회복입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불러내신 목적도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모세도 바로에게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려고 하니 보내달라고 말했습니다.(출 3:12)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인하여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우리 힘으로가 아니라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과 진리로 예배합니다.(요 14:6) 성령의 도움을 힘입어 영이신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합니다.

7. 요즈음 대면예배의 필요성을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목사는 정부의 잘못된 명령에 항의하고 예배를 강행하자고 하고 어떤 목사는 그러고 싶은데 뒷감당할만한 배짱이 모자란다고 말하기도 합니다만 지나친 통제 앞에서 예배 자체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교회도 다음 주일부터는 교회에서의 예배를 시작하게 되는데 여러분 각자가 예배생활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를 부탁합니다. 아직 바이러스가 사라진 것도 아니고 마스크를 다시 써야 한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독감처럼 함께 지내야 하니 무조건 활동을 제한하는 것은 비생산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우선순위를 정하는 일이나 영적생활의 변화를 만드는 것은 여러분 자신의 몫입니다.

8. 예배는 하나님께 나의 우선순위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앞서는 일들이 너무 많아서 사실은 쉽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성막과 성전은 그들이 필요를 느낄 때 예배하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성전은 삶의 중심에 있었고 예배는 모든 것보다 우선하는 것이었습니다. 성전예배는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정체성이었습니다. 이것은 초대교회 성도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배가 삶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예배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고 외부에서 오는 핍박도 참았고 지하무덤에 숨어서라도 예배하려는 결단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예배는 예수님의 몸인 교회공동체를 이루는 의식이었고 주님의 몸을 기념하는 성찬이 중심에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영적생활의 승리를 통하여 드리는 생활예배와 우리가 공동체적으로 드리는 공적예배가 모두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다시 뜨거워지고 영과 진리로, 성령과 말씀으로 예배하는 예배의 회복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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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이어의 교훈 (렘 23:1-6, 요 6:1-15)

1. 렘 23장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양떼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이방나라로 흩어지게 한 악한 목자인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혼내고 때가 되면 다윗의 후손 가운데 한 의로운 자를 왕으로 세워 공정하고 옳은 일을 하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왕의 왕으로 와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할 것을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렘 23:5) 예수님은 이 약속대로 공정하고 의로운 구원의 주님으로 오셨습니다.(렘 23:6) 양의 문이 되는 예수님은 양들이 그 문을 드나들며 풍성한 꼴을 얻게 합니다. 양으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합니다.(요 10:9-10) 자기 양을 위해서 목숨까지 내놓는 참 목자인 예수님은(요 10:14,15) 목자를 잃고 헤매는 양과 같은 죄인들을 품어주시고 긍휼을 베풀어 구원해 주십니다.(막 6:34)

2. 오늘 본문은 말씀을 듣다가 때를 놓친 배고픈 군중을 배불리 먹인 이야기입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기적을 베풀어 오천 명을 먹인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라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람들은 먹는 문제에만 관심을 갖고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하려고 했지만 예수님은 그것을 만류했습니다. 제자들에게 성만찬을 제정해 주실 때에도(눅 22:14-20) 먹는 문제를 언급하지만 그것은 영적인 문제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희생짐승의 피로 구원받은 것을 기념하는 유월절의 의미를 알고 있는 제자들은 예수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며 기념하는 성만찬이 유월절과 같은 구원을 의미한다는 것을 쉽게 이해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자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자가 영생을 얻는다고 가르쳤습니다. 요 6:57에서는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라고 했습니다.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그 안에 거하는 것이며 지속적으로 교통하는 것입니다.

3. 그러므로 오병이어의 기적이야기도 먹는 문제보다는 기적을 행하는 주체이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영적체험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공관복음서에 빠지지 않고 기록된 오병이어 이야기는 예수님이 세상을 구원하는 메시아로 오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눅 9장의 기록을 보아도 12제자를 보내 전도하게 한 일과 요한의 죽음을 언급한 후에 오병이어 이야기와 물 위를 걷는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교회설립에 관한 말씀과 예수님의 수난에 대한 이야기를 연결시킵니다. 앞뒤의 이야기를 보면 오병이어 이야기는 제자들을 훈련하여 복음을 전하게 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주신 기적사건입니다. 빌립은 많은 사람을 먹이려면 200데나리온이나 되는 큰 금액이 필요하다고 걱정했지만 예수님은 적은 음식으로 많은 사람을 먹였습니다. 제자들의 무능함과 예수님의 능력이 대조됩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지만 주님에게는 불가능이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마 19:26)

4. 엡 2장은 이방인과 유대인을 불러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게 하신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은 하나님의 약속에서 제외된 소망이 없던 사람들이지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림으로 하나님과 가까워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가 되게 하고 화목하게 만들었습니다. 십자가는 이렇게 나누어진 둘을 하나 되게 합니다. 하나님과 죄인을 하나 되게 하고 사람과 사람사이도 화목하게 합니다. 성령 안에서 교회를 하나 되게 하고(엡 2:14-18) 그리스도와 상관없던 세상을 교회와 하나 되게 합니다. 하나 된다는 것은 서로 용납하고 교통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다.”(요 10:14, 15)라며 거룩한 교제를 말씀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가 하나이며 친밀한 관계에 있는 것처럼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그렇게 받아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특권입니다.

5. 베드로는 주님께서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대답하여 예수님께 칭찬을 들었습니다.(마 16:16) 이 신앙고백 위에 주님께서 자신의 교회를 세웁니다. 교회가 주님께 속한 것이기에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이런 신앙고백을 하는 교회에게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9)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행 2장에서 성령 충만한 제자들을 술 취한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에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주님 되심을 분명하게 전하여 그의 설교를 듣는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 믿게 했습니다. 그 천국 열쇠를 사용하여 천국의 문을 열었던 것입니다.(행 2:14-40) 이 권한은 베드로에게만 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모든 믿는 성도들에게도 주셨습니다. 천국 열쇠를 사용하여 또 다른 사람들을 구원받게 하는 영적 사역의 특권을 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런 은혜가운데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6. 오천 명을 먹이던 현장에서 함께 일하던 제자들의 희열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이 축사한 후에 떼어 준 음식을 받아 사람들에게 나눠주던 제자들은 자기 손에 들려진 음식을 나눠주고 또 나눠주어도 줄어들지 않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적은 양의 음식으로 오천 명이나 되는 남자들을 배불리 먹인 것도 기적이지만 주님께서 행하는 그 기적에 함께 했다는 것이 제자들에게는 큰 기적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주는 힘으로 주고 또 나누어 모두를 배부르게 한 사역의 감격이 컸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예수 믿고 구원받은 것에 감사하는 자리에 멈추지 않고 구원의 감격과 능력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이유입니다. 교회를 통하여 함께 일하는 우리들이 복음을 전하며 예수 사랑을 나눠주고 또 주어도 우리에게는 더 많아지는 풍성한 기적을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주께서 주시는 능력을 체험하고 그것으로 하나님 나라를 넓혀가는 사역의 감격을 누리기 바랍니다.(빌 4:13)

7. 광야에서 만나를 먹여주신 하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영적인 존재임을 알게 했습니다.(신 8:3)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하여 제자들을 훈련했고 영생을 주시는 주님을 확신하고 전하게 했습니다. 단지 눈에 보이는 먹고 사는 문제에만 관심을 두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배우게 했습니다. 그렇게 훈련받은 제자들이 복음을 전해주었기에 오늘 우리들도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이시대의 교회도 동일한 주님의 명령 앞에 있습니다. 무엇을 먹고 마실까보다 하나님 나라와 의를 추구하는(마 6:33) 생활을 통하여 또 다른 사람을 새롭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더 많은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날마다 인도하고 보호해 주십니다. 사역하는 감격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개인과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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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새로워지는 교회 (마 28:19-20, 행 2:38-47) 교회창립 37주년 기념주일

1. 오늘은 교회 창립 37주년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통하여 우리를 만나주시고 인도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교회를 섬기느라 염려하고 땀 흘리며 수고한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하고 하나님께서 위로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다양한 배경과 전통을 가진 교회들이 여기저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미국에는 어느 마을이든지 중앙에는 센터 스트릿이 있고 그 옆에는 처치 스트릿이 있습니다. 마을 한 복판에 여러 교단의 교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봅니다. 같은 신앙고백을 하지만 교단마다 강조하는 부분이 조금씩 다릅니다. 시대마다 사람들의 생각도 바뀌고 교회들의 신앙색깔도 변합니다. 그래서 말씀으로 돌아가려는 시도들이 때마다 일어났고 그때마다 새로운 교회가 태어났습니다.

2. 중세 카톨릭교회가 타락하자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종교개혁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세워진 개신교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복음전도보다 교회운영을 우선하다 보니 생명력을 잃어 18세기 영국교회는 세상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때 성공회 신부였던 웨슬리가 일어나 거룩한 생활과 신자의 책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홀리 클럽을 만들어 날마다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전도하고 봉사하는 생활을 얼마나 철저하게 점검했던지 사람들은 그들을 원칙론자라고 비웃으며 메소디스트라고 불렀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감리교회는 19세기 초반까지 미국교회와 세계선교를 선도하는 교단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감리교회마저 세속화되고 힘을 잃게 되자 다시 성결한 생활과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는 오순절교단들이 생겨났습니다.

3. 한국교회를 생각하면 처음 복음을 들었을 때의 감격과 열정이 그립습니다. 천막치고 가마니를 깔고 예배드리는 가난한 교회에서의 신앙생활도 부끄럽지 않을 때가 있었습니다. 자기도 배고프면서 배고픈 사람들을 먹이려 했고 복음을 전하는 열정도 대단했습니다. 88년 올림픽이후에 한국이 세상에 알려지고 경제도 발전하고 교회도 해외선교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교회의 문제점들도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좋은 시설과 프로그램이 있는 대형교회를 선호하게 되었고 교회의 힘은 외형적으로 보이는 성도수와 헌금액수에 있었습니다. 성경적인 가르침을 실천하는지는 판단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4. 교회는 가난한 사람에게 부자가 되는 길을 가르쳤고 열심히 기도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심령이 가난한(마 5:3) 성도의 생활이나 서로 섬기고 낮아지는 것을 실천하는 일에는 게을렀습니다. 이웃을 돕거나 선교후원의 일에도 자기 이름을 내고 자랑할 수 있어야 동참했습니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고 은밀한 중에 보시는(마 6:6) 주님 앞에서 일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부자가 되고 형통하게 되는 일에는 관심이 컸지만 정작 그것이 필요한 가난한 이웃을 돌보는 일에는 인색했습니다. 교회 안에서의 신앙생활은 열심이었지만 가정이나 일터에서의 삶은 세상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이런 교회는 더 이상 세상의 응원을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이미 부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5. 우리시대의 교회는 다시 세속화의 유혹을 받고 있습니다. 다원화된 가르침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오직 예수로만 구원을 받는다(행 4:12)는 것은 매력이 없습니다. 가정의 질서가 깨지고 전통적인 개념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아빠 엄마라는 칭호는 사라지고 그들이라는 표현이 부모에게 붙여지고 있습니다. 소수라도 차별당하지 않게 보호하려는 차별금지법이 오히려 대다수를 차별하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돈이 하나님 자리를 차지한 물질만능시대에 돈 버는 일 앞에서 신앙생활은 우선순위에서 밀립니다. 전염병 때문에 몸에 베어버린 영상예배의 편안함도 쉽게 떨쳐내기 어려운 일입니다. 운전하는 사람이 없이도 움직이는 자동차가 나오고 우주정거장도 세었습니다. 달라진 세상만큼이나 성경의 가르침은 세상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순교를 각오해야 하는 말세의 징조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6. 교회의 사명을 새롭게 하고 각자의 역할을 새롭게 해야 할 때입니다. 사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자랑하는 일을 위해서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선택하고 불러 세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 죄인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고후 5:18) 우리들도 십자가 복음을 믿고 하나님을 아빠로 부르는 자녀가 되었습니다.(롬 8:15) 교회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따라 같은 신앙고백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을 모시고 머릿돌 삼아 성도들이 함께 주의 몸인 교회를 세웁니다. 성령을 모신 거룩한 처소가 되고 교회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엡 2:20-22)

7. 오순절 성령강림을 경험한 사도들은 부활의 복음을 담대하게 전했고 성령의 능력으로 기적을 행했습니다.(행 2:43)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은 성도들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서로 섬기고 사랑하며 복음을 실천하는 삶으로 살아냈습니다. 자기 소유를 팔아 필요한 사람들과 나누었고 교회는 그것으로 구제하며 사회정의를 실천했습니다.(행 2:44-45) 사람들은 교회를 통하여 구원을 받고 묶인 문제들을 해결 받았습니다. 교회의 소문은 빨리 펴졌고 믿는 자의 수가 날로 증가했습니다.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가서 세례를 베풀고 가르치고 전하여 제자 삼으라는 예수님의 명령(마 28:19-20)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의 수고와 헌신 때문에 복음은 확장되었고 오늘 우리들까지 복음의 능력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8. 제자는 한 번의 교육으로 되지 않습니다. 삶을 나누는 지속적인 관계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변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지속적으로 성장해 가는 것을 말합니다.(엡 4:13) 교회는 이것을 위해서 모이기에 힘씁니다.(히 10:25) 함께 모여서 예배하고 함께 배웁니다. 그리고 각자 흩어져 배운 대로 생활하며 복음을 전하고 그렇게 살아갑니다. 이것을 모이는 교회, 흩어지는 교회라고 표현합니다. 우리교회는 공동체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경험하고 가 기관과 구역과 소그룹에서 경험한 것을 서로 나누고 점검받습니다. 다음세대를 세우는 일에 힘쓰고 문화센터와 선교협력을 통하여 예수님의 제자로 사는 것을 배웁니다.

9. 교회는 군인들의 훈련장과 같고 생명을 구하는 구조대원들의 임시거처와 같습니다. 거기는 허리띠를 풀지 못하는 긴장감이 있고 자기욕심과 안일함과 싸우는 땀 흘림이 있고 그래서 조금은 소란한 곳입니다. 교회에서 휴양지나 유람선에서 느끼는 편리함이나 느긋함을 찾는다면 생명을 살리고 새롭게 하는 영적 생명력이 상대적으로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는 구원의 감격과 능력을 나누는 생동감과 기쁨이 있는 곳입니다. 우리들의 교회생활이 시간을 더할수록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교회로 더욱 새로워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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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할 때 강함이 되는 주님 (고후 12:1-10)

1. 바울은 교회를 핍박하던 사람이었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후에는 딴 사람으로 변하여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신이 세운 고린도교회가 거짓교사들의 영향을 받고 또 자신의 사도로서의 권위마저 의심받게 되자 부득이하게 자기를 변호하게 됩니다. 갖은 어려움을 참으며 표적과 기사와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섬기던 일을 언급하며 거짓교사들처럼 잠깐 어리석은 자가 되어 자기 자랑을 하겠다며 사도로서의 입장을 밝힙니다.(고후 11:1,16) 거짓교사들은 뱀이 하와를 꾀듯 다른 복음을 전하여 교인들을 현혹했습니다. 십자가에서 죄인들을 위해 대신 죽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정치 혁명가, 육체가 아닌 영, 도덕적인 신으로의 예수를 가르쳤습니다.(요일 4:1) 그들은 바울이 교회로부터 사례도 받지 못하는 자격미달자라고 비방했습니다.

2. 바울은 거짓 선생들의 잘못된 가르침으로부터 교회를 바로 세우려는 마음에서 부득이하게 자신을 변호했습니다. 그리고 거짓선생들에 비해 자신의 영적 경험이 모자라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에게는 세상적으로도 자랑할 것이 많았습니다. 정통 유대인의 혈통을 갖고 태어났고 율법에 비추어 완전했으며 학문적으로도 당시 훌륭한 선생인 가말리엘 밑에서 공부했으며 로마 시민권을 가진 특권층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영적으로도 하나님이 거하는 셋째하늘을 경험하고 특별한 계시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14년 전에 경험한 환상과 계시를 자랑하지 않고 간직해 오다가 교회를 바로잡기 위해서 부득이하게 그것도 남의 말을 하는 것처럼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고후 12:6)

3. 바울은 자기 약점을 하나님의 은혜로 해석했습니다.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12:7) 자기가 경험한 영적 체험과 계시가 너무 커서 교만해질까봐 하나님께서 찌르는 가시로 사단의 사자를 남겨두셨다고 말합니다. 그를 힘들게 하는 가시가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간질이나 안질과 같은 고질병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울의 영과 육을 힘들게 했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해결해 달라고 세 번이나 간절하게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바울에게 주신 은혜가 이미 족하다고 대답했습니다.(고후12:7-9) 자기가 기대한 것과 다른 응답이지만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수용하는 바울의 겸손함을 봅니다.

4. 교만은 망하고 넘어지게 되는 지름길입니다.(잠 16:18)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처럼 되려는 교만한 마음이 있었기에 사단의 유혹을 수용했고 하나님께 불순종했습니다. 다윗도 사울의 칼을 피하여 망명 다닐 때는 겸손하게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했지만 그가 성공하고 많은 것을 갖게 되자 느슨해져서 밧세바를 범했습니다.(삼하 11장) 더 이상 직접 전쟁터에 나가지 않아도 충성스런 부하들이 전쟁을 해주던 형통하고 안전할 때였습니다. 죄는 자만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할 때 슬며시 들어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난한 마음과 상한 심령으로 하나님만 바라보는 사람을 기뻐합니다.(마 5:3) 이것이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며 우리의 몸을 산 제물로 드리는 진정한 헌신입니다.(롬 12:1-2) 바울에게 찌르는 가시는 겸손하게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하게 하는 은혜의 수단이었습니다. 약한 자신을 벗어버리고 강한 그리스도로 옷 입는 길이 되었습니다.(롬 13:14)

5. 행 3장에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 앞에서 구걸하는 걷지 못하는 사람에게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경제적으로는 가난했지만 성령으로 충만한 하나님 나라의 부자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자 걷지 못하던 걸인이 걷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약함은 그리스도의 능력을 드러내는 길이 됩니다.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삿 6:15)라고 말하던 겸손한 기드온을 하나님께서 사사로 세워 미디안을 물리치게 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란을 겪는 것을 기뻐합니다. 내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고후 12:10)라는 말은 약할 때일수록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그의 강함을 의지했다는 말입니다.

6. 십자가는 죄인을 매다는 사형 틀이었습니다. 수치스럽고 더럽고 피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그것을 짊어지고 죄인들을 위해서 대신 죽음으로 십자가는 구원을 얻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었습니다.(고전 1:18)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 세상에 오셨고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 죄를 벌해야 하는 하나님의 공의를 충족시켰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생을 얻고(요 3:16) 그를 영접하는 자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했습니다.(요 1:12) 믿는 자들을 사망에서 생명을 옮겨주십니다.(요 5:24) 거짓교사들은 자기들의 영적 경험을 자랑하고 부요함을 자랑하고 유대인의 전통을 가르쳤지만 바울은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고 오직 그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 순전한 복음을 전했습니다.(롬 1:16-17)

7. 자신의 무능함을 깨달을 때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때입니다. 어려움 속에서 자신이 누구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점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가진 성도는 고난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뜻을 묻고 기도합니다. 그래서 고난이 오히려 복이 됩니다.(시 119:71) 야곱이 하란에서 21년을 살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형을 속이고 장자가 받을 복을 훔친 것으로 인해 항상 형의 보복을 두려워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갈 때 얍복 강가에서 철저하게 회개하며 밤새워 기도했는데 성경은 그것을 천사와 씨름했다고 표현했습니다. 형의 칼로부터 보호받고 화해할 수 있기를 위해서 자신을 내려놓고 간절하게 기도한 야곱에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시고 형의 환대도 받게 했습니다.(창 32장) 자신에 대하여 죽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8. 전염병을 조심해야 하는 때에 우리가 지냅니다. 이럴 때 마냥 활동을 자제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병에게 지지 않고 이겨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점검해 보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다면 이때가 오히려 유익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다음 주일은 교회창립 37주년을 감사하는 주일입니다. 과거에 우리 교회가 강할 때도 있고 약할 때도 있었지만 그 어느 때이든 교회의 주인은 주님이셨습니다. 앞으로도 겸손하게 엎디어 주님을 구하는 교회가 된다면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또 우리를 계속 사용해 주실 것입니다. 갈 6:14에서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했는데 우리들도 이런 겸손한 자세로 주님을 자랑하는 교회로 자리매김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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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대하는 자세 (막 6:45-52, 시 23)

1. 우리들은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약한 존재입니다. 누구든 예외 없이 삶의 버거운 문제를 만납니다. 자신의 약함 때문이든지 아니면 시대의 아픔이든지 우리 모두는 고난을 만난다는 것입니다. 엊그제 플로리다에서는 12층짜리 콘도가 무너져서 수백 명이 다치고 죽었습니다. 전염병에서 속히 벗어나기를 바라지만 변이 바이러스가 생겨 아직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온라인으로 공부하고 일하며 많이 지쳤고 젊음의 시간 한 부분을 잃어버렸다고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6.25 전쟁이 일어난 지 71년이 되지만 아직도 그 전쟁은 끝나지 않은 채 시간만 지나가고 있습니다.

2. 믿음으로 사는 우리들도 고난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때로 의인이 고난을 당하고 악인이 승리하는 것을 봅니다. 의롭게 살던 욥이 왜 고난을 당해야 했는지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고난을 이겨내야 하는지는 분명하게 배울 수 있습니다. 욥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원망하기를 기대한 사단이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욥에게 고난을 주었지만 욥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했습니다. 재물과 자녀를 다 잃고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는 형편에서도 욥은 하나님을 오히려 찬양했습니다. 인간이 당할 수 있는 가장 처참한 상황에서 욥은 주신 분도 하나님이고 취하는 분도 하나님이라고 고백했습니다.(욥 1:21) 하나님께 복을 받았으니 재앙을 받을 때도 있지 않겠느냐며 입술로 하나님을 원망하는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욥 2: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고백했습니다.(욥 23:10)

3. 이것이 문제를 만날 때 가져야 할 믿음의 자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아래 있는 피조물이기에 주권자가 하는 일에 대하여 따질 수 없습니다.(사 45:8-13) 쉴만한 초장과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심을 감사하고 해를 당하지 않도록 지켜주실 것을 믿고 감사할 뿐입니다.(시 23) 어려움도 하나님이 주관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우리가 평안할 때 오히려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겸손하게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게 “선 줄로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질까 조심하십시오. 여러분이 당한 시험은 모든 사람들이 다 당하는 시험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므로 여러분이 감당할 수 없는 시험당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여러분이 시험을 당할 때에 피할 길을 마련해 주셔서 감당할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고전 10:12-13)라고 했습니다.

4. 예수님은 들에서 말씀을 듣던 배고픈 오천의 군중을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배불리 먹였습니다.(막 6:44) 난생 처음 이런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은 먹는 문제에서 해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고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하려고 했습니다. 제자들도 떡과 고기를 나누어주면서 예수님의 제자가 된 보람을 느꼈고 주께서 새 세상을 열면 한자리 얻을 수 있겠다는 기대를 했습니다.(막 10:37) 그런데 그런 즐거움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오병이어의 기록에 이어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죽을 고비를 넘기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평소 활동하던 곳이고 잘 아는 갈릴리바다였지만 그 날은 밤새 바람과 싸웠지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도와주려고 옆으로 걸어왔지만 제자들은 그를 유령으로 알고 두려워했습니다. 성공과 출세의 기회를 꿈꾸며 어깨에 힘을 주던 조금 전의 제자들과는 너무 다른 모습입니다.

5. 예수님은 전날 밤 서둘러 제자들을 바다 건너편으로 보내고 자신을 왕으로 추대하려는 군중들을 해산시킨 후 산으로 기도하러 갔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세워 정치해방을 이루고 먹는 문제도 해결해 주기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예수님의 사역 초기에도 명예와 영광을 주겠다고 시험했는데(눅 4:1-2) 지금도 명예와 권세를 취하라고 군중들을 사용하여 시험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대속물로 주어 십자가에서 죽으려는 사명(마 20:28)을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복음전도의 사명을 함께 감당할 제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했습니다. 제자들이 한껏 마음이 부풀어 주님이 세울 나라를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자들은 밤새 거친 바람과 싸우고 있습니다. 다행인 것은 힘든 싸움 때문에 세상 권력이나 명예를 꿈꾸던 조금 전의 일들은 까맣게 잊었다는 것입니다.

6. 예수님은 제자들이 바른 믿음을 갖기를 원했습니다. 막 6:51-52 “배에 올라 그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예수님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잔잔해졌습니다. 이전에도 광풍을 잠재우던 예수님을 보았지만(막 4:35-41) 이날 제자들은 예수님이 창조주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겁에 질린 제자들을 위로하며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막 6:50)고 위로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출 3:14)라고 자신을 알려준 것처럼 말입니다. 제자들의 마음이 세상에 빼앗겨 둔해졌지만 이번 고난을 통하여 전능자이신 예수님을 바로 알게 되었으니 고난이 오히려 복이 되었습니다.

7. 주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뿐 아니라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바른 기도를 하지 못할 때 우리를 위하여 대신 간구해 주십니다.(롬 8:26) 그러기에 어떤 형편에 있더라도 주님을 의지하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우리는 정금같이 단단한 믿음을 갖게 됩니다. 이것을 깨달은 시편 기자는 시 119: 67, 71에서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고난을 통과하며 겸손해지고 주님 앞에 엎디어 도움을 청하게 되니 힘든 과정이 오히려 감사의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가나안까지 가는 한 달 거리의 길을 40년이나 걸려 통과했습니다. 힘든 광야생활을 견디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8. 잠 17:3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주님의 부름에는 결코 후회나 실수가 없습니다.(롬 11:29) 그는 우리를 만드신 분이며 우리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아는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창 17:1)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분입니다.(롬 8:28) 이런 주님이 우리를 불러 함께 하자고 초청합니다.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마 11:28)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누구든지 이 부름에 응답하여 예수님을 모시면 영혼의 쉼을 얻습니다. 구원을 얻고 평안과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어떤 문제가운데 있을지라도 주님의 손을 붙드십시오. 주 안에서 어려움이 변하여 복이 되는 기쁨을 누리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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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다시 새롭게 (애 3:19-26, 막 5:21-43)

1.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라고 불립니다.(렘 9:1)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당할 즈음 암울하고 소망이 없는 때에 눈물로 활동한 선지자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유다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것 때문에 바벨론의 포로가 될 것이며 70년이 지나면 고향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애굽과 바벨론 사이에서 눈치를 보던 사람들은 친 바벨론적인 예언을 하는 그를 반민족적인 선지자로 낙인찍고 강대국과 내통하고 있다고 핍박하고 옥에 가두기까지 했습니다. 예레미야 애가는 그가 예언한대로 예루살렘이 멸망한 후에 슬픔을 노래한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을 때에만 행복합니다. 약속 관계에 있는 사람은 그 약속을 지킬 때에만 특권도 유지됩니다. 십자가 대속의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들이 성령의 인 치심의 은혜를 유지하려고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유다 백성들은 성전에서 제사하면서 하나님과 관계를 유지했었는데 성전이 무너지자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들것은 뻔 한일입니다. 애 1:1,4 “아, 슬프다. 예전에는 사람들로 그렇게 붐비더니, 이제는 이 도성이 어찌 이리 적막한가! 예전에는 뭇 나라 가운데 으뜸이더니 이제는 과부의 신세가 되고, 예전에는 모든 나라 가운데 여왕이더니 이제는 종의 신세가 되었구나. 시온으로 가는 길이 이렇게 쓸쓸하다니! 명절이 되었는데도 순례자가 없고, 시온 성으로 들어가는 모든 문에도 인적이 끊어지니, 제사장들은 탄식하고, 처녀들은 슬픔에 잠겼구나. 시온이 이렇게 괴로움을 겪는구나.”

3. 세 차례의 바벨론의 침입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포로가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은 거주민의 수가 줄어들어 적막해졌습니다. 성벽도 성전도 무너져버렸습니다. 마치 남편과 사별한 부인의 쓸쓸함과 같습니다. 여러 나라들 중에서 여왕같이 대접받더니 이제는 시녀처럼 학대를 당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뛰어노는 소리도 들을 수 없습니다. 명절이 되어도 잔치의 즐거움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더 이상 성전을 찾아 예배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유다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두 눈이 뽑혀 쇠사슬에 묶여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렘 39:7) 종교와 정치가 타락하면 나라가 망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 유다백성들이 우상을 섬겼습니다. 제사장들은 기득권세력과 결탁하여 자기 배를 채웠습니다. 이방 신인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기도 했습니다. 정치인들은 약자들을 보호해주지 못했습니다. 힘 있는 자들은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았습니다. 죄를 지적하는 예레미야를 잡아 가두기도 했습니다.(렘 37:11-15)

4. 하나님께서는 그가 택한 백성들을 끝까지 사랑하는 분입니다. 채찍을 드는 것은 그들을 바로잡기 위함이지 망하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회개시켜 다시 평안을 누리고 소망을 갖게 하려는 것입니다. 렘 29: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선지자는 “지나온 길을 돌이켜 살펴보고, 우리 모두 주님께로 돌아가자.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열고, 손을 들어서 기도하자.”(애 3:40-41) 라고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회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우고 부름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의지하는 믿음의 결단입니다. 회개할 수 있는 근거는 하나님의 자비와 신실함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그의 자비와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애 3:22-23) 하나님은 기도하고 잠잠히 기다리는 사람에게 응답하시고 구원해 주십니다.(애 3:24-26)

5. 예레미야는 70년을 기다리면 분명 하나님께서 그들을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고 소망을 제시했습니다. 렘 30:17-22 “내가 너의 상처로부터 새 살이 돋아나게 하여 너를 고쳐 주리라. 내가 야곱 장막의 포로들을 돌아오게 할 것이고 그 거처들에 사랑을 베풀 것이라. 성읍은 그 폐허가 된 언덕 위에 건축될 것이요 그 보루는 규정에 따라 사람이 살게 되리라. 그들에게서 감사하는 소리가 나오고 즐거워하는 자들의 소리가 나오리라. 내가 그들을 번성하게 하리니 그들의 수가 줄어들지 아니하겠고 내가 그들을 존귀하게 하리니 그들은 비천하여지지 아니하리라. 그의 자손은 예전과 같겠고 그 회중은 내 앞에 굳게 설 것이며 그를 압박하는 모든 사람은 내가 다 벌하리라. 그 영도자는 그들 중에서 나올 것이요 그 통치자도 그들 중에서 나오리라.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애 5:21 “여호와여, 우리를 돌이키셔서 우리가 다시 주께 돌아가게 하시며 우리를 새롭게 하셔서 다시 옛날처럼 되게 하소서.”

6.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은 여인은 12년이나 끝없이 괴롭히던 질병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부정한 몸이기에 다른 사람과의 교제도 불가능했고 치료를 위해 재산도 다 탕진했습니다. 예수님은 절망가운데 있던 그 여인을 완전하게 치료해 주었습니다.(막 5:29,34) 회당장 야이로의 딸도 예수님이 도착하기 전에 죽었지만 예수님은 죽었던 소녀의 손을 잡아 일으켜 걷게 했습니다.(막 5:42) 오직 믿음만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부요하게 하려고 가난에 처했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고후 8:9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그 안에 거하는 사람은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그 어떤 문제를 만나도 믿음으로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7. 대면 예배를 준비하지만 회복되기 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두려움과 편안함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바이러스나 모이지 못하는 어려움보다 더 심각한 것은 믿음이 약해지고 교회 공동체의 결집력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이럴 때에 주님과의 교제의 끈이 느슨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의 믿음 없음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하고(막 9:24)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야 할 때입니다. 믿음은 형편에 따라 달라지거나 자기 생각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믿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믿음은 대면이든 비 대면이든 삶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처음 믿음으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8. 오늘은 아버지날입니다. 각 가정의 아버지들이 이런 절대 믿음으로 가정을 세우고 하나님의 나라를 대물림하기를 축복합니다. 아버지는 가정을 위한 복의 통로입니다. 정직하고 흠 없이 사는 의로운 아버지를 모신 자녀는 복이 있는 자입니다.(잠 20:7) 의로운 아버지들이 자녀를 위해서 믿음으로 복을 빌고 또 주의 말씀으로 예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다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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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의 확장. (막 4:26-34)

1.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여러 비유로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들을 귀가 있는 사람만이 그 말씀의 의미를 듣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에게는 따로 그 비유의 말씀을 설명해 주기도 했습니다.(막 4:33–34). 오늘 말씀에는 작은 생명체인 씨앗이 땅에 뿌려져 싹이 트고 자라는 것을 잘 알지 못해도 땅이 그것을 키워내고 결국 큰 그늘이 되어 생명체가 쉬어갈 수 있을 만큼 자라게 되는 것처럼 천국도 그렇게 영적 생명력을 통하여 확장된다는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구약에서 강대국의 세력이 하늘에 닿을 정도가 되어 주변 나라들이 도움을 청하게 되는 것을 말하려고 심겨진 나무가 크게 자라서 공중의 새들이 날아와 깃든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겔 31:6)

2. 씨앗은 땅속에 들어가 죽어야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습니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이것이 영적인 일에도 적용됩니다. 예수님은 한 알의 씨처럼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그가 죄인들을 위해 죽음으로 믿는 사람 모두를 살게 하는 생명나무가 되었습니다.(창 3:22-24, 계 22:1-2) 죄 짐을 지고 탄식하는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자유를 얻고 참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마 11:28) 누구든지 그 안에 깃들면 보호를 받고 새롭게 됩니다.(고후 5:17). 이 땅에서의 문제도 해결되고 죽을 때에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으로 옮겨집니다.(고후 5:1) 예수님은 구원을 위한 씨앗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늘권세를 버리고 낮고 천한 세상에 오시어 자기 몸을 둘 곳 없는 나그네로 지냈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거하며 목마름과 피곤함을 경험했습니다. 오직 아버지만을 드러내고 그의 뜻에 순종하였습니다. 죄인들을 위해 죽어 영원히 사는 생명나무의 싹을 틔웠습니다.

3.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은 자기들 생각대로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메시아가 힘 있는 군주로 등장하여 정치해방을 이루고 태평성대를 이루어 주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는 메시아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꿈은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소수의 제자들에게 임한 성령의 도움으로 천국의 기쁨은 다시 확산되었습니다. 죽은 후에 가는 천국만이 아니라 날마다 주님과 함께 하는 동행의 즐거움을 배웠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부활하여 생명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했습니다. 그들의 희생은 또 다른 씨앗이 되어 많은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땅을 넓혀가는 것보다 주님과 동행하는 관계의 성숙함입니다. 믿음이 자란다는 것은 얼마나 주님과 친밀한 관계에 있는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4. 천국은 장차 완성될 것이지만 이미 우리가운데 임한 것이기도 합니다.(눅 17:21)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셨습니다.(갈 3:13) 그의 대속의 죽음을 통하여 죄인들이 변하여 천국백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변화된 사람들의 생활간증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성장하고 확장되어 갑니다. 성령강림으로 태어난 신약교회는 일상생활 속에서 구원의 감격을 나눈 보통사람들 때문에 날마다 흥왕했습니다.(행 2:44-47) 사도들에게 복음을 배운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가르치고 전했습니다. 날마다 모여 예배하고 기도하며 서로 돌보았습니다.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소문이 났고 그 천국복음은 확장되어 오늘 우리에게까지 들어왔습니다. 작게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가 크게 확장되었습니다.

5. 천국은 하나님이 계시는 영광스런 곳입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영광과 보좌 앞에서 찬양하는 천사들을 보고는 그 거룩함과 대조되는 자신의 죄를 보았습니다. 죄를 용서해 주시는 은혜를 경험하고는 부름에 즉각 응답했습니다.(사 6:1-8) 사도요한도 천군천사의 찬양소리로 가득한 빛나고 높은 보좌가 있는 천국을 보았습니다. 제한된 언어로 다 설명할 수 없기에 요한은 벽옥이나 수정 같이 맑은 보석으로 꾸며있고 해나 달의 빛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찬란하게 빛나는 곳이라고 설명했습니다.(계 21:23-26) 천국은 하나님의 임재와 그의 영광이 있는 곳입니다. 눈물도 없고 아픔이 없는 곳입니다. 생명나무 과실에 열매가 풍성하고 생명수 강물이 흘러넘치는 곳입니다.(계 22:1-2) 우리는 장차 들어갈 천국을 오늘 여기서 맛보며 삽니다. 성령께서 내주하는 거룩한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는 천국의 모형입니다.(엡 2:22)

6. 복음을 믿고 천국의 기쁨을 누리던 선배들을 통하여 37년 전에 보스톤중앙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교회를 통하여 복음의 능력을 맛보았습니다. 예수를 믿고 새 생명의 능력을 삶으로 살아내고 여러 가지 어려움을 인내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넓혀왔습니다. 이민 환경이 예전 같지는 않지만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는 구원의 길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분이며 택한 성도들을 사용하여 일하는 분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따르며 성령의 감동에 순종하는 교회입니다. 먼저 경험한 은혜를 삶을 통하여 전하고 가르치기를 힘씁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계속될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과 다음세대를 말씀으로 새롭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소그룹에서의 진솔한 나눔과 성령으로 충만한 예배를 더욱 사모합니다. 문화센터를 통하여 이웃을 섬기고 선교사님들과 함께 멀리 있는 주님의 백성들과도 함께 일할 것입니다.

7. 우리의 노력으로 천국을 만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자라고 열매 맺는 일은 전적으로 씨앗에 있는 생명력과 땅과 환경을 주장하는 하나님의 몫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인 되게 하는 것이 모든 사역보다 우선이라는 것을 압니다. 작은 씨가 자라고 적은 양의 누룩이 밀가루 속의 반죽을 부풀게 하듯이 우리 안에 거하는 성령께서 우리로 자라게 하고 천국을 소망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성령과 함께 하기를 노력합니다. 성장을 멈춘 나무는 말라버립니다. 아니 생명이 없는 씨는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모양과 크기는 달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이 우리에게 있고 하나님 나라의 생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살아있는 생명은 반드시 자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아는 일에 충만한 분량에 이르도록 성장하고(엡 4:13) 우리 안의 천국도 더 성장하고 확장될 것입니다.

8.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새로운 피조물이 된(고후5:17) 우리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마 28:19)는 복음전도의 명령 앞에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라는 책임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씨앗이 언제 자라는지 모르지만 그 결과로 보여주는 것처럼 우리들의 생활간증을 통하여 이웃이 죄에서 자유하게 되고 소망을 얻고 치유와 회복이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주님을 자랑하기만 하면 주님께서 친히 사용하실 것입니다. 주님이 힘주시는 은혜로 우리 모두가 이 일에 쓰임받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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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이 주는 유익(고후 4:16-18)

1. 요일 4:10을 보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택한 자기백성을 끝까지 사랑하는 분입니다. 아담이 사단의 꾀에 넘어가 죄를 짓고 죽게 되었을 때에도 그냥 내치지 않았습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후손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말씀으로 구세주를 약속해 주셨습니다.(창 3:8-15) 그 약속대로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은 사람의 아들이 되어 여자의 몸을 통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는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 피 흘려주셨습니다. 마귀를 결박하고 율법의 저주와 사망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도록 묶인 것들을 끊어주셨습니다.(막 3:27) 죄의 결과는 죽음이지만 하나님의 선물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주는 영생입니다.(롬 6:23)

2. 십자가 대속의 죽음과 부활의 승리를 이해하면 우리가 겪는 어려움들에게 지지 않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들을 새로운 존재로 회복시켰고 부활의 능력과 소망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것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임재와 일하심을 경험하게 했습니다. 이 믿음이 모든 시험과 어려움들을 인내하고 극복하게 합니다. 고난을 통과하며 정금같이 단단한 믿음으로 단련됩니다. 고난 때문에 재림 때에 받을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더욱 바라보게 되고(벧전 1:3-7) 시험을 극복하도록 도와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고난을 통하여 얻는 유익이 있다는 것입니다.

3. 바울은 복음을 생활로 실천한 사람입니다. 교회를 핍박하던 사람이 복음을 전하는 자로 부름 받았다는 것을 항상 감사했습니다. 사도로 부름 받은 것이 사람들의 권면이나 부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갈 1:1) 그러기에 자신에 대하여는 날마다 죽고 자기 안에서 예수께서 대신하여 사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갈 2:20) 자기는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간직한 질그릇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고 모든 능력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고 겸손한 자세를 취했습니다.(고후 4:7) 그는 복음 때문에 고난을 받았지만 그것을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고난을 통하여 복음이 전해지기에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고백했습니다. 살고 죽는 것보다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일에 삶의 이유를 두었습니다.(빌 1:19-21)

4. 고난은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겉 사람이 약해지는 만큼 속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배우는 긍정적인 은혜가 있습니다.(엡 4:15) 아버지의 재산을 챙겨 집을 나간 탕자에게 실패와 배고픔은 아버지 집으로 다시 돌아가게 하는 복된 기회가 되었습니다.(눅 15:17-18) 우리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철저하게 자신에 대하여 무너지는 때가 하나님의 구원을 얻는 때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했고 인격 모독을 당하기도 했습니다.(행 16:23) 교인들로부터 사도로 인정받지 못하는 가슴 아픈 일도 있었습니다. 거기에 자기 몸에는 찌르는 가시 같은 지병이 있었습니다. 이런 어려운 처지에서 바울은 하늘 소망을 굳게 붙들었습니다. 장차 받을 영광을 생각하면 지금 받는 고난은 오히려 가벼운 것이라고 역설적인 고백을 했습니다.(고후 4:17-18)

5. 욥이 당한 고난도 우리는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의인이 가족과 재산과 건강을 다 잃고 고통 가운데 처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욥은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23:10)고 하나님에게 마음을 두었습니다. 고난을 불평하지 않았고 인내하고 감사했습니다. 우리가 약할 그때가 바로 주님의 강함을 경험할 수 있는 때입니다. 자신에 대하여 죽어야 부활하신 주님이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고난은 주님의 법도를 배우게 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을 체득하게 합니다.(시 119:71)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기에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 앞에 무릎을 꿇게 합니다.

6. 믿음은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섭리는 하나님 아버지가 자녀들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서 돌보고 다스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기에 섭리를 믿는 성도는 신실한 부모의 돌봄을 받는 아이처럼 하나님의 자상한 보호와 인도를 받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의지하고 마음이 한결같은 자에게 완전한 평안을 주십니다.(사 26:3)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신 주인이기에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은 허락하지 않습니다. 혹 테스트가 필요할 때에라도 피할 길을 주어 그것을 감당하도록 도와주십니다.(고전 10:13) 요셉은 형들에 의해 애굽으로 팔려와 온갖 고난을 당했지만 하나님께서 자기를 미리 애굽으로 보내 가족을 구원하게 한 것이라고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습니다.(창 50:15-21)

7. 송병주 목사의 <오후 다섯 시에 온 사람>이라는 책에 한 어머니의 간증이 나옵니다. 청년 시절 선교사를 꿈꾸던 그녀가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 셋이 모두 중증장애인으로 태어났습니다. 그 어머니는 ‘내가 사명을 다하지 못해서 벌을 받는 것인가?’라는 생각으로 괴로웠습니다. ‘하나님께서 벌하는 것이라면 어린 아이들에게는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답니다. 어느 날 기도 중에 이런 생각을 주셨답니다. “미안하다 내 딸아. 이 세상에 꼭 보내야 할 약한 세 영혼이 있는데 너라면 잘 맡아줄 것 같아서 네게 보냈다. 네게는 참 미안하구나 하지만 잘 부탁한다.” 이 음성을 듣고는 한 없이 울고 또 감사했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믿어주셔서 누군가에게 와야 할 세 천사들을 내게 선물로 주셨구나.’하고 말입니다.

8. 고난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무엇을 먹고 마시며 어떻게 인생을 즐길까를 고민하는 세상과 어울려 살지만 우리는 그것보다는 어떻게 주님을 기쁘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성령의 깨닫게 해주시는 은혜가 있었기에 주님을 믿게 되었고 그 성령의 동행과 인도하심이 있었기에 오늘까지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삶의 무거운 짐과 얽매는 죄는 벗어버리고 우리 앞에 놓인 이 달음질을 계속해 갑시다.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 자이신 예수님을 한 눈 팔지 말고 바라보면서 말입니다.(히 12:1-2) 어려운 때이지만 그러기에 더욱 하나님을 가까이에서 경험하는 복된 시간이 되기 바랍니다. 복음은 두 가지 결론에 도달합니다. 믿는 자에게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지만 거부하는 자에게는 영원한 형별이 됩니다.(롬 1:16,24) 어려움 속에서 오히려 더 진솔하게 감사할 수 있는 영적 훈련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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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을 수행하려면(사 6:1-13, 요 3:14-17)

1. 나라를 위해 사명을 감당하다가 죽은 사람들을 추모하는 메모리얼데이를 맞습니다. 그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기에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일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국가가 이날을 공휴일로 정하고 그들을 추모하는 것도 그들의 수고에 감사하며 우리의 책임을 감당하여 오는 세대도 자유와 평화를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들의 희생이 나의 삶에서 아름다운 열매로 맺어지게 하는 것이 보답하는 일일 것입니다. 영적군사로 사는 우리들이기에 하나님이 요구하는 사명을 바로 알고 수행하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로 일하기 전에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맛보고 자신의 죄를 용서받는 과정이 있었음을 살펴보며 우리에게 말씀하는 주의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2. 이사야는 높은 보좌의 영광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긴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했고 거기에는 세상의 어떤 왕들에게서 볼 수 없는 영광과 권위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이 온 세상을 다스리는 크신 왕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환상이었습니다. 이사야가 이런 환상을 본 것은 웃시야 왕이 죽던 해였습니다. 웃시야는 왕이 되어 52년간을 유다의 왕으로 일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보기에 정직하게 행했고 그 결과 경제와 군사력이 막강해졌습니다. 그러나 교만한 마음이 생겨 제사장이 주관하는 제사를 직접 드리려고 했습니다.(대하 26:16) 그것을 만류하는 제사장에게 화를 냈다가 이마에 문둥병이 생겼고 그 이후 줄곧 격리생활을 하다 죽었습니다.(대하 26:21) 급변하는 시대에 큰 지도자를 잃고 불안해하는 때에 여전히 세상을 다스리는 왕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이사야에게 보여주었습니다.

3. 이사야는 하나님의 영광을 감히 바라볼 수 없었습니다. 하늘의 천사들이 두 날개로 얼굴을 가리고 두 날개로는 발을 가리고 두 날개로 날면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천사들의 찬양 소리로 성전이 흔들렸고 그 안에 연기가 가득했습니다.(사 6:4) 하나님의 거룩함은 인간이 가까이 할 수 없는 하나님의 본질이며 성품입니다. 그 거룩한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을 보여줄 때에는 그 앞에 엎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시 57:5) 라고 경배한 선배들처럼 말입니다. 레 11:45에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 11:45)라고 요구한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주는 죄의 용서와 거룩함의 회복이 절대 필요합니다.

4. 천사들이 찬송할 때에 문지방의 터가 요동했습니다. 하나님이 나타날 때는 항상 그런 위엄과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시내 산에 강림하실 때에도 땅이 요동했습니다. 산에 연기가 가득했는데 마치 옹기가마 연기같이 떠올랐고 땅이 크게 진동했습니다.(출 19:18) 구름과 연기는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주는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하는 것이며 거기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려주는 표시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를 지날 때에 하나님은 구름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했고 성막을 봉헌할 때도 구름으로 나타나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한 것을 알게 했습니다.(출40:34) 이사야는 바로 그 영광가운데 임하신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5.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은 신비로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두려운 일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자 자신의 죄가 더 크게 보여서 죽을까봐 두려웠습니다. “재앙이 나에게 닥치겠구나! 이제 나는 죽게 되었구나!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인데, 입술이 부정한 백성 가운데 살고 있으면서, 왕이신 만군의 주님을 만나 뵙다니!”(사 6:5) 하나님의 완전무결한 거룩함과 영광 앞에서는 누구든지 그렇게 엎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삼키는 소멸하는 불이며 질투하는 하나님이기에(신 4:24) 죄 가운데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는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출 33:20) 그러나 그 하나님을 만나야 인생의 가치가 새로워지고 질 수 있습니다.

6, 이사야는 자기 입술의 부정함을 그렇게 탄식하며 회개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입으로는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영화롭게 했지만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멀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들은 말을 흉내 내는 것일 뿐이었습니다.(사 29:13) 그런 형식적인 신앙생활이 만연한 백성들과 어울려 살던 이사야이기에 자신도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하나님을 떠나 죄로 가득해진 우리시대의 불신앙을 가슴치고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도 어느 사이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거룩함에서 멀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죄를 용서 받지 않고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금식하고 슬퍼하는 마음으로 마음을 찢어야 합니다. 세상으로 향하는 우리의 관심과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은혜롭고 자비로우시며 우리를 불쌍히 여겨서 재앙을 거두기도 하기에(욜 2:12-13) 우리 자신과 시대의 죄를 철저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7.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사야에게 천사가 핀 숯을 가지고 와 그의 입술에 대어 죄를 깨끗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가겠는가’ 하고 묻자 이사야는 ‘내가 여기 있습니다. 나를 보내십시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런 마음은 그가 하나님을 만나고 죄로부터 자유하게 되었기 때문에 생겼습니다. 은혜를 경험하고 나니 자신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사야는 나라가 멸망한다는 절망적인 소식을 전해야 했습니다. 성읍이 황폐하게 되고 사람들은 죽고 땅도 황폐해지고 적국의 포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루터기처럼 남은 소수의 사람들을 사용한다는 실 날 같은 소망이었습니다.(사 6:13) 사명을 감당하는 용기는 죄 용서의 확신에서 나오며 그것은 하나님이 은혜로 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음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맡겨 주셨습니다. 삶의 간증을 통해 또 다른 사람들도 화목의 은혜를 누리게 하라는 것입니다.(고후 5:18-19)

8.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달려 죽은 그리스도를 다시 살려냈고 높이 세워 만유의 주가 되게 했습니다.(빌 2:9-11)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 구원의 길을 여셨고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했습니다.(요 3:16-17) 그리고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주시어 교회에 충만하게 했습니다.(행 2:23-24, 33) 우리에게도 성령을 충만하게 주시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심을 알게 합니다. 그리고 이 타락한 시대에서 살며 예수 생명의 능력을 전하게 합니다. 오직 성령께서 주는 힘으로만 가능한 일입니다.(행 1:8) 우리 모두가 죄의 용서와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고 성령께 순종하여 복음전도의 사명을 담대하게 수행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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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께서 하는 일 (행 2:1-4, 겔 37:1-14) 성령강림주일, 맥추감사

1.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이 광야를 지나 시내산 앞에 진을 쳤을 때에 하나님은 모세를 산으로 불러(출 19:2-3) 이스라엘이 지킬 법과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모든 나라들 중에서 특별한 존재로 세워 거룩한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출 19:5-6)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켰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 아니라 먼저 은혜를 베풀어 선택해 주셨습니다.(신 7:6-8) 창 12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복이 되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것은 전적인 은혜이며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근거한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후의 사람들이 연약하고 실수가 많았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과의 약속 때문에 그들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2. 하나님의 구원은 그들이 율법을 잘 지켜서가 아니었습니다. 율법을 주기 이전에 이미 유월절 희생짐승의 피로 그들을 구원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주신 생활지침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먼저 선택하여 구원해 주셨기에 가나안에 들어가 거룩한 제사장 나라로 살며 하나님을 바로 섬기도록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출 19:5, 6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그들이 가나안에서 하나님의 법대로 살면 제사장 역할을 하게 될 것이고 법을 어기면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 것은 당연했습니다. 그렇다면 율법을 지키지 못한 이스라엘의 불신앙 때문에 하나님의 부름과 약속이 흔들리는가 하는 질문이 생깁니다. 초대교회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가르침보다 율법도 준수해야 한다는 유대주의자들의 잘못된 가르침 때문에 흔들렸습니다.

3. 사도 바울은 이 문제로 갈라디아 교인들을 책망했습니다. 갈 3;5-8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주시는 근거는 율법을 지키는 의로운 행위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는 믿는 믿음 때문입니다.(갈 3:5)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얻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공로나 행위를 자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엡 2:8)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결코 후회가 없으며 하나님은 그 어떤 경우에도 택한 백성을 버리지 않습니다.(롬 11:29)

4. 하나님께서는 이 은혜를 주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대신 죽게 했습니다. 그는 율법이 요구하는 죄의 값을 십자가 죽음으로 대신 갚아주셨고 죄의 결과로 오는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마귀의 일을 멸하고 하나님을 알게 하고 그 나라를 소망하게 했습니다.(요일 3:8) 율법 앞에서 모든 사람은 불완전한 죄인이며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는 존재입니다. 죄로 죽어야 할 존재이기에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자랑할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롬 3:23)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믿음을 보고 구원하고 생명을 누리게 합니다.(요 3:16) 그리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구하는 기도를 들어주십니다.(요 14:13–14) 이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힘입어 오늘 우리가 여기에 있게 되었습니다.

5. 제자들의 연약함을 아는 주님은 그들과 영원히 함께 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보혜사요 진리의 영인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요 14:16–17) 성령께서는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시고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할 때라도 우리를 위하여 안타까운 마음으로 대신 기도해 주십니다.(롬 8:26)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도록 도와주십니다.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요 15:26) 그의 말씀을 기억나게 하고 믿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을 인정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가 주시는 능력을 힘입기 위해서 성령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하나가 되도록 묶는 생활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자신에 대하여 죽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곧 예수 충만 입니다.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님이라고 믿고 생활로 드러내는 것이 전도입니다. 복음전도는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증거이고 전도와 성령 충만은 분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6. 사도행전은 성령강림을 가시적으로 설명하고 교회를 세워 사용하는 성령의 주도적인 사역을 소개합니다. 연약한 사도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일했던 것처럼 이 시대의 교회와 성도들에게도 성령께서 함께 해주십니다. 믿는 자의 수가 늘어나고 하나님이 행하는 구원을 만방에 알게 한 것처럼(행 2:6, 11, 17) 오늘 우리 교회와 성도들의 생활에도 함께 일하십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은 것은 우리 자신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과 모든 피조물도 함께 회복되게 하는 일입니다. 바울은 롬 8:19에서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죄로 사탄의 굴레에 빠지게 되자 피조물들도 주인이 바뀌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죄에서 벗어나 하늘영광으로 옷 입게 될 때 모든 피조물도 바람직하고 행복한 상태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성령 안에서 영적 생활을 하는 것은 우리들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자연 만물까지도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되게 하는 일입니다.

7. 에스겔은 어느 날 환상을 보았습니다. 환상 중에 골짜기에 쌓인 마른 뼈 무더기를 보았습니다. 말라빠진 뼈들에게 하나님이 주신 말씀대로 명령했더니 그 뼈들에게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고 가죽이 덮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 생기에게 명령하자 사방에서 생기가 모여 뼈들에게 들어가고 그것들이 움직여 큰 군대를 이루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이 꿈을 통하여 이스라엘이 마른 뼈처럼 소망을 잃었지만 다시 살아나게 하고 구원하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국 땅에 두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겔 37:14) 죄를 짓고 거룩한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죽은 존재가 되었습니다.(엡 2:1)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다시 살려주셨고 성령을 보내어 그가 주시는 능력으로 살게 합니다.

8. 성령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은 구원의 기쁨을 누리고 마귀의 일을 멸하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게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의 파송을 받아 구원의 일을 한 것처럼 이제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면서(요 20:19-21) 그가 하던 생명 살리는 일을 위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하게 했습니다.(행 1:8) 오늘 우리 안에도 동일한 성령께서 거하십니다. 그 성령께서 우리의 가정과 일터에서 가족과 친구들을 믿음으로 살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은 구원을 감사하고 노래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여 이 시대의 사람들을 살리고 복되게 하려고 부를 때에 성령의 능력으로 그 일을 감당하는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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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으로 얻는 복 (행 10:1-23)

1. 하나님을 모르던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결단하는 것을 보면 참 기쁩니다. 죄 용서를 확신하고 주님과 교제하는 법을 배우고 기뻐하는 것을 보면 우리를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이런 영적 변화들은 자기 힘으로 보다는 성령께서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행 10장에는 베드로가 부정한 것을 집어먹으라는 음성을 세 번이나 듣고 고민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먹을 수 없다고 항변하는 베드로에게 하나님이 깨끗하게 한 것을 더럽다고 하지 말라는 음성이 들립니다. 한편 고넬료도 기도하다가 성령의 지시를 받고 베드로를 청하여 말씀을 듣게 됩니다. 베드로가 성령의 지시에 순종하여 이방인의 집에 가서 설교하자 그 곳에 성령께서 임하셨고 고넬료의 모든 식구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2. 베드로와 유대인 신자들은 이방인에게도 동일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유대인은 물론이고 이방인도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고넬료의 식구들에게 성령의 임하자 그들도 방언을 하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같은 성령을 주신다고 믿고 그 가정의 모든 식구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이 일로 예루살렘 교회가 논쟁을 하게 되고 교회는 심사숙고한끝에 이방지역의 교회에게 이렇게 알렸습니다. 행 15:28-29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더 이상 유대인들이 지키는 율법이나 할례의식을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강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성령께 순종하여 이방인을 구원하는 하나님을 경험했고 고넬료의 순종은 가족구원을 이뤘습니다. 교회의 순종은 이방선교의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3. 예수님은 제자들을 훈련하여 파송할 때 그들만 내보내지 않았습니다. 병 고치는 능력과 귀신을 쫓는 권세를 주어 복음을 전하게 했습니다.(눅 9:1-2) 그가 승천하실 때에도 제자들을 고아처럼 버리지 않고 보혜사 성령을 보내겠다고 약속했습니다.(요 14:16) 이 약속을 믿고 기다리던 제자들은 오순절 날에 임한 성령을 충만하게 받았습니다. 이렇게 보면 예수님은 지상에 계실 때는 물론이고 지금도 성령을 통하여 교회를 사용하여 일하고 계십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주님이 함께 하겠다고 약속한대로(마 28:18-20) 주님은 성령으로 그들 가운데 오셨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며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회개의 복음을 전하게 합니다.(눅 24:47) 비록 우리가 주님의 몸을 만져보거나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교회가 전하는 복음의 열매와 교회가 행하는 세례와 성찬을 통하여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4.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아래 굴복시키고 그를 교회의 머리로 삼았습니다.(엡 1:20-23) 그리고 우리로 그의 몸을 이루는 지체가 되게 했습니다. 그의 능력의 손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이어갈 후사로 삼으셨습니다.(롬 8:17) 복음을 전하여 죄인들이 회개하고 영생을 얻게 하는 증인의 일을 맡겨주셨습니다.(행 1:8) 계시록에서는 성도들이 예수님과 함께 왕 노릇하게 될 것을 말했습니다.(계 20:4-6) 주님은 지금도 교회를 사용하여 죄인들이 회개하고 의롭게 되는 구원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우리를 불러 사용하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며 예배하는 것입니다.

5.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기 전날 밤에 제자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인 것처럼 제자들도 주님과 하나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악에 빠지지 않도록 보전해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요 17:11,15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주님은 진리이신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십자가를 짐으로 자신을 거룩하게 구분했습니다. 그와 같이 제자들도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여 진리 안에서 거룩하게 되기를 기도했습니다.(요 17:17-19) 그들의 사역을 통하여 믿게 될 미래의 신자인 우리들을 위해서도 그런 은혜가운데서 보전해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6.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알려주고 태초부터 말씀으로 계시던 자신을 믿게 했습니다.(요 1:1)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다(마 11:27)고 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는 영생이 있다는 것을 알게 했습니다. 요일 5:11-13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사도들은 이 복음을 믿고 전했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여 듣는 자들이 말씀을 이해하고 믿게 되었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함께 모여 한 몸을 이루고 같은 신앙고백을 했습니다.(엡 4:4)

7. 성령께서는 거듭난 성도들과 함께 하십니다. 다락방에 모였던 백여 명의 사람들은 급하고 강한 바람소리 같은 것을 들었고 각 사람위에 임한 불을 보았습니다. 술에 취한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을 만큼 기쁨으로 충만했고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각 지역의 말로 복음을 말했습니다.(행 2:2-4) 베드로의 자상한 상황설명과 설교를 듣고 사람들의 마음에 찔림과 회개가 일어났습니다. 그날에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고 믿는 자가 삼천 명이나 생겼습니다. 교회는 날마다 모여 기도하고 말씀을 듣고 서로 사랑하며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었습니다. 사람들은 교회를 주목했고 광고하지 않아도 자기발로 찾아와 사도들이 전하는 말씀을 듣고 회개하고 새롭게 되었습니다.(행 2:43-47)

8. 성령께서는 죄인을 불러 회개시켜 예수를 주로 믿게 합니다. 거듭난 자에게는 구원받은 자답게 순종하며 살도록 믿음과 힘을 주십니다. 다시는 자기욕심이나 유혹에 넘어지지 않도록 지켜주십니다. 완전무장하고 싸움터에 나가는 군인처럼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영적인 싸움을 지속하게 합니다.(엡 6:11)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여 주님을 모신 거룩한 성전으로 살게 합니다.(엡 2:21) 머리이신 주님을 모시고 주의 몸을 이루는 지체로 살게 합니다. 복음으로 변화된 생활을 하여 또 다른 사람이 변하도록 사용합니다. 이것이 성령께서 주시는 능력이며(빌 4:13) 순종할 때에만 누릴 수 있는 영적 복입니다. 우리 모두가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여 영과 육이 잘되고 성령과 함께 일하는 복을 누리기 바랍니다.(요삼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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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가정생활 (엡 6:1-4) 어버이주일

1. 요즈음 사무엘서를 묵상하며 사무엘의 출생이 하나님의 특별한 개입으로 이루어진 것을 봅니다. 엘리 제사장과 그의 아들들이 타락하여 점점 하나님의 눈 밖으로 밀려날 때에 사무엘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인정받으며 자라고 있었습니다. 사사시대의 사람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자기들 보기에 좋은 대로 살 때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믿음의 사람을 준비시키고 있었습니다. 노아시대에도 하나님을 거부하고 죄를 짓던 사람들은 심판받았지만 의롭게 살던 노아의 가족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항하려고 바벨탑을 쌓을 때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흩어버리고는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새 나라를 세우려고 아브라함을 부르십니다, 땅의 모든 민족들이 아브라함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고 섬기며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창 12:1-3)

2. 하나님의 약속은 아브라함의 혈통에서 난 아들을 통하여 이어졌습니다. 아브라함이 늙어 생물학적인 능력이 없어질 때쯤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아들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인도하심에 의해 이삭이 태어납니다. 이삭에게 인간적인 연약함과 모난 것들이 있었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주었던 약속을 기억하고 그를 사용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이 대를 이어 아브라함의 약속을 붙들었고 하나님은 그들을 계속 사용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한 생명이 세상에 태어나고 부모세대의 믿음과 약속을 이어가는 것은 특별한 은혜입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부모를 사용하여 자녀들이 세상에 태어나게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자녀들은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들은 자식을 노엽게 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가정 안에서 권위에 복종하고 서로 용납하고 사랑하는 것을 배우고 연습하게 했습니다.

3. 아버지의 수치를 가려준 노아의 아들은 복을 받았지만 그것을 들추어낸 아들은 저주를 받았습니다.(창 9:25-27). 룻은 늙고 가나해진 시어머니를 무시하지 않고 끝까지 존경하고 따랐습니다. 어머니가 섬기는 하나님을 함께 섬기다가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는 복을 누렸습니다. 레 19:3에서는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행해야 할 거룩한 일들 곧 안식일을 지키고 우상을 피하고 하나님께 제사 하는 거룩한 일들을 하기 전에 먼저 부모를 경외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부모를 때리거나 저주하는 자식은 죽이라고 했고(출 21:16-17) 부모를 거역하고 술 취하고 방탕한 아들은 돌로 쳐 죽여 공동체 안에서 악을 제거하라고 했습니다.(신 21:18-21) 예수님도 십자가를 질 때에 어머니를 걱정하며 제자에게 부탁했습니다.(요 19:27) 바울도 부모 공경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요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엡 6:1-3) 부모를 존경하고 공경하는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입니다.

4. 누군들 부모 없이 세상에 태어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모를 통하여 생명을 태어나게 하기에 모든 부모는 하나님의 대행자입니다. 자녀들은 부모를 통하여 세상살이를 배우고 또 예수 믿는 제자로서의 영적 생활도 배웁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에서는 신 6장의 말씀이 가정생활의 기준이 되게 해야 합니다. 신 6:5-9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그의 말씀이 삶의 기준이 되도록 본을 보이고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흐름이나 부모의 개인적인 경험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본을 보이고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5. 창 22장의 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들 이삭의 관계를 보십시오.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해서 아버지와 함께 산에 오르는 이삭의 눈에 번제로 사용할 어린 양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버지 번제로 사용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요?” “응, 하나님이 준비해 주실거야.‘ 이삭은 아버지가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을 옆에서 보고 배웠기에 제사를 어떻게 드리는지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이렇게 부모를 통하여 생활 속에서 배우는 것입니다. 늦게 얻은 아들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을 받고 순종하려는 아브라함의 마음이나 아버지 손에 꽁꽁 묶여 제단에 올려지면서도 반항하지 않는 아들 이삭의 하나님 신뢰는 참으로 대단합니다. 하나님을 이렇게 신뢰하고 믿을 수 있다면 살고 죽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어떻게 세상에서 성공할 것인지를 더 이상 염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나님만 절대 신뢰하는 사람을 사용합니다.

6. 하나님은 부모들에게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는 막중한 권한을 위임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부모들이 제사장의 마음으로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창 28:6) 마치 제사장들이 백성들을 위해서 중보하며 기도하는 것을 들어주신 것처럼 부모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민 6:23-27) 그러니 부모들은 자녀들을 위해서 주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예언할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창 49:1) 하나님은 하나님만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과 그의 후손 천대까지 은혜를 베풀겠다고 약속했습니다.(출 20:6)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에게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복을 약속했습니다.(엡 6:1-3) 그러므로 부모들은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청지기의 마음으로 자녀를 양육해야 합니다. 화내지 않고 성령으로 충만하여 권면하는 것이 믿음의 자녀를 만드는 길입니다.(엡 6:4) 그것이 빛과 소금으로 사는 것이고 생명의 길과 방향을 제시하고 교육하는 일입니다. 부모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자녀를 양육하고 자녀들은 하나님께 하듯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분명 하나님의 뜻입니다.

7. 딤후 3: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초기 교회 때부터 이미 사람들의 마음은 자기만을 위한 교만한 삶을 추구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사는 지금 세상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동안 지켜오던 전통과 형식과 권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지도자들에 대한 존경은 물론이고 부모의 권위조차 사라진 때입니다. TV나 인터넷과 같은 미디어는 권위에 도전하는 것을 자기 개성이 있다고 부추깁니다. 결과적으로 세상은 자기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인정하지 못하게 합니다. 부모공경을 방해하고 권위에 순종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하나님을 인정하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에 둔 가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잠 23:22,25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부모공경으로 하나님께 쓰임 받는 가정들이 되어 기쁨을 대물림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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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맺는 열매 (요 15:1-12)

1. 날이 풀리고 농사철이 되었습니다. 선교관에는 포도나무도 있고 여러 종류의 베리 나무도 있습니다. 올 봄에는 대추나무와 감나무 묘목을 추가로 심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아직 새싹도 나오기 전인데 제 머리에는 주홍색 감과 주먹만 한 대추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나무가 보인다는 것입니다. 농부의 마음이 이런 것인가 봅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 비유의 말씀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탐스런 포도열매를 기다리는 농부로 표현했습니다. 자신을 원줄기로 그리고 예수 믿는 우리들을 거기에 붙어 열매를 맺는 포도나무 줄기로 설명했습니다.

2. 이사야서 5장을 보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좋은 포도원이 있어 땅을 파서 돌을 없애고 제일 좋은 포도나무를 심었다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가 그 곳에 망대를 세우고 포도즙 짜는 틀도 만들고 좋은 포도가 맺히기를 기다렸지만 쓸모없는 들 포도가 맺혔다고 한탄합니다. 그래서 울타리를 헐어버리고 짐승들에게 짓밟히는 풀밭이 되도록 내버리겠다고 합니다. 가지치기나 거름 주는 것을 더 이상 하지 않고 가시가 나고 황무지가 되도록 버려두고 비도 오지 말라고 구름에게 말하겠다고 그 답답한 심정을 노래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의 배반과 열매 없음을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사 5:7 “이스라엘은 전능하신 여호와의 포도원이며 유다 사람은 그가 심은 포도나무이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공의를 행하기를 바랐지만 그들은 살인을 일삼았으며, 여호와께서 선한 일을 기대하셨으나 고통당하는 자들의 부르짖는 소리뿐이었다.”라고 고발하고 있습니다.

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불러 세우고 극상품 포도나무 열매를 기다리는 농부처럼 열방을 구원하는 일에 함께 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인들이 섬기는 우상을 섬기며 온갖 죄를 지으며 들 포도와 신 포도를 맺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을 버려 황무지가 되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옛 포도나무인 이스라엘을 버리고 다시 참 포도나무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속의 일을 이루셨습니다. 더 이상 율법을 지킴으로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믿음으로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가 구원에 이르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참 포도나무인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 양분을 흡수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떡(요 6:48), 세상의 빛(요 8:12), 양의 문(요 10:7), 선한 목자(요 10:11), 길과 진리와 생명(요 14:6)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에게 붙어있을 때에만 생명의 능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가 이루신 십자가의 공로를 믿음으로 그와 하나 될 수 있습니다.

4. 2-4절을 보면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라고 말씀합니다. 농사의 기본적인 조치입니다. 죽은 가지는 잘라내고 건실한 가지도 더 좋은 열매를 위해서 가지치기를 합니다. 구약 성도들은 율법을 목숨처럼 여겼지만 지키지 못했습니다.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와 연합되어 있을 때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 공로 때문에 죄 없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책망 받을 것이 없는 온전한 성도로 인정받습니다.(골 1:)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모든 죄를 덮어주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하며 그에게 붙어있어야 할 이유입니다.

5. 7절은 어떻게 붙어 있을 수 있는지를 알려줍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예수님과의 영적인 교제가 없으면 그것은 이미 원줄기에서 끊어진 것이고 버려질 존재가 된 것입니다. 예수 안에 거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삶의 목적으로 삼는 것입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함께 하는 예수님을 날마다 인정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내 문제를 해결해 줄 도움이 필요해서 예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주인이신 그분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쉽지 않은 결정입니다. 예수 믿고 세례를 받고도 이런 헌신이 두려워 뒤로 물러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밭에 감추어진 보물을 발견한 농부는 자기 소유를 다 팔아서라도 그 땅을 소유하는 것입니다.(마 13:44-46) 예수님만 소유하면 그 안에 있는 모든 보물을 소유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의 교제를 추구하지 않으면 모양만 갖춘 신앙생활을 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기보다 열매에 대한 부담과 중압감으로 형식에 매인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6. 하나님은 자신의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여주셨습니다. 아들을 화목제물로 희생시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로 막혔던 담을 허물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일 때 아들을 희생시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롬 5:8) 그의 대속의 죽음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심판 받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고 오히려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히 4:16) 그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심판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게 합니다. 요일 4:15-16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이 기쁨을 주려고 우리를 불러 여기 있게 하셨습니다.

7. 우리 힘과 노력으로 이것을 터득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께서 우리로 이 사실을 믿게 도우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희생하였음과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는 것을 믿고 고백하게 도와주셨습니다.(요 16:13) 우리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았기에 예수 안에 살기를 원하고 그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한 피 받아 한 몸을 이룬 형제로 살아갑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있다는 증거요 열매입니다.(요일 4:2, 7, 13) 이것이 주님의 제자가 된 증거입니다. 주님은 우리 안에 성령으로 함께 하십니다. 그의 몸과 그의 피가 우리의 육체와 영혼에 들어와 우리와 한 몸이 되어 거하십니다. 성령을 모신 거룩한 성전이 된 우리들은 이제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갈 2:20)

8. 열매는 우리가 맺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거하는 성령께서 맺습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상당히 당황스럽습니다. 우리의 삶에 세속적이고 주님이 기뻐하기 어려운 연약함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그에게 붙어 있다면 뿌리에서 양분을 빨아올려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예수의 사람은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입니다. 성령으로 살면 성령의 열매를 거둡니다.(갈 5:24-25) 우리의 일은 다만 그에게 붙어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영적인 전쟁을 치룹니다.(엡 6:11) 포도나무는 포도를 맺고 감나무는 감을 맺습니다. 예수 안에 살면 그 열매는 당연히 예수의 열매입니다.(요 15:3-5) 우리 모두가 성령이 주시는 열매를 풍성하게 맺어 하나님을 기쁘게 하며 그가 주시는 평강과 기쁨을 누리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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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요 10:1-18)

1.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했습니다. 세례요한이 옥에 갇혀서 제자들을 보내 그가 오기로 약속된 메시아인지를 확인할 때에(마 11:2-6) 예수님은 소경이 보고 앉은뱅이가 걷고 문둥병자가 깨끗해지고 귀머거리가 듣고 죽은 자가 살아나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해지고 있다고(사 61:1) 말하여 자신이 메시아임을 알렸습니다. 예수님은 병든 자들을 고치고 천국복음을 전하며 제자들과 함께 생활했습니다. 하늘 아버지의 권세로 일하며 구약의 예언을 성취시켰습니다. 영적 소경인 유대 지도자들에게 자신의 메시아 되심을 알게 하고 소경의 눈을 고쳐 보게 하고 천국복음을 전했습니다.

2. 요 10장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양의 문’과 ‘선한목자’라고 말했습니다. 들에서 임시 거처에 거하며 방목을 하던 목축현장을 생각하면 양의 문은 양들이 들고 나는 출입문입니다. 목자는 아침에 양들을 밖으로 불러내고 저녁에 그 문으로 몰아넣습니다. 그리고 목자는 그 문을 가로막은 채 잠을 잡니다. 다른 짐승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류를 위한 구원의 문으로 오셨습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 10:9)라고 했습니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가 친히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어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3. 양들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인도하는 목자의 자상한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양들은 목자 음성을 구분합니다. 목자는 자기 양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 인도합니다. 이렇게 목자의 음성에 길들여진 양은 목자의 소리를 분별할 줄 압니다. 안다는 것은 하나가 된 것을 말합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그를 온전하게 아는 것처럼 선한 목자인 주님은 그의 양인 성도들을 온전하게 압니다.(요 10:15) 양들은 타인의 음성은 알 수 없기에 절대 따르지 않습니다.(요 10:3-5) 혹 목자의 음성을 외면하거나 잘못 오해하면 곧 죽음으로 연결됩니다. 타인으로 지칭한 거짓 선생들과 외식하는 자들과 삯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말아야 합니다. 양의 문이 되는 선한 목자가 양들의 생명을 지켜준다면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가는 통로이고 또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얻게 하는 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죄의 용서와 영생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4. 예수님은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요 10:9)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과 상관없으면서도 양들을 미혹하고 믿음에서 떠나게 하는 잘못된 선생들을 말합니다. 사두개인이나 바리새인이나 서기관 같은 유대교 지도자들이 여기 속합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목자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영적소경(요 9:40-41)이었고 절도요 강도(요 10:1)였습니다. 양의 문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자기들의 율법적인 지식과 외식적인 행위를 통해서 구원을 얻으려 했고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양의 우리로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결국 자기들의 이익과 욕심을 채우는 삯군이었습니다. 도둑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망하게 하지만 예수님은 양으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누리게 합니다.(요 10:10)

5.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절도와 강도와 같은 짓을 하면서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먼저 부름 받고 선택받은 특권의식은 강했지만 그들을 불러주신 하나님의 계획을 알지 못했습니다. 귀신의 힘을 빌려 소경을 낫게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과 변론을 자주했고 또 심하게 꾸짖었습니다. “화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 23:27)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 23:33) 예수님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절도와 강도로 부른 것은 그들이 진리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교회역사에 많은 거짓 스승들이 일어나 잘못된 가르침을 가르쳐 성도들을 미혹했습니다. 지금도 성행하는 이단의 가르침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진리이신 예수님을 바로 알고 믿어야 합니다. 구원을 위해서 예수 이외에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습니다.(행 4:12)

6. 예수님은 선한목자입니다. 양들을 이리 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선한목자입니다.(요 10:11) 예수님은 많은 사람의 생명을 얻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고 버린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요 10:17-18) 이것은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 죄의 용서를 주시고 부활하여 죽은 자들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실 것을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이 일을 기뻐했습니다. 양들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참되고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그렇게 자신을 내놓아 아버지께서 주신 대속의 사명을 이루었습니다.(요 10:17-18)

7. 예수님은 태초부터 성부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영원하신 말씀(요1:1-2)입니다. 말씀이신 그분이 육을 입고 세상의 빛으로 오셨습니다.(요 1:9, 3:19) 그를 믿는 자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고(요 4:14) 배부르게 하는 생명의 떡을 줍니다.(요 6:35) 믿는 자 모두를 영생에 이르게 합니다.(요 3:16) 그를 믿는 자들은 진리이신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이며 진리이신 예수님은 믿는 자들에게 참 자유를 줍니다.(요 8:32) 예수님은 천국에서도 성도들을 생명수 샘으로 인도해 주는 영원한 목자입니다.(계 7:17)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고 영생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이미 얻었고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시편 121:7-8)는 말씀을 믿고 붙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8. 예수님은 유대교 울타리에 속하지 않는 다른 양들에게도 관심이 있었습니다.(요 10:16) 이방인의 구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목자의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는 것을 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마음을 알고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헌신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되고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음을(엡 3:6) 전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일을 맡기며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마 28:20) 성부 하나님께서 구약 성도들을 제사장 나라로 세워 가나안으로 보내면서 약속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신 31:6) 주님은 지금 보혜사 성령을 통하여 교회인 우리들과 함께 계십니다. 그러니 주님이 주는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품으십시오. 두려워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주님이 주신 참 평안과 기쁨을 나눠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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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얻는 특권(눅 24:36-49, 행 3:12-19)

1.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을 확신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베푼 은혜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공로를 힘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법적인 변화로 설명했습니다. 엡 3:6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우리의 신분이 바뀌었고 그것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죄인이 아니라 하나님께 입양된 아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는 일에 함께 참여하고 또 하늘기업을 누리는 후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를 힘입어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 사도요한은 이것을 거듭남으로 설명했습니다. 요일 3:1-2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베푸셨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기의 자녀라 일컬어 주셨으니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만,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와 같이 될 것임을 압니다.” 이단의 위협가운데 있던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자녀가 되었음을 알게 했습니다. 장래에 그리스도께서 재림할 때에 그와 같이 영광스럽게 변화될 것이기에 그 소망을 가진 자답게(요일 3:2) 죄와 상관없는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한다고 권면했습니다. 거듭남의 열매를 요구한 것입니다. 당시의 영지주의 이단들은 영적 깨달음을 얻으면 육체는 어떻게 살아도 상관없다며 죄를 지었기 때문에 이것을 경계한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바른 이해와 인식이 없으면 자기 생각대로 살게 됩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기대를 알면 거기에 합당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3. 하나님의 용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할 때에 죄의 용서만이 아니라 우리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했습니다.(요일 3:1) 그가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를 죄에서 벗어나 흠 없고 책망 받을 것이 없는 거룩한 존재로 만드셨습니다.(골 1:22) 이것이 우리가 믿는 복음이며 우리가 누리는 특권입니다.(요일 3:3,5) 거듭난 성도는 빛이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에 빛의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요일 1:5-7) 죄 없는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셨기에 죄와 상관없이 살게 되고 그리스도의 순결함을 따르고 그의 의로움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성도와 함께 거하시는 성령의 내주하심과 인도하심의 결과입니다.

4. 요일 3:9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 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하나님이 씨라는 표현은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분명하게 말해 줍니다. 어떤 씨인가에 따라 열매의 종류가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씨가 성도 안에 존재하기에 하나님의 생명이 거기 있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고 실천하며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거한다.‘ ’머물러 있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성도의 생활을 통해 나타나는 것을 말했습니다.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한 주님께서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 안에 거하기에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거룩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5. 예수님의 제자들은 삼년 동안이나 함께 생활하며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배우고 실습했지만 자기들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그만두고라도 베드로마저 위기의 순간에 예수님을 모른다고 배반했던 것은 인간 한계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모든 사람이 스스로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밝혀주는 것입니다.(롬 3:23) 그러나 부활을 경험하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 이후에는 자기 힘이 아닌 성령의 힘으로 사역할 수 있었습니다.(행 1:8) 이것이 우리가 영적 승리를 하기 위하여 날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 이유입니다. 그가 우리 삶의 주인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6.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두려워하던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들에게 평안을 주시고 죄를 용서받게 하는 회개의 복음을 세상 모든 나라 사람들에게 선포하도록 명령했습니다.(눅 24:46-47) 그들의 약함을 아는 주님은 세상 끝 날까지 그들과 함께 하며 그들 가운데 함께 거하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마 28:20)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자기 모습대로 살던 제자들을 사도로 불러주셨고 그 모습 그대로 주님과 함께 일하게 했습니다. 제자들에게 연약함이 있었지만 오순절 성령 충만을 경험한 후에는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를 통한 죄의 용서와 부활의 복음을 어디서나 담대하게 전했습니다. 약속한대로 주님께서는 성령으로 그들과 함께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담대하게 예수 이름의 권세를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힘으로 가능했습니다.

7. 성전 문 앞에 앉아있던 걷지 못하는 걸인에게 베드로와 요한은 자기들을 바라보게 하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명령했습니다.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자 걷지 못하던 사람이 발과 발목이 힘을 얻어서 뛰고 걷고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걷지 못하던 걸인이 걷고 뛰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자기들의 권능과 경건으로 그 사람을 걷게 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가 그를 걷게 했고 그를 믿는 믿음이 그를 완전히 낫게 하였다고 설교했습니다.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행 3:16) 사도들은 유대인들이 죽인 예수를 하나님 곧 그들 조상들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려내 영화롭게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리고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행 3:19)라고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8. 예수님은 귀신들린 자를 고침으로 공생애를 시작했습니다. 제자들도 예수 이름을 선포하여 걷지 못하던 자를 걷게 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대로 그것은 자기들의 힘이 아니라 사도들의 입을 통하여 선포되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제자들을 통하여 계속 일하셨고 지금은 구원받은 우리를 통하여 일하십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성령으로 제자들과 함께 하신 것처럼 지금은 교회인 우리들과 함께 하십니다. 누구든지 마음을 다해 믿고 의지하면 온전한 구원을 받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갑니다. 성령과 함께 예수 이름의 권세를 선포하여 또 다른 사람을 살려내는 사역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 믿음으로 누리는 특권입니다. 주의 임재의 능력이 여러분의 생활에 분명하게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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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평안 (요 20:19-31)

1.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 그들이 더 이상 무서워하거나 염려하지 않고 평안을 누리게 했습니다. 낙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제자들에게 말씀을 풀어주어 다시 소망을 갖게 했고 부활을 의심하는 제자들에게는 자신의 상처를 만져보고 부활을 믿게 했습니다.(요 20:19-20) 사실 주님은 고난 이전부터 제자들이 어려움을 이기고 평안을 누리기를 원했습니다.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 16:32-33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2. 험한 세상에서 평안을 누릴 수 있는 비결은 주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하였기에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보혜사 성령님과 함께 하면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 능히 환란을 견디게 하고 평안을 누리게 합니다.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성령께서는 연약한 우리가 말씀 안에 거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때로는 격려하고 때로는 책망하며 진리에서 벗어나지 않게 합니다. 우리들을 고아처럼 내버려두지 않고(요 14:18) 영원토록 함께 해주시고(요 14:16)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은 진정한 평안을 주십니다.

3.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전도자로 파송하면서 성령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마귀의 권세를 무너뜨리고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서 성령으로 충만하게 했습니다. 주님께서 몸으로는 떠나 있지만 성령으로 그들과 영원히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 죄가 용서될 것이요, 용서해 주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요 20:21-23) 믿음은 말씀을 듣고 생기는 것인데 먼저 믿은 자들이 전해주지 않으면 죄인들이 용서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됩니다. 그것은 그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먼저 믿은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아주 중요합니다.

4. 교회는 사도들이 전하고 가르쳐준 복음을 듣고 예수께서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고백합니다. 이런 고백은 지나간 옛 성도들과 함께 주님 안에서 거룩한 교제와 사귐을 갖도록 연결시켜 줍니다. 우리들의 사귐은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거룩한 사귐입니다.(요일 1:3) 그래서 교회는 영적 사귐은 물론이고 서로의 필요도 채워주고 함께 짐을 나눠지는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서로 돌보며 믿음으로 행한 선한 일을 보십시오. 행 4:32에 보면 많은 신도가 다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서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거기에는 가난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자기 소유를 팔아 기쁨으로 헌납했고 교회는 그것을 필요에 따라 고루 나누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서로 돌아보는 선한 행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왔습니다.
5. 바울과 실라는 옥에 갇혀서도 기뻐하고 찬송하고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몸은 부자유했지만 영으로 함께 하는 주님을 모셨기에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렸습니다. 그들이 찬송할 때에 지진이 일어나고 옥문이 열리고 묶인 것도 풀어졌습니다. 죄수들이 탈출했을 것이라고 생각한 간수는 자기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여기고 자살하려고 했습니다. 바울일행은 오히려 그를 말렸고 간수는 놀라서 질문했습니다. 선생님 이게 무슨 일입니까? 왜 도망치지 않고 여기 있었습니까? 이제 나는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당신들처럼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까? 바울과 실라의 영적 자세가 간수의 마음을 이미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시오. 그리하면 당신과 식구들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행 16:31)라고 전도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이 평안이 다른 사람을 변하게 합니다.

6. 요셉은 평탄하지 않은 삶을 살았습니다. 형에게 팔려 노예가 되었고 강간범으로 몰려 억울한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그러나 항상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며 믿음으로 사는 요셉은 주님의 평안을 누렸습니다. 감옥에서 정치인들의 꿈을 해석해 준 일로 왕에게 발탁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니 옥살이가 출세를 위한 통로가 되었습니다. 형들에게 당한 배신도 이집트 이민생활을 먼저 시작하게 하여 식구들을 가뭄에서 구하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위하여 모든 상황을 사용하여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롬 8:28) 그러기에 우리 생각대로 되지 않는 형편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두려워하거나 흔들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고백합시다. 고후 4:8-9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 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7. 질병관리본부에서는 코로나 시대에 늘어나는 스트레스 때문에 나타나는 병적 증상들을 발표하고 정신건강 관리를 잘하도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무서움, 노여움, 슬픔, 걱정, 무감각증, 좌절감. 집중장애, 수면장애, 신체적으로 나타나는 병적 증상들, 약물 남용들은 물론이고 우울감이 생기고 삶이 무의미하다고 생각되거나 심지어는 죽고 싶다는 충동까지 느끼는 경우가 많아진답니다. 젊은 학생들도 집에서 공부하는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고 모든 연령대에서 이런 어려움이 고루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부정적인 뉴스를 너무 많이 듣지 말고 대신 지인들과 서로 안부를 묻고 가벼운 운동을 하고 신앙생활을 하라고 권유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서로 돌보고 기도하고 안부하며 교회 공동체의 사랑을 나눠야 할 때입니다.

8. 민수기에 제사장들이 백성들을 축복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민 6:24-26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께서 제사장의 기도를 듣고 백성들에게 평안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부름 받은 성도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주님의 평안을 주변사람들에게 나눠줄 때입니다. 더 적극적으로 문안하고 서로를 돌보며 기도하여 어려운 때를 잘 극복해 나가기 바랍니다. 롬 15:13의 말씀을 우리 교회 공동체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습니다. “희망의 원천이 되시는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믿음으로 기쁨과 평안을 마음껏 누리게 하셔서 여러분의 희망이 성령님의 능력으로 넘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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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을 믿는 믿음(고전 15:1-15) 4/4/21 부활주일

1. 부활의 날 아침에 예수님의 시신이 있는 무덤을 찾아온 여인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전해 준 이야기는 그들이 찾는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그 소식을 접한 여인들은 놀라움과 두려움이 섞인 감정으로 제자들에게 달려가 예수님의 부활소식을 전했습니다. 제자들도 뛰어가 무덤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부활의 소식은 이렇게 여러 사람들을 놀라게 한 실제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성령강림 이후의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주님이라는데 초점을 맞춰 설교했습니다. 베드로도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다시 살리셨고 자기가 그 일을 목격한 증인이라고 말했습니다.(행 2:32)

2. 고전 15장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일이 성경대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선지자들을 통하여 약속했던 메시아의 구원약속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라고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을 목격한 증인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베드로, 열두제자, 오백여형제, 야고보와 모든 사도를 거론하고 자기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다고 말합니다.(고전 15:3-8) 부활이 없다면 사도들의 수고도 헛것이고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고 여전히 죄의 노예로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보이는 이 세상이 전부라는 것인데 그것처럼 절망적인 것이 없을 것입니다. 십자가 대속의 죽음과 부활은 우리 믿음의 핵심입니다.

3.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죄를 미워하고 심판해야 하는 하나님의 공의와 독생자까지 희생시키며 우리를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십자가로 우리의 죄를 덮어주셨고 부활을 통하여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주인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죄의 결과로 오는 죽음의 권세를 깨뜨렸고 죽은 자들의 첫 열매가 되어(고전 15:20) 부활소망을 주셨습니다. 그가 재림하시는 날에 믿는 자들은 생명의 부활로 일어나고 다른 모든 사람들도 심판을 위해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고전 15:23)

4.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고 하나님의 숨을 받아 생령이 되었지만 죄를 범하여 하나님과 끊어지고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에덴에서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루신 완전한 구원이며 우리가 부활을 기뻐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구원을 노래한 이사야의 글을 보십시오. “이곳 시온 산에서 세계의 모든 민족을 위해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가장 맛있는 포도주와 음식으로 잔치를 베푸실 것이며 온 인류를 덮고 있는 슬픔의 구름을 걷어 버리시고 죽음을 영원히 없애 버리실 것이다. 주 여호와께서 모든 사람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 주시며 온 세상에서 자기 백성의 수치를 없애 버리실 것이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이다. 그때 사람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그를 의지하므로 그가 우리를 구원하셨다. 그는 우리가 의지하는 여호와이시다! 그가 우리를 구원하셨으니 이제 기뻐하고 즐거워하자.’”(사 25:6-9)
5.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을 찢고 피를 흘려주신 것은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기 위함입니다. 죄로 얼룩진 것을 없애버리고 아담을 처음 만들고 기뻐했던 그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하기 위함입니다. 그의 보혈로 죄를 덮어 주셨고 부활로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사는 소망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성령께서 함께 거하며 이런 기쁨과 감격을 누리고 전하게 합니다. 이사야가 말한 특급 포도주와 최고의 요리로 잔치를 배설해 주신 것과 같은 기쁨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고 세례를 통하여 주님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옛 성품은 십자가에 못 박고 다시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오늘 이 감격과 기쁨이 다시 샘솟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6. 부활절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끝없는 잔치를 즐기는 것입니다. 출애굽 당시에 유월절 양의 피를 문에 발라 죽음을 모면했던 사람들이 가진 감사와 감동으로 부활을 기뻐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희생당하고 피흘려주신 대가로 얻은 것이기 때문입니다.(고전 5:7)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혜로 출애굽의 기적을 경험한 모세가 하나님을 노래한 것을 보십시오. “내가 여호와께 찬송하리라. 그가 영광스럽게 승리하셨으니 말과 마병을 바다에 던지셨음이라. 여호와는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의 구원이 되셨네. 그가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양할 것이요, 그가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라. 여호와는 용사이시니 여호와가 그의 이름이시다.”(출 15:3-5) 부활 승리하신 주님에게 우리도 같은 노래를 부릅니다. ‘주님은 나의 힘이요. 나의 노래요. 영원히 의지할 구원자이십니다. 아멘.’

7. 주님은 실망한 제자들 앞에 나타나 자신의 몸을 보여주었습니다.(행 10:39-41) 믿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 몸을 만져 확인하고 믿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제자들에게 부활 소식의 증인이 되도록 격려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세우셨으니 그를 믿으면 죄에서 자유하게 되고 영생을 얻게 된다는 복음을 전하게 했습니다.(행 10:42-43) 낙심하여 고향으로 돌아가던 제자들에게 말씀을 풀어 설명해 주시고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도와주셨습니다. 그들의 눈이 열리고 가슴이 뜨거워져 가던 길을 돌려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가 제자들과 합류하게 했습니다.(눅 24:27) 주님은 제자들을 탓하지 않고 기다리고 도와주셨습니다. 오늘도 성령께서는 성도들과 함께 하며 부활을 믿고 전하며 그 능력과 기쁨으로 살도록 도와주십니다.

8.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편지하며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한다.”(빌 1:21)고 했습니다. 갈 2:20에서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오늘 부활절 예배를 드리는 우리들의 마음과 눈도 열어주시고 부활을 확신하도록 도와주시기를 원합니다.(눅 24:35) 그가 베푸는 식탁에서 함께 먹고 마시며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며(고전 15:31) 부활의 소망으로 능력 있게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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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회복을 주시는 하나님 (겔 36:22-28) 종려주일

1. 아틀란타에서 일어난 총기 사건으로 인해서 아시안들에 대한 혐오범죄에 대해서 많이들 생각하고 기도하게 됩니다. 우리 교단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총회차원의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총기사고를 저지른 청년이 한 미국 교회에 출석하는 청년이라는 소식을 듣고 교회 안의 청년들을 말씀으로 바르게 양육하지 못했음을 함께 아파하고 피해자들에게 주께서 위로해 주시기를 기도한다는 내용입니다. 또 교회가 상처받은 사람들의 안식처가 되기를 바라고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기에 인종차별을 반대한다는 내용입니다. 시대가 어렵고 암울할수록 위로부터 주시는 은혜와 격려가 필요한 때입니다.

2. 이스라엘이 나라를 잃고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을 때에도 하나님의 손은 여전히 그들과 함께 했습니다. 이미 예레미야를 통해 새 언약을 약속했던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하여 그 일을 구체적으로 선포하게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주전 6세기경 유다가 멸망할 때쯤에 활동했습니다. 우상숭배와 죄에 빠져 있는 백성들에게 나라가 망하게 될 것과 때가 되면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을 눈물로 예언했습니다. 에스겔은 제사장의 아들로 성전에서 봉사하다가 바벨론에 끌려갔고 거기서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는 주변 나라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했고 포로생활의 아픔과 절망가운데 있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회복과 구원을 선포했습니다.

3. 에스겔 36장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약속이고 37장에서는 골짜기의 뼈들이 살아나는 환상을 통하여 그 회복을 확신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라를 잃어버린 백성들의 상한 마음을 위로하고 그들의 자존심을 세워주겠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했던 가나안이며 이스라엘의 반역으로 잃어버린 가나안 땅이 여전히 하나님의 마음에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을 공격했던 이방인들은 수치를 당하고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포로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거기서 풍요를 누리게 될 것을 말합니다.(겔 36:5-8) 그리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모든 이방나라들이 알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4.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주신 땅을 더럽혔고 하나님을 배반했고 그 이름을 욕되게 했기에 심판을 받았습니다. 부름에 걸맞지 않게 사는 이스라엘로 인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더렵혀졌습니다. 겔 36:19-20 “그들을 그 행위대로 심판하여 각국에 흩으며 열방에 헤쳤더니 그들의 이른바 그 열국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인하여 더러워졌나니 곧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이르기를 이들은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라 하였음이라.” 하나님은 고난과 시련을 주어서라도 택한 백성들이 죄에서 돌아와 하나님 안에서 복을 누리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부름에 합당하게 살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것이 바른 순서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할 존재이기에 그렇습니다.

5.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주는 이유는 그들을 사랑해서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위한 것이고 그 이름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겔 36:22-23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하려고 하는 까닭은 너희들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너희가 여러 나라에 흩어져서, 가는 곳마다 더럽혀 놓은 내 거룩한 이름을 회복시키려고 해서다. 너희가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면서 내 이름을 더럽혀 놓았으므로, 거기에서 더럽혀진 내 큰 이름을 내가 다시 거룩하게 하겠다. 이방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너희에게 내가 내 거룩함을 밝히 드러내면, 그 때에야 비로소 그들도, 내가 주인 줄 알 것이다.” 이스라엘의 타락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욕먹고 이방인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는데 이제 그들을 회복시켜 하나님께서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는 분이며 약속을 지키는 신실한 분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알리겠다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이 잘못하면 하나님이 욕을 먹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고난을 주어 회개하게 합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6. 하나님이 주는 회복은 이스라엘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마음과 행동이 철저히 변하게 하는 근본적인 회복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은 “내가…할 것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어차피 사람들에게서는 거룩함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맑은 물로 정결하게 씻어주시고(25) 하나님의 영과 새 마음을 주시어 이스라엘이 내면으로부터 변하게 하십니다. 성령을 주어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가치관을 갖게 합니다.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바꿔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수 있게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합니다.(28) 또 하나님께서 직접 무너진 곳을 건축하여 거주지로 바꾸고 황폐해진 곳을 에덴처럼 바꾸어 경작지가 되게 합니다. 그리하여 이방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알게 합니다.(33-36)

7. 27절에 성령을 주어 그들이 율례와 규례를 지켜 행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물로 씻어 정결하게 하고 새 영과 새 마음을 주어 새롭게 되었는데 여전히 옛 율례와 규례를 지켜야 한다는 것인가요? 이것은 율법 준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새 언약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는 구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회복시켜 주자 그들이 비로소 죄를 미워하게 되고 그들의 행위를 부끄러워하고 한탄하게 됩니다.(31-32) 성령의 도움으로 거룩한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실 때는 사람들에게 거룩하라고 명령만 하지 않고 친히 그들의 중심에 들어와 자신의 거룩함을 친히 보여주십니다. 눅 22:20에서 예수님은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을 말씀한 것도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죄에서 자유하게 되는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주께서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이 거룩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며 도와주기에 거룩한 주님처럼 우리도 거룩하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8. 종려주일이며 수난주간이 시작됩니다. 온전한 구원을 주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러 예루살렘에 들어간 날입니다. 사람들은 환성을 지르며 메시아에 대한 자기들의 기대를 드러냈지만 예수님은 겸손하게 새끼 나귀를 타고 볼품없는 모습으로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한 주간을 불의와 싸우고 성전을 깨끗하게 하고 마지막 가르침을 주고 기도로 십자가 죽음을 준비했습니다. 율법을 완성시키기 위해 오신 주님은 스스로 제물 되어 피 흘려주심으로 우리에게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주는 온전한 회복과 구원의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수난주간 묵상과 기도를 통하여 온전한 회복을 누리게 하는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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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언약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렘 31:31–34, 히 8:7-13)

1. 하나님은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든 아담에게 생령을 주시고 짐승의 이름을 짓게 하는 동역자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사단의 꾀에 넘어가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죄를 짓습니다. 하나님을 피하여 숨은 아담에게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셨고 살길을 주셨습니다. 가죽옷을 입히고 사람의 아들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언약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단의 권세가 무너질 것을 말한 것입니다. 이 약속 때문에 하나님은 시대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을 찾았습니다. 노아시대의 죄를 심판할 때에도 노아의 식구들을 선택하여 구원의 약속을 이어갔습니다. 바벨탑을 쌓고 하나님을 거부하는 인간을 흩으면서도 아브라함을 불러 약속을 주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나라를 만들게 했습니다. 이삭과 야곱 요셉의 시대를 거치며 약속대로 민족을 이루었고 모세를 통하여 약속한 땅 가나안으로 인도했습니다.

2.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며 광야를 지났지만 약속을 붙들지 못했습니다. 우상을 섬기고 음행하는 가나안 원주민들을 진멸하고 하나님의 법이 통하는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도록 이스라엘을 불러 제사장 나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가 죽자 가나안 사람들과 통혼을 했고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사사시대는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님이 보기에 악한 일을 반복했습니다. 다윗 왕 시대에 태평성대를 이루지만 그의 아들 솔로몬은 이방여인들을 가까이 하다가 하나님이 주신 영광을 잃어버립니다. 솔로몬의 아들 때에 나라는 둘로 나뉘고 주변 강대국의 괴롭힘을 당하다가 결국 나라를 잃고 맙니다. 바벨론 포로기를 거치며 소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약속을 기억했습니다. 70년이 지나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나라를 회복시켜줄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3. 예레미야는 새 언약에 대해 예언합니다.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라고 하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을 남편과 아내의 깨어진 관계로 설명했습니다. 하나님은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돌 판에 기록한 계명을 주고 매 안식년마다 큰 소리로 낭독하여 백성들이 기억하고 준수하도록 했습니다.(신 31:9-13)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라.”(출 19:5-6)고 약속했습니다. 백성들도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과 율법에 순종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출 24:3). 그런데 이스라엘이 이 언약을 깨버렸기에 하나님은 다시 새 언약을 주겠다고 합니다.

4. 인간에게는 율법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광야백성들을 보면 문제가 생길 때마다 불신앙과 불평불만이 나타났습니다. 왜 여기까지 끌고 와서 죽게 하는지 따지고 모세와 하나님께 불평했습니다. 하나님의 요구가 자신들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필요했고 새 언약이 필요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성령으로 그들 안에 친히 거하며 새로운 마음을 만들겠다고 합니다. 새 언약을 주는 이유는 그들의 죄를 용서하고 다시 기억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대제사장이 한해에 한번 대 속죄일에 희생짐승의 피를 들고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을 뵙고 죄의 용서를 받던 것에서 이제는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직접 나갈 수 있게 한 것입니다.

5.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 자신을 알려주시는 은혜가 있기에 죄인들이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약속의 성취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 십자가 고난을 자초했습니다. 짐승의 피로 죄를 용서받던 것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했습니다. 더 이상 죄 때문에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 나뉘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었고 하나님의 원래 계획인 ‘나는 너의 하나님, 너희는 내 백성.’이 가능하게 했습니다. 옛 언약에서는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반복하여 제사를 드려야 했지만 이제는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드린 완전한 제사로 영원한 죄의 용서가 주어졌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먹으로 돌비에 새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마음 판에 새긴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고후 3:3)

6. 예수님이 성만찬을 제정할 때에 잔을 주시며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들을 구속하기 위해 흘리는 대속의 피요 새 언약의 피라고 했습니다. “내가 친히 그들의 죄를 사하고 다시는 기억하지 아니하리라.”고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했던 그 약속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8장은 예레미야의 말을 인용하며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중보자로 소개합니다. 그리고 새 언약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굳은 의지를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내가 새 언약을 맺으리라”(히 8:8),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될 것이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될 것이다.”(10절), “내가 나를 그들 모두에게 나타내겠다. 그들이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 것이다.”(11절)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길 것이다. 내가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할 것이다.”(12절)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했다는 말입니다.

7. 예수 믿는 우리들은 법조항에 얽매여 순종하기보다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자발적인 복종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마음에 계셔 하나님을 알게 하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으로 말씀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씀에 순종합니다.(빌 1:6) 하나님의 선택을 받고도 언약을 지키지 못하던 이스라엘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영으로 거하며 우리를 도와주기에 그 약속을 붙잡고 삽니다.(요 1:9-12)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이 나를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믿습니다. 그 믿음 때문에 영생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요 3:16)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면서도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친히 십자가를 졌습니다. 그가 고난을 받음으로 고난 받는 자를 위해 친히 중보 할 수 있는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보좌에 담대하게 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히 5:8-10) 한번 용서한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않는 영원한 사죄의 은혜가 새 언약 안에 있습니다. 이 언약은 변하지 않는 영원한 약속입니다.

8.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성령의 인도를 따라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십자가는 죄인을 구원하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마치 광야에서 뱀에 물린 자들이 장대에 달린 놋 뱀을 보고 다시 살게 된 것처럼 보혈을 의지하고 믿는 사람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십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원수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엡 2:14,15)” 십자가에서 단번에 드린 그리스도의 희생이 우리를 완전한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그러니 새 언약의 성취로 오시어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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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고난과 믿는 자의 승리(민 21:1–9 요 3:14–21)

1. 가나안을 향한 이스라엘의 여정은 마치 천국을 향해 살아가는 성도의 세상살이와 비슷합니다. 약속 받은 땅에 대한 확신을 가진 지도자와 그를 따르던 백성들이 함께 광야생활의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과정을 통하여 오늘 우리들이 배워야 할 신앙생활의 바른 자세를 가르쳐 줍니다, 광야생활 막바지에 가나안까지 빠르게 도달할 수 있는 길이 있었지만 에돔이 자기 영토를 지나가도록 허락해주지 않아서 그들은 다시 먼 광야 길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한편 이런 소식을 들은 가나안의 아랏 족속은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몇 사람을 사로잡아 갔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께 합심하여 기도하고 공격하여 아랏을 파멸시켰습니다.(민 21:1-3)

2. 외부에서 오는 공격은 마음을 합쳐 기도하고 싸워 물리쳤지만 내부에서 생긴 불평과 원망은 또 하나의 넘어야할 산이 되었습니다. 38년의 광야생활을 마쳐가는 때이고 약속의 땅이 눈에 보이는 그곳에서 다시 광야 길로 우회하게 되자 사람들은 길로 인해서 마음이 상했고 쌓인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왜 우리를 애굽에서 데리고 와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여기는 먹을 것도 없고 마실 물도 없다,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한다.’고 불평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이 주신 만나를 ‘이것이 무엇인가’하며 경탄했던 것이고 광야생활동안 주로 먹던 음식인데 이제 그 마음이 변하여 감사를 잃어버렸고 만나를 하찮은 것이라고 평가하며 불평했습니다. 음식에 대한 불만만이 아니라 하나님과 모세를 향한 원망이었고 모든 것을 부정하는 불신앙의 처사였습니다.

3. 지도자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불평불만 하는 죄를 범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불 뱀을 보내 그들을 물게 했습니다. 광야에 흔한 뱀이고 그들도 잘 아는 독사였지만 하나님께서 그 뱀을 사용하여 그들을 다루셨습니다. 한번 물리면 고열이 나고 불에 덴 것처럼 뜨거운 고통을 당하다가 죽게 되기에 불 뱀이라고 불렀습니다. 뱀에 물려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그들은 잘못을 바로 깨닫고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잘못을 곧바로 돌이킬 수 있는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를 회유하고 권면하고 때로는 채찍을 사용하여 죄에서 돌아서게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놋 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고 뱀에 물린 사람들이 그것을 바라보게 했습니다. 불 뱀에 물렸을지라도 놋 뱀을 바라보면 살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민 21:4-9)

4. 하나님은 죄와 죽음의 권세를 무력화 시킵니다. 장대에 높이 달린 뱀을 바라보고 다시 생명을 얻고 살 수 있는 생명의 길을 내셨습니다. 그 하나님은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서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매달고 그를 바라보고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게 한 것은 세상을 정죄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를 믿고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요 3:14-19) 어둠에 속한 죄인들은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거역하고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은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장대에 달린 뱀을 보고 생명을 얻었듯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이 믿음은 지식적인 동의나 일시적으로 그를 인정하는 믿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만이 생명을 주시는 유일한 주님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5. 우리가 죄를 범하고 하나님을 떠나 죽음에 처해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먼저 사랑해 주셨습니다. 죄를 회개하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믿게 하여 깨끗함을 얻게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다시 살리셨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혀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모든 사람들과 오는 세대에게 전하게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은 새 생명을 널리 자랑하게 했습니다.(엡 2;4-6) 로마서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게 하려고 그리스도를 맏아들로 삼았다고 설명합니다. 롬 8:29-30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사람들이 자기 아들의 모습을 닮게 하시려고 그들을 예정하시고 그리스도가 많은 성도들 가운데 맏아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정하신 사람들을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의롭다고 인정하시고 의롭다고 인정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현대인의 성경)

6. 그러기에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들은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목적을 갖고 삽니다.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의 은혜를 힘입어 구원을 얻었고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 대단한 인물도 아니고 가진 것도 변변하지 않지만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된다는 것으로 어깨를 펴고 담대하게 세상을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확신하기는 자기 아들까지도 아끼지 않고 우리를 위해서 내어주신 하나님이 그 아들과 함께 다른 모든 것들도 아낌없이 주실 것을 믿습니다.(롬 8:32) 우리의 약함을 아는 주님은 성령으로 성도들과 함께 하며 그리스도를 닮는 신앙여정을 바로 걷도록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며 기쁨을 누리게 하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며 배려입니다.

7. 사도 요한도 우리를 사랑하여 먼저 불러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말했습니다. 요일 4:9-10 “하나님은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가 그를 통해 살 수 있게 하심으로 우리에게 자기의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보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는 제물로 삼아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하셨고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앉게 해주셨습니다.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인정하고 그 아들을 믿고 죄 용서와 구원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는 성도는 문제를 만나더라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 살기 때문입니다.

8.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고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그 안에 계시고 그 사람도 하나님 안에서 살게 됩니다. 이것이 주님과의 영적 교제이며 자녀의 특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믿는 사람은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뜻대로만 구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요일 5:14) 하나님은 자녀의 기도에 가장 좋을 것으로 응답하는 분이며 성령을 주시는 아버지입니다.(눅 11:13) 그러니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어둠의 세력에게 지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대적하고 물리치십시오.(약 4:7) 또 다른 사람들의 묶인 것까지 풀어 자유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나님 나라를 넓혀가는 사역의 기쁨을 맛보십시오. 우리를 구원하여 생명 살리는 기쁨을 함께 맛보게 하려고 주께서 고난을 당했습니다. 사순절 기도를 통하여 이런 기쁨과 감격이 새롭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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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요 2:13-22, 고전 1:18-24)

1. 예수님 당시의 성전은 성전만 있던 솔로몬 성전과는 달리 부속 건물이 있었고 규모도 컸습니다. 솔로몬의 성전은 주전 1000년경에 지어졌다가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바벨론 포로기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온 사람들은 스룹바벨과 함께 무너진 성전을 재건했지만 솔로몬 성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500년이 지난 후 헤롯대왕은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주전 20년부터 예루살렘 구시가지의 20%나 되는 넓은 면적에 부속건물과 뜰을 갖춘 성전을 지었습니다. 예수님 시대 이후까지도 공사를 계속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주후 70년에 로마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그 후에 성전이 있던 장소에는 이슬람 사원이 들어섰고 성전의 서쪽 벽만 일부 남아 있어서 성지를 찾는 순례자들의 방문지가 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성전은 완전하지도 않고 영원하지도 않습니다.

2. 헤롯 성전에는 할례 받은 유대인 남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 유대인의 뜰과 유대인 여자들이 들어 갈 수 있는 여인들의 뜰이 있었고 바깥쪽에는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들을 위한 이방인의 뜰이 있었습니다. 이 이방인의 뜰에서 멀리서 온 사람들을 위해서 희생 제물로 바칠 짐승들을 팔았고 제사장들은 상인들과 결탁하여 폭리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을 보고 분을 내었습니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짐승들을 내쫓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을 엎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며 영광을 돌려야 할 성전을 장사하는 소굴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요 2:16-17)

3. 예수님은 오랜 동안 습관처럼 해오던 일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사람들은 무슨 권세로 그렇게 하는지 표적을 보이라고 요구했고 예수님은 성전을 헐면 사흘 만에 세우겠다고 했습니다. 성전에 대한 자부심이 컸던 사람들이기에 성전을 헐라고 하는 말에 크게 저항했습니다. 사십 육년이나 걸려 세워진 성전을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거룩한 분이기에 하나님을 모신 성전이 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을 드려 십자가에서 죽고 무너지지만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여 세워질 것을 말한 것입니다. 성전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하는 집입니다. 거기서 희생제물을 드려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던 곳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불의를 행하고 담을 높이 쌓아 사람들을 구분하고 원래 목적에서 벗어났으니 이미 자기 기능을 잃은 것입니다.

4. 하나님은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에게 성막을 세우고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고 죄 용서를 받고 거룩한 백성으로 살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성막은 모든 생활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성전 짓기를 원했지만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았고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성전을 짓게 했습니다. 솔로몬은 아름다운 성전을 지어 봉헌하면서 그 어떤 경우에 누구라도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면 들어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의 눈과 마음을 그곳에 두고 그들의 기도를 듣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다윗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면 왕위를 견고하게 하겠지만 이방인들이 섬기는 우상을 숭배하면 선택한 백성들의 뿌리를 뽑아버리고 또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지은 성전이라도 버려서 이방인들의 비웃음거리가 되게 하겠다고 경고했습니다.(대하 7:11-22)

5. 예수님은 자신을 희생물로 드려 모든 믿는 자들이 구원을 받게 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사흘 만에 다시 살아(요 2:17-21) 믿는 자 모두를 구원에 이르게 했습니다. 죄에 빠져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 하나님과 화목 하는 길을 내셨으니 그는 참 성전입니다. 그가 자신의 몸으로 완전한 제사를 드릴 때 성전 휘장이 찢어지고 더 이상 모형인 성전에서의 제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갈 수 있게 했습니다. 십자가는 죄를 벌해야 하는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고 또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보여준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 되지만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고전 1;18) 세상적인 안목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고 지혜와 계시의 영인 성령의 도움으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6. 교회는 참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그를 배우고 전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이 근본 목적이 약해지면 성전의 외모에만 관심을 두고 성전 기능을 바로 하지 못하던 유대인들과 같이 됩니다. 그리되면 기도하고 예배하며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영적인 일보다 형식적인 종교행위와 외형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교회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세상의 죄악이 관영하고 세속화는 더 빠르게 진행될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실 때에만 생명의 능력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의 도움을 날마다 구하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주인으로 일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전의 기능을 바로 하는 거룩한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고전 3:16)

7.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오늘을 사는 성도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보여주는 모본입니다. 하나님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구원하여(출 20:2) 거룩한 제사장나라로 살게 한 것은 우상을 섬기며 죄 가운데 있는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거룩함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이방인들도 하나님을 알고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이방인들이 섬기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 20:3-6)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질투는 아내의 마음을 차지하고 싶은 남편의 마음이나 자식의 마음을 얻고 싶은 부모의 마음과 같은 사랑에서 나오는 질투입니다.

8. 거룩한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성도들은 거룩해야 합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17) 참 성전인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성도는 생명을 구원하는 예수님의 사역을 대신하는 사람들입니다. 가난한 자, 포로 된 자, 눈먼 자, 눌린 자들을 찾아가 구원을 베푸는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 성전의 기능을 계속하는 사람들입니다. 성전을 통하여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게 했던 하나님은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우리들을 사용하여 또 다른 사람들이 죄에서 해방되고 구원의 감격을 누리게 합니다. 사순절 기도를 통하여 성전으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공급받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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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의 증표 (창 17:1-14 롬 5:1-11)

1. 아브람이 99세가 되었을 때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타나 하나님 앞에서 흠 없이 행하라고 하며 그에게 언약을 주시고 번성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창 17:1-2) 아브라함이 75세에 고향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는 가나안에 도착한지 24년이 지난 때입니다. 믿음의 조상이라는 평가를 받는 아브라함이지만 그도 우리와 같이 평범하고 연약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생각으로 행할 때도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같은 약속을 지속적으로 주셨고 그를 격려하여 결국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세웠습니다.

2. 하나님은 창 12장에서 아브람을 불러 땅의 많은 민족이 복을 얻게 하겠다는 약속을 하며 고향을 떠나게 했습니다.(창 12:1-4) 그에게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조카 롯과 함께 새로운 곳에 정착하여 살던 중 번성하여 짐승먹일 땅이 부족하게 되자 넓은 땅을 찾아 서로 헤어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땅의 티끌같이 많은 자손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또 그의 눈으로 바라보는 땅을 주겠다고 약속합니다.(창 13:14-17) 그리고 창15장에서도 그 약속을 반복하여 주십니다. 아들이 생기지 않자 종으로 자란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겠다는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그의 몸에서 나오는 아들이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늘의 별을 바라보게 하며 별처럼 많은 자손을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아브람은 그것을 믿었고(창 15:4-7)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습니다.

3.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우리의 연약함입니다. 아브람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지만 자신의 처지를 생각할 때마다 회의가 생겼던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주려고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냈다고 말하지만 아브람은 그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창 15:8) 가나안에 이주하여 점점 늙어가는 현실 앞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고민한 흔적들이 보입니다. 그의 솔직한 질문에 하나님은 탓하지 않고 당대의 사람들이 서로 언약을 체결하는 방법대로 제물을 쪼개놓고 횃불로 그 사이를 지났습니다.(창 15:17) 그것은 언약을 파기하면 쪼개진 짐승처럼 죽게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약속 체결 방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약속을 바라보고 믿을 수 있도록 훈련했습니다.

4. 하나님은 참으로 선하고 그의 백성을 사랑하는 분입니다. 마치 갓난아이와 눈높이를 맞추어 대화하고 새끼손가락을 걸어 약속하는 엄마처럼 아브람을 대했고 그가 믿음을 갖게 했습니다. 별처럼 많은 자손을 약속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브람이 믿을 때 그를 이미 의롭다고 여겨주셨습니다.(창 15;6) 그의 완전하지 않은 믿음을 탓하지 않고 다시 횃불 언약을 통하여 확신시켜주셨습니다. 약속은 쌍방 간에 하는 것이지만 아브람과 맺은 횃불언약은 하나님 혼자 쪼갠 제물 사이로 지나간 일방적인 약속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맺었으니 약속이행의 의무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구원을 위해서 다른 것 필요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믿음으로 받는 것과 같습니다. 아브람에게는 약속 이행 능력이 없다는 것을 처음부터 아셨기에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약속을 맺은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사랑입니다.

5. 하나님은 전능하신 주권자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의 약함 때문에 뜻을 접거나 포기하지 않았고 인내했으며 그들의 이름을 바꿔 새로운 존재가 되게 했습니다. 존귀한 아버지라는 의미의 ‘아브람’에서 많은 사람의 아버지라는 의미의 ‘아브라함’으로 바꿔주십니다. 공주라는 의미의 ‘사래’에서 많은 나라의 어머니라는 ‘사라’로 바꿔주십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정체성이며 존재이유와 목적을 말해줍니다. 자기만을 위하여 살지 말고 열방을 복 받게 하라고 주신 새 이름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을 번성하게 하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겠으며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겠다고 약속합니다(창 17:7-8) 비록 그는 자기 방법대로 여종에게서 이스마엘을 얻었고 또 말씀을 들으면서도 믿어지지 않아 속으로 웃었지만 하나님은 그것까지 아시고 태어날 아들의 이름을 웃음이란 뜻을 가진 ‘이삭’이라고 지어줍니다.(19절) 하나님은 열방을 복되게 하려는 뜻을 위하여 꾸준히 일했습니다.

6.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식솔들에게 약속 받은 백성이라는 증표로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게 합니다. 태어나는 남아도 생후 팔일이 되면 할례를 받았습니다.(10절) 집에서 난 자나 돈으로 산 자나 대를 이어 행했으며 이 증표가 없으면 백성 중에서 끊어지게 되었습니다.(13절) 이것은 아브라함 뿐 아니라 대대로 오는 그의 후손 사이에 세우는 언약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표시하는 것이며 또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표시였습니다.(7절) 할례를 행하다가 적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고 일도 해야 했을 텐데 일시에 모든 남자들이 표피를 베어낸 것을 보면 말씀에 순종할 만한 믿음의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23절)

7.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합니다.(딤전 2:4) 그래서 아브라함을 선택했고 그가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훈련했습니다. 결국 이삭을 번제로 드릴 만큼 하나님을 신뢰했고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려주실 분으로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그의 아들인 이삭에게 전수되었고 그 다음 후손들도 여호와를 신뢰하는 사람이 되어 약속을 이어갔습니다. 마태가 유대인 독자들에게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한 것도 이 약속을 강조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 (창 22:18)고 했고 다윗에게는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삼하 7:12-16)고 한 약속을 성취하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십자가에서 이룬 것입니다.

8. 우리에게도 약속의 증표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음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음을 믿고 받은 세례가 그 증표입니다. 구원받은 우리들은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살다가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롬 5:1-2) 하나님은 우리들이 아직 죄 가운데 있을 때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게 함으로 우리를 향한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롬 5:8)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일 때에도 그랬다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우리들에게는 더욱 성령의 능력과 천국생활의 기쁨을 주시고 그것을 이웃과 나누게 할 것입니다.(롬 5:9-10)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열방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는 자세로 살며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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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을 성취하는 하나님 (창 22:1-19)

1. 사순절이 되면 교회는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깊이 생각합니다. 우리를 구원하려고 고난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의미를 묵상하고 우리의 신앙생활을 점검합니다. 바울은 고후 5:21에서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때문에 우리가 의롭게 되었고 하나님과 화목한 자가 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응답하는 관계 안에서 은혜를 누려야 합니다.(고후 6:2) 올해도 함께 기도하고 말씀에 비추어 자신을 점검하며 주님을 더 깊이 배우는 사순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2. 창 22장에는 아브라함이 늦게 얻은 이삭을 번제로 바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1절에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려고 이런 명령을 내렸다고 말합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사단이 하나님의 나라를 방해하기 위해서 주는 유혹이나 하나님의 사람을 더 강하게 만들려는 검증을 위한 시련을 다 시험이라고 번역했지만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것들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것은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기 위한 검증작업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이나 뜻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일하는지를 묻기보다는 이 일을 통해서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이해나 협조를 필요로 하는 분이 아니고 우리는 피조물로서 창조주이며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행하는 일에 순종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3. 아브라함이 위대하게 평가 받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아들을 희생시켜야 하는 아버지에게 어찌 고민이 없었겠습니까? 밤새 씨름했을 것이지만 하나님께 향한 절대 신뢰와 경외하는 믿음이 있었기에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2절에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라는 표현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자기 것으로 여겼음을 말합니다. 늦은 나이에 그것도 25년이나 기다려 얻은 아들이고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갈 아들이니 귀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말씀에 순종하여 고향을 떠났지만 이제 가장 소중히 여기는 아들을 포기해야 하는 시련을 맞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소중한 것을 빼앗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조차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이라는 것을 결단하게 훈련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보다 귀하게 여기는 것들을 우상이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선한 것이라도 하나님보다 더 귀하게 여기거나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빼앗아 간다면 그것은 우상이 됩니다.

4.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결정한 후에는 다시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죽은 자를 살리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분으로 믿었습니다.(롬 4:17 히 11: 17-19) 그리고는 신속하고 단호하게 움직였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번제에 쓸 나무를 준비하여 출발했습니다. 모리아 산까지는 사흘 거리였으니 아들의 손을 잡고 가면서 얼마나 많은 갈등과 질문이 있었을까요?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으로 일관했습니다. 번제에 사용할 양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 이삭에게 하나님이 준비하실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 마음에서 나오는 대답입니다. 한 번의 결단은 쉬울 수 있지만 끝까지 순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자기를 정당화시키고 쉬운 길을 선택하려는 유혹을 물리쳐야만 가능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주권자로 신뢰하는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5. 하나님이 지시한 장소에 이르러 아들을 묶어 제단에 올리는 아브라함의 자세는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말씀을 따르는 순종의 모범이 됩니다.(창 22:6,9) 하나님께서는 그의 순종을 확인하고는 번제에 사용할 희생양을 준비해 주셨고 약속도 새롭게 해주셨습니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12절)며 만족해했습니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창 22:17-18)라고 하시며 창 12장에서 했던 약속을 다시 확인해주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순종한 이삭이나 하나님이 이삭 대신 준비한 여호와 이레의 양은 구원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시킨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합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되는 약속을 성취했습니다.

6.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며 요한에게 세례를 받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라는 것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성령에게 이끌려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려고 광야로 나갔습니다.(막 1:12-13) 시험하는 마귀를 말씀으로 이기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사역의 문을 열었습니다. 이 시험을 이김으로 시험받는 사람들을 능히 도와주실 수 있는 주님이라는 것을 드러냈습니다. 약 1:14-15“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욕심에 미혹되어 죄를 짓고 그 죄의 결과로 사망에 이르게 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를 믿고 사랑하는 자들에게 시험을 이기는 승리를 주시고 생명의 면류관도 주십니다.(약 1:12) 그는 변함없이 신실하셔서 지금도 그를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승리와 생명을 주십니다.

7.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우리 안에 거하며 믿음으로 살도록 도와주십니다. 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힘으로 사는 것 같으나 사실은 은혜로 삽니다. 아브라함이 위대한 것 같지만 이삭을 통하여 약속을 이루어야 하기에 하나님은 그들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여 불러 구원하시고 구원받은 자답게 살 수 있도록 힘을 주시는 은혜가 바로 여호와 이레의 복입니다. 이삭을 살려 구원의 약속을 이루셨던 것처럼 우리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지속되게 하려고 복을 주십니다. 그러니 문제를 만나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로마로 가던 죄수호송선이 풍랑을 만나 죽게 되었지만 로마에 가서 전도해야 할 바울 한사람 때문에 모두가 살았습니다.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행 27:24-25) 믿음의 사람 하나가 많은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8. 롬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은사로 주지 아니 하시겠느뇨.”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하는 우리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낼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서 모든 환경을 사용하여 약속을 성취하시고 선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전염병으로 인한 두려움도 이겨내고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신실하게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하는 사순절 기도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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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결단하라 (히 11:23-26)

1. 코로나 백신을 접종하기 시작했는데도 백신이 항체를 만드는 과정에서 약간의 반응을 보이는 것을 염려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어느 지역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백신을 맞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그날 남은 백신을 폐기하지 말고 대신 주사해 달라며 기다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백신 맞는 일에도 깊이 생각하고 내리는 결단이 필요한 때입니다. 인생은 결단으로 이루어집니다. 아무리 사소한 결단이라도 당사자에게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결단에 따르는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엄마 손을 잡지 않고 등교하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군대에 들어가고 배우자를 선택하고 직장을 정하는 일은 더 큰 책임이 따르는 결단입니다. 고향을 떠나 이곳에 와서 사는 우리들은 이미 큰 결단을 한 것입니다.

2. 앞으로도 결단해야 하는 순간들을 만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일의 결과를 모르는 채로 발을 옮겼지만 하나님은 신실하시어 믿음으로 내리는 우리들의 결단을 형통하게 인도하셨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이 반드시 존재한다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그것들을 앞당겨 보는 것입니다.(히 11:1) 이것은 우리의 지혜가 아니라 성령께서 깨닫게 하고 알려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믿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믿음이 아니고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도 없고 자신의 생각을 바로 세울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의 삶에 개입하여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분입니다.(롬 8:28)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에게 상주시는 아버지입니다.(히 11:6)

3.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선조들을 소개합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믿음으로 방주를 마련했습니다. 그 결과로 믿음을 따라 얻는 의를 물려받는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고향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는 말씀을 듣고 목적지가 어딘지 모르면서 믿음으로 결단하고 발을 내딛었습니다. 그의 아내 사라도 수태할 수 없는 몸이었지만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더니 자식을 낳아 민족을 이루는 문을 열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다 보지 못했지만 그들의 시간을 나그네로 살며 하늘 고향을 그리워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들의 하나님이 되었고 그들을 위하여 하늘의 거처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결단하고 순종하는 선조들을 섭리가운데 돌보시고 사용하여 하나님의 일을 진행했습니다.

4. 모세는 히브리 민족을 말살하려는 바로의 정책이 시행되던 때에 태어났습니다. 바로는 산파들에게 태어나는 남자 아이를 죽이라고 했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산파들은 그리하지 못했습니다. 바로는 백성들에게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나일 강에 던지라고 다시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부모는 아이를 석 달 동안이나 숨겨 키었으며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기로 뜻을 정하고 섭리가운데 일하셨습니다. 가장 핍박이 심할 때 모세가 태어나게 했고 나일 강에 던져지게 했으며 공주의 마음에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주어 모세를 건져내 왕자로 기르게 했습니다. 유모가 된 어머니에게서 여호와 하나님을 배우게 했습니다. 동족을 죽이는 실수를 하고 광야로 피신하여 젊음을 보냈지만 하나님은 모세의 교만과 패기가 사라지기를 기다려 그를 불렀습니다. 하나님이 주는 힘으로 일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5. 히브리서는 모세가 공주의 아들이라 불림을 거절했다고 말합니다.(24절) 왕궁에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고난을 택했다고 말합니다.(25절)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하나님의 상을 바라는 결단 (26절)을 했다고 평가합니다. 40년의 왕궁교육을 받아 언어와 일에 능하게 된 모세였지만 동족의 싸움에 끼어들어 애굽 사람 하나를 죽이게 됩니다. 이 일로 모세는 광야로 피신하여 40년을 지냅니다. 젊음을 허비한 것처럼 보이는 이 일을 히브리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해석합니다. 애굽에서의 안락함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결단한 일이 되었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에서 떠나 하나님을 선택한 일이 되었습니다. 이집트의 재물보다 더 값진 것을 선택한 것이었고 이것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고난이 되었습니다. 모세 스스로가 자기 인생을 결정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함께 했으며 성경은 그가 믿음으로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6. 히브리서는 초창기의 고난당하는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믿음을 유지하기 위해서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있는 성도들에게 눈에 보이는 세상의 안일함보다 하나님이 주는 상급을 바라보게 했습니다. 이 땅에서의 형통을 약속하거나 고난이 곧 끝나게 될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 선조들처럼 하나님이 주실 상급을 바라보고 고난을 인내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히 12:1-2은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알려주기 위해서 사람이 되어 오셨고 자기의 모든 시간과 생애를 죄인들을 위해 내주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로 작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도 자기를 부인하고 따르라고 가르쳤습니다.

7.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하는 손에 들려지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우리가 연약할 때 주님의 강함을 옷 입혀 주고 우리가 가난할 때 주님의 부요하심을 의지하게 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는 믿음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선택하고 왕좌의 특권을 버린 모세의 결단은 더 값지고 보배로운 것을 선택하는 믿음의 결단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학식과 유대인 출신의 특권을 모두 버리고 평생을 복음 전도자로 살았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우상에게 바친 고기를 먹지 않기로 결단했습니다. 다른 신에게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사자 굴과 불 못에 던져졌지만 하나님께서 건져냈습니다. 그들의 믿음의 결단은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믿도록 사용되었습니다.

8.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우리들은 매순간마다 믿음으로 결단하며 살아야 합니다. 믿음은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하나님께 맡기는 일이며 우리보다 크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생을 한결같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며 살아야 합니다. 넓고 쉬운 길보다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고난을 결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이 주는 즐거움보다 주님을 위해 수고하기를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나그네로 잠시 사는 중이며 장차 주어질 영원한 하늘 본향을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사나 죽으나 우리는 주님의 것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믿음으로 결단하는 천국백성들이 되기 바랍니다. 주께서 힘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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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 참여의 자세 (고전 11:17-29)

1. 요즈음 우리 부부에게는 새로운 기쁨이 하나 생겼습니다. 아침 9시 반쯤 되면 어김없이 걸려오는 딸의 전화 때문입니다. 캘리포니아에 사는 딸이 8개월짜리 손녀딸의 얼굴을 보여주기 위해서 거는 전화입니다. 해맑은 얼굴로 할아버지 할머니를 알아보고 웃어주는 아이를 만나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두런두런 30분을 얘기하다보니 처음보다 얘기 소재도 많아지고 정도 쌓이는 것 같습니다. 얼굴을 알아보고 웃는 아이를 전화기로 만나는 즐거움도 있지만 어서 속히 왕래하게 되어 아이를 품에 앉아보고 싶습니다.

2. 전염병으로 인해 모이지 못하는 비상상황이다 보니 각 가정에서 영상으로 예배하거나 어떤 교회는 작성된 예배문을 돌려 가정에서 예배하기도 합니다만 함께 모여 드리는 공동체 예배를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요즈음 영상으로 예배하는 일에 길들여 지다보니 성찬식을 온라인으로 해도 되는가를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실제로 어느 교회는 각자 준비한 성찬을 먹으며 성찬식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식탁에 함께 앉아 먹는 공동체 식사를 그렇게 대신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성찬식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한 식탁에서 먹는 공동체의 예식이기 때문입니다. 비상시국의 편리함이 습관이 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하겠습니다. 전화로 사랑을 유지할 수 없는 것처럼 가상공간에서의 은혜로 만족할 수는 없습니다. 몸으로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고 사랑을 확인해야 하는 것처럼 현장에서 역사하는 주님의 은혜를 속히 맛보기를 기도합니다.

3. 세례나 성찬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이 하나님 앞과 그리고 교회 공동체 앞에서 죄의 용서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특히 성찬식은 주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대신 죽으신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고 감사하는 예식입니다. 주께서 행하시는 구원의 일을 널리 선포하고 그 일에 참여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먹을 때마다 구원받은 자로 합당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점검합니다. 그리고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하고 준비하는 기회로 삼습니다. 이미 3세기 때부터 말씀과 세례와 성찬은 교회의 핵심요소가 되었습니다. 거룩하게 구별된 빵과 잔을 먹으며 영으로 임재 하는 주님과 하나가 되고 또 한 식탁에 둘러앉은 형제들이 주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세례와 성찬은 교회의 정체성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고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눈으로 보게 하는 것입니다.

4. 바울은 고전 11:26-28에서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합당하지 않게 주님의 빵을 먹거나 주님의 잔을 마시는 사람은, 주님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니 각 사람은 자기를 살펴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그 빵을 먹고, 그 잔을 마셔야 합니다.”라고 가르쳤습니다. 고린도교회가 성찬에 대한 오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념하고 주님과 하나 됨을 나누는 거룩한 교제인 성찬을 그저 당시 헬라인들이 행하던 하나로 파티로 생각했습니다. 각자 음식을 가지고 와서 함께 나누어 먹던 애찬 습관이 교회 안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먼저 온 사람들이 나중 오는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고 먼저 먹어버려서 음식이 모자라는 경우도 있었고 먼저 취하는 일도 생겼습니다. 그것이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별로 이어지고 교회 분쟁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5. 그래서 바울은 서로에 대한 배려 없이 욕심껏 먹고 취하여 공동체의 조화를 깨뜨릴 수 있는 애찬은 차라리 각자의 집에서 먹게 했습니다. 교회를 업신여기고 가난한 자를 부끄럽게 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고전 11:22) 그리고는 주님께로부터 받은 성찬에 대한 의미를 가르쳤습니다. 합당하지 않은 자세로 성찬에 임하는 것은 주의 몸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고(고전 11:27)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라고(고전 11:29) 가르쳤습니다. 그러니 각자 자신을 돌아보고 합당한 자세로 성찬에 임해야 했습니다. 성찬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억하고 구원해 주심에 감사하고 사명을 새롭게 하는 공동체 의식이기 때문입니다.

6. 주께서 잡히기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 베푼 성만찬 의식은 일반인들이 먹던 유월절 음식 그것 이상이었습니다. 유월절은 애굽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축제였습니다. 유월절 양의 피를 발라 죽음을 면했었는데 이것은 대속을 위해 흘린 예수님의 피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새 언약의 피(막 14:23-24)가 되었습니다. 구약의 옛 언약이 희생 짐승의 피로 맺은 것이라면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피를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는 새 언약을 맺었습니다. 빵을 주시며 자신의 찢긴 몸이라 하고, 잔을 주시며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대신 흘린 피라고 말씀했습니다.(눅 22:19-20) 대속의 은혜를 주신 주님을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했습니다.(요 3:16) 그러므로 구원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유익을 염두에 두어야 하고 공동체의 위해 희생하는 마음도 있어야 합니다. 화목제물이 되신 주님과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7. 우리는 성찬을 먹으며 주님의 대속의 죽음을 기념합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보혈로 죄 용서를 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음을 기억하고 감사합니다. 성찬을 먹으며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과 깊이 사귀고 하나가 됨을 경험합니다. 주님의 몸과 피가 우리를 거룩하게 하기에 주님처럼 거룩한 생활을 하려고 성령의 도움을 구합니다. 뿐만 아니라 성찬을 먹으며 성도의 거룩한 교제를 확인합니다. 주께서는 빵과 잔을 제자들에게 나눠주시고 함께 나누어 먹게 했습니다. 성찬은 주님이 주시는 몸과 피를 한 식탁에서 함께 나누어 먹는 예식입니다. 형제가 서로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이루기에(엡 2:21) 분쟁이나 나뉨을 피하고 주 안에서 한 몸이며 한 식구라는 것을 때마다 확인하고 점검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찬을 바로 먹는 것이고 재림을 기다리는 거룩한 교회공동체로 바로 서는 일입니다.

8. 구약의 회막과 성막과 성전에 거하던 하나님은 신약의 교회에 거하십니다. 그것은 공간적인 집의 의미보다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거룩한 교제를 말합니다. 교회는 장차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지점입니다. 말씀과 세례와 성찬을 통하여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함께 살며 주님의 다스림을 받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식탁에서 영원히 먹게 되는 그날까지 성찬을 반복하여 먹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식구 된 성도들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주님의 승리를 삶으로 살아낼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일상을 살며 생명을 주시는 주님을 마음껏 자랑하고 전할 것입니다. 성찬은 하나님 나라를 맛보고 경험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래서 성찬을 무시하거나 거를 수 없습니다. 한 식탁에서 함께 먹으며 주님을 기뻐하는 천국의 즐거움이 속히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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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누리는 자유 (막 1:21-28)

1. 신 18:1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이 말씀은 모세와 같이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는 선지자들이 나올 것을 말한 것입니다.(신 17:15) 뿐만 아니라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한 약속입니다. 모세가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으로 일했던 것처럼 온 인류를 위한 대제사장이며 영원한 왕이며 참 선지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약속하신 것입니다.(행 3:22) 예수라는 이름의 의미처럼 주님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모세의 말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입에 있으니 그에게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주님은 모세와 같은 선지자로 오셨지만 모세나 선지자들보다 훨씬 크신 분이며 말씀이신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신 분입니다.(요 1:1)

2. 그러기에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권세가 나타났습니다.(막 1:22) 갈릴리지역의 가버나움에 있는 회당에서 설교할 때에 말씀에 나타나는 권세로 인해서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다른 서기관들이 가르치는 내용과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하나님이기에 그의 가르침은 하나님 아버지의 생각과 마음으로부터 나온 것이었습니다.(요8:26)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지를 설교했습니다. 말씀을 선포하는 중에 한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소리쳤습니다.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막 1:24) 귀신은 이미 그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귀신을 꾸짖어 잠잠하게 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도록 명령했습니다. 그 사람은 귀신에게서 풀려났고 참된 안식을 얻었습니다.(막 1:21-27)

3.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력이 나타납니다.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어서, 어떤 양날 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뚫어 혼과 영을 갈라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놓기까지 하며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도를 밝혀냅니다.” 그래서 듣기 좋은 말만 들으려 하지 말고 지엄하신 하나님을 뵈옵는 자세로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그래야 교묘하게 속이는 마귀가 우리 안에서 일하지 못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설교함으로 마귀에게 묶인 자들을 자유롭게 했습니다. 요일 3:8은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라고 말합니다. 마귀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넓어지는 것을 방해합니다. 시험에 빠지게 하고 낙심하게 합니다. 좌절하고 분노하고 미워하고 분쟁하게 합니다. 기도하지 못하게 하고 믿음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의심하고 핑계하고 게으르게 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능력을 잃어버리게 합니다. 그러나 사단의 권세를 깨부수고 죽음의 권세를 이긴 주님은 기록된 말씀과 성령의 감동으로 우리를 새롭게 합니다.

4.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일과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롬 14:17) 하나님의 법이 통용되고 하나님이 다스리는 곳에는 영적생명력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영적 존재로의 회복이 일어납니다.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가 일어납니다. 주님은 섬김을 받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주기 위해서 왔습니다.(마 20:28) 그러기에 주님이 계시는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구원이 일어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참 자유와 기쁨과 구원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5. 예수님은 병자를 치료하고 죄 용서를 주셨지만 기득권 세력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병자들이 치유 받고 자유를 누리는 것보다 자기들이 지키던 전통이 깨지는 것을 더 염려했습니다. 결국은 예수께서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라고 말한 것을 신성모독으로 간주하여 십자가에 매달았습니다.(요 5:18) 이것이 영적능력을 경험하지 못한 인본주의적인 신앙생활의 한계입니다. 분명 하나님을 위하고 율법과 전통을 지키려는 것인데 하나님의 뜻과는 다른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의 관심과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병자들을 불쌍히 여겨 치료해 주셨고 귀신을 내쫓고 천국복음을 전했습니다. 소문을 듣고 찾아온 수많은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32-34절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더라. 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 40-45절에서는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불치병인 문둥병까지 치료해 주셨습니다.

6. 예수님에게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죄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죄 용서와 자유를 주시고 병을 치료해 주고 마귀에게 눌린 사람들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메시아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의 기대를 갖고 자기 문제 해결을 위해 찾아왔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탓하지 않고 불쌍히 여겼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성령을 통하여 우리들을 격려하고 도와주십니다.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게 합니다.(살전 5:16-18) 형통할 때나 문제를 만날 때나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살게 합니다. 그는 우리를 위해 중보해주는 대제사장이며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대변해 주는 주님입니다. 사도 요한은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1서4:10)라고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했습니다.

7. 세상에는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지만 우리에게는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고전 8:6)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자비하셔서 그를 찾는 자들에게 외면하지 않고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약 5:11) 하나님은 요나에게 니느웨 백성들을 구원해야 할 당위성을 설명했습니다. 요나는 자기가 키운 것도 아닌 박 넝쿨이 그늘을 만들어주다가 말라버리자 아까워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요나에게 십이만 명의 사람들과 짐승들이 있는 니느웨를 어찌 아끼지 않겠느냐고 말씀했습니다.(욘 4:10-11) 자비와 긍휼이 풍성한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결코 외면하지 않습니다.

8. 그러니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고(벧전 5:7) 주님 주시는 평안을 누리십시오. 주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보다 더 넘치는 것으로 응답해 주는 분입니다.(엡 3:20) 시 17:8-9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내 앞에서 나를 압제하는 악인들과 나의 목숨을 노리는 원수들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시 111:5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양식을 주시며 그의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시리로다.”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그의 품에 거하며 참 자유와 평안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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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의 감격을 누리십시오. (욘 3:1-10, 막 1:14-15)

1. 예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설교했습니다. 세례요한이 잡힌 후에 갈릴리에서 복음사역을 시작하면서 예언자들이 말한 메시아가 자신이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의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알렸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바라는 유대 나라의 회복을 기대했지만 예수님이 선포한 하나님의 나라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그리스도이신 자신을 믿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부들을 불러 자기를 따르게 하고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게 했으며 그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동참하게 했습니다.

2. 하나님 나라를 맛보기 위해서는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죄에서 돌이켜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진정한 회개가 있을 때 비로소 복음을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니느웨를 회개시키려는 하나님은 요나에게 두 번째 말씀을 주셨습니다. (욘 3:1-3) 첫 번째 주신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도망치다가 풍랑을 만났고 바다에 던져진 요나는 고기 뱃속에서 사흘을 지나며 철저히 회개하고 다시 기회를 얻었습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나온 요나는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게 된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으로 그들 앞에 섰을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하며 높은 자나 낮은 자를 막론하고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행한 것 곧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고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않았습니다.(욘 3:10) 회개한 니느웨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입니다.

3. 예수님의 지상 사역의 초점은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하늘나라 혹은 천국으로 표현되는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모든 영역을 말합니다. 나라가 존속되려면 주권과 국민과 영토가 있어야 하듯이 하나님 나라도 하나님의 왕권이 하나님께 속한 택한 사람들과 그들의 생활영역에 나타나는 것을 하나님의 나라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죄에서 구원받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원합니다.(딤전 2:4)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십자가에서 죽게 했고 그를 믿는 자들을 죄에서 구원하십니다. 이 복음을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사단의 일을 멸하기 위해 세상에 왔으며 재림하여 끝낼 일도 사단과 사망을 멸하는(고전 15:23-28)일입니다. 주님은 구원받은 성도들을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가득한(롬 14:17)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할 것입니다.

4.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적인 것이면서 또한 미래적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육체로 세상에 와서 사역을 시작함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하는가를 묻는 바리새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 가운데 임했다고 말했습니다.(눅17:21) 씨앗이 땅에 뿌려지면 자라고 열매를 맺는 것처럼 예수 믿는 사람들 속에 이미 하나님의 나라 곧 천국이 시작되어 자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께서 권능가운데 다시 오시어(마 16:28) 사단을 영원한 불 못에 던지고(마 25:41) 온 세상 만물을 새롭게 회복하실 그 날에(마 19:28)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것입니다. 성도는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오늘 여기서 맛보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죄 용서 받고 거듭난 백성으로 거룩한 교회 공동체를 이루며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기 때문입니다.
5.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신 예수님은 곧 제자들을 선택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을 불러 자기를 따르게 하여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했습니다.(막 1:17)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꿈을 나눈 제자들과 같이 일했습니다. 지금 우리시대에도 그 부름에 응답한 성도들을 불러 사용하십니다.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와 앞으로 완성될 하나님 나라 사이에 사는 성도들을 불러 복음을 삶으로 살아내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삶으로 경험하며 전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더 이상 사단의 구속을 받지 않고 예수이름의 능력으로 살며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주님 다시 오시는 날에 우리는 주님을 대면하여 볼 것이고 그와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아직은 제한된 존재이기에 하나님 나라의 능력과 기쁨을 키우고 간수하기 위해서 믿음의 싸움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6. 처음교회는 이것을 위해 자기들의 주도권을 과감하게 내려놓았습니다. 할례와 유대인의 전통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치는 다른 교사들이 이방인 출신 교인들의 발목을 잡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와 사도들은 그들이 유대인의 전통과 규례에 얽매이지 않고 십자가 복음을 믿을 수 있도록 큰 결단을 내렸습니다. 행 15:28-29 “성령과 우리는 꼭 필요한 다음 몇 가지 밖에는 더 이상 아무 무거운 짐도 여러분에게 지우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우상에게 바친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하여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런 것을 삼가면, 여러분은 잘 행한다고 하겠습니다.” 구원은 어떤 행위나 훈련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성도는 하나님 나라의 감격과 구원의 은혜를 누리고 전하도록 부름 받은 사람입니다. 이것이 큰 특권이며 기쁨입니다. 그러기에 성도들은 세상재미에 매이지 않아야 합니다.

7. 사도바울은 주의 재림의 날을 기억하고 주님께 향한 마음이 나뉘거나 초점이 흐려지지 않도록 자신을 관리하라고 했습니다. 그날에는 지금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세상의 것들이 다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전 7:29-31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제부터는 아내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처럼 하고,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하고, 기쁜 사람은 기쁘지 않은 사람처럼 하고, 무엇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하고,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처럼 하도록 하십시오. 이 세상의 형체는 사라집니다.“ 결혼같이 중요한 일조차 주님을 섬기는 마음을 흐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고전 7:35) 그러기에 성도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주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고전 10:31) 주님 오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이 없도록 자신을 관리해야 합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영생을 쟁취해야 합니다.(딤전 6:11-14)

8.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영적인 나라입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고 알게 하는 땅에 세워진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의 구속사역과 성령의 일하심으로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는 백성이 되었으니 그 감격을 사단에게 다시 빼앗기지 맙시다. 날마다 깨어 믿음의 싸움을 하며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교회생활을 함께 합시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의인이 누리를 복을(시 68:3) 받아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시절을 따라 열매를 맺고 잎이 마르지 않고 범사가 형통하게 되는(시 1:3) 하나님 나라의 감격을 누리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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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성장을 꿈꾸자 (벧전 2:1-3)

1. “버려지고 찢겨 남루 하여도 내 가슴 깊숙이 보물과 같이 간직했던 꿈, 혹 때론 누군가가 뜻 모를 비웃음 내 등 뒤에 흘릴 때도 난 참아야했죠…저 차갑게 서 있는 운명이란 벽 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 언젠가 나 그 벽을 넘고서 저 하늘을 높이 날을 수 있어요. 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 순 없죠. 내 삶의 끝에서 나 웃을 그날을 함께해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거위의 꿈이라는 노래 가사입니다. 날지 못하는 거위가 현실의 벽 앞에서 고민하지만 분명히 날 수 있다는 꿈을 믿는 내용입니다. 가수 인순이가 자기 이야기처럼 생각되어 불렀다는 노래입니다. 혼혈아로 자라며 정체성혼란을 겪었던 그는 다문화 가정에서 자라는 중학생들을 위해 대안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넘을 수 없을 것 같던 벽을 넘고 보니 다른 사람의 아픔을 돌볼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이지요.

2. 마틴 루터 킹 목사는 흑인들이 사람다운 대접을 받지 못할 때 이런 연설을 통하여 사람들을 계몽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을 자명한 진실로 받아들이고, 그 진정한 의미를 신조로 살아가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조지아의 붉은 언덕 위에 옛 노예의 후손들과 옛 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애의 식탁에 함께 둘러앉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불의의 열기에, 억압의 열기에 신음하는 저 미시시피 주마저도, 자유와 평등의 오아시스로 변할 것이라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네 아이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그런 나라에 살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완벽하지 않지만 그 꿈은 이루어졌고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3.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성령을 받아 예언하고 꿈꾸고 환상을 보게 된다고 말합니다.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 2:17) 예언과 꿈과 환상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주는 수단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믿음으로 승리하는 것을 약속해 줍니다. 성령께서는 말씀에 눈이 열리게 하여 믿음으로 살게 합니다.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여 시절마다 열매를 맺는 의인의 형통을 누리게 합니다.(시1편) 자기 욕심과 불의한 세상과 악한 세력과 싸워 이기게 합니다.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에 관심을 갖게 하고 그 부름에 응답하게 합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꿈이 되게 합니다.

4.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이루어냈습니다. 그의 나이 열일곱에 형들에 의해 노예 상에게 팔렸고 죄수가 되어 갇히기도 했습니다. 그런 중에도 요셉은 하나님을 두려워했고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며 자신을 거룩하게 지켰습니다. 그에게 각인된 하나님이 주신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형들의 곡식 단이 요셉에게 절을 하고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이었습니다.(창 37장) 비록 이 꿈 때문에 형들의 미움을 받아 팔려가는 신세가 되었지만 결국 그 꿈은 이루어졌고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 사용했습니다. 옥에 갇혀 있을 때에 술 맡은 관리와 빵 굽는 관리의 꿈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한 사람은 사형에 처하게 되고 한 사람은 복직이 될 것을 미리 알려주었습니다.(창 40장) 나중에 요셉은 왕의 꿈도 해석하여 하나님의 계획을 알려주었습니다.
5. 요셉은 자기 재주로 꿈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요셉이 얼마나 하나님과 동행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요셉은 역사를 주관하는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은 요셉을 통하여 자기 계획을 모두에게 드러냈습니다. 일곱 좋은 암소와 일곱 좋은 이삭은 칠년 동안의 풍년을 의미하고 파리하고 흉악한 일곱 소와 동풍에 말라 속이 빈 일곱 이삭은 칠년의 흉년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은 풍년이 들었을 때에 앞으로 닥칠 흉년을 미리 준비하게 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을 세워 나라를 다스리게 하고 풍요로울 때에 세금을 더 걷어 어려울 때를 대비하게 했습니다. 왕은 하나님의 사람 요셉을 총리로 세워 나라를 다스리게 했습니다.(창 41장)

6. 요셉의 꿈이나 출세를 자기를 위한 야망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큰 나라 애굽의 총리가 된 이민자 출신 요셉은 분명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꿈은 하나님의 역사를 진행하기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꿈이라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을 통하여 복을 받게 하려는 하나님께서 그의 후손 이삭과 야곱과 요셉을 사용한 것입니다. 요셉은 큰 흉년으로 어려울 때 식구들을 애굽의 고센 땅으로 불러들여 살게 했고 그들은 거기에 정착하여 민족을 형성했습니다. 후에 요셉을 알지 못하는 다음 왕이 그들을 핍박하자 하나님은 모세를 세워 가나안으로 이주시켰습니다. 거기서 제사장 나라로 살며 이방나라들에게 하나님을 알리게 했습니다. 요셉은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 사용된 것입니다.
7. “하나님이 나를 형님들보다 앞서서 보내신 것은 하나님이 크나큰 구원을 베푸셔서 형님들의 목숨을 지켜주시는 것이고 또 형님들의 자손을 이 세상에 남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제로 나를 이리로 보낸 것은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창 45:7-8) 이 말은 형들이 요셉 앞에서 두려워할 때에 요셉이 형들을 위로한 말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신뢰했고 하나님을 두려움으로 섬겼습니다. 자기 야망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따라 살았습니다. 어느 경우에서도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았습니다. 새해에 여러분은 어떤 꿈을 꾸십니까? 건강하고 부자가 되고 자녀들이 잘 되고 형통한 생활을 바라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것이 속사람을 더 강건하게 하고 영적으로 성장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 받는 것으로 결론지어져야 할 것입니다.

8. 갈 2:20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살고 있는 삶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우리 삶의 목적이 달라집니다. 더 이상 나를 위하여 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기에 그 이름의 권세를 일상에서 경험합니다. 복음의 능력으로 살며 다른 사람에게 그 능력을 나눕니다. 하나님을 모신 사람답게 거룩함을 추구합니다. 엡 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벧전 2:2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처럼 올해에 주님을 더 깊이 경험하고 닮아가려는 영적성장을 꿈꾸어보지 않으렵니까? 영적 성장을 위한 신령한 젖인 말씀에 더 깊이 빠져보지 않으렵니까? 주의 도우심을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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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떡인 예수 그리스도 (요 6:25-40)

1. 요 6장에서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표적을 보이고 물위를 걷는 일로 자신이 메시야임을 밝혔습니다. 사람들은 홍해를 건너고 만나를 먹었던 일을 기억하고 예수님을 모세와 같은 선지자로 믿었습니다. 떡을 얻어먹은 군중들은 자기 삶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능력자로 믿고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하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마땅하지 않게 여기고 그 자리를 피해 산으로 떠났습니다. 군중들은 다음 날도 가버나움까지 배를 타고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요 6:26)라고 하며 썩을 양식보다 영생하는 양식을 위해 일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표적을 통하여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 자신에 대하여 알기를 원했습니다.

2. 성경에 나오는 여러 기적들은 하나님을 알려주는 수단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잠깐 관심을 가졌다가도 자기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하나님을 잊곤 했습니다. 이집트 바로에게 행한 열 가지 재앙은 바로의 신들을 징계하는 하나님의 승리를 알려준 것입니다. 홍해를 마른 땅으로 건너고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보호한 것은 그 일을 행하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게 하는 도전이었습니다. 엘리야가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제물을 태운 것은 하나님이 참 신임을 알게 하여 백성들이 우상숭배에서 떠나게 한 일입니다. 예수님도 사람들이 표적을 보고 메시아이신 자신을 바로 알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세워 자기 유익을 도모하려고 했습니다.

3.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하는지를 물었고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씀합니다. 그 어떤 일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35절에서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생명의 떡인 예수님께 나오는 자는 배고프지 않고 목마르지도 않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또 주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자가 주님 안에 거하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앙생활은 자기문제의 해결이나 기적을 경험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사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4. 죄로 죽을 인생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용서를 받고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든 처음 사람은 죽지 않게 만들어졌지만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를 짓고 그 결과로 죽음이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상태가 곧 죽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그 생명을 다시 돌려주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고 십자가에서 대신 죽어 값을 치루셨습니다. 그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시는 것은 그가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셨다는 것을 인정하고 믿는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영생을 얻습니다. 사도요한은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다고 했습니다.(요일 5:12)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안에 거하는 자가 영생하는 생명을 얻습니다.

5. 예수 믿고 구원받는 신분의 변화는 순간에 일어납니다. 어둠에 속한 자가 빛에 속하게 되고 마귀에게 속하여 살던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이 그에 합당한 생활을 하기까지는 지속적인 성장과정이 필요합니다. 날마다 음식을 먹고 필요한 에너지를 얻어 성장하는 것처럼 날마다 예수 안에서 살며 그와 교제하고 그를 닮아가는 계속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영적인 성장이라고 표현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배고픔이나 갈증을 느끼지 못한다면 심각한 병에 걸린 사람일 것입니다. 영적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더 깊이 알려는 배고픔이나 갈증을 느끼지 못하거나 매너리즘에 빠져서 영적인 감동이 사라졌다면 다시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6. 골 3:1-3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가 세례 받을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옛사람은 죽었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더 이상 자기가 주인 노릇하는 인생을 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당한 사람답게 원줄기인 예수 그리스도에게 꼭 붙어서 양분을 섭취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만 존재 의미가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들이 자기 생활을 잘해보려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위의 것을 찾고 거기에 마음을 두는 것입니다.

7. 성경은 이런 영적 사실들에 대하여 알려줍니다. 불신자들에게는 구원에 이르는 길을 알게 하고 구원받은 성도들에게는 하나님 안에서의 즐거움을 누리게 합니다. 구원의 확신이 필요한 사람은 요한복음을 먼저 읽는 것이 좋습니다. 감사와 찬양으로 가득한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 같은 시가서를 묵상하면 우리 삶에 관여하는 하나님을 마음 가득 채울 수 있습니다. 구원에 대한 도리를 바로 알고 싶다면 로마서와 갈리디아서를 공부하면 좋습니다. 교회생활에 대한 가르침은 에베소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읽으면 성령의 일하심을 함께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 어느 경우라도 하나님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차근차근 읽고 묵상하고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만이라도 읽을 수 있다면 큰 의미가 있겠지요. 그러나 통독을 여러 번 했다 해도 다시 읽고 묵상해야 하는 이유는 영적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어제 배불리 먹었지만 오늘의 음식이 또 필요한 것처럼 우리의 영적 생활을 위해서도 날마다의 양식이 필요합니다.

8. 같은 성경을 다시 읽는 것은 같은 본문이라도 날마다의 상황에서 새롭게 이해되기 때문입니다. 그때마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교제하는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을 어느 한쪽으로만 이해하지 않고 전체를 보고 깊이 알기 위해서 성경 전체를 읽자는 것입니다. 예고편을 보면 영화의 줄거리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고편만 보려고 극장에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장면 하나 하나에 들어있는 감동을 느끼려고 전체 영화를 보는 것입니다. 내게 필요한 단편적인 말씀만 선택하여 읽거나 구원받은 것으로 만족한다면 성경 전체가 주는 감동을 알 수 없습니다. 시편기자는 주의 말씀이 꿀 송이처럼 달다고 표현했습니다. 올해도 우리 모두가 말씀으로 다시 새롭게 되기를 원합니다. 말씀을 사모하고 읽고 묵상하여 영적 성장을 이루기를 원합니다. 사랑에 푹 빠진 연인들처럼 온통 마음을 주님께 두고 주님 안에 거하는 기쁨을 새록새록 누리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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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받은 일군 (딤전 1:12-17, 롬 12:1-5) 신년주일 직원헌신예배

1. 예수 믿고 난 후에 깨닫는 것은 우리의 구원이 나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선택하고 불러 자녀삼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엡 2:8) 어느 시대나 하나님은 당대의 사람들 모두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아담의 후손으로 가인이 아닌 셋을 선택했고 노아의 아들 중에서 셈을 선택했고 셈의 후손 중에서 아브라함을 선택했습니다. 선택은 특별한 은혜이고 거기에는 책임이 뒤따릅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가 모태에서 조성되기 전에 그를 알았고 그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성별하여 선지자로 세웠습니다. 성도는 많은 사람들 중에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도 목자 잃은 양 같은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제자들을 선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교회를 사용하려고 직분자들을 선택하여 일군으로 세우셨습니다.
2. 선택받은 제자들도 완전하지 못한 보통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일상을 통하여 가르쳤고 준비훈련을 시켰습니다. 전도하기 전에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도 주셨습니다. 마 10:1을 보면 열두 제자에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고 마을로 파송하여 전도하게 했습니다. 막 3:14-15에서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고 제자들을 세웠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거하며 배우고 전도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선택했습니다. 제자들은 그렇게 훈련을 받고도 영적 사역에 승리할 때도 있었고 실패할 때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고난당하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할 정도로 비겁하고 심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 사후의 제자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혔고 사명을 버리고 흩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 이후에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 성령의 도우심으로 사역했습니다.

3. 바울은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고전 1:27-28)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처럼 연약하고 흠이 있는 사람을 선택하여 일하게 하셨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반대하고 교회를 핍박하던 자신이 복음을 전하게 되었으니 하나님의 일하심이라는 것이지요. 롬 16:25-26에서는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이제는 나타내신바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방인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오래된 계획이 자기를 통하여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 정체성과 사명을 파악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평생 자랑하고 전했습니다. 자기가 사는 이유조차도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자기 안에 산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자기를 선택하여 주신 은혜에 감사하여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책임을 감당했습니다.

4. 교회는 구원을 경험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모인 공동체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모인 사람들입니다. 우리같이 약한 자들을 충성스럽게 여겨 주시고 구원받을 때까지 인내하고 기다려주신 은혜에 감사하여 모인 것입니다. 아직 완전하지 못하지만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여 주님을 자랑하고 선전하기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님 닮기를 소원하고 자기를 포기하고 주님을 높이는 생활을 연습하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은 제자 디모데에게 받은 은사를 분명히 하고 직임에 전심전력하라고 권면했습니다.(딤전 4:15-16) 이것처럼 오늘 헌신예배를 드리는 직분자들은 구원의 도리를 바로 알고 그 은혜에 감사하여 주어진 일에 전심전력하며 주님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먼저는 구원의 확신에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선택하고 불러 구원하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에 대하여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의 핵심을 바로 알려줄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의 기초위에 자기 분야의 실력을 키워야 합니다. 예배 선교 교육 봉사 새가족 음악 재정 분야에서 협력하며 전문성을 키워가는 것입니다.

5. 바울은 갈 2:9에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과 같은 자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측근에서 더 많이 생각하고 경험하며 예수님을 섬긴 제자들입니다. 그들이 예루살렘 교회를 지탱했고 큰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우리교회의 직분자들은 우리교회를 세우는 기둥입니다. 이들의 수고와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 교회가 여기 있습니다. 주께서 여러분의 수고를 알아주시고 힘주시기 원합니다. 집사 권사 장로의 직임은 서열이나 계급이 아니라 주님의 몸인 교회를 세우기 위해 일을 분담한 것입니다. 기둥은 흔들리지 않아야 하고 자기 자리를 묵묵하게 지켜야 합니다. 서로 비교할 일도 없습니다. 집의 무게를 다 받쳐 들고도 견뎌내는 책임과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기둥이 흔들리면 집이 무너집니다. 우리를 보스톤중앙교회의 직분자로 세워주신 것은 교회를 든든하게 세워서 복음을 전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 자리를 굳게 지키는 기둥이 되어야 합니다.

6. 교회는 협력으로 세워집니다. 롬 12장의 말씀처럼 많은 지체가 한 몸을 이룹니다. 이처럼 다양한 은사를 가진 성도들이 협력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입니다. 엡 2:20-22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그리스도께서 기초가 되고 우리는 그 위에 세워진 기둥으로 서로 연결되어 하나님이 거하는 집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공동체 훈련도 필요하고 서로에게 대한 책임도 중요합니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행해야 합니다. 서로 존중하고 화목해야 합니다. 열심을 품고 주를 섬겨야 합니다(롬 12:11) 교회를 위한 협력은 열심히 모이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모든 일에 주인의식을 가진 일군이 되어주십시오. 그리고 정성껏 헌금하여 사역의 필요를 채우는 것입니다. 그래야 말씀에 든든히 서는 교회가 되고 복음을 전하는 영적 사역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7. 이 모든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분은 성령님입니다. 우리 안에 거하는 성령과 함께 살며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이 그래서 필요합니다. 말씀을 읽고 공부하고 순종하여 우리와 함께 하는 성령님을 기쁘게 하는 신앙생활이 되게 합시다. 말씀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생기고 내 판단으로 신앙생활을 하기 쉽습니다. 올해 교회목표를 ‘말씀으로 다시 새롭게’라고 정한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말씀이 우리를 인도해 가도록 자기훈련에 힘써 한 해 만큼 더 성숙해지고 성장하는 새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1) 라는 칭찬을 듣도록 함께 노력합시다. 주의 은혜가 함께 하기 바랍니다.